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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66화 (266/359)

266화 남해성녀 시서우-1

성녀의 깔끔한 인정에 말문이 막힌 것은 오히려 마경 만학숭 쪽이었다.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인 그녀가 자존심도 없는 듯 너무 쉽게 스스로를 깎아내린 것이었다.

마경으로선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존심을 버린 성녀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용가주 용우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왕 승패가 결정된 김에 용가주님께 남은 싸움을 좀 도와주십사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 혼자선 도저히 그를 이길 자신이 없군요.”

그 말에 이제껏 미안한 마음에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용우신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성녀는 용우신을 향해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등골이 서늘해졌을 만큼 추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용우신은 그것이 그녀의 웃는 표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용우신을 향해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듯 환하게 웃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언행을 이해한 선우진은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킨 용우신을 책망하기는커녕, 그의 죄책감을 덜어 주기 위해 마경에게 패배했음을 그냥 인정해 버렸던 것이었다.

목숨보다 체면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대부분의 정파인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자 배려가 아닐 수 없었다.

묵랑이 문득 그녀에게 감탄하며 말했다.

- 허어! 대단하군! 솔직히 그녀의 외모를 보고 왜 성녀라는 별호가 붙었는지 의아해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겠네. 저렇게 지혜롭고도 배려심이 넘치는 여인은 내 생전에도 거의 보지 못했으니 말일세!

묵랑의 감탄에 선우진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얘기해 주었다.

‘사실 그녀는 젊은 시절 엄청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미색을 탐한 악적들에 의해 순결을 빼앗기고 가문마저 멸문당하고 말았었다죠. 얼굴도 그때 저렇게 파괴당했고 말입니다.’

- 허어! 그랬었군! 원래 미인이었던 여인이 저런 외모가 되었다면 상처도 몇 배 더 컸을 터인데….

‘저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는 십여 년간의 고련을 통해 힘을 쌓고는 복수행을 시작했지요. 원수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그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며 복수행을 벌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 세 명까지만 죽이고는 나머지 세 명을 찾아갔다가는 결국 그들을 죽이지 못했다더군요.’

성녀가 그들을 죽일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의 원수들이 가정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원수들을 보고는 차마 그들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그들을 제압하고는 죄 없는 가족들을 위해 한 번씩의 기회를 더 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에 의해 가족과 미모를 모두 잃어버렸던 그녀였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선우진의 얘기를 들은 묵랑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 …힘이 있음에도 복수를 포기했다는 건가?

그건 복수를 율법처럼 숭상하는 무림인들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오히려 비난도 많이 받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의 상식이나 비난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원수들의 근처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를 계속 지켜보며 그들의 행동을 강제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 후, 그녀의 원수들은 다시 두 가지의 경우로 나뉘어졌다.

세 명 중 둘은 결국 다시 악행을 저질러 성녀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진심으로 개심해 이후 선업을 쌓으며 살아갔던 것이었다.

성녀는 그 후 개심한 원수의 자식은 제자로 삼았고 자신이 죽였던 원수의 가족들도 모두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물었답니다. 왜 복수를 하지 않고 오히려 귀찮은 짐을 더하냐고. 그러자 그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고 합니다. 그저 내 마음이 더 편해지는 방향을 택했을 뿐이라고요. 그 후부터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더군요.’

선우진의 얘기를 들은 묵랑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 허어, 놀랍군. 정말 놀라운 여인이야.

선우진은 문득 다시 싸움을 시작한 성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사이 다시 마경과의 싸움을 시작한 상태였다.

선우진은 어쩐지 그녀의 얼굴이 아까처럼 흉측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녀에 대한 얘기를 해서인 것 같았다.

이젠 그녀가 흉측해 보이기는커녕 어쩐지 약간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는 느낌이었다.

선우진은 문득 고개를 돌려 역시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용우신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성녀께서도 허락하셨으니 저희도 참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퍼뜩 정신을 차린 용우신이 아까와 비슷한 모습으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야 기습이어서 효과를 발휘했다지만 마경이 이미 우리를 인식하고 있는 지금 그게 가능하겠는가?”

용우신의 의문은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마경이 이미 두 사람에게 경계심을 가지게 된 이상 기습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까도 일격을 날리자마자 바로 이탈하지 않았던가.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만약 마경에게 노려지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성녀에게 방해가 될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자신 있는 말투로 용우신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느끼기에 마경의 호신강기는 성녀님 쪽으로 집중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 저희가 후방을 노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집중을 흐트러뜨려 놓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저희가 접근한다면 분명….”

용우신은 선우진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하기 시작했다. 비록 천하삼십육성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그였지만 그는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가 생각할 때 아까 성녀를 살린 것도 그렇고 이 나이 어린 후배에게는 혜안이 있는 것 같았다.

한편, 마경과 성녀의 싸움은 아까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경이 호신강기를 유지한 채 성녀를 향해 몸을 압박해 들어가고 있는 상황.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성녀가 쉽사리 공격을 하지 못한다는 점과 마경이 아까보다 훨씬 조급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흐아압!”

콰아아아앙!

몸통 박치기로 성녀를 몰아붙이며 마경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식했다.

이제 내공이 거의 고갈되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자신의 후방으로 두 명의 기척이 접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키고 자신에게 부상을 입혔던 괘씸한 놈들, 인파랑과 용우신이었다.

‘이 개놈들이 또….’

마경은 일단 그들이 접근하는 것을 모르는 척했다.

최대한 방심을 유도해 그들부터 끝내기 위해서였다.

성녀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저 날파리 같은 놈들을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하아아압!”

마경은 뒤를 완전히 열어 준 채로 성녀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자 드디어 날파리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후방을 기습하기 위해 직선으로 쏘아져 왔던 것이다.

‘멍청한 놈들!’

씨익 웃음 지은 마경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한 팔만 돌려 강환을 쏘아 냈다.

단 한 방으로 진태도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었던 그 거대한 강환이었다.

슈아아아악!

마경은 놈들이 강환에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공중으로 몸을 날린 상태였기에 피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설사 엄청난 행운으로 피한다고 해도 당분간 자신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뒤의 결과는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성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껴 뒀던 최후의 한 수, 원령수를 시전하기 위해서였다.

***

선우진과 용우신은 마경의 등을 향해 은밀하게 접근했다.

놈은 성녀 쪽으로 온정신을 집중했는지 뒤쪽으로는 시선 한 번 돌리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두 사람은 마경의 훤하게 열린 등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박!

마치 동시에 쏘아진 두 개의 화살처럼 신속한 기습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던 마경이 팔만 휘둘러 그들을 향해 강환을 쏘아 냈다.

직경이 사람 키보다도 큰 거대한 강환이었다.

슈아아아악!

선우진과 용우신은 엄청난 크기의 강환이 자신들을 향해 덮쳐 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발 디딜 곳도 없는 공중에서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순간 허공에서 마주쳤다.

***

마경은 등 뒤로 강환을 쏘아 내고는 비장의 한 수인 원령수를 전개했다.

본신의 공력에다 진원지기까지 사용해야 하는 원령수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시전자의 수명마저 대폭 줄어들게 되는 마공이었다.

상대방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원령의 손아귀.

마경은 그것을 성녀 하나만을 상대하기 위해 익혀 놨던 것이었다.

우우우우우!

마경의 손에서 검은색의 불길한 강기가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순간 마경의 상체마저 가린 거대한 검은 손이었다.

“!”

성녀는 지금 마경의 한 수가 심상치 않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뒤로 물러섰다.

“하압!”

파박!

하지만 그 순간, 마경이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주욱 늘어나며 거대한 손이 순식간에 성녀의 눈앞까지 도달했다.

‘무슨?!’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성녀가 검은 연기의 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압!”

샤아아악!

성녀의 검이 부드럽게 검은 연기의 손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진짜 연기를 벤 듯 아무 감촉도 없었고, 손 모양의 연기에도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성녀가 마경의 수법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

그 순간 검은 손이 그대로 성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전신을 움켜잡으려 했다.

***

방금 전, 거대한 강환이 허공에 떠 있는 선우진과 용우신에게 막 충돌하려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위기였지만 두 사람은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순간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공중에서 서로의 발을 박찼다.

파박!

그러자 다음 순간, 양쪽으로 갈라진 두 사람 사이를 강환이 헛되이 지나쳐갔다.

쐐애애액!

이미 마경이 이렇게 대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선우진의 대비책이었다.

그리고 이제껏 용우신과 보조를 맞추느라 속도를 제어하고 있던 선우진은 땅을 박차고는 최고 속도로 마경을 향해 돌진했다.

쉬이이이익!

거의 빛살과도 같은 속도였다.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마경의 등을 향해 선우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검격을 내리쳤다.

묵랑검법 일 초.

개천.

공간을 찢어발기는 천마의 검격이었다.

촤아아아아악!

마경은 원령수로 막 성녀를 움켜잡으려는 순간 등 뒤에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대로 원령수를 전개하다간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걸.

“크으윽!”

그는 어쩔 수 없이 원령수를 거두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선우진의 검격을 방어했다.

콰지지지지지직!

급하게 전개했다곤 하지만 전력을 다한 그의 호신강기가 속절없이 찢기고 있었다.

푸화악!

“으윽!”

마경의 앞가슴이 베이며 피가 튀었다.

다행히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개천을 날리고 옆으로 빠지는 선우진의 뒤를 이어 용우신이 날아와 도를 내리쳤다.

마경의 호신강기가 갈라진 지점을 노린 것이었다.

“감히!”

분노한 마경이 팔을 휘저어 용우신의 도를 튕겨 냈다.

터어엉!

그리고 바로 그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닥에서 한기를 내뿜는 얼음이 장벽처럼 솟구치며 그의 시야를 가렸다.

설랑검법 이 초, 천장빙벽이었다.

슈슈슈슈슉!

“!?”

생전 처음 보는 괴이한 초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기괴한 초식에 마경이 잠깐 당황했을 때였다.

원령수를 피해 물러났던 성녀가 다시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마경!”

“이런!”

마경은 빙벽을 부수려던 손을 멈추고는 성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날파리들이야 좀 귀찮을 뿐이지만 성녀에게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는 전방에서 날아오는 성녀에 대비하면서도 용우신과 선우진에 대한 주의도 놓지 않았다.

그의 감각에 용우신이 후방으로 물러나고, 선우진이 다시 옆에서 날아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귀찮은 놈!”

마경은 보지도 않고 선우진을 향해 강환을 날렸다.

예의 거대한 강환이었다.

그러자 다가오던 기척이 깜짝 놀랐는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우에에엑!”

‘응?!’

그 경박한 비명을 들은 마경은 눈을 꿈틀하고는 황급히 옆쪽을 바라봤다.

방금 들린 경박한 목소리가 그가 알고 있던 선우진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황급히 강환을 피해 몸을 날리는 왜소한 중늙은이가 들어왔다.

증칠이었다.

“!”

마경은 깜짝 놀랐다.

저자가 당연히 선우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놈은 어디에?!’

마경이 황급히 감각을 넓혀 선우진의 기척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푸우욱!

“!”

아무런 기척도 없는 투명한 빙검이 등을 관통해 가슴 앞쪽으로 튀어나왔다.

빙벽 뒤에 은신하고 있었던 선우진이 그의 틈을 노려 가한 기습, 설랑검법의 사 초 절대빙검의 초식이었다.

마경은 경악했다.

검이 자신의 등을 관통할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빙검이 그를 찔러 온 것이 아닌 허공에서 생성됐기 때문이었지만, 그 이유를 그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가슴을 뚫고 나온 투명한 빙검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성녀의 검이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쉬이이익!

마경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탄식했다.

“내가 호랑이 새끼에게 물리고 말았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놈에게 농락당하고 말았어.”

다음 순간, 그의 목에서 붉은 실선이 그어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푸화아악!

천하사마의 일인인 절대자 마경 만학숭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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