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역천귀혼대법-1
운남성 점창산.
혈교도의 소굴인 그곳에서 홀로 수련을 이어 가던 해청연은 어느 어스름이 진 저녁, 혈마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해청연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음에도 아무런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남자 구유음마 지기음에게 물었다.
“그가 날 부른다고요?”
“예, 소저께 꼭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피풍의를 깊숙이 뒤집어써 표정은 물론 얼굴도 볼 수 없었지만 지기음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종복이 주인에게 청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해청연은 그가 간곡하게 권유하듯 말했다고 해서 그게 거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가 보죠.”
그러곤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지만 지기음은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해청연은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자신의 뒤에 있을 그에게 문득 물었다.
“그 보여 주고 싶다는 건 대체 뭘까요? 구유음마께선 알고 계신가요?”
그러자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허공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제가 감히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해청연은 묵묵히 계속 걸었다.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마음속은 매우 복잡한 상태였다.
혈마가 그녀를 찾아온 적은 있어도 이렇게 자신을 따로 부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지? 설마 벌써 그 대법이라는 걸 실행하려는 걸까?’
이 부름의 이유가 역천혈마를 자신에게 빙의시키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부를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다.
‘어쩌지?’
해청연의 계획은 그 대법을 시행하기 전에 무위를 높여 혈교의 무리들에게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감각에 잡히지 않는 구유음마를 보면 알 수 있듯 아직 그녀의 실력으론 무리였다.
지금 어설프게 탈출하려 시도하다간 오히려 저들의 경각심만을 키워 줄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 대법 때문이 아니기를, 또는 대법이 실패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건가?’
해청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아 요행만을 바라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도 한심했다.
잠시 후 그녀는 점창산 중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녀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으으읍!”
혈마의 손에는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붙잡혀 있었다.
혈도가 점해진 듯 몸을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지만 아이의 눈만큼은 너무도 격렬하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눈에 가득 담긴 감정은 끔찍한 공포였다.
하지만 혈마는 아이가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아이의 가슴에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푸욱!
아이의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확대됐다.
그리고 그 눈에선 이내 빛이 사라졌다.
혈마가 아이의 심장을 뜯어낸 것과 동시였다.
푸확!
혈마는 아이의 시신을 옆으로 던져 버리곤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자신의 앞에 놓인 제단에 떨어뜨리며 중얼중얼 계속해서 주문을 외어 갔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방금과 같은 일이 수없이 반복된 듯,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여자아이들의 시신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천천히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문득 해청연의 눈이 혈마의 앞에 놓인 제단 쪽을 향했다.
그 제단에는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온통 피와 심장 부스러기에 뒤덮여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윤곽을 보건대 아마도 남자인 듯했다.
해청연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의식과 제단에 누워 있는 남자의 육신을 보며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적어도 역천혈마를 내게 빙의시키기 위한 의식은 아닌 모양이로구나.’
그러고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순간이나마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의 안도감이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 다음으로 바로 찾아온 감정은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었다.
‘저런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라고 안도하다니. 너 정말 최악이로구나, 해청연.’
아직 역천혈마에 빙의된 것도 아니건만 벌써 괴물이 되어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괴물이 된 건지도 몰랐다.
사람의 피를 빨아 내공을 높이는 괴물이….
해청연은 고개를 저어 자꾸 어두워져 가는 생각을 털어 버리고는 다시 혈마를 바라봤다.
그러자 혈마도 방금 그 아이가 마지막이었는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멈추고는 뒤돌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수십 명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했음에도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느새 관객들이 모두 모였구려. 오늘 일은 제갈 군사와 해 소저, 두 사람 모두와 연관이 있는 일이라 꼭 보여 주고 싶었소.”
그의 말에 해청연이 깜짝 놀라 옆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제갈지강이 역시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갈… 숙부? 당신이 어떻게?!”
“청연이, 네가… 살아 있었던 것이냐?”
몇 명의 사람들이 먼저 와 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서로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혈마가 행하고 있는 의식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경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그들을 향해 혈마가 다시 말했다.
“오늘 행하고 있는 이 의식이 바로 역천귀혼대법이오. 얼마 후 제갈 군사께서 모아 주실 재료로 해 소저께 행할 대법이지요.”
그 말에 해청연과 제갈지강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서로에게 말했다.
“재료를… 모아 준다고요?”
“이걸 청연이 너에게 행한다고?”
혈마가 한 말의 의미를 해청연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재료란 방금 혈마가 죽인 어린아이들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제단 주변에 늪처럼 고여 있는 피의 양과 중간중간 보이는 심장의 크기를 보건대 재료는 저 어린아이들만이 다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혈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런 모든 것들을 제갈지강이 모아 준다는 얘기가 아닌가.
해청연이 경멸을 담아 제갈지강에게 말했다.
“제갈 숙… 아니 당신,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땅바닥을 파고 들어갔던 거였군요. 어떻게 저런 짓을….”
그러자 제갈지강은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를 외면했다.
그리고 혈마에게 항의했다.
“이건 약속에 어긋나지 않소. 혈마께선 분명 저 아이를 없애 주시겠다고….”
그러자 혈마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오. 곧 그렇게 될 테니. 제갈 군사께서 재료를 모두 모아 주시는 그날 말이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의 말에 제갈지강은 꿀꺽 침을 삼켰고, 해청연은 이를 악물었다.
혈마는 시선을 제단에 누워 있는 남자에게로 향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여기에 누워 있는 이 아이는 내 모자란 제자였소. 멍청하게도 작은 일에 목숨을 잃고 말았지만 말이오. 나는 지금부터 역천귀혼대법으로 이 아이의 혼을 육신에 되돌릴 생각이오. 이 아이의 격이 역천혈마와는 비교가 안 되기에 쉽게 재료를 모을 수 있었거든.”
그 말에 제갈지강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을 되살리겠다는 말이오?”
그의 질문에 혈마가 빙긋이 웃음 지었다.
“그렇소. 제갈 군사도 해 소저처럼 믿기지 않는 모양이구려. 사실 나도 아직은 잘 믿기지 않는다오. 그래서 두 사람을 부른 거요. 함께 확인해 보기 위해 말이오.”
그렇게 말한 혈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제단에 누워 있는 구유상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예전 귀주성을 도모하려다 선우세가 근처에서 죽임을 당했던 그의 시신은 현재 혈마인으로 제련된 상태였다.
그러니 만약 진짜 혼이 돌아와 되살아나게 된다면 그는 과거보다 훨씬 더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절정 초입인 자들로 만든 혈마인이 초절정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어쩌면 천하삼십육성급 무력을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도락 스라오 무코….”
혈마는 정신을 집중한 채 의식의 나머지 부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그의 주문이 끝난 순간 혈마는 무언가가 확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가….’
그의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갑자기 눅진해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공기 대신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부글부글부글!
혈마는 제단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제단 주변에 고여 있던 피의 늪이 부글거리며 끓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온도가 높아져 끓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대법의 효과임에 틀림없었다.
“호오.”
혈마는 탄성과 함께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눈이 흥분과 기대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놀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해청연의 얼굴은 매우 창백해진 상태였다.
‘설마….’
그 순간이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던 피가 갑자기 제단의 측면을 타고 그 위로 천천히 꾸물꾸물 올라가기 시작했다.
묽게 흘러내렸던 피가 마치 살아 있는 진흙처럼 점성을 지닌 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오오오!”
그 놀라운 광경에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자 제단 위로 올라간 피들은 마침내 구유상의 시신에 도착해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로 고치를 만들 듯 진득한 핏물들이 그의 주변을 두툼하게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것도 매우 끔찍한 전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괴기스러운 광경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구유상의 몸은 이제 핏덩어리에 갇힌 커다란 고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진득한 핏물들이 두껍게 둘러싸 만든 끔찍한 모습의 고치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고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끔찍하게 부풀어 오르는 고치의 모습에 해청연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려야만 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듯 천천히 부풀어 올랐던 고치는 다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가라앉았던 고치는 다시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부풀어 오르고, 부풀어 올랐다 다시 가라앉고.
그 광경을 본 누군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건… 설마 숨을 쉬는 건가?”
그랬다.
그것은 마치 호흡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천천히 박동하는 심장처럼 고치 자체가 호흡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혈마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오오오!”
그 순간이었다.
진득하게 구유상을 감싸고 있던 핏물이 갑자기 확 무너지듯 주루룩 흘러내렸다.
진득한 점성이 한순간 사라져 처음의 묽은 피로 돌아가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핏물이 씻겨 내려간 고치 속에서 구유상의 육신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아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온 신경을 집중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모습이 아까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구유상이…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었다.
혈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유상아….”
그 순간이었다.
피투성이의 육신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증오 가득한 목소리로 포효했다.
“선우지인! 이노옴!”
선우진의 계략에 휘말려 죽었던 구유상이 죽음에서 돌아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