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절강성-1
선우진과 일행들은 빠르게 북상하고 있었다.
목표는 절강성.
백여 년 전, 지금도 고금제일로 논해지는 무신, 뇌신, 검신이라는 세 절대자들이 등장했던 곳이자, 그런 이유로 현재 신지라고 불리고 있는 지역이었다.
또한 선우진에게 있어선 검신의 진신절기가 감춰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신법을 전개해 달리고 있던 증칠은 힐끗 뒤를 돌아보고는 불퉁한 말투로 투덜거렸다.
“이건 무슨 산적 떼도 아니고, 일반 백성들이 보면 기겁을 하겠구먼.”
그의 말에 선우진과 설풍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만큼은 그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선우진이 이끌고 있는 인원들의 수는 정확히 스물네 명과 두 마리였다.
그러니 더 이상 소규모 일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 개의 무력대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것도 천하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강력한 무력대 말이다.
증칠이 다시 투덜거렸다.
“이게 뭐냐? 귀찮게 주렁주렁, 강시들을 이끌고 가는 술자도 아니고.”
그의 말에 선우진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강시라는 말씀은 좀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증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헹! 지나치긴.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그때였다.
뒤에 따라오던 검수 한 명이 끼어들었다.
“지나치세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주화입마에 걸려 이지가 마비되신 분들한테요!”
그렇게 말한 여인은 육합검수 파산 사 조의 여자 조원인 운영이었다.
그녀가 선우진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의 의지로 끼어들어 증칠에게 항의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파산 사 조의 조원들도 말을 보탰다.
“아무리 대사형의 의형이시라 해도 과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그들의 항의에 증칠은 당황한 표정으로 선우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선우진이 뿌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뭐 하십니까? 사과하시지 않고.”
선우진이 꾸준히 보살펴 온 파산 사 조의 육합검수들은 이제 몰라보게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이런 속도로 회복된다면 얼마 후엔 선우진이 섭혼술을 풀어 줘도 잘 살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증칠은 선우진의 눈을 피하며 구시렁거렸다.
“아니, 나는 이들이 아니라 저쪽을 보고 말한 건데…. 에이! 알았다! 사과한다! 내가 잘못했다!”
그러자 육합검수 운영이 다시 말했다.
“저분들에게도 사과해 주세요. 저희도 얼마 전까지 저런 상태여서 알지만 말은 못 해도 기억은 난다고요. 저분들도 나중에 다 기억하게 되실 거예요.”
“그, 그래?”
그녀의 말에 증칠은 당황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가 바라본 사람들은 파산 사 조의 무인들과는 달리 모두 중년의 나이 이상으로 보이는 노검수들이었다.
그들은 사실 자성진인이 이끌던 육합검수 파천 삼 조의 무인들이었다.
진태도와 협력해 선우진을 추격했다가 마경에 의해 자성진인이 죽자 그대로 행동을 멈춰 버렸던 파천 삼 조의 무인들 말이다.
선우진은 마경이 성녀와 충돌했을 때 가지고 있던 약을 이용해 자성진인의 시신에서 재빨리 고를 빼내고는 그것을 먹어 파천 삼 조의 제어권을 손에 넣었었다.
그러고는 무너지는 협곡을 빠져나오며 그들에게 검진을 유지해 그 속에서 버티라고 명령했었다.
물론 그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내린 명령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상당했던 진태도와 달리 멀쩡했던 육합검수들은 그 안에서 검진을 형성해 바위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는 거기서 버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지를 상실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몰랐다.
그 후, 그들은 성녀에 의해 다시 잔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구출되자마자 선우진의 명령에 의해 산으로 도망쳤던 그들은 성녀가 용가로 돌아간 후 다시 선우진에게로 돌아왔었다.
물론 그 모든 건 성녀에게 그들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선우진의 명령 때문이었다.
옆에서 증칠의 행동을 보고 있던 설풍이 문득 웃으며 선우진에게 말을 걸었다.
“어째 대형이 운영의 말에 꼼짝 못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아무래도 대형의 천적이 등장한 것 같군.”
선우진 또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덕분에….”
덕분에 앞으로는 좀 편해지겠다는 말을 하려던 선우진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았다.
괜히 증칠의 귀에 들어가면 시끄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풍의 뒤에 도열하고 있는 열 명의 육합검수들을 슬쩍 바라봤다.
설풍은 얼마 전까지 호남성 장사에서 머물며 유운취객 손대수가 소속되어 있는 반형회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위기에서 그들을 구해 주고 상황을 해결한 후 다시 합류한 상태였다.
얼마 전, 형산파는 반형회를 축출하기 위해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에 위치한 모든 무림 문파들을 다 멸문시키겠다는 무도한 계획을 시도했었다.
반형회가 장사 부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파악했지만 정확히 어떤 문파인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 개의 육합검수 파산조를 앞세워 수십 개에 달하는 장사의 문파들을 차례로 공격하기 시작했었다.
실제로 몇 개의 문파들을 멸절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자 그 일을 보다 못한 반형회는 모두 나서 그들과 부딪치기로 했다.
도의적으로 지켜볼 수도 없는 일이었고 어차피 그들 중 상당수가 장사에 근거를 두고 있었기에 더 진행되면 그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론 육합검수 파산조를 당해 낼 수 없었다.
웬만한 초절정 고수들조차 압도하는 파산조가 한 개도 아닌 세 개 조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반형회의 존망이 위협받던 순간이었다.
선우진의 옆에 서 있던 진소은은 문득 궁금한 표정으로 설풍에게 물었다.
“손 노사님과 이랑이는 잘 있나요?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네요.”
그녀의 질문에 설풍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잘 있소. 그리고 그들은 그 사태가 다 끝난 후에 도착했기에 처음부터 위험에 처하지도 않았었소.”
“하아, 다행이네요. 아, 그들이 무사한 것 때문이 아니라 설 공자께서 반형회를 구해 주신 게 다행이라는 뜻이었어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오. 조금만 늦었더라도 피해가 커졌을 텐데 딱 그들이 버텨 주고 있던 상황에 끼어들 수 있었으니 말이오.”
그러자 그의 옆에 꼭 붙어 있던 하원달기 연태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게 왜 운인가요? 풍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달려갔으니 가능했던 일이지. 저는 당신이 혹시 일부러 저를 떨어뜨리려고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니까요? 물론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말한 연태진은 자신의 긴 머리를 손으로 스윽 쓸어 넘겼다.
다소 오만한 표정과 말투였음에도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가 더해지니 그것조차 아름다워 보였다.
설풍은 헛기침을 하며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흠, 흠.”
그러자 연태진이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며 웃음 지었다.
“어머, 또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역시 풍은 귀엽다니까.”
그녀의 노골적인 표현에 선우진과 진소은도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봤다.
역시 삼십 대 중반의 연륜이 있는 여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파인의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선우진 일행은 연태진의 노골적인 표현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선우진은 설풍을 구해 주기 위해 일부러 다른 말을 꺼냈다.
“형님, 요즘 저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설풍의 뒤에 도열한 열 명의 파산조원들을 보고 한 질문이었다.
설풍은 반형회를 공격하던 세 개의 파산조 중 한 개조는 완전히 부숴 버렸지만, 나머지 두 개 조는 조장들만을 죽이고 선우진이 알려 준 방법으로 제어에 성공한 상태였다.
설풍은 선우진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급히 대답했다.
“아아! 아우가 알려 준 요령 덕분에 많이 호전된 상태일세. 덕분에 내 섭혼술의 경지가 많이 올랐지.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들도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 같네.”
“오오! 다행이로군요.”
설풍에게 가르쳐 준 섭혼술은 당연히 묵랑이 알려 준 것이었다.
조심술이란 것으로 옛 모산파의 수법이었다.
그때 진소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진짜 너무 눈에 띄기는 하는 것 같아요. 저분들도 아직은 보통 사람들처럼 안 보이고 게다가 삭월과 백아까지 있으니까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흑표 삭월이 진소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인원도 늘어난 김에 이제 그냥 함께 움직이고 있는 삭월은 요즘 진소은과 가장 친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와 가장 친해진 건 삭월만이 아니었다.
운묘 백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래 진태도의 부하가 데리고 있던 털북숭이 고양이 백아는 절벽이 매몰됐을 때 바위틈에 숨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었다면 당연히 죽었을 것을 성녀 시서우가 잔해를 치워 줘 다행히 구원되었던 것이다.
진소은은 그때 상처를 입고 죽어 가던 백아를 치료해 줬었다.
그러자 백아는 그때부터 진소은에게 딱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백아를 원래 알고 있던 다른 해남파 사람들을 따라가려고 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백아는 그녀의 어깨 위에 한가롭게 올라앉아 하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진소은의 착하고 유한 성품은 동물들이 더 잘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삭월과 백아가 진소은에게 딱 붙어 몸을 비비고 있을 때, 하원달기 연태진이 너무 눈에 띈다는 진소은의 걱정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그냥 받아들여. 내가 있는 이상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어. 저들이나 삭월이 없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마찬가지였을걸?”
자신의 미모 때문에 어차피 눈에 띌 거라는 말인 모양이었다.
잘난 척하는 것 같은 말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하고 있는 그녀였다.
일행들은 그녀의 자존감이 지나친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확실히 그간 지나쳐 간 사람들의 시선이 육합검수들보단 그녀에게 많이 쏠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미모뿐 아니라 어깨와 다리가 살짝 드러나는 그녀의 방만한 옷차림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선우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시선을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요. 절강성 안으로 들어가면 최소한 육합검수들만이라도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검제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가 육합검수들을 본다면 괜한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확실히 섭혼술에 걸린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더군다나 신지라고 불리는 정파의 성지 절강성에서라면 더할 것이고 말이다.
‘절강성이라….’
문득 선우진의 마음속에서 묵랑이 말을 걸었다.
- 고맙네. 후계자를 잘 둔 덕분에 고향에 다 와 보게 되는군.
‘별일도 아닌데요. 그런데 정말 본가로는 안 가 보셔도 되겠습니까?’
- 괜찮네. 고향에 온 건 좋지만 거기까지 가는 건 과할 것 같군. 추억은 적당히 아련한 정도가 좋다네. 너무 진해지면… 어쩐지 실수하고 싶어질 것 같거든.
검신과 뇌신의 생가는 절강성 남동쪽에 위치한 온주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도 수많은 무인들이 성지로 떠받들며 지키고 있는 무림의 성지였다.
선우진은 원래 절강성에 온 김에 그곳을 순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묵랑이 그 계획을 거부했었다.
행로가 너무 길어지는 데다 마음의 평정이 무너질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선우진은 그냥 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백 년이 지나 지인들도 모두 죽은 후 그저 의지만 남은 그가 집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선우진으로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설프게 그를 위해 주는 게 혹시 더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선우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묵랑이 문득 다시 말을 걸었다.
- 그나저나 자네도 참 대단하네. 자네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나도 설마 마유겸에게 함께 그곳으로 가자고 제안할 줄은 몰랐다네.
아마 말을 돌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그냥 그의 뜻대로 해 주기로 했다.
‘별생각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그라면 충분히 어르신의 진전을 이을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고, 뭐 설마 제가 그에게 밀릴까 하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좀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묵랑은 웃음을 터트렸다.
- 하하하! 확실히 뭘로 보나 마유겸보다는 진 자네가 훨씬 낫지. 재능도, 지금 실력도, 심지어 성품도 말일세. 그것참 기분이 그렇군. 설랑검에 깃들어 있는 것도 어차피 나인 것은 똑같은데 어쩐지 경쟁에서 이긴 것 같지 않은가? 하하하하!
묵랑의 말에 선우진은 빙긋이 웃음 지었다.
복건성을 떠나오며 선우진은 마유겸에게 제안했었다.
함께 절강성으로 가 검신의 진신절기에 도전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러자 마유겸은 생각도 해 보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난 어르신의 진신절기를 이을 그릇이 아니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그리고 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점창파의 무학을 연마할 생각일세. 내 조부, 외조부, 그리고 아버지가 망쳐 놓은 점창파를 제대로 된 정파로 되살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속죄이자 내게 주어진 사명이 아닐까 싶기 때문일세. 그리고….’
그렇게 말한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서쪽 하늘을 바라봤었다.
전선이 있는 방향의 하늘이었다.
선우진은 그와 굳게 손을 맞잡고는 작별했다.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 시기가 그리 오랜 후는 아닐 것 같았다.
그가 혈교와 싸울 때는 반드시 참전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진소은이 문득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선우 공자, 저길 봐요. 저기가 경원인가 봐요.”
저 멀리 성벽이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절강성의 남쪽 끝에 있는 도시 경원인 모양이었다.
드디어 검신의 진신절기가 숨겨진 절강성에 도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