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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277화 (277/359)

277화 맹호곤 백무호

맹호곤 백무호는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선우진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느 분께서 저를 상대해 주시겠소? 소주 무인들을 싸그리 깔아 볼 정도의 실력이라니, 여러분들이 그만한 자격이 될지 무척 궁금하구려. 솔직히 말하면 가슴까지 두근거리는 중이라오.”

그러자 아까 연태진이 나섰으므로 이번이 자기 차례라고 생각한 증칠이 으흐흐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크흐흐흐. 자격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곧 알게 될 거다. 이 어르신이 바로…!”

그때였다.

증칠의 말을 끊으며 진소은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광동 진가장의 진소은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오랜만에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정체는 아마도 승부욕인 듯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등장에 증칠이 눈을 껌뻑거리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 이번엔 내 차례인데….”

선우진은 피식 웃으며 증칠의 팔을 슬쩍 붙잡았다.

그러곤 턱으로 백무호가 들고 있는 흑색의 곤을 가리켰다.

증칠은 그걸 보고 나서야 진소은이 왜 나선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오호, 같은 곤이란 거구나.”

소주백가는 사왕십삼가 중에선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곤의 명가였다.

특히 그들의 절기인 여의곤법은 무림에서도 일절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니 곤의 명가 진가장의 일원이자 자연곤의 유일한 계승자인 진소은이 흥미를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상대방에게 흥미를 보인 사람은 진소은만이 아니었다.

백무호 또한 진가장이라는 진소은의 소개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호오! 진가장에서 오신 분이란 말이오? 진가장의 절기인 광마곤과 노호곤의 명성이라면 소생도 익히 들어 알고 있소만.”

그러자 진소은이 생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익힌 것은 그 두 곤법이 아닙니다.”

그 말에 백무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두 곤법이 아니란 말이오? 그렇다면…?”

진소은이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제가 익힌 곤은 자연곤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자연곤? 응?! 자연곤이라고?!”

순간 백무호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놀람과 흥분의 빛으로 가득 찼다.

그 또한 자연곤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 봤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이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듯 이글이글 불타기 시작했다.

“자연곤이라니! 오늘 이 백무호가 기연을 만나게 된 모양이구려. 당장이라도 곤을 부딪치고 싶어 미칠 지경이오. 어떻소, 소저? 이제 말은 그만하고 곤으로 대화를 나눠도 되겠소?”

그 말에 진소은이 사납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백무호가 달려들었다.

“하아압!”

파앙!

백무호의 신형이 한순간 진소은의 앞까지 쇄도했다.

은밀하다기보다는 짐승의 탄력을 보듯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자 진소은의 목봉 또한 그녀의 손끝에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마치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현란한 움직임.

독립된 생명체처럼 움직인 목봉이 돌진해 오는 백무호의 신형을 사방에서 몰아쳐 갔다.

그러자 백무호가 환호성을 지르며 몸을 튕겼다.

“이야호!”

타앙!

그의 몸놀림은 설풍과도 약간 닮아 있었다.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워 보이는 역동적인 움직임.

마치 펄쩍펄쩍 뛰며 공중제비를 도는 날렵한 원숭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백무호는 몸을 여기저기로 날리며 진소은의 현란한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몸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목봉 스스로가 움직이는 듯한 진소은과는 정반대의 움직임이었다.

사방을 뛰어다니는 역동적인 몸놀림에 비해 곤은 꼭 필요할 때만 휘둘러 진소은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터텅! 텅! 터터텅!

두 사람의 공방은 무척이나 현란하고 화려했다.

사방을 가득 채운 진소은의 현란한 봉영도, 그 사이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뛰어다니는 백무호의 화려한 움직임도 소주의 백성들이 이제껏 본 적 없는 엄청난 무위들이 아닐 수 없었다.

백성들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아!”

“엄청나다! 역시 소주백가의 무공!”

“저 소저의 곤법도 대단한데?! 대체 누구지?!”

“광동 진가장의 소저라고 했잖아! 그곳도 유명한 곤법의 명가라고!”

“아무튼 엄청나다! 최고야!”

그때였다.

날랜 원숭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진소은의 공격을 피하던 백무호가 한순간 허공에서 빙글 회전하더니만 벼락처럼 곤을 찔러 넣었다.

파아악!

진소은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백무호가 곤을 찌른 위치가 사정거리 바깥이기 때문이었다.

길이가 닿지도 않을 거리에서 곤을 찌른 공격.

굳이 막을 필요도 없는 허초로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진소은이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백무호의 곤이 한순간 쭈욱 늘어나더니 진소은이 있는 곳까지 찔러 왔다.

길이가 늘어나는 손오공의 여의봉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윽?!”

진소은은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 앞에서 회전하는 목봉이 간신히 백무호의 곤을 쳐서 비켜 낼 수 있었다.

텅!

그러자 그때부터 백무호와 진소은의 상황이 역전됐다.

백무호가 성난 원숭이처럼 펄쩍펄쩍 뛰며 진소은에게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끼야호!”

슈슈슈슈슉!

순간순간 길이가 늘어나며 사정거리 바깥에서 공격해 오는 백무호의 공세에 진소은은 잠시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지닌 듯 그녀의 몸 주변을 휘도는 목봉이 백무호의 곤을 계속해서 튕겨 내고 있었다.

터터터터텅!

그것은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마치 도술을 부리듯 늘어나는 곤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는 백무호의 곤법도, 자기 스스로 휘돌며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 진소은의 목봉도 마치 이야기에 나오는 요괴들의 싸움처럼 박진감이 넘쳤다.

그들의 멋진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환호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 백 공자, 최고다!”

“저게 진짜 고수들의 싸움이지! 진짜 멋지다!”

“진가장의 소저! 오늘부터 난 소저를 응원하겠소!”

그런 백성들의 분위기를 보며 선우진은 빙긋이 웃음 지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좋았고, 대결하고 있는 두 사람의 분위기는 그보다 더 좋았다.

두 사람이 신나 하고 있는 감정이 옆에서 보기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흔히 만날 수 없는 곤법 고수들끼리의 싸움에 두 사람 모두 너무나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좋았어. 이제 이 좋은 분위기로 싸움이 끝나고 소주백가로 함께 가서 그들과 친분을 만들 수만 있다면….’

선우진이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백무호가 완전히 신이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좋았어! 어디 이것도 한번 받아 보시오, 소저! 하아압! 여의풍운!”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초식명까지 외친 백무호의 곤이 한순간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쉬쉬쉬쉬쉬쉭!

그것은 마치 선우십삼검의 환검경과도 비슷해 보이는 초식이었다.

태양처럼 사방으로 곤영을 뿜어내는 화려한 초식.

그 익숙한 광경에 너무 놀란 나머지 선우진도 순간 탄성을 토해 냈다.

“허어?!”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그를 보고 있던 모두는 방금 전과는 다른 이유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나서 초식을 펼치던 백무호가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해 냈기 때문이었다.

“커헉!”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신이 나서 진소은을 향해 덮쳐 가던 백무호가 피를 토해 내고는 그대로 비무대 바닥에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그가 토해 낸 검은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

“?”

한참 환호성으로 가득했던 주변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말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쓰러진 백무호를 보고 있었다.

소주의 백성들은 물론 선우진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백무호를 따라왔던 무사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독이다! 저 여인이 독으로 이 공자를 암습했다!”

“에엑?!”

그 말에 당황한 진소은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아, 아니에요! 저, 전 그런 적이…!”

하지만 소주백가의 무사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성난 표정으로 달려들며 외쳤다.

“이 공자를 보호해라! 저자들을 제압해!”

“아, 아니! 저는…!”

그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십여 명의 무사들이 백무호의 주변으로 달려드는 동시에, 나머지 십여 명의 무사들이 진소은을 덮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소은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쩌지도 못하고 선우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초고속으로 머리를 회전시킨 선우진이 소리쳤다.

“진 소저! 날려 버리시오!”

“네, 네?!”

진소은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선우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과 달리 그녀의 목봉은 선우진의 말을 바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목봉이 다시 맹렬히 휘돌기 시작했다.

휘리리리리릭!

빠바바바바박!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역시 자연곤이었다.

진소은을 덮쳐 가던 소주백가의 무사들이 속절없이 난타당한 채 튕겨 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선우진이 백무호를 향해 뛰어들며 외쳤다.

“형님들!”

그러자 이형환위를 쓴 듯 백무호의 앞에 나타난 선우진의 주위로 이번엔 설풍과 증칠이 달려들어 소주백가의 무사들을 후려쳐 날려 버렸다.

뻐버버버벅!

“크허어어억!”

그야말로 이심전심의 경지였다.

설풍은 선우진의 말에 아무 의문도 없는 듯 무표정하게 무사들을 후려쳐서 날려버렸고, 증칠은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이내 소리를 지르며 각법을 날렸다.

“에라, 모르겠다!”

뻐버버버벅!

“크아아악!”

“크으윽! 이, 이놈들! 너희가 감히 소주에서 우리 백가에게…!”

그러자 백무호를 먼저 낚아채 안아 든 선우진이 소리쳤다.

“도주합시다!”

그리고 바로 몸을 날린 선우진의 뒤로 설풍, 증칠, 진소은이 바로 따라붙었다.

그러자 유일하게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던 연태진만이 뒤늦게 몸을 날려 그들을 따라가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 뭐야?! 왜 나만 모르는데?!”

엄청난 속도로 한순간 장소를 이탈하는 그들의 뒤로 난타당해 쓰러져 있던 소주백가의 무인들이 소리쳤다.

“저, 절대 놓치지 않겠다! 성문을 닫으라고 해! 비상령을 내려라!”

소주백가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려던 선우진의 계획이 초장부터 완전히 어긋나 버린 순간이었다.

***

광견 전석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순한 그의 머리로는 도대체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시작은 외지에서 온 아리따운 미인들을 보고는 그녀들과 함께 있는 무인들에게 시비를 건 것부터였다.

뭐, 거기까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대결을 신청한 건 충분히 남자다운 짓이었고, 설사 패했다고 해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래, 분명히 그랬었는데….’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로선 감히 범접하지도 못할 만큼의 고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정말 개처럼 두들겨 맞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돈을 훔쳐서 몰래 술을 사 먹고 취한 채 집에 들어갔던 이후로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두들겨 맞은 건 아마도 오늘이 처음일 것 같았다.

‘그것도 그 시절 우리 어머니보다도 훨씬 가녀려 보이는 미인에게 그렇게 얻어터지고 말았지.’

그다음부터는 계속 놀랄 일만 가득했었다.

광견 자신이 속해 있는 호투회의 회주 대웅도 구항 형님이 자기보다 더 비참하게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했고, 호투회의 상위 조직인 백우방의 조두석 방주님마저 두들겨 맞았을 땐 더 이상 놀랄 정신조차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주백가의 백무호 공자까지 나타나 짧은 머리 미인과 놀라운 대결을 벌였을 때는….

처음 보게 된 고수들의 엄청난 무위에 순수하게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무호 공자가 검은 피를 뿜어내며 쓰러졌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를 독으로 암습한 사람이 그 여인이라니.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득 전석구의 머리에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 중 그 소저가 제일 당황한 표정이었는데….’

광견의 생각으론 절대 그 소저가 한 짓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녀가 미인이었기에 편을 들어주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진실이 뭐가 됐든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소주백가의 무인들을 두들겨 패고는 백무호 공자까지 데리고 도망쳐 버렸으니까.

이젠 설사 그들이 억울한 처지라고 해도 그 억울함을 절대 밝힐 수 없으리라.

지금 소주의 성문은 완전히 폐쇄된 상태고, 지금도 거리 곳곳에 보이는 소주백가의 무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이 모든 건 그들이 소주의 지배자인 소주백가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들이 얼마나 고수이든 절대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에 숨었든 결국 들키는 건 시간 문제일 테니 말이다.

광견 전석구가 그런 생각을 하며 패거리들과 함께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왔을 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너무… 피곤한 하루였군. 앞으로 열두 시진은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저는 이십사 시진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그들이 들어오며 닫았던 문이 갑자기 다시 열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여기가 너네 집이야? 흐음, 좀 누추하네.”

그 목소리를 들은 전석구와 패거리들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아까 개처럼 두들겨 맞으며 그들의 본능에 공포로 새겨져 버린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연태진의 목소리였다.

“!”

“!”

그들은 깜짝 놀라서는 고장 난 목각 인형처럼 천천히 목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느낌상 목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바로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아름다운 여인, 하지만 이제 광견 패거리에겐 지옥의 마녀로서 각인된 연태진이 매혹적으로 생긋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의 뒤로 백무호 공자를 데리고 온 선우진 일행들이 웃으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당분간 신세 좀 질게. 그래도 되겠지? 고마워.”

광견 패거리의 대답은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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