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소주백가-1
광견 전석구는 최대한 빠르게 약방에 다녀왔다.
그리고 자신이 본 광경들을 선우진 일행에게 급히 알려 주었다.
“지금 소주 전체가 여러분을 찾는 백가의 무사들로 꽉 차 있소! 그뿐이 아니오! 소주의 다른 무림 방파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도 당신들을 잡겠다며 소주 전체를 이 잡듯 뒤지고 있는 상황이오!”
상황은 무척 심각한 듯했다.
소주의 성문은 굳게 잠긴 지 오래였고, 소주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선우진 일행을 찾고 있는 상황.
이대로라면 전석구의 집 밖으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계속 이 안에 머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안에 머문다 해도 언젠가 발각될 것이 뻔할 테니까 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선우진 일행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때였다.
가장 문 가까이에 서 있던 설풍이 문득 입을 열었다.
“무인들이 몰려오고 있네. 이곳을 포위할 생각인 것 같군. 발각된 모양이야.”
“예?!”
“뭐, 뭐라고요?!”
그의 말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전석구를 바라봤다.
그가 밖에 다녀오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보면 원인은 그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태진이 이를 악문 채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그래서 믿을 수 없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그러자 전석구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 아니오! 난 절대 밀고하지 않았소!”
“닥쳐! 네가 아니면 누가…!”
연태진이 막 그에게 달려들려 할 때였다.
선우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가 아닙니다.”
“…뭐?”
“그, 그래! 내가 아니오!”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 선우진에게로 쏠리자 그가 전석구가 사 온 약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밀고했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리 없지요. 놈들은 약방에 감시를 붙여 놨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사는 약재를 주시하고 있었던 거지요.”
“…약재를 주시했다고?”
“백무호 공자를 치료하기 위해 이 약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역시 이 일엔 그 양 노사라는 의원이 관련되어있는 모양이군요. 또 백가의 무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고위층의 인물도요.”
사람들은 그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결국 백무호를 중독시켜 죽이려는 자가 양 의원과 결탁한 백가의 인물이란 뜻이었다.
광견이 망연한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진짜 백가의 가주님도….”
그때였다.
설풍이 냉정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조금 있으면 포위가 완성될 것 같네. 이대로 있을 텐가?”
그러자 선우진이 바로 대답했다.
“그럴 순 없지요. 하지만 백무호 공자는 지금 바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니 이렇게 하시죠.”
선우진은 미리 다 계획을 짜 논 듯 침착한 목소리로 일행들에게 설명했다.
일행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의 설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
백강도 변대종은 원래 소주변가의 인물이었다가 변 부인이 백가로 시집올 때 함께 백가로 넘어온 인물이었다.
또한 항렬로 따졌을 때 변 부인의 사촌 동생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변 부인이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일들을 벌일 때마다 그것을 수행하는 칼로서의 역할을 맡아오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변 부인은 그에게 양 의원이 불러 준 약재를 사 가는 사람이 있는지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백가의 무사들에게 해독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직속부하들을 풀어 소주 내의 약방들을 감시하게 했을 때였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부하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말씀하신 약재를 사 가는 자를 찾았습니다! 호투회에 소속되어 있는 광견 전석구라는 자입니다.”
“광견 전석구?”
“보고에 따르면 그 삼남이녀와 처음으로 대결을 벌였던 자가 바로 그자라고 합니다!”
“호오! 아무래도 수상하군. 놈의 거처를 포위해라! 그리고 다른 무인들에게도 수상한 자를 포착했다고 알려!”
“예! 알겠습니다!”
변대종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후 천천히 그곳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절대 자기가 직접 나서서 그들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약재를 추적했다는 얘기가 떳떳하지 못함을 알기에 대충 위치만을 알려 주고 다른 무인들이 오고 나면 뒤로 빠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막 광견의 거처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앙!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포위하고 있던 집의 측면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뭐, 뭐냐?!”
깜짝 놀란 변대종은 폭음이 들린 쪽을 바라보다 벽을 부수며 뛰쳐나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저들은?!”
그들이었다.
보고로 들었던 삼남이녀가 집의 벽을 부수며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변대종의 눈이 빠르게 그들을 훑었다.
그러자 늙고 왜소한 남자 한 명과 한 명은 머리가 길고 한 명은 짧은 아름다운 두 여인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틀림없었다.
변대종은 황급히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이다! 놈들이 벽을 부수고 나왔다!”
그때 변대종의 눈에 가장 뒤쪽에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등에 누군가를 업고 있는 남자였다.
업힌 사람의 얼굴은 정신을 잃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어 알아볼 수 없었지만, 옷차림을 보건대 아마 백무호 공자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백무호 공자가 정말 살아 있었구나!’
변대종의 얼굴에 다급함이 드러났다.
사람들 앞에서 차마 그를 죽이라고 외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갑시다! 어서 빠져나가야 하오!”
선두의 설풍이 그렇게 소리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변대종의 부하들이 황급히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놓치지 않…! 크헉!”
“이놈…! 크아아악!”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덮쳐오는 무사들을 향해 설풍과 일행들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눈에 보이지 않는 용권풍에 휩쓸린 듯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속절없이 튕겨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추풍낙엽을 보는 것만 같았다.
“우와아아악!”
“막아…! 허어억!”
“크아아악!”
그 광경을 본 변대종의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자신은 손을 쓰지 않고 조용히 포위만 할 생각이었지만 저렇게 도주하는 것까지 놔둘 수는 없었다.
“막아라! 절대 놓치면 안 돼!”
변대종은 마침내 그렇게 소리 지르고는 자신 또한 일행들을 향해 덮쳐 갔다.
절정의 도객인 그의 도에서 푸른 도강이 불꽃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화르륵!
“하아압!”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지금 공격하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게다가 하필 그가 택한 상대가 선두에서 길을 뚫고 나가던 설풍이었다.
설풍은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변대종을 힐끗 보고는 가볍게 몸을 휘돌려 그를 후려 찼다.
변대종이 도를 내리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의 칼날 같은 발차기였다.
퍼엉!
“크아아악!”
그 초고속의 퇴법에 변대종은 날아오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설풍에게서 멀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변대종에겐 불행하게도 지금의 설풍에게 있어서 상대가 절정인지 일류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 방이면 해결될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
소주백가의 내원에 있던 변 부인에게 급박한 보고가 들어왔다.
“이 공자를 해한 자들이 공자를 업고 서문 방향으로 도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변 부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들이 서문 방향으로 도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공자를 업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를 업고 있다고? 설마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침을 꿀꺽 삼킨 변 부인이 소리쳤다.
“그럼 뭘 하고 있는 겐가?! 당장 추격해 잡아야지!”
“예! 이미 흩어져 있던 무력대들이 모두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놈들의 무위가 꽤 놀라운 모양입니다! 우리 쪽 무사들을 돌파하고 있는 놈들의 속도가 줄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변 부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놈들이 백무호를 데리고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저러다 혹시 정말로 다시 일어나 누가 중독시켰는지를 조사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변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마 우리 백가의 무사들이 그따위 흉수들을 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냐?! 변 대주는?! 변대종 대주는 어디에 있느냐?! 그에게 어서 놈들을 추격하라고 전하란 말이다!”
그러자 무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가장 먼저 당한 사람들이 근방에 있던 변대종 대주를 포함한 호위대 무사들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내상을 입고 기절한 상태라 더 이상 움직일 수는….”
“뭐라고?!”
변대종이 제일 먼저 당했다는 말에서 변 부인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마 약방에 약재를 사러 갔다가 변대종에게 발각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들이 정말 둘째를 치료하려고 했었다는…?’
그런 생각을 떠올린 변 부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진짜 백무호를 치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변 부인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당장 놈들을 잡아! 아니, 죽여! 절대 살려 보내면 안 된다! 장로님들과 대주들을 모두 놈들에게 보내!”
“네, 네! 알겠습니다!”
보고한 무사는 바로 변 부인의 명령을 전달하러 달려 나갔다.
그러자 혼자 남은 변 부인은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
명목상 소주의 가장 높은 사람은 나라에서 임명한 지부대인이었다.
하지만 강소성을 통치하고 있는 곳이 사왕련이듯 실질적으로 소주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 또한 소주백가였다.
그래서 현재 소주의 네 방향 성문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자들 역시 소주백가의 무사들이었다.
일반 병사들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소주백가의 무사들이 사대문을 장악한 순간부터 무사들의 명령을 듣는 처지에 불과했다.
현재 소주의 서쪽 성문을 담당하고 있던 제천사대의 대주 최공도는 방금 전서구를 통해 전달된 소식을 읽고는 예리하게 눈을 번뜩였다.
소주백가의 무사들은 전서구를 통해 빠르게 의사소통을 하곤 했는데, 방금 온 전서에 따르면 이 공자 백무호를 해한 흉수들이 이곳 서쪽 성문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에게 있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내 손으로 직접 이 공자님의 복수를 할 수 있겠군. 이 기회에 공적도 세울 수 있을 테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최공도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경계를 강화하라! 이 공자님을 해한 흉수들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의 말은 가뜩이나 성문을 지나다니는 백성들을 검문하느라 날카로워져 있던 일반 무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말았다.
백가에 대한 충성심, 공자들 중 가장 인간미 있었던 이 공자 백무호를 해한 자들에 대한 복수심, 무인인 그들이 병사들처럼 성문 관리나 하고 있어야 한다는 짜증까지, 그 모든 감정들이 한데 얽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반드시 놈들을 잡는다!’
이것이 성문에 위치한 모든 무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몇 명의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제천사대의 대주 최공도가 소리쳤다.
“놈들이다! 병사들은 궁시를 준비하라!”
최공도의 명령에 성문 위에 있던 일반 병사들이 활을 겨눴다.
그러자 최공도가 바로 다시 소리쳤다.
“적들의 속도가 빠르다! 곡사가 아닌 직사로 조준하라!”
적들의 속도는 놀라웠다.
특히 등에 누군가를 업은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시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성문에 근접해 오고 있었다.
최공도가 소리쳤다.
“쏴라!”
피피피피피핑!
오십여 개의 화살들이 상대를 향해 빛줄기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최공도는 화살의 명중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바로 명령했다.
“저들의 속도가 느려지면 무사들은…!”
최공도도 저들에게 활을 쏘며 그게 맞을 거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최소한 속도라도 조금 늦출 수만 있다면 그 이후 성문 위의 무사들이 저들을 포위할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공도는 그다음 명령을 내리지도 못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두에 선 붉은 무복의 남자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파앙!
그를 향해 쏘아진 화살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한 돌진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화살이?!”
그에게 날아갔던 화살들이 마치 스스로 길을 비켜 주듯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티티티티티팅!
최공도로선 무슨 이유로 저렇게 되고 있는 건지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쳐라! 저자를 성문으로 보내지 마!”
그의 명령에 성문 위에 있던 제천사대의 무사들이 바로 적의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야아아아!”
수십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적의무복의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가 수십 무사들의 폭포 속으로 맹렬히 부딪쳐 갔다.
푸화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다음 순간, 최공도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참담했다.
쏟아지듯 그를 덮쳐 갔던 무사들이 포탄에 부딪힌 조약돌들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아까 화살이 그랬듯 누구도 그의 몸에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 저럴 수가!”
그뿐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나타날 틈을 노리며 그를 지켜보고 있던 최공도는 문득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고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야 말았다.
“피가… 없다고?”
그랬다.
남자에게 덮쳐 갔던 부하들은 모두 순식간에 튕겨 나갔지만, 그들 중 누구도 피를 뿜어내고 있지 않았다.
그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꿀꺽.
저자는 지금 자신에게 덮쳐 오는 모든 이들을 멀쩡하게 살려서 튕겨 내고 있었다.
실로 말도 안 되는 무위였다.
‘저런 자를 막는다고?’
최공도의 마음속에서 그를 공격해 보겠다는 생각이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뒤로 사람의 폭풍을 만들며 순식간에 성문 앞까지 돌진해 온 남자는 그 기세 그대로 성문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최공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일격으로 적군을 막기 위해 만들었던 성문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음을.
그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뒤돌아 성문 바깥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어느새 문을 뚫고 성 밖으로 나간 적의무복의 남자가 맹수와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공도는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저자는 내공 팔십 년에 달한 자신 따위로선 전혀 범접할 수조차 없는 고수라는 것을 말이다.
***
“뭐라고 하셨소?! 놓쳤다고?!”
변 부인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그녀에게 보고를 한 총관이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그렇습니다. 우리 쪽 무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포위를 뚫고 서쪽 성문을 돌파해서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성문마다 우리 무사대들이 지키고 있지 않았소?!”
“예, 서쪽 성문은 제천사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로선 흉수들을 상대로 잠시 시간을 끄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마치 병상에 누워 계신 가주님의 전성기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고….”
병상에 누워 있는 소주백가의 가주 풍운굉곤 백청광은 무려 천하삼십육성에 속하는 고수였다.
그런데 지금 총관은 흉수의 무위가 마치 그런 백청광 가주를 보는 듯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본능적으로 그 말을 부정하려던 변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만에 하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소주백가의 무사 전체가 달려들어도 그들을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진짜 백무호를 치료해서 돌아오기라도 한다면….
변 부인이 이를 악물고는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모든 무사들을 총동원해서라도 놈들을 추격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반드시 죽여야 해! 놈들을 죽이기 전까진 아무도 돌아오지 말라고 전해!”
너무 흥분해서인지 이성을 잃은 듯 반말을 하는 그녀의 명령에 총관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거처에서 폐관 중인 삼 공자에게도 출동하라고 전하실 겁니까?”
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그녀는 일순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만 총관을 향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이제 한 명밖에 안 남은 백가의 후계자를 위험에 빠트리기라도 할 생각이오?! 절대 안 되오! 무작이는 본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하시오!”
총관은 그녀의 발악과도 같은 목소리에 잠시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는 결국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아는 소주백가의 주인들은 대대로 위험 앞에서 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가장 큰 힘을 가진 이들이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소주백가의 가풍이었던 것이다.
총관은 밖으로 나온 후 아무래도 소주백가의 앞날이 그다지 밝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총관이 밖으로 나간 후 변 부인은 다시 손톱을 물어뜯으며 집무실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도저히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에잇!”
그러던 잠시 후, 그녀는 결국 문을 박차고는 집무실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의방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