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사왕의 후계자들-2
주먹을 뚜둑! 소리 나도록 꺾는 설풍을 보며 괴정기는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사왕 괴갈현의 아들이고 수없이 많은 싸움으로 단련된 무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내키지가 않았다.
지금 그가 설풍과 싸우기엔 상대에 비해 자신이 걸어야 할 판돈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이득은 없는데 손해만 너무 큰 판이야.’
상대인 설풍은 자신에게 형편없이 패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득이었다.
자신을 상대로 이기든 비등하든, 심지어 진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모습만 보여 준다면 그는 이 싸움으로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내게 될 것이었다.
아니, 존재감은 이미 드러낸 상태이긴 했다.
무려 귀도 백기량을 망설이게 만든 검사라니.
그런 자를 데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왕련의 사람들은 설풍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보일 테니까 말이다.
반면 괴정기 자신은 놈과 싸워서 얻게 될 이득이 전혀 없었다.
이긴다 해도 본전일 뿐이었고, 비등하거나 만약 지기라도 한다면 놈의 명성만 높여 주는 결과가 되어 버릴 것이었다.
그런 싸움을 하는 것은 천하제일상가를 외가로 둔 괴정기의 취향이 아니었다.
‘싸운다 해도 밖에서 싸웠어야 했는데. 항기 저 멍청한 놈 때문에….’
괴정기는 물론 다른 두 동생들의 세력도 지금 이 정도가 다일 리 없었다.
지금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최소한의 부하들만 데리고 온 상태, 당장 이 본전의 밖으로만 나간다 해도 수많은 부하들이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만약 밖에서 설풍과 대립했다면 놈은 절대 자신의 앞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셋째 놈이 하필 이 안에서 놈과 시비를 붙는 바람에 그 많은 전력들을 사용해 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던 것이다.
괴정기가 지금 설풍과 붙기 싫은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가 그런 생각들에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설풍이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생각이 너무 많군. 외가의 피가 강한 모양이지?”
그 말에 괴정기는 눈을 꿈틀했다.
상가인 외가의 피를 강하게 물려받았다는 말은 다음 대 사왕을 노리는 그에게 있어 결코 기분 좋은 말이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이놈….”
괴정기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가 마침내 마음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니.’
사실 설풍이 괴정기의 경고를 무시한 순간부터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왕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가 싸움을 피한다면 그건 모두의 비웃음거리가 될 뿐일 테니까.
사왕련의 무인들은 계산적인 승리자보단 최선을 다한 패배자를 더 인정하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러자 이제 마음을 결정한 괴정기의 몸에서 강력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악!
그의 기세에 설풍의 옷자락이 살짝 흩날렸다.
폭풍처럼 강력한 기세였다.
아까 설풍이 셋째 괴항기를 압박할 때와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기세.
과연 다음 대 사왕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라고 할 만했다.
설풍은 괴정기의 기세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공력을 끌어올린 괴정기의 눈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불길한 흉광을 뿜어내는 붉은 눈.
괴정기가 씹어뱉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경고를 무시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러자 설풍이 그의 눈을 보며 중얼거렸다.
“적안광혈공.”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괴정기의 모습은 설풍에게 있어 무척 익숙한 동시에 낯선 모습이었다.
그가 늘 남에게 보여 주던 모습이지만 자신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사왕의 독문 무공인 적안광혈공은 생명을 대가로 무위를 증폭시키는 광혈단, 그것을 먹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어 시전자의 무위를 증폭시켜 주는 무공이었다.
때문에 적안광혈공을 쓰는 이들 또한 광혈단을 복용한 것과 비슷한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적안광혈공을 쓰는 도중 이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부작용과 반 각 이상 쓸 경우 혈맥이 터져 버릴 수 있다는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왕의 일족에겐 이성을 잃는 부작용은 있어도 혈맥이 터지는 부작용은 작용하지 않았다.
혈맥이 비정상적으로 튼튼하다는 사왕 일족의 특징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이 바로 마공 취급을 받던 적안광혈공이 사왕의 독문무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압!”
파앙!
괴정기가 한순간 설풍을 덮쳐 갔다.
맹호와 같은 움직임, 늘 설풍이 상대방을 향해 쓰곤 했던 사왕의 독문무공 야수권이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괴정기의 호조수가 설풍의 머리를 벼락처럼 찍어 가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하지만 자신의 무공으로 급습을 당한 설풍의 표정은 별로 당황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괴정기의 공격을 묵묵히 바라보다 눈을 살짝 감았을 뿐이었다.
다음 순간.
콰아아앙!
괴정기와 설풍의 호조수가 맞부딪쳤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습의 공격이었다.
첫 번째 충돌의 여파로 두 사람은 살짝 뒤로 튕겨 났다.
하지만 잠깐 물러서는 듯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회오리처럼 몸을 휘돌리며 퇴법을 날렸다.
역시 똑같은 동작이었다.
콰아아아앙!
두 개의 다리가 맹렬하게 휘돌아 부딪쳤다.
서로를 부러뜨릴 듯한 강력한 충돌.
그 충격에 이번에는 진짜로 둘 다 뒤로 튕겨 났다.
하지만 격렬하게 튕겨 났던 두 사람은 땅을 박차고는 순식간에 다시 달려들었다.
마치 관성을 역행하는 듯한 움직임, 분노한 맹호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콰아아아앙!
허공에서 맞붙은 두 사람은 이제 딱 붙은 채 쉴 새 없이 손발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박!
호조수와 정권이 허공에서 맞부딪치고.
어깨와 팔꿈치, 무릎과 발차기가 격돌했다.
강철끼리 부딪치는 듯한 충돌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똑같은 수법에 똑같은 속도.
한쪽은 눈을 감았고 한쪽은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다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마치 거울 속의 스스로를 공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사왕련 사람들이 조용히 속삭였다.
“야수권을 저 정도까지….”
“정말 설가의 후예였군.”
그 순간 거대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한번 크게 충돌했던 두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뒤로 물러선 괴정기는 그 자리에 선 채 여전히 붉은 눈빛으로 설풍을 노려봤다.
그때 살며시 눈을 뜬 설풍이 빙긋이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계속하겠나?”
눈을 뜬 설풍의 안광은 괴정기와 달리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지 않았다.
벌써 적안광혈공을 푼 모양이었다.
그러자 잠시 설풍을 노려보던 괴정기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를 백골괴장 홍추를 비롯한 직속 수하들이 서둘러 쫓아나갔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던 귀도 백기량 또한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셋째 괴항기가 퍼뜩 정신이 든 듯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도 가자!”
그러곤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갔다.
당당한 태도로 나가긴 했지만 첫째 괴정기 없이 설풍과 부딪치기가 두려워 도망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 수 있었다.
다섯의 패거리 중 두 패거리가 빠져나간 본전 안은 아까와 달리 무척 한산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왕의 후계자 중 가장 체격이 큰 둘째 괴창기가 설풍에게 뚜벅뚜벅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호전적이라는 세간의 평과는 달리 그는 이제껏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중이었다.
설풍과 일행들은 이제 그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가장 거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첫째 괴정기와 더불어 유력한 사왕의 후보로 뽑히고 있는 자,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선우진은 미리 조사해 놨던 그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 봤다.
‘세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음에도 첫째 괴정기의 대항마로 불리고 있는 자였지. 본신의 무위만으로도 괴정기의 거대한 세력과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는 자. 어쩌면 설풍 형님껜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일지도 모른다.’
그때, 큰 체격에 단단한 근육질의 몸, 거대한 철인처럼 보이는 괴창기가 걸음을 멈추고는 설풍에게 물었다.
“아까 괴정기와 싸울 때, 적안광혈공을 사용한 게 아니었나?”
그러자 긴장한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왕련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격돌이 너무 엄청났기에 당연히 둘 다 적안광혈공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설풍은 빙긋이 웃으며 반문했다.
“그건 왜 묻는 거지?”
그러자 괴창기의 얼굴에 사나운 웃음이 떠올랐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야 제대로 붙어 볼 만한 상대가 나타났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괴창기의 얼굴에는 진한 희열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붙어 볼 만한 상대를 발견했다는 순수한 기쁨과 강렬한 투지, 상인처럼 계산이 많아 보였던 괴정기와 달리 그는 사왕의 일족다운 순혈의 투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설풍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좋군. 그럼 지금 한판 붙어 볼까?”
그렇게 묻는 설풍의 얼굴에도 괴창기와 꼭 닮은 표정이 떠올랐다.
싸움을 즐기는 맹수의 표정.
누가 봐도 형제로 보일 수밖에 없는 닮은꼴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 같은 분위기와 달리 괴창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선 말고. 서로 죽이지도 못하는 여기서 투닥거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러니 상대방을 끝장낼 수 있는 곳에서 제대로 붙어 보자고.”
괴창기는 그렇게 말하며 으흐흐 웃음 지었다.
상대를 죽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살인귀 같은 웃음이었다.
그러자 설풍은 흥이 식은 듯한 모습으로 잠시 괴창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물었다.
“그나저나 너도 말이 짧군. 스물일곱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물음에 괴창기의 눈이 잠시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이내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응? 크하하하하하!”
그는 엄청나게 웃긴 얘기를 들었다는 듯 한참을 웃다가 큭큭거리며 말했다.
“이건 또 신선하군. 아주 재밌어.”
그러고는 눈에서 흉광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내게 형님 대접을 받고 싶은가? 그럼 그에 합당한 자격을 보여라. 만약 네가 자격을 보인다면 괴정기 놈과 달리 형님이라고 불러 주지.”
괴정기 놈.
그는 설풍뿐 아니라 첫째 괴정기도 형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설풍이 그의 말에 반문했다.
“자격이라…. 그 자격은 어떻게 생기는 거지? 널 이기면 되나?”
그러자 괴창기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기본적인 거고. 내게 형님으로서 존경을 받으려면 그만한 업적을 보여야겠지.”
“업적?”
“그래, 업적.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남궁세가에 싸움을 걸고 있는 중이다.”
그 말에 설풍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왕의 둘째 아들 괴창기가 안휘성의 남궁세가에 싸움을 걸고 있다는 건 유명한 얘기였다.
강소성의 바로 서쪽에 위치한 안휘성은 오랜 시간 오대세가의 수장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남궁세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안휘성은 그렇지 않았다.
강소성의 바로 인근에 위치한 탓에 동쪽 절반이 사왕련에 먹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설풍이 괴창기에게 물었다.
“남궁세가에서 안휘성의 절반을 주는 대신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기로 했을 텐데?”
그랬다.
현재 안휘성의 절반은 사왕련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안휘성의 절반을 사왕련에 주기로 한 건 다름 아닌 남궁세가의 결정이었다.
백 년 전, 어차피 사왕련이 원한다면 안휘성 자체를 지킬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남궁세가가 먼저 안휘성의 절반을 바치는 대신 영구적인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건 남궁세가만이 아니었다.
강소성의 북쪽에 위치한 산동성의 황보세가 또한 같은 방식으로 산동성의 절반을 주는 대신 사왕련과 영구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러자 괴창기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백 년이나 지난 약속일 뿐이지. 그리고… 나는 사왕련의 일원으로서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괴창기라는 개인의 자격으로 싸움을 거는 것이지.”
괴창기 자신과 자신의 직속 수하들만으로 싸움을 걸고 있기에 사왕련과 남궁세가가 맺은 약속과는 상관이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설풍은 코웃음 쳤다.
“아주 뻔뻔하구나.”
괴창기가 한 말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사왕련의 아들이자 후계자 후보인 괴창기를 누가 사왕련과 분리해서 생각한단 말인가.
만약 그가 진짜 사왕련과 상관없는 개인이었다면 애초에 남궁세가에서 지금처럼 그의 시비를 그저 묵묵히 참아 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자 괴창기는 다시 한번 씨익 웃음 지었다.
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뻔뻔하지. 근데 그럼 안 되나? 한번 뻔뻔해져서 안휘성을 먹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거 아닌가?”
“…안휘성을 먹겠다고? 애초에 초대 사왕께서 그들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과거 초대 사왕이었던 괴자운이 남궁세가와 황보세가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건 사실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안휘성이나 산동성을 완전히 정복하는 게 귀찮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 광마 괴무량이 강소성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고는 그 이상의 영역을 갖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었다.
애초에 나쁜 놈들을 모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사왕련이었는데 그보다 영역이 넓어지면 관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왕련에서는 남궁세가가 바친 안휘성의 영역이나 황보세가가 바친 산동성의 영역을 중간 지대로서 남겨 둔 채 그다지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괴창기는 지금 그 안휘성을 통째로 정복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풍의 질문을 들은 괴창기는 큭큭거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백 년 전에 못 했다고 지금도 못 하리란 법이 있나? 일단 먹어 보고 정 못 하겠다면 뱉으면 되지.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괴창기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짜 노리는 건 안휘성이 아니라 창천검군이거든.”
그 말을 들은 설풍은 묵묵히 괴창기의 맹수 같은 눈을 바라봤다.
창천검군 남궁조.
그는 당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으로 꼽히는 극강의 검사였다.
설풍의 귀에 문득 선우진의 전음이 들어왔다.
- 남궁세가에 싸움을 건 것도 사실 창천검군 남궁조와 싸워 보고 싶어서였던 모양입니다. 그를 꺾어서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세울 생각인 것 같군요. 뭐, 그저 강자와 싸워 보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요. 제 생각엔 아무래도 둘 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설풍이 내심 선우진의 생각에 동의할 때였다.
괴창기가 설풍에게 말했다.
“내게 형님 대접을 받고 싶은가? 그럼 내가 창천검군을 꺾기 전에 형님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업적을 세워 와라. 그럼 형님으로 깍듯이 모셔 주지.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오히려 나를 형님으로 모셔야 할 거다.”
창천검군을 꺾는 것과 비교할 만한 업적.
설풍은 괴창기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첫째 괴정기와는 달리 겉과 속이 완전히 일치하는 듯한 자, 정말 뼛속까지 투사라고 할 만한 자였다.
괴창기는 그 말을 끝으로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본전을 나가버렸다.
“반가웠다, 설풍. 다음에 볼 때는 제대로 붙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마치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자 이제 사왕의 네 아들 중 세 형제가 나가 버린 본전 안에는 한 명만이 남아서 설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대 사왕이 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알려진 넷째 괴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