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297화 (297/359)

297화 괴항기

“흥!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거지.”

사왕 괴갈현의 셋째 아들 괴항기는 얼마 전 자신에게 다녀간 첫째 형 괴정기를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얼마 전 갑자기 괴항기를 찾아와서는 설풍에 대한 말을 꺼냈었다.

그가 벌써 양주동가의 세력을 얻었으니 한두 가문의 지원만 더 얻어 낸다면 후계자 후보 삼 순위 정도는 충분히 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 말에 현재 삼 순위 후보인 괴정기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형들을 따라잡지는 못할망정 그따위 놈에게 따라잡힌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괴정기는 광분한 괴항기를 잠시 바라보다 혹시 필요하다면 자기 부하들을 빌려주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가 버렸다.

부하들을 빌려주긴 하겠지만 어디다 쓸지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괴항기가 모를 리 없었다.

그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자기 혼자만 똑똑한 줄 아나 보군. 설마 무슨 속셈인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형 괴정기는 자신을 이용해 설풍이란 놈을 제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그때 망신을 당한 건 자기만이 아니니 그 또한 설풍을 노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괴정기 입장에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뭐, 좋아. 이번엔 이용당해 주지. 놈을 해치울 수만 있다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쥔 괴항기는 자신의 부관에게 소리쳤다.

“정기 형님께 서신을 보내라! 귀도 백 노사와 백골괴마 홍 노사, 그리고 다른 초절정 고수들과 무력대 하나를 보내 달라고!”

그의 말에 부관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 정도면 괴정기 공자가 가진 전력의 오 할 이상일 텐데요? 과연 그만큼이나 보내 주려 하겠습니까?”

“흥! 본인도 아쉬우니 보내 줄 거다. 그리고 외가에 연락해라! 감작형에게 의뢰를 하라고! 내 사람이 되어 주진 않아도 의뢰는 받아 준다고 했으니 허락할 것이다!”

“감 노사까지…. 알겠습니다.”

삼지신창 감작형은 괴항기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왔던 천하삼십육성에 속하는 고수였다.

자신의 휘하에 천하삼십육성을 거느릴 수만 있다면 형들의 위상을 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괴항기는, 외가인 번해채가를 통해서 삼지신창 감작형을 회유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그가 괴항기 따위의 휘하에 들어갈 리 없었다.

그래서 괴항기는 그저 감작형과 약간의 친분을 갖게 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괴항기는 그렇게 쌓은 친분을 이번 기회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얼마 후에 강소성을 떠날 그이기에 더 묵혀 두는 것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괴항기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설풍 그놈이 천하삼십육성급 고수일지도 모른다고? 그 검사 놈이 귀도 백기량보다 강해? 흥! 설사 두 놈 모두 천하삼십육성급 고수라고 해도 상관없다. 세 명의 천하삼십육성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전력을 모아 주마!”

그로부터 이틀 후 괴항기는 자신의 수하들에다 첫째 형 괴정기의 수하들까지 합한 전력으로 양주동가를 향해 출발했다.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이동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미리 보내 놓은 감시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놈들이 당장 동가를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괴항기가 대동한 지나치게 강력한 병력에 질린 부관이 문득 그에게 물었다.

“혹시 동가도 함께 공격할 생각이십니까?”

그러자 괴항기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대답했다.

“미쳤나? 놈들을 처리하는 것도 일단 잡은 후 강소성 밖에서 처리할 생각인데, 사왕십삼가의 하나를 건드린다고? 나는 다음 대 사왕이 되기 위해 설풍 놈을 죽이려는 것이지, 그놈을 죽이기 위해 내 목표를 포기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우리는 놈이 동가의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충분히 거리가 벌어졌을 때 덮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공자!”

괴항기가 세 명의 천하삼십육성이라도 잡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강력한 전력이 양주동가를 향해 시시각각 접근하고 있었다.

***

강소성 양주.

양주동가의 주변에는 괴항기가 설풍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보내 놓은 감시자가 쫘악 깔려 있었다.

그들은 괴항기의 외가인 번해채가에서 육성한 살수들인 암광대였다.

번해채가는 예로부터 가진바 능력에 비해 욕심이 많은 곳이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 무공 하나만을 파는 다른 사왕십삼가에 비해 좀 더 음습하고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곤 했었다.

살수대인 암광대도 그중 하나였다.

그 암광대의 살수인 십칠호는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양주동가 주변의 수풀에 은신한 채 동가의 장원을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으으, 찌뿌둥해. 오늘따라 너무 피곤하군. 물론 어제도 그랬었지만.’

하루 이 교대로 여섯 시진씩 은신하는 생활을 벌써 사흘째 반복하고 있었기에 살수인 그로서도 너무 지치고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괴항기 공자가 사왕련에서 출발해 적어도 이틀 후엔 도착할 거라고 하니, 이틀만 버티면 이 짓도 그만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틀 후는 이틀 후, 그 희망이 지금의 피곤함을 상쇄해 주지는 않았다.

그는 온몸이 찌뿌둥한 기분을 참다못해 기지개를 피기로 했다.

그래서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며 온몸을 쥐어짜듯 폈다.

으드드득!

‘으그그그극!’

원래 살수인 그가 은신 중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다른 성에서 팔려 와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지도 않은 살수 활동을 하고 있는 그로선 별로 그렇게 뛰어난 살수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약속한 기간을 빨리 채우고 번해채가에서 빠져나가 진짜 무인으로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에 숨어 있을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보지 못할 만한 각도로 온몸을 쥐어짰다.

으드드드득!

‘아가가각, 죽겠군. 소리도 낼 수 있었다면 진짜 시원했을 텐데.’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풋! 아, 이런. 미안해요. 너무 웃겨서 못 참았네요.”

그 목소리를 들은 십칠호는 너무 깜짝 놀라 팔을 쥐어짜던 자세 그대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등 뒤를 확인했던 그는 자신의 등 뒤에 누구도 있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웃음소리, 그것도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었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익!’

십칠호는 최고 속도로 몸을 돌려 뒤를 확인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튀어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릿한 감촉과 함께 온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

점혈을 당한 것이었다.

덕분에 뒤로 돌기는 했지만 튀어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진 그의 눈에 문득 머리를 짧게 자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이제껏 감시하고 있던 설풍의 일행, 진소은임에 틀림없었다.

십칠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와아악! 저 사람이 왜 내 뒤에 있는 거야?!’

그러자 그녀가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살수가 저렇게 피곤한 모습으로 기지개를 피다니, 너무 짠해서 죽일 수가 없었어요. 어쩌죠?”

그녀의 질문에 점혈 당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십칠호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요?! 물을 거면 아혈이라도 풀어 주든가!’

하지만 당연히 진소은이 그 질문을 그에게 했을 리가 없었다.

그 순간 아무도 없던 십칠호의 등 뒤에서 갑자기 대답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리를 내면 어떡해? 이자가 마지막이니 망정이지 남은 자들이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잖아?”

또 다른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그 목소리를 들은 십칠호는 빙굴에라도 들어간 듯 등골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계속해서 보고 있던 곳에서 누군가 나타났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말한 ‘마지막’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십칠호는 문득 저 여인들이 이렇게 대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음에도 주변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동료들이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꿀꺽!

그는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됐을지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십칠호는 자기도 모르게 울상을 짓고 말았다.

‘우와아앙! 젠장, 내가 이래서 살수 짓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때였다.

진소은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풋! 큭큭큭! 아, 표정 너무 웃겨. 어떻게 해요, 언니? 저 이 사람 도저히 못 죽이겠어요.”

그러자 앞으로 와 십칠호의 표정을 확인한 연태진이 그의 얼굴을 보더니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거 아무래도 불량 살수인 것 같은데?”

그러고는 십칠호의 아혈을 풀어 주며 물었다.

“이봐, 너 이름이 뭐야?”

그러자 갑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십칠호가 자기도 모르게 대답했다.

“시, 십칠호, 아니 원래 이름은 ‘비’라고 하는데요?”

“비? 멋진 이름이네? 성은?”

그 질문에 십칠호는 본능적으로 대답하려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망설였다.

그것만큼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연태진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역시 이런 살수에게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십칠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이 간당간당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필사적으로 대답했다.

“벼, 변! 변씨입니다!”

“응? 변씨라고? 그럼 이름이 변… 비?”

무심코 그의 이름을 말하던 연태진은 결국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진소은은 아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 상태였다.

“큭큭큭큭! 어떡해! 아, 진짜. 이 사람 어떡하죠?”

십칠호는 결국 실토하고 만 자신의 이름에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연태진이 피식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씨, 분하다. 나도 웃어 버렸네. 그러게. 나도 못 죽이겠어. 어쩌지?”

그녀가 십칠호 변비에게 물었다.

“야, 넌 왜 괴항기 밑에서 살수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너도 뭐 ‘고’라도 먹은 거야?”

“예, 예?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어려서 채가에 팔려 와 달리 갈 데가 없었습니다. 십 년간 살수로 근무하면 괜찮은 무공과 영약, 돈을 준다고 해서….”

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문득 등 뒤에서 또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합리적인 대가를 주는 걸 보니 무림맹이나 형산파보단 낫군.”

“그러게요. 그래서인지 살수도 인간적이로군요.”

그 순간 십칠호는 자신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음을 깨달았다.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점혈이 풀린 것이었다.

문득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그간 감시해 왔던 설풍과 선우진, 증칠이란 자가 또 다른 여인 한 명과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선우진이 십칠호에게 물었다.

“괜찮은 무공과 영약을 주면 굳이 채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까?”

그 질문을 들은 십칠호 변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기연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네, 네! 당연하죠! 이런 살수 짓 따위 저도 진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간 채가의 밥을 먹긴 했지만 그 은혜는 이미 갚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러자 선우진이 피식 웃음 짓고는 양주동가의 여인이자 나중에 설풍이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심한 동소운에게 물었다.

“동 소저, 혹시 이 사람을 동가에서 받아 줄 수 있겠습니까?”

“네? 아, 받아 줄 수야 있겠지만… 그를 믿을 수 있을까요?”

동소운으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적대 세력의 살수를 받아 준단 말인가?

하지만 묵랑에게 그의 진심을 확인받은 선우진은 씨익 웃으며 확언해 줬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이 사람, 최소한 다시 채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군요.”

“하지만….”

동소운은 선우진의 확언에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십칠호 변비를 바라봤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연태진이 팔짱을 끼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동생, 동생이 앞으로 알아 둬야만 할 게 있어.”

그러자 동소운이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네, 네, 언니. 그게 뭔가요?”

그러자 바싹 굳은 동소운을 향해 연태진이 삐딱한 자세로 말을 시작했다.

“동생이 나중에 풍의 내자가 되려면 이거 하나만큼은 명심해 둬. 우리 똑똑이 선우 공자가 파란 하늘을 보며 ‘하늘은 노란색이다.’라고 말했다면, 그 하늘은 분명 노란색인 거야. 알겠어?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지금이 아니어도 하늘은 곧 노랗게 될 거거든. 안 그래요, 풍?”

동소운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멍한 얼굴로 설풍을 바라봤다.

그러자 설풍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진 아우가 하늘이 노란색이라고 말했다면 그 하늘은 분명 노란색이겠지.”

그 말에 연태진이 이제 알겠냐는 듯한 표정으로 동소운을 바라봤다.

마치 훈련생을 교육시키는 교관 같은 표정이었다.

동소운은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선우진의 말이 일행들에게 얼마나 절대적으로 신뢰받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동소운은 슬쩍 설풍의 눈치를 살피고는 연태진을 향해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언니.”

얼마 전, 생각을 정리하겠다며 산책을 나갔다 온 설풍은 일행들과 고모할머니인 동채원에게 동소운과 혼인하겠다는 결정을 밝혔다.

물론 나서유와 먼저 혼인한 이후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동채원은 뛸 듯이 기뻐했었다.

일행들도 설풍의 결정을 흔쾌히 응원해 줬다.

설풍을 키우셨던 외조부님을 생각해서라도 어차피 거절하기 힘든 일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행들은 연태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도 실제 마음이 그럴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연태진은 연태진이었다.

그녀는 사내처럼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흠, 내 아우가 생겼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진짜 자신이 언니가 된 듯 동소운을 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며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정작 설풍은 한 번도 연태진과도 혼인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건만, 연태진에겐 이미 그것이 기정사실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선우진은 동소운으로 하여금 십칠호 변비를 동가에 맡기게 했다.

그러자 변비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 변비를 향해 연태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부모님께 감사해. 이름을 잘 지어 주신 덕분에 살아난 거니까.”

변비는 문득 살면서 단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던 자신의 이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를 동가에 맡긴 선우진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좀 달려 볼까요?”

그의 말에 일행들이 모두 씨익 웃음 지었다.

이제부터 속도가 중요해지는 시간이었다.

***

“뭐라고?! 뭐가 어쩌고 어째?!”

무인들을 이끌고 사왕련을 출발해 이제 막 장강을 건너려던 괴항기는 갑작스러운 보고를 받고는 분노해 고함을 질렀다.

설풍 일행이 양주동가 주변을 감시하던 살수들을 모두 죽이고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대체 어디로 빠져나갔다는 거냐?!”

“그, 그게 잘….”

더 큰 문제는 설풍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근무자들이 교대하러 가서 이전 근무자들이 모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일이 벌어진 지 벌써 네 시진이나 지난 후였기 때문이었다.

그곳엔 시체 이외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괴항기와 무인들은 일단 장강을 건너 양주 근처에 머문 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을 때는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였다.

“삼 공자님! 놈들이 육합추가에 있다고 합니다!”

“육합이라고?!”

육합은 양주로부터 서쪽에 있는 강소성의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였다.

또한 육합추가는 사왕십삼가의 하나로 도검의 명장들이 사는 가문으로도 유명했다.

그 소식을 들은 괴항기가 눈을 빛내며 외쳤다.

“육합이라면 놈들을 잡아 바로 강소성 밖으로 나갈 수 있겠군! 차라리 잘됐다! 모두 육합으로 이동한다!”

괴항기와 무인들은 속도를 높여 육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모두 수준 높은 무인인 그들에게, 육합은 하루면 충분한 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이 막 육합추가의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또다시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노, 놈들이 단양맹가에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분명 육합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그게 아마 보고가 도착했을 때 육합에서 출발했던 모양입니다.”

“이, 이익!”

단양맹가라면 양주동가에서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양주에서 바로 갔다면 하루 길이었겠지만 육합으로 온 바람에 다시 하루를 돌아가서 이틀을 가야만 했던 것이다.

괴항기는 설풍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 개자식! 만나기만 해 봐라! 놈의 발가락부터 토막토막 잘라 내 버리겠다!”

하지만 그들이 또 이틀을 내리 움직여 단양에 도착했을 때였다.

다시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노, 놈들이 고순인가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으아아아아악!”

고순은 단양의 남서쪽, 강소성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였다.

괴항기는 분노를 터트리긴 했지만, 그곳이 강소성의 끝자락이라는 것과 이번엔 그들이 고순인가에서 나온 것이 아닌 고순인가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에 다시 기운을 냈다.

이번에야말로 놈들을 강소성 바깥으로 몰아 죽일 수 있는 기회였다.

“고순으로 가자!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는다!”

괴항기와 무인들은 이제 전속력으로 고순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설풍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건 괴항기만이 아니었다.

“흐음, 고순이라고?”

첫째 괴정기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강소성의 끝자락이라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만약 셋째 괴항기에게 밀려 강소성 밖으로 도망간다면, 굳이 놈들의 처리를 괴항기에게 맡길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마침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괴정기가 입을 열었다.

“항기 놈이 실수할까 봐 따라오길 잘했군. 가자. 우리는 강소성의 바깥에서 놈들을 기다린다. 고작 다섯 놈들을 포위하기엔 과분한 규모가 되겠군.”

두 무리의 추격자들이 드디어 설풍의 일행에게 점점 근접해 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