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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00화 (300/359)

300화 후계전쟁-3

부하들에게 막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괴정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설풍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질문의 답을 떠올려봤다.

그 답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설풍의 일행들이 고순인가 쪽으로 향하다가 괴정기에게 쫓겨 이쪽으로 왔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약간 이상하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설풍의 일행들도 그랬지만, 완전히 포위된 설풍의 표정이 너무 여유로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금의 질문.

그 질문은 그들이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올 생각이었다는 말처럼 들리고 있었다.

괴정기는 잠시 놈이 이곳에 왔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놈에게 무슨 생각이 있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이렇게 놈을 막다른 곳에 몰아넣었는데.

마음속으로 결론을 낸 괴정기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걸 내가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그러는 너야말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고 있나?”

그러자 설풍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이 강소성이 아니니 날 직접 죽일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 말에 괴정기의 웃음이 짙어졌다.

“잘 알고 있군.”

하지만 설풍의 이어진 말에 그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설풍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잘 알 수밖에 없지. 내가 여기 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거든.”

뭐라고?

괴정기는 설풍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다시 한번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 왔다?

그 말이 괴정기 자신이 설풍 놈을 죽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건 아닐 것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놈은 이곳에선 놈 또한 자신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란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소성 바깥에선 누가 누구를 죽여도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괴정기는 그 당연한 말에 살짝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한 번도 누군가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건 자신뿐, 자신의 생명을 다른 이들이 위협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괴정기는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갑자기 살짝 심장이 떨려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긴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동요를 감추기 위해 애써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니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구나! 네놈들 여섯 명이서 설마 이 많은 무인들을 다 꺾고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현재 이곳에서 설풍을 포위하고 있는 무인들은 모두 사백여 명이었다.

그리고 그중 절정의 무인들은 사오십 명, 초절정은 열 명 가까이나 됐다.

말을 하는 도중 그 사실을 되새긴 괴정기는 다시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헛소리지. 놈이 사왕인 아버지 급의 무인이 아닌 이상, 아니.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 많은 무인들을 이길 수는 없다.’

그가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설풍이 빙긋이 웃으며 그에게 대꾸했다.

“물론 우리 여섯 명이 이곳에 있는 무인들을 다 해치우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 말에 괴정기가 코웃음을 쳤다.

역시 놈 또한 바로 인정하지 않는가.

하지만 설풍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곧이어 여유롭게 웃으며 괴정기에게 물었다.

“근데 왜 굳이 우리가 저 무인들을 다 이겨야 하지?”

음?

괴정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할 생각인가 싶었다.

그때였다.

설풍이 갑자기 왼쪽 옆의 언덕 위를 향해 소리쳤다.

“고순인가 분들께서 와 계십니까?!”

뭐?! 인가라고?

그 말에 괴정기는 물론 괴항기까지도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언덕 위를 바라봤다.

설풍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쪽이었다.

그러자 그곳, 왼쪽 언덕 위에서 정말 일단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사한 하늘색 무복에 연두색의 허리띠, 연편술로 유명한 고순인가의 무인들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수는 모두 오십여 명쯤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대대로 여자가 가주를 맡아 온 고순인가의 현 가주, 연창빙랑 인교화였다.

그들의 등장에 얼굴색이 창백해진 괴항기가 부관을 향해 작게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인가에 상관하지 말라는 말을 전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부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예! 부, 분명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었습니다.”

그 사이 괴정기는 인가무인들의 숫자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오십여 명, 다들 고수들로 보이긴 했지만 감당 못 할 숫자는 아니었다.

그에 계산을 마친 괴정기가 인교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인 고모님! 조카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고순인가에서 저와 저를 따르는 세력들, 그리고 진강만가와 적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없으면 그냥 물러나라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원래도 차가운 성품으로 유명했던 연창빙랑 인교화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답을 기다리던 괴정기가 다시 그녀를 향해 소리치려고 했을 때였다.

문득 전혀 다른 곳에서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그 대답은 내가 해주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고순인가가 서 있는 곳과는 반대쪽인 오른쪽 언덕이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괴정기는 어느새 반대쪽에 또 다른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대략 오십여 명의 무인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젊은 남자는 괴정기도 잘 알고 있는 자였다.

괴정기가 문득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백무호? 소주백가?”

그랬다.

그는 일전에 설풍 일행이 소주에 들렀을 때 진소은과 비무를 하다 중독 증상으로 쓰러졌던 소주백가의 이공자 백무호였다.

선우진의 도움으로 완전히 독을 해독한 그가 이곳에 소주백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왔던 것이었다.

그를 본 괴정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저들의 수가 백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직 자신들이 훨씬 유리하긴 하지만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괴정기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백무호! 감히 소주백가가 나와 진강만가를 적대하겠다는 뜻이냐?!”

그러자 백무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 마치 이제까지는 적대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대풍양가와 짜고 아버지를 중독시켰던 건 우호적인 행동이었던 모양이지?!”

그 말에 괴정기의 눈이 순간 경악해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그는 바로 표정을 가다듬고는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냐?! 내가 언제 대풍양가와 짜고…!”

그러자 백무호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 양가의 의원들이 이미 실토했다! 네놈이 대풍양가를 조종해 네놈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왕십삼가의 사람들을 중독시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말을 들은 괴정기의 안색이 하얗게 탈색됐다.

그 사실은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사왕련에 속해 있으면서도 독립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사왕십삼가를 정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힘이 되어 주기로 약속한 곳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왕십삼가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의가인 대풍양가를 조종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워낙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 아무도 모르는 것이어야 할 텐데….

괴정기는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백무호의 말을 부정했다.

“그, 그건 말도 안 되는 모함이다. 대체 무슨 증거로…!”

하지만 백무호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격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놈 때문에! 네놈 때문에 큰형님이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도 사경을 헤매시다 간신히 살아나셨지! 아버지께서 전해달라고 하시더구나! 아직 다 회복하지 못해 직접 네놈을 갈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괴정기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웃기지 마라! 대체 무슨 증거로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냐?! 이런 식으로 나를 모함하고도 너희가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말에 백무호는 다시 코웃음 쳤다.

그리고 씹어뱉듯 말했다.

“모함이라고? 어디 중독에서 회복하신 다른 가주님들께도 그렇게 말해 보거라.”

그 말에 백무호의 눈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다른 가주님들이라고?

설마 저들이 다가 아니라는…?

꿀꺽!

불길한 느낌에 괴정기가 마른침을 삼켰을 때였다.

고순인가의 옆, 그리고 소주백가의 옆쪽에서 문득 다른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다른 무복을 입은 네 무리의 무인들.

사왕십삼가 중 네 개의 가문에서 온 무인들이었다.

괴항기가 멍하니 그들의 무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양주동가, 여동육가, 태창저가에… 비, 비주맹가까지?”

여동육가와 태창저가는 강소성의 남동쪽에 위치한 가문들로 소주백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비주맹가는 강소성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무인들이 어느새 이 먼 남쪽까지 내려왔던 것이었다.

그것은 모두 선우진의 부탁을 받은 소주백가의 백무호가 남쪽의 여동육가와 태창저가를 찾아가 상황을 알려주고 중독을 치료해 주는 사이, 설풍의 고모할머니인 양주동가의 동채원이 북쪽의 가문을 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 양주동가의 무인들 사이에서 동채원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금도 북쪽에 위치한 사왕십삼가를 돌며 중독 여부를 확인하고 치료해 주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녀가 가장 먼저 들렀던 비주맹가만이 무인들을 보내 설풍에게 힘을 더해 줄 수 있었다.

이 모든 건 소주백가에서 생포한 양가의 의원을 통해 음모의 주체가 괴정기임을 알게 됐던 선우진이 그린 큰 그림이었다.

선우진은 그때부터 중독된 가문들을 치료해주고 그들을 끌어들일 셈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의 힘을 모아 괴정기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짠 것도 그때쯤이었다.

괴정기는 떨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여섯 가문의 무인들.

각각 오십여 명씩 모두 삼백 명 정도의 무인들이었다.

그러자 백골괴마 홍추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괴정기를 바라봤다.

“고, 공자.”

무인들의 수로는 여전히 괴정기 쪽이 우위였다.

적들은 삼백, 자신들의 수는 사백이었으니까.

하지만 무인들의 질은 그렇지 않았다.

저들은 각 가문마다 네다섯 명씩의 초절정 고수들을 대동한 상태였다.

그러니 언덕 위에 존재하는 초절정 고수들만 거의 삼십 명 정도. 그런 자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괴정기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그의 냉정한 이성이 머릿속에서 상황을 계산해 봤다.

그러자 곧 아주 명확한 답이 산출됐다.

끝이었다.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아주 명확한 답이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지금 이 싸움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설사 천하삼십육성의 일인인 삼지신창 감작형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설사 이 싸움을 이긴다 해도 거기서 일이 끝날 리가 없었다.

대풍양가의 의원들을 이용해 사왕십삼가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는 더 이상 사왕련 안에서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임에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끝까지 조용히 잘 처리됐다면 모를까 중간에 이 일이 밝혀진 이상 아버지 사왕 또한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괴정기는 정신이 나간 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절대 그럴 수 없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가 곧 발악하듯 소리쳤다.

“나는 다음 대 사왕이 될 남자, 괴정기다! 누구도 내 앞길을 막을 수 없다!”

그러고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공격! 모두 공격하라!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

그의 명령에 부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움찔거렸다.

그의 명령에 따르려는 본능과 이 상황의 불리함에 대한 괴리감 때문이었다.

그들로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괴정기가 다시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다음 대 사왕의 명령이다! 저들을 모두 죽여라! 저들만 모두 죽인다면 나와 함께 사왕련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

사왕련을 장악할 수 있는 힘.

그 현실 여부를 떠나 유혹적인 말임에 틀림없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일부 무사들이 마음을 굳히고는 괴정기의 말에 따라 병장기를 뽑으려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가 너에게 다음 대 사왕의 자리를 준다더냐?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소리를 지르지도, 그렇다고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지도 않은 평이한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은 이 공간의 모든 무인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그들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별다른 기세도 느껴지지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였건만, 그 목소리가 마치 그들의 심혼을 꿰뚫은 것만 같았다.

무공이 약한 무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몸마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을 떨고 있는 사람들 중엔 괴정기도 속해 있었다.

그는 정말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떨고 있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괴정기가 덜덜 떨며 간신히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상공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곳, 허공 위에 그가 서 있었다.

휘황한 용이 그려진 흑의를 입고서 차가운 눈빛으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절대자. 이 시대의 천하제이인자인 사왕 괴갈현이.

괴정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 아버지….”

그러자 그를 발견한 사왕련의 모두가 황급히 소리치며 무릎을 꿇었다.

“사, 사왕!”

“사왕을 뵙습니다!”

“사왕님을 뵙습니다!”

이 모든 상황을 끝낼 종결자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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