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형산파의 저력
형산파 장문인 위정국이 외당주 자광진인에게 물었다.
“악양으로 이동할 수 있는 초절정 고수는 몇 명이나 되나?”
“예, 북서쪽에서 일곱 명, 그리고 동쪽에 있는 네 명이 바로 악양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무려 초절정 고수 열한 명을 바로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과연 구대문파 중에서도 손꼽히는 힘을 가졌다고 알려진 형산파다운 저력이었다.
하지만 위정국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본산에 거하고 있는 초절정 고수 아홉 명을 더 보내라. 스무 명을 채워서 공격하도록.”
“예,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자광진인이 생각할 때 그건 너무 지나친 전력이었다.
고작 금도무적 초하곤과 반형회의 조무래기들을 처리하는 데 무슨 초절정 고수를 스무 명이나 보낸단 말인가?
게다가 본산에서 초절정 고수 아홉 명을 보내게 되면 이제 본산에 남은 초절정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절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본산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방어 전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광진인은 아무런 이견도 제시하지 않은 채 위정국의 명령에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형산파에서 장문인의 명령에 이견을 제시하는 게 무모한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광진인 개인적으로도 위정국의 명령에 절대 불복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북서쪽, 동쪽의 고수들을 합류시켜 본산에서 출발할 고수들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정호 남부인 사음에서 합류시키면 될 것 같군요.”
“그래, 그렇게 하도록.”
위정국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호남성의 모형 중 놈들이 있을 북동쪽의 악양을 노려보았다.
이번에야말로 그 귀찮은 반형회 놈들을 깨끗이 박멸해 버릴 시간이었다.
위정국은 그간 반형회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 봤었다.
하지만 호남성의 그림자에 숨어 암약하는 놈들을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끌어온 결과가 결국 이것이었다.
놈들의 증언 때문에 혐의를 반박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이런 상황 말이다.
위정국은 이를 갈며 생각했다.
‘진작 놈들을 처리했다면 천하 무림인들에게 비난받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물론 복건용가나 해남파의 폭로 또한 뼈아프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당사자가 아닌 만큼 반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위정국의 판단이었다.
막말로 아니라고 잡아떼고는 그사이 증거를 하나하나 없애나간다면 그들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명분을 잃어버리고 말지 않겠는가?
그러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결국 반형회 놈들이었다.
그런데 벌레처럼 숨어 다니던 그 짜증나는 놈들이 이번에 스스로 악양으로 기어 나왔다는 것이었다.
놈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위정국은 만약 이번 기회에 놈들을 박멸할 수만 있다면 이번 일도 얼마든지 전화위복이라고 기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심해라! 제일 중요한 건 반형회 놈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악양과 놈들 중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악양을 포기하고 놈들을 쫓아도 좋다!”
“예, 장문인!”
위정국은 자광진인이 파견 나가 있는 초절정 고수들에게 전서구를 날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지역의 놈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봐야 소용없지. 호남성만 조용하게 만들 수 있다면 놈들 따위야 잠깐 몰려왔던 소나기에 불과할 테니까.”
***
같은 시각.
악양의 금도장에서는 선우진의 일행들이 반형회 사람들과 재회하는 중이었다.
“이랑아!”
“소은 언니!”
“선우 공자, 잘 지내셨소?”
“손 노사님, 여전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선우진과 진소은은 유운취객 손대수와 손녀인 손이랑과 반가운 재회를 나눴다.
선우진과 손대수는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고, 특히 진소은과 손이랑은 잃어버린 자매를 만난 듯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부둥켜안는 모습이었다.
반면 설풍과 연태진을 재회하는 반형회 인물들은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설 공자!”
“설 공자님!”
“돌아오셨군요, 공자!”
그들은 만면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마치 윗사람을 만나듯 깍듯하고 정중한 태도로 설풍을 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예전 육합검수 파산조의 습격으로 그들이 전멸될 위기에 처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그들을 구해준 설풍이 그들에게 은인으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반형회 회주인 철장대협 정소상마저도 설풍을 윗사람으로 대접해 줄 정도였다.
정소상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설풍에게 말했다.
“설 공자, 지난번 목숨을 구원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도 공자 덕분에 우리 반형회의 오랜 숙원을 풀게 되었소. 이제 온 무림이 형산파의 무도함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소이다!”
그러자 설풍이 그의 손을 굳게 잡으며 말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산파에게 잃은 가족들의 복수를 하시는 것이 꿈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이제 곧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실 겁니다.”
그의 말에 정소상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만약 살아서 가족들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내 남은 목숨은 공자를 위해 바치겠소. 평생을 우마처럼 부리셔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외다!”
“저도 그렇습니다, 공자! 형산파 놈들에게 복수만 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남은 인생은 공자의 충복으로 살겠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공자!”
“공자!”
“공자!”
반형회의 일원들은 형산파에게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금방이라도 충성맹세, 아니 노예 계약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마치 철장대협 정소상이 아니라 설풍이 반형회주처럼 보일 정도였다.
설풍은 그들의 뜨거운 반응에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선우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우진은 오히려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설풍이 반형회의 전력을 얻는다면 전혀 나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들을 지켜보던 선우진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짝! 짝!
“자! 이제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그의 말에 장내에 있던 모든 인원들, 선우진의 일행들과 설풍의 수하들, 그리고 반형회 회원들이 모두 선우진을 주목했다.
“방금 반형회 분들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르면 형산파 장문인 위정국은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먼저 이쪽부터 정리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맞습니까?”
그의 말에 유운취객 손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산파에 심어놓은 간자에게서 방금 도착했던 소식이었다.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선우진의 말을 보충 설명했다.
“놈들은 북서쪽에서 활동하던 초절정 고수 일곱 명, 동쪽에서 활동 중이던 초절정 고수 네 명, 그리고 형산파 본산에서 아홉 명, 모두 스무 명의 초절정 고수를 파견했다고 하오.”
그러자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허어!”
“초절정 고수 스무 명이라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역시 형산파 놈들은….”
초절정 고수 스무 명을 한꺼번에 파견하다니, 역시 형산파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대세가는커녕 구대문파 중에서도 이 정도의 전력을 지닌 곳이 소림, 무당, 화산 정도뿐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반형회주 정소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일단 몸을 피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런 전력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 아니겠소?”
그의 말에 반형회 인원들이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증오하는 형산파이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정면으로 싸우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정면으로 싸우지 않는다?”
“예, 그들은 아직 스무 명을 한군데로 모은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들은 저희 전력을 모르겠지만, 저희는 그들이 누구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아아, 확실히!”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그럼 각개격파를 하게 되는 건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선우진이 설풍을 바라보며 진중하게 말했다.
“형님께선 연 소저와 반형회분들 중 가장 무위가 강한 몇 분들만 이끌고 동쪽으로 가주십시오.”
설풍에게 동쪽에서 올 초절정 고수 네 명을 책임져달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설풍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설풍의 수하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삼지신창 감 대협과 귀도 백 노사, 증칠 형님과 백골괴마 홍 노사, 금도무적 초 대협과 진 소저는 저와 함께 북서쪽으로 가겠습니다.”
무려 천하삼십육성급 고수 세 명과 초절정 네 명으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선우진은 그들을 데리고 북서쪽에서 올 일곱 명을 책임질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다른 인원들을 향해 말했다.
“남은 분들은 악양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저희가 맡은 곳을 정리하고 돌아왔을 때 여러분과 함께 형산으로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반형회 인물들은 한순간 뇌기에 감전된 듯 온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너무도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반형회주 정소상이 멍한 표정으로 방금 들은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방금 형산으로 가겠다고 하셨소?”
선우진은 그를 향해 씨익 웃어주며 대답했다.
“예, 형산으로 갑니다. 드디어 복수를 할 시간이 왔으니까요.”
복수를 할 시간.
반형회 회원 모두는 순간 뭔가가 가슴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선우진의 말이 마치 심장을 북처럼 세게 두드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복수라니….
반형회 모두가 꿈에서조차 잊지 않았던 염원이었다.
하지만 그들 자신조차도 솔직히 죽기 전에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선우진은 이제 할 수 있다고, 지금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심장이 터질 듯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감격에 차올라 글썽거리는 눈으로, 그들은 선우진이 한 말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복수….”
너무나도 달콤한 그 말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
호남성 안향.
이곳은 호남성의 정북 쪽에 위치한 곳으로, 악양에서 동정호를 건너면 곧 나오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 안향에서 제일가는 무림세력인 천중문은 몇 년 전부터 형산파가 접수한 형산파의 괴뢰문파였다.
형산파는 당시 안향제일세였던 굉무장을 몰락시키기 위해 천중문에 힘을 실어줬고, 형산파를 등에 업은 천중문은 어렵지 않게 굉무장을 멸문시킬 수 있었다.
그 후 굉무장과 천중문 모두 형산파에 먹혀 버렸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였다.
지금 그 천중문에는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 세 명이 머물고 있었다.
서북쪽에서 올 초절정 고수들의 회합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북쪽의 일곱 명이 모두 이곳에 모이면, 그 후 스무 명 모두가 모이기로 한 남쪽의 상음으로 함께 이동할 생각이었다.
천중문의 접객실에 앉아 있던 형산파의 속가제자인 번강검객 모동주는 지루한 표정으로 하품을 했다.
“하아암!”
그러자 역시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인 자명진인이 그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많이 지루한 모양이로군. 서쪽 끝인 천자산에서 오는 사람도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릴 걸세. 그리고 사제가 아무리 지루해도 원래 이곳에 머물고 있던 나나 자강사제만 하겠는가? 그러니 좀 참으시게나.”
그러자 모동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형들이 제일 지루하시겠지요.”
이곳 천중문은 형산파의 호남성 북쪽을 책임지는 거점이었다.
그래서 자명진인과 자강진인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이곳에 머물러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가장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그들이었던 것이다.
“으하아아암!”
모동주는 다시 한번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나른한 눈으로 자명진인에게 물었다.
“이 사제가 너무 지루해서 그러는데 그냥 저를 빼고 사형들만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스무 명이나 가니 제가 가서 할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자 자명진인의 옆에 있던 자강진인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사제. 감히 장문인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말인가? 사제가 자유분방한 성격인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이번 말은 선을 넘었네. 어찌 그렇게 생각 없는 말을 할 수가 있는가?!”
그 말에 모동주가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농담도 못 하겠습니다, 그려. 이 사제가 잘못했습니다. 재미도 없는 농을 던졌으니 욕을 먹어도 싸지요. 죄송합니다, 사형.”
그의 말에 자명진인은 헛웃음을 지었고, 자강진인은 살짝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농이라니! 농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아닌 얘기가 있지 않은가?! 어딜 감히 장문인의 명으로 농을 한단 말인가?!”
그러자 모동주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장문인의 명을 그리 열심히 들었다면 왜 속가제자를 하고 있겠습니까?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으니 그만하시지요, 사형.”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이자, 자강진인은 더 할 말을 삼키고는 그만 멈추기로 했다.
“어흠! 그래, 아무 재미도 없는 농이었네. 앞으론 조심하게나, 모 사제.”
지금은 저렇게 유들유들해 보이지만 사실 모동주는 어려서부터 사고뭉치로 유명했었다.
한번 눈이 돌아가면 대련하던 상대의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다리를 물어뜯거나 심지어 사문의 건물에 불을 지른 적도 있는, 그야말로 개차반이었던 것이다.
그런 모동주의 더러운 성격을 잘 알기에 자강진인은 그냥 말을 아끼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반면 모동주는 자강진인이 알아서 물러서자 속으로 아쉬워했다.
그가 계속 잔소리를 하면 그걸 핑계로 물어뜯고는 이 일에서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의 말마따나 장문인의 명령을 어기는 건 위험한 짓이겠지.’
모동주는 속으로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는 장문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
아니, 더 솔직히 얘기하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형산파에서 장문인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에 가능하면 참아보려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장문인과 사문의 행사에 대한 회의감만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런 더러운 짓들을 하려고 정파인 형산파에 입문한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 때려치우고 폐관이라도 하고 싶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화아악!
접객실에 있던 세 사람은 갑자기 밖에서부터 느껴진 살기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음?!”
“뭐지?!”
“적?!”
밖에서부터 강력한 살기가 쏘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최소한 초절정의 무인이 쏘아내는 살기였다.
게다가 더 이상한 건 저런 살기를 쏘아내는 사람이 있는데도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날렵하게 접객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파박!
그들은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살기를 쏘아낸 자를, 아니 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접객실 밖 공터에 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레해 보이는 노인 둘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짧은 머리의 여인 한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인 증칠이 형산파의 무인들을 보고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으흐흐흐! 이제야 내 차례가 돌아왔구나! 너희 형산파 후레자식들에게 이 증칠 어르신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백골괴마 홍추 또한 음산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 홍추 님께서 백골괴장의 위력도 보여주마.”
두 사람은 지난번 금도무적 초하곤을 도울 때 삼지신창 감작형과 귀도 백기량에게 밀려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선우진을 졸라 그때 싸우지 못했던 사람들이 먼저 싸우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그들의 옆에 서 있던 진소은이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는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세 사람을 본 자명진인은 긴장한 눈빛으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상하군. 이들이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없어. 사제들도 모두 조심하게.”
그의 말에 자강진인과 모동주 또한 그제야 깨달은 듯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주변에 천중문도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 모두가 제압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때였다.
증칠이 더 기다리지 않고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파박!
“이놈은 내 꺼다!”
그가 덮친 사람은 세 명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자명진인이었다.
자명진인은 암기처럼 쏘아져 오는 증칠의 속도에 긴장한 표정으로 빠르게 발검하며 검을 그었다.
“어딜!”
챵!
증칠의 빠른 신법은 분명 자명진인이 처음 보는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빠른 신법이니만큼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면 검을 향해 스스로 달려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자명진인의 생각이었다.
그는 달려드는 증칠의 얼굴을 수평으로 그으며 생각했다.
‘잡았다!’
샤아악!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짓쳐들어오던 증칠이 한순간 그 자리에 멈칫하자, 그의 얼굴 한 치 앞으로 검이 지나간 것이었다.
놀라운 동체시력과 신체 제어였다.
증칠은 잠깐 멈칫한 후 바로 다시 돌진하며 손을 뿌렸다.
휘리릭!
“!”
자명진인은 경악했다.
증칠 자체의 속도도 암기 수준인데 그 속도로 달려들며 지근거리에서 암기를 뿌린 것이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자명진인은 황급히 온몸으로 공력을 방출했다.
“하아압!”
화아악!
호신강기였다.
그의 온몸에서 하늘빛 장막이 방출되자 간신히 암기를 튕겨낼 수 있었다.
투투퉁!
하지만 증칠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형은 어느새 공중으로 솟구친 상태였다.
자명진인이 그를 따라 황급히 시선을 위로 향하자,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한 증칠이 한쪽 다리를 높이 치켜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본 자명진인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
다음 순간, 증칠의 발꿈치가 호신강기 위를 벼락처럼 내리찍었다.
“뇌룡각!”
콰아아아앙!
“크으으윽!”
증칠의 각법은 호신강기 위를 내리찍었기에 실제로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엄청난 파괴력에 자명진인은 호신강기를 유지한 채 뒤로 튕겨 나가야만 했다.
가뜩이나 호신강기 때문에 공력의 사분지 일을 소모했던 자명진인의 내공이 한순간에 절반 가까이나 소모된 순간이었다.
증칠이 경박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크헤헤헤! 역시 뇌룡각의 손맛이 최고라니까! 아니, 발 맛이라고 해야 하나?! 크헤헤헤!”
방금 증칠이 사용한 무학은 선우진이 가르쳐 줬던 뇌신의 무학 풍룡퇴법이었다.
증칠은 이 풍룡퇴법을 익히고 난 후 이십 년 가까이 막혀 있던 내공 백십 년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무려 천하삼십육성과 대등한 경지로 오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자명진인은 멀리 튕겨난 후 서둘러 호신강기를 회수했다.
이미 공력을 절반 가까이 소모한 상태이기에 더 이상 호신강기를 유지하는 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증칠의 암기가 빛살처럼 쏘아져 왔다.
쉬이이이익!
“으윽!”
자명진인은 황급히 검을 휘둘러 검막을 형성했다.
슈하아악!
티티티팅!
암기는 그의 검막에 부딪혀 튕겨 나왔다.
하지만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검을 내리그어야만 했다.
그사이 증칠이 그의 앞까지 짓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놈!”
슈하아악!
그 순간이었다.
증칠이 경박하게 웃으며 발을 차올렸다.
“으헤헤헤!”
풍룡퇴법 제 일 초
풍룡광풍
한순간 증칠의 발그림자가 분열했다.
붉은 강기가 맺힌 발그림자가 사방을 가득 채웠던 것이었다.
사사사사삭!
그러자 하늘색으로 빛나는 자명진인의 검강과 붉은색으로 빛나는 증칠의 족강이 사방에서 폭죽처럼 충돌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방!
그 결과 뒤로 밀려난 건 자명진인이었다.
“으윽!”
“크헤헤헤헤! 신나는구나!”
증칠은 그간 빠른 신법과 암기술, 그리고 근접전에서의 조법을 주로 사용해 왔었다.
하지만 신법과 암기술에 비해 조법은 그리 큰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증칠 본인도 그리 근접전을 좋아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랬던 증칠은 선우진으로부터 풍룡퇴법을 배우고는 근접전에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자신과 딱 맞는 무공이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적들보다 체구가 작아 근접전을 할 경우 늘 상대방보다 거리의 불리함을 안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증칠은 퇴법을 사용하고 나서 간격을 훨씬 늘릴 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이라면 퇴법의 간격 안쪽에 사각이 생겼을 텐데 증칠에겐 그런 것도 없었다.
다리가 짧다는 특징이 오히려 사각을 없애줬기 때문이었다.
다리가 닿지 않는 먼 거리는 어차피 암기를 사용하니 불편할 일도 없었다.
그 결과, 증칠은 드디어 한 단계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바로 내공 백십 년의 벽이었다.
그것은 또한 요즘 그가 싸움에 목말라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풍룡퇴법 제 오 초
선풍룡격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증칠의 발이 자명진인의 호신강기 위로 송곳처럼 내리꽂혔다.
바위라도 관통할 것만 같은 강력한 일격이었다.
푸우우욱!
증칠의 몸이 호신강기를 관통할 듯 쑤욱 파고들자, 자명진인은 더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해내며 뒤로 튕겨 나갔다.
“커헉!”
자명진인의 남은 공력으로는 증칠의 일격을 버틸 만큼의 호신강기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명진인은 공중을 빙글 회전하며 간신히 땅에 착지한 채 비틀거렸다.
그리고 황급히 증칠의 신형을 쫓은 자명진인의 눈이 어느새 자신의 머리 위에서 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는 증칠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명진인의 경악한 눈이 다시 한번 크게 확대됐다.
“뇌룡각!”
증칠의 발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자명진인의 머리를 향해서였다.
콰아앙!
더 이상 호신강기를 뿜어낼 수 없었던 자명진인의 머리는 흔적도 없이 터져나갔다.
그의 몸 또한 도끼라도 맞은 듯 양쪽으로 갈라져 버린 상태였다.
다만 피는 그리 많이 튀지 않았다.
쪼개진 부위가 벼락을 맞은 듯 검게 그을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명진인의 시신을 뒤로 한 채 증칠이 상쾌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크헤헤헤헤! 역시 뇌룡각은 초식명을 외쳐줘야 속이 뻥 뚫린다니까! 크헤헤헤헤!”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들 중에서도 꽤 서열이 높았던 자명진인의 허무한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