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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11화 (311/359)

311화 번강검객 모동주-1

세 곳의 싸움은 이제 거의 정리된 상태였다.

증칠이 가장 먼저 싸움을 끝낸 후 다른 두 곳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고, 또 다시 벽을 뛰어넘은 진소은이 그다음 차례였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 그 자리에 선 채 백골괴마 홍추와 번강검객 모동주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주변 상황도 파악하지 못할 만큼 집중한 채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무척 보는 맛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듣는 맛이 있었다.

“이 쭈꾸미 같은 새끼야! 어떻게 머리에서 나는 광채가 강기보다 밝을 수가 있느냐?! 그것도 무공이냐?!”

“납치 강간이나 일삼는 마두 놈아! 네 어머니가 없는 것도 분명 네 짓인 모양이로구나!”

“뭐, 이 더러운 사파 마두 새끼가?!”

“켈켈켈! 열 받았느냐, 이 호로새끼야?!”

정파인 형산파의 검사가 외모로 상대를 비하하고, 사파인인 홍추가 정파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이상한 싸움이었다.

두 사람은 막상막하로 병기를 부딪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말싸움 또한 끝날 줄을 몰랐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증칠이 문득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말로 힘만 안 뺏어도 벌써 승부가 났겠구먼.”

그러자 약간 질린 표정으로 웃음 짓고 있던 진소은도 동조했다.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병기보다 입에 더 공력을 많이 쏟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때였다.

문득 증칠과 진소은의 목소리를 들은 홍추와 모동주는 그제야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어느새 자신들을 제외한 두 곳의 싸움이 모두 끝나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자 홍추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십 년 전 맞수였던 홍해아 증칠이 이제 자신보다 고수가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는 싫어도 충분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저 어린 소저인 진소은에게까지 뒤처지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놈! 이제 내 진짜 실력을 보여주겠다!”

홍추는 온 공력을 집중해 감춰놨던 자신의 비장절초를 펼치기로 했다.

사람들 눈앞에서 그걸 쓰는 건 좀 그랬지만 그래도 이대로 승부를 못 내는 것보단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만약 증칠의 도움이라도 받게 된다면 너무 비참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온 공력을 집중한 그의 백골괴장이 회색빛 강기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홍추가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놈! 죽어…!”

그때였다.

그가 막 비장의 절초를 펼치려던 순간.

모동주가 갑자기 뒤로 확 물러서더니만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외쳤다.

“항복! 항복하겠소!”

“…뭐?”

홍추는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거렸다.

항복이라니, 지금 자기가 뭔가를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항복?”

“형산파의 제자가? 그것도 초절정 고수가?”

그러자 당황한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파, 특히 구대문파란 작자들은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항복은커녕 싸우다 뒤로 물러서는 것조차 치욕으로 아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구대문파인 형산파의 제자가, 심지어 초절정 고수가 손을 번쩍 치켜들고 항복을 하다니.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홍추는 회색 강기가 불타오르는 백골괴장을 든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잠시 입만 뻐끔거렸다.

그런 그의 회색 강기는 불씨가 꺼지듯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이, 이놈….”

홍추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문득 증칠이 다가와 안됐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쯧, 쯧.”

그러자 홍추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무 억울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 아니,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고는 모동주를 향해 소리쳤다.

“이놈! 항복이라니! 웃기지 말고 어서 검을 들어라!”

그러자 모동주가 헤 웃었다.

방금 전까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퍼부으며 살벌하게 싸우고 있던 그가, 이제 양같이 순한 표정을 지은 채로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검마저 땅에다 던져버린 상태였다.

모동주는 어색하게 웃으며 홍추에게 물었다.

“혹시 소생이 아까 노사 머리의 광채가 무척 매력적이라는 얘기를 했던가요? 꼭 신선 같으십니다. 하하하! 하하….”

***

모동주는 방금 전 증칠과 진소은의 목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 바로 주변을 살펴봤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사형들이 이미 고혼이 되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만 몰랐을 뿐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젠장!’

그는 바로 도주를 생각했다.

원래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던 데다 사문의 행사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그로선 목숨까지 바쳐 사문에 의리를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도주로를 찾던 그는 네 방향의 담장과 지붕 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네 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거대한 삼지창을 든 건장한 노인이라는 사실도….

그를 본 모동주의 머리에 문득 한 명의 이름이 떠올랐다.

‘삼지신창 감작형?!’

모동주는 순간 너무 놀라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무림인이라면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고수가 바로 감작형이었기 때문이었다.

삼지신창 감작형이라니.

무려 형산파의 최고수인 장문인 위정국과 함께 천하삼십육성에 올라 있는 자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그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방을 지키고 있는 자들 중 한 명이 삼지신창이라고? 그럼 나머지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킨 모동주는 바로 도주를 포기했다.

전혀 가망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손을 번쩍 치켜들고는 항복하고 말았다.

“항복! 항복하겠소!”

그가 항복하자 네 방향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사람들도 공터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러자 모동주는 그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진짜 삼지신창 감작형이로군. 그리고 저자는 금도무적 초하곤인 것 같고. 저자는…. 응?! 귀도 백기량?! 뭐,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은?!’

모동주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는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들 중에서도 가장 활동성이 좋고 호기심이 많은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견문 또한 형산파 무인들 중 가장 넓었다.

그런 그가 눈앞에 서 있는 인물들의 정체를 오판할 리 없었다.

‘기껏해야 초하곤과 반형회 무사들 정도만 있을 거라고 들었었는데….’

아무래도 정보가 너무 심하게 축소된 듯했다.

그리고 그건 형산파 정보망의 문제라기보단 저들의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모동주는 문득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우리 형산파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겠구나.’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던 모동주는 다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랑 상관있나? 아니,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닌가?’

어차피 그는 지금 자신의 사문 형산파의 행태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형산파가 아예 망하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장문인이 몰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내 마음을 결정한 모동주는 사람들을 향해 씩씩하게 말했다.

“혹시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형산파에 관한 정보라면 제가 다 드릴 수 있습니다! 제 안전만 보장해 주신다면야 뭐든 알려드리겠습니다!”

너무도 쉽고 당당하게 배신을 말하는 모동주였다.

그 호쾌하기까지 한 태도에 일행들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선우진을 바라봤다.

그를 어떻게 하겠냐며 묻는 시선들이었다.

그러자 그들의 시선을 눈치챈 모동주는 경악하고 말았다.

분위기를 보건대 아무래도 이들의 지휘자가 가장 눈여겨보지 않았던 젊은 청년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짧은 머리 여인이야 아름답기라도 하니 눈여겨 봤지만 저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모동주의 시선과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있던 선우진은 피식 웃음 짓고는 입을 열었다.

“눈치 하나는 어마어마하군. 무공 실력보다 뛰어날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에 모동주가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하!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공자. 그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초절정의 벽을 넘기 전까지만 해도 확실히 눈치가 무공보다 좀 더 높았었지요.”

그의 말에 선우진은 피식 웃음 지었다.

승부의 추가 기운 것은 물론이고, 주변 분위기만으로도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는 눈치.

거기에 상황 파악이 끝나자마자 망설임 없이 항복할 수 있는 과단성.

자신보다 훨씬 젊을 선우진에게 바로 높임말을 사용하며 자신을 낮추는 유연성까지.

선우진은 눈앞의 남자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재밌는 유형의 남자인 것 같았다.

하지만 흥미가 생겼다고 해서 그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

선우진은 한순간 웃음기를 싹 지우고는 갑자기 기세를 뿜어냈다.

화아악!

그가 뿜어내는 강력한 기세에 모동주는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무형의 기세가 유형화되어 머리카락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분명 천하삼십육성급 실력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저 나이에…. 무슨 천마신교 소교주라도 되는 건가?’

모동주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우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모동주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사가 이번 대답에 걸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저는 지금 형산파의 방향이, 그러니까 장문인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뭐, 이제껏 시키는 대로 해 와놓고 이런 말은 당연히 무책임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장문인의 명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했지만 싸우는 임무 말곤 맡아본 적도 없습니다. 적어도 아까 홍 노사께서 욕하셨듯 납치, 강간 같은 임무는 절대 맡지 않았었지요.”

거기까지 말한 모동주는 선우진의 눈치를 힐끗 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마쳤다.

“그러니까 결론은… 제 안전만 보장해 주시면 장문인에게 불리한 정보도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자 홍추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그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공자! 듣지 마시오! 거짓말일 게 뻔하오! 아까 내게 폭언을 퍼붓던 그 싸가지를 보셨지 않소?!”

홍추는 아직 그에 대한 원한을 풀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승부를 내지 못한 억울함에 원한이 좀 더 커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홍추에겐 미안하게도 모동주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묵랑이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 저자, 진심이로군. 구대문파에 속한 인물치곤 정말 특이한걸? 보통 구대문파 출신들은 자파에 대한 충성심이 너무 지나쳐 자파가 잘했든 잘못했든 목숨 걸고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일세. 속가 제자라서 그런가? 아니면 구파가 된 지 얼마 안 된 형산파라서 그런가?

묵랑의 말을 들은 선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적어도 저 말은 진심인 것 같군요.”

그러자 한참 놈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던 홍추가 그대로 굳어졌다.

동시에 모동주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진 상태였다.

“맞소! 이건 십 할 내 진심이라오! 그걸 알아보다니 역시 대단한 소협, 아니. 공자시구려!”

홍추는 억울했다.

무슨 독심술사도 아니고 저놈의 말이 진심인지 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서 선우진에게 항의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증칠이 먼저 감탄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잉? 그게 진심이었어? 특이한 놈일세?”

그러자 진소은 역시 신기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되게 특이하신 분이네요.”

두 사람 다 선우진의 얘기이니 전혀 의심할 필요도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벙찐 홍추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감작형과 백기량을 바라봤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그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결국 억울함을 풀지 못한 홍추는 입술만 달싹거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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