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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12화 (312/359)

312화 번강검객 모동주-2

그때였다.

선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인 것과 당신을 믿는 건 별개의 문제겠지. 이렇게 쉽게 사문을 배반하겠다는 자를 어찌 믿지?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도 진심으로 우리를 배반할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그동안 위정국의 지시를 따랐다면 수많은 억울한 이들을 죽였겠지? 그 죗값은 치러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을 들은 홍추가 반색하며 외쳤다.

“맞소!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오!”

반면 모동주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로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만약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면 자기가 먼저 선우진에게 그를 죽이라고 얘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 곳에서, 그것도 마음이 떠난 사문 때문에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선우진이 자기를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죽였을 것 같았다.

그러니 아직 자신에겐 살아날 기회가 있는 것이었다.

모동주는 고민했다.

‘생각하자, 생각해. 뭘로 내 목숨값을 대신할 수 있을까?’

모동주의 두뇌는 가능한 최대한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건 어떻습니까?! 저는…!”

모동주는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여태껏 이렇게 열심히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자 그의 말을 들은 선우진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거 괜찮군.”

형산파의 이단아 번강검객 모동주가 자신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

휘이이익!

두 명의 신형이 나무 위를 날다람쥐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얇은 나뭇가지를 가볍게 박차며 비행하듯 경공을 전개하는 두 사람의 모습.

그들은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인 청염검객 오기종과 화연검객이라고 불리는 자우진인이었다.

그중 청염검객 오기종이 비조처럼 날아가며 소리쳤다.

“우리 너무 늦은 거 아니오, 사형?! 청패문의 잔당은 그냥 다녀와서 처리할 걸 그랬소!”

그러자 자우진인 역시 그와 보조를 맞춰 날아가며 대답했다.

“그 쥐새끼 같은 놈들이 그리 잘 숨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미 늦은 걸 어쩌겠나?! 좀 더 서두르기나 하세!”

별호에 모두 ‘불’에 관련된 글자가 들어간 두 사람은 화급한 성격이 잘 맞아 평소에도 종종 함께 손을 맞추곤 했다.

그들은 이번에 형산파에 대항하는 문파 청패문을 함께 공격하던 도중 장문인 위정국의 지령을 받고 안향의 천중문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호남성의 서북쪽 끝 천자산에서 출발했기에 좀 더 서둘렀어야 했는데, 거의 정리했다고 생각한 청패문의 잔당을 모두 마무리 짓고 오려다 보니 시간이 좀 지체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오기종이 자우진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 깐깐한 자명 사형이 또 얼마나 잔소리를 할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구려, 사형!”

“크하하하! 걱정 말게! 우리가 너무 늦어 잔소리를 할 시간도 없을 테니! 그러니까 늦으려면 아예 완전히 늦어 버려야 하는 걸세! 어설프게 늦으면 오히려 잔소리 듣느라 골치 아파지거든!”

“오호! 방금 그 얘기를 자명 사형에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구려! 그럼 나한테 올 잔소리도 모두 자우 사형에게 가지 않겠소?!”

“뭐라고?! 크하하하! 자네가 나보다 한 수 위로군!”

두 사람이 그렇게 농을 주고받으며 계속 경공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두 사람의 눈에 저 앞에서 빛살 같은 무언가가 날아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오기종이 급히 외쳤다.

“사형! 저 앞에 검은 빛살 같은 것이…!”

검은 빛살이라니.

자기가 말해 놓고도 이상했다.

빛이 어떻게 검은색을 띨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검은색 화살 같은 것이 쏘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그 빛살의 정체가 흑의를 입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빛살이 그들의 몇 장 앞에서 거짓말처럼 정지했기 때문이었다.

탁!

그를 본 오기종과 자우진인은 두 번 놀라야 했다.

도저히 사람이 낼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쏘아져 오던 뭔가가 정말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그 사람의 얼굴이 지나치게 젊고 잘생긴 청년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던 것이었다.

‘대체 누구길래….’

늑대머리가 새겨진 흑검을 든 젊은 검수.

저런 신법이라면 초절정임에 분명할 터인데 한 번도 저런 젊은 초절정 고수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특이한 검, 놀라운 신법, 젊고 잘생긴 외모.

도저히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는 특징들을 몇 가지나 지녔음에도 그랬다.

오기종과 자우진인은 차마 그를 경시하지 못하고 오 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본인은 형산파의 자우라고 하오. 이렇게 젊고 잘생긴 청년 고수를 만나게 되다니 무척 반갑구려. 우리 갈 길이 급하지만 않았다면 함께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오.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오.”

정중하게 말하긴 했지만 우리는 형산파의 무인들이고 갈 길이 바쁘니 비켜달란 뜻이었다.

그나마 상대의 무위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에 정중하게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말에도 길을 비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시선을 자우진인에게서 오기종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그럼 당신이 오기종인가?”

“?!”

그 말에 오기종과 자우진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대가 자신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한참 선배들일 자신들에게 반말이라니.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의도로 자신들을 찾아온 자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오기종과 자우진인이 번개같이 발검하며 소리쳤다.

챠챵!

“누구냐, 너는?!”

그러자 흑의청년이 검파를 천천히 잡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신.”

그 순간이었다.

그 말이 끝난 순간, 청년의 신형이 어느새 자우진인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

경악한 자우진인은 황급히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이형환위?!’

하지만 그는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그가 팔을 휘두른 순간 검을 쥔 손목이 떨어져 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베어져 버린 손목.

그리고 이미 잘린 팔을 휘두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푸화악!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자신의 손목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언제?!’

그때였다.

옆쪽에 있던 오기종이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사형!”

정면에서 당한 자우진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옆에서 봤기에 오기종은 오히려 약간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가 본 광경은 마치 전설 속의 이형환위처럼 자우진인의 눈앞에 나타난 청년의 검이 살짝 흐려지는 광경이었다.

아마도 그 순간 사형의 손목을 베어버린 모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쾌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기종은 필사적으로 청년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려 했다.

저대로라면 사형의 목숨이 경각일 터, 그를 구해내야만 했다.

“멈춰라!”

그 순간이었다.

방금 전까진 분명 사형의 앞에 있던 청년이 어느새 자신의 정면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마치 그가 자신의 앞에 오기까지의 중간 과정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오기종이 경악해 입을 벌렸다.

“무…! 커헉!”

벌려진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청년의 검이 이미 자신의 가슴을 뚫고 심장을 관통해 버렸다는 사실을.

자신 또한 사형인 자우진인처럼 그의 검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음 순간 청년이 무심하게 검을 뽑았다.

쑤욱!

그러자 그제야 불에 덴 듯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오기종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커헉!”

그 순간 핏발 선 눈으로 달려드는 사형 자우진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사형!’

그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형, 도망쳐야….’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는 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흐려지는 오기종의 눈에, 흑의청년이 자연스럽게 뒤돌아 사형 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의 손엔 언제 휘둘렀는지 알 수 없는 검이 어느새 하늘을 향해 멈춰 있었다.

‘사형….’

그 광경을 끝으로 오기종의 의식은 사라졌다.

뚫린 가슴에서 피를 벌컥벌컥 뿜어내는 그의 시신은 땅으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털썩!

죽은 오기종에겐 다행하게도, 자우진인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른 붉은 실선이 나타난 것은 그의 의식이 사라진 직후의 일이었다.

붉은 실선은 곧 쩌억 갈라지며 피를 뿜어냈고, 자우진인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푸화악!

“커허억!”

그것으로 끝이었다.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 두 명이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두 호흡에 불과했다.

***

선우진은 자우진인이 땅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굳이 확인하지 않고는 바로 뒤돌아 몸을 날렸다.

파박!

형산파의 두 초절정 고수를 무슨 삼류 무인 상대하듯 간단히 처리했건만, 그의 표정은 그저 무덤덤해 보일 뿐이었다.

전혀 아무런 감흥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가 방금 두 사람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무공은 해남마검 진태도의 진룡검법과 점창의 사일검법이었다.

그리고 그 두 검법을 사용한 이유는 ‘베기’는 진룡검법이, ‘찌르기’는 사일검법이 좀 더 빠르기 때문이었다.

과거 초절정 고수들의 눈으로도 거의 보이지 않았던 진태도의 진룡검법은, 선우진의 천풍신법과 어우러지자 진태도가 사용했을 때보다도 더욱 무시무시한 상승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군다나 선우진은 그 두 검법을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의 상태에서 사용했었다.

같은 조건에서 사용했을 때 천하삼십육성인 삼지신창 감작형마저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던 바로 그 검법들이었다.

‘천하삼십육성조차도 완전히 반응하지 못했는데 고작 초절정의 초입에 불과한 자들이 반응할 수 있었을 리가 없지.’

그게 방금의 전투가 선우진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이유였다.

선우진은 바람 그 자체가 된 듯 가볍게 날아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 이걸로 서북쪽은 완전히 끝났군.”

어제까지 선우진의 일행들은 안향의 천중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곳으로 찾아오는 형산파의 고수 두 명을 차례대로 해치웠었다.

거기 모이기로 한 초절정 고수가 일곱 명이었으니 그들 중 다섯 명을 그곳에서 처리한 것이었다.

다만 이 두 명만큼은 도착이 너무 늦어졌었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한 선우진이 일부러 그들을 마중 나왔던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였다.

선우진은 문득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음 목표는….”

이제 그들이 가야 할 곳은 형산파에서 올 아홉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 집결한다는 상음이었다.

물론 설풍과 연태진 쪽이 동쪽에서 올 네 명의 초절정 고수들을 이미 정리했다는 가정하의 얘기이긴 했다.

하지만 선우진은 그 사실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초절정 네 명 정도라면 설풍 형님 혼자서도 충분했을 테니.’

선우진은 스스로의 재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자신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암혈향, 흑혈환마 두당, 독암지존 당정후, 해남마검 진태도, 삼지신창 감작형.

이들은 모두 그가 한 번씩은 부딪쳐 봤던 천하삼십육성의 인물들이었다.

선우진은 만약 지금 다시 이들과 붙는다면 절대 패하지 않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꿈속에서 몽혼대법을 이용해 붙어봤을 때도 모두 꺾어 버렸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형인 설풍만큼은 아직까지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몽혼대법으로 소환한 설풍과 싸웠을 때도 이긴 횟수보단 진 횟수가 더 많았었고 말이다.

선우진은 그래서 기대하고 있었다.

의형인 설풍이 활약할 형산에서의 싸움을.

이제 온 천하가 알게 될 설풍이란 남자에 대한 세상의 놀라움을 말이다.

선우진의 눈은 이미 형산파 본산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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