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314화 (314/359)

314화 외통수

자망진인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자 공추동은 깜짝 놀라 황급히 소리쳤다.

“자망 사형!”

하지만 자망진인을 말리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다른 고수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다들 함께 갑시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그때였다.

갑자기 그의 귀에 요란한 타격음과 비명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퍼퍼퍼퍼퍽!

“커허억!”

성벽 부근에 모여 지켜보던 백성들의 탄성 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오오오오!”

그 소리에 공추동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자망진인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분명 자망진인이 설풍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봤건만, 지금은 오히려 설풍이 이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당당히 선 채로 한 손으로 자망진인의 목을 움켜잡은 채 대롱대롱 들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잡은 사냥꾼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반면, 설풍의 손에 사냥감처럼 들린 자망진인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짧은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의 팔다리가 추욱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사지의 뼈가 으스러진 모양이었다.

공추동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자신이 고개를 돌린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급격한 상황 변화였다.

그로선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자우진인에게 물었다.

“자우 사형,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겁니까?”

그러자 자우진인이 떨리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네. 놈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후 갑자기 용권풍처럼 맹렬히 회전했는데, 그러더니 바로 저 상태가….”

무슨 말인지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공추동은 오히려 더욱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계속 그쪽을 보고 있던 자우진인조차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공추동은 떨리는 눈빛으로 설풍을 다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사왕의 후계자라 해도 그렇지, 저렇게 젊은데 어떻게…?’

그 순간이었다.

설풍은 들고 있던 자망진인을 뒤로 휙 던져 버렸다.

그러자 깜짝 놀란 형산파의 무인들이 소리쳤다.

“!”

“자망 사형!”

하지만 그들이 걱정하듯 자망진인이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공중을 날아간 자망진인의 몸을 뛰어나온 반형회 사람들이 받아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공추동은 이어지는 설풍의 말에 다시 숨을 ‘헉!’들이켜야만 했다.

설풍은 이렇게 말했다.

“형산파 문도들의 목숨은 그대들에게 맡기겠소. 각자의 원한을 풀도록 하시오.”

그 말에 공추동은 경악하고 말았다.

살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원한을 풀게 하기 위해 보냈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는 두 눈 가득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반형회 인사들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왔다.

공추동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죽이려면 차라리 깨끗이 죽여라! 무인을 반신불수로 만들어 농락하다니, 이 무슨 악랄한 짓이란 말인가?! 사왕의 후계자라면, 그에 맞는 품격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설풍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내공을 실어 대답했다.

- 악랄한 짓, 그리고 품격이라. 진작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면 좋았을 뻔했군. 저분들의 부모 형제를 죽이기 전에, 저분들의 아내와 딸을 간살하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가졌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 말에 공추동은 이를 악물었다.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설풍이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남의 일처럼 말하다니 웃기는군! 그대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복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의 말에 반형회 무인들 오십여 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한이 범벅된 표정이었다.

설풍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 소리쳤다.

-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위정국의 뼈를 가루로 만들어 망자의 한을 달랠 때까지! 형산파 모두가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사죄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자 반형회 무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트렸다.

“우와아아아아아!”

그 함성은 너무도 뜨거웠다.

그간의 원한과 분노가 겹겹이 쌓여 있는 깊은 울림의 함성이었다.

설풍은 이제 다시 고개를 돌려 공추동과 형산파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질린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설풍은 이제 목을 뚜둑! 소리 나도록 꺾으며 그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 그대들의 차례다. 선택하라!”

공추동은 이를 악물었다.

다가오고 있는 설풍의 기세가 마치 거대한 산악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젊은 나이 따위는 전혀 문제가 아니란 뜻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들에게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기세도, 명분도, 어쩌면 무위까지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공추동은 결국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싸우지 않고 항복하거나 도주하지 않을 바에야 결론은 어차피 한 가지뿐인 것을.

그리고 구대문파의 일원이자 형산파의 무인인 그들이 적에게 항복하거나 도주한다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마음을 결정한 공추동은 다른 무인들을 바라보며 결연하게 말했다.

“한꺼번에 갑시다. 이제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소.”

그의 말에 모두의 눈이 공추동을 향했다.

아무도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 말에 동의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공추동은 설풍을 향해 악을 쓰듯 소리쳤다.

“형산파 무인의 기개를 보여주마!”

그와 동시에 여덟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 한꺼번에 설풍을 향해 덮쳐갔다.

마치 여덟 마리의 비호가 달려드는 듯한, 또는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강력한 기세의 돌진이었다.

“하아아아압!”

“죽어라앗!”

하지만 그들의 돌격을 바라보는 설풍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음 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순간 그들을 향해 마주 뛰쳐나갔다.

파아악!

돌진하는 설풍의 기세와 속도는 놀라웠다.

방금 전까지 여덟 마리의 호랑이로 보였던 형산파 무인들을 순식간에 고양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리고 그들이 격돌한 순간, 그 찰나의 광경은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다.

푸화아아악!

“크하아아악!”

“으아아아악!”

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 그 압도적이고 전율적인 무위를 바라봤다.

상음의 사람들에게는 물론,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설풍이라는 두 글자를 단단히 새겨 넣게 된 순간이었다.

***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형산파 장문인 위정국은 눈을 부릅뜬 채 소리쳤다.

그는 방금 들은 보고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외당주 자광진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전멸이란 말이냐? 본산에서 출발한 아홉 명은 물론 서북과 동에서 오던 열한 명 모두가?”

그의 물음에 보고를 한 무인이 더욱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예, 예. 그렇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보고였다.

외당주 자광진인은 한동안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스무 명의 초절정 고수를 보낸 것도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전멸이라니….

게다가 믿을 수 없는 보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그리고 다른 쪽은 모르겠지만 본산에서 출발한 아홉 명은 모두… 한 명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한 명?”

위정국과 자광진인은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홉 명의 초절정 고수가 한 명에게 당하다니, 그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위정국이 사나운 표정으로 그를 다그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초절정 아홉 명이 한 명에게 당했다니! 무슨 십오 인의 절대자라도 나타났더란 말이냐?! 사왕이라도 나타났어?!”

그러자 보고자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사, 사왕은 아니지만 사왕의 후계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광풍비룡 설풍이라고….”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사왕의 후계자?”

“설풍이라고?”

***

‘사왕의 후계자인 설풍이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 아홉 명을 홀로 무찔렀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전 무림으로 퍼져나갔다.

형산파의 일로 모든 무림의 이목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자 새로운 신성의 출현에 호사가들은 열광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최근 그 새로운 영웅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해남의 인파랑이 진태도와 싸우다 사망했다고 알려졌기에, 설풍의 출현에 대한 반응은 더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관심을 가진 건 설풍의 현재 모습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설풍은 원래 비룡대에서 혈교와 싸우던 비룡십삼대의 조장이었다. 그때부터 그의 별호는 광풍비룡이었다.’

‘설풍이 사왕련을 떠나 다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아버지인 설가의 설천후가 현 사왕 괴갈현의 숙적이기 때문이었다.’

‘사왕 괴갈현은 숙적의 아들인 그를 용서하고 후계자로 받아들였다. 그 이유는 설풍의 엄청난 재능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용의 소문들이 어디서부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전 무림으로 퍼져나갔다.

범상치 않은 출신과 어려웠던 성장환경, 그리고 비룡대에 스스로 투신해 혈교와 싸웠다는 찬사받을 만한 과거까지.

사람들은 이제 설풍을 그저 혜성처럼 나타난 신진 고수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설풍의 삶, 그 서사에 감정을 이입하고는 새로운 신성의 탄생이 아닌 그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열광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영웅의 탄생이었다.

설풍을 향한 사왕련 무인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늘 그렇듯 동향사람의 활약은 타지에서 일어났을 때 더욱 감동적인 법.

사왕련 무인들은 이제 더 이상 설풍을 외부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왕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자랑스러워할 뿐이었다.

‘천하제일신성 광풍비룡 설풍’

이것이 이 짧은 기간 설풍이 얻게 된 칭호였다.

게다가 설풍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점은 그의 행보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전 무림에 그들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당한 형산파, 그곳의 장문인인 호남제일검 위정국을 응징하기 위한 그의 행보를 무림의 모두는 촉각을 곤두세운 채 지켜보고 있었다.

***

설풍의 위상이 승천하는 비룡처럼 솟구치고 있을 때, 형산파의 위상은 유성처럼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전 무림이 형산파의 악행을 알게 됐다.

그렇기에 이제 그 누구도 형산파를 구대문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정파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무림맹이나 구대문파의 성명이 나오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 혈교와도 비슷한 취급을 받는 신세였다.

게다가 내부 상황도 매우 좋지 않았다.

“장문인! 수영의 무인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우리 쪽 괴뢰문파인 수영검문을 습격했다는 소식입니다!”

“장문인! 다릉에서도 습격이 있었답니다!”

“장문인! 소양에서도…!”

그간 복속시켰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정파들이 들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형산파의 힘은 물론 아직도 강했지만, 이 모든 일들이 너무 여러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에 그것들을 모두 다 진화하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게다가 진정한 위협은 그런 중소문파들의 습격 따위가 아니었다.

위정국이 외당주인 자광진인에게 물었다.

“그 설풍이란 놈은 어디까지 왔다고?”

“상담까지 왔습니다. 아마도 내일이면 형산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놈들의 병력은 여전히 백오십 명 정도인가?”

“아닙니다. 주변 문파의 무인들이 계속해서 합류해 이미 천 명을 훨씬 넘겼다고 합니다.”

천 명.

이제 인원수로도 놈들이 형산파를 넘어서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위정국은 코웃음 쳤다.

“흥! 삼류 놈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벌레들일 뿐이지.”

그러자 자광진인이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그, 그게 삼류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놈의 옆에 삼지신창 감작형과 귀도 백기량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뭐, 뭐라고?!”

그 말에는 위정국도 여유 있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삼지신창 감작형, 귀도 백기량이라면 자신도 승부를 십 할 장담할 수 없는 강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위정국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당장 모든 초절정과 절정 무인들을 집결시켜라! 남부 지역에 파견 보낸 자들, 산 중에 숨어 수도 중인 자들까지 다 긁어모아!”

“예,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또 다른 급보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자, 장문인! 동쪽에서 복건용가의 무인들이 다가오고 있답니다!”

“뭐, 뭐?! 복건용가가?!”

그뿐이 아니었다.

“장문인! 해남파입니다! 해남파의 무인들이 남쪽에서부터 무서운 속도로 북상하고 있습니다!”

“뭐, 무슨 소리냐?! 해남파가 대체 왜 온다는 거냐?!”

그들이 왜 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좋은 이유가 아닐 거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외당주인 자광진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장문인, 남부 지역에 파견 나간 무인들에겐 그들을 견제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산에서 남부로 파견을 보낸 초절정 고수들도 최소 열 명이 넘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복건용가와 해남파를 견제하게 한다면, 정작 형산파 본산에는 초절정 고수가 열 명도 채 남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위정국은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산중에 숨어 수도 중인 인원들이라도….”

그러자 자광진인이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인원들은 이미 고를 먹여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육합검수 파천조를 만들기 위해….”

위정국은 결국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외통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