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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16화 (316/359)

316화 침투-2

거기까지 생각한 선우진은 여전히 모동주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는 사우림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중요한 인물이긴 한데….’

사우림은 홀로 동정호에서 헤엄을 쳐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무림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는 매우 외골수적이고 꼬장꼬장한, 극히 비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도 선우진에게 만큼은 깍듯하게 대하곤 했다.

현재 설풍과 선우진의 위상이 반형회원들에게 있어 은인에 가까웠기에, 외골수인 사우림도 두 사람에게만큼은 절대 함부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형산파 문도인 모동주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대놓고 모동주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모동주를 노려보며 그의 말에 일일이 토를 달고 시비를 걸곤 했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말을 굳이 대꾸하며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모동주는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그의 말에 이제까지 계속 그래왔듯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너무 그러지 마시오. 형산파 사람들도 여러 부류가 있지 않겠소? 이제부터 우리가 구할 사람들도 그런 부류라오. 그러니 그들을 구해내면 반형회 분들은 위정국을 몰락시킬 수 있어서 좋고, 나는 제대로 된 형산파를 재건할 수 있어서 좋지 않겠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요?”

그러자 사우림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흥! 좋긴 뭐가 좋단 말이냐?! 좋은 형산파 놈들이 있다면 그건 죽은 형산파 놈들뿐이다! 너희 형산파 놈들은 몽땅 깡그리 몰살시켜야 한단 말이다!”

증오가 지나쳐 광기까지 엿보이는 눈빛과 말이었다.

그런 사우림의 말에 모동주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자기를 포함해 자기 사문 식구들을 깡그리 몰살시켜야 한다니, 폭언도 그런 폭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동주는 화를 내지 않았다.

원래 그의 성격도 만만치 않았기에 이 정도의 폭언을 들었다면 충분히 화를 낼 만도 했지만, 사우림의 하나밖에 없는 친우과 그 가족들이 형산파에 의해 어떻게 죽었는지를 들었기에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는 나서서 사우림을 자제시키려는 선우진을 눈빛으로 만류했다.

그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 대협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오. 나 또한 살기 위해서라곤 하나 위정국 장문인의 명령대로 사람을 죽여 왔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런 할 말이 없고 말이오.”

그러자 사우림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증오의 불꽃이었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모동주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이 개 같은 형산파 놈…!”

그러자 선우진이 황급히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때였다.

그런 그를 향해 모동주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사 대협! 부디 이것만은 알아주시오. 지금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자와는 달리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위정국의 악행을 막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소. 만약 그들이 위정국을 막는 데 성공했다면 사 대협의 친우분과 가족들도 아무 일 없이 무사했을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러니… 부탁이오. 그들을 구하는 일을 좀 도와주시지 않겠소? 그들이라면, 분명 많은 희생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의 절절한 눈빛에, 사우림은 달려들려던 것을 멈추고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모동주를 노려봤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모동주를 벌써 몇 번은 죽였을 것 같은 무서운 눈빛이었다.

선우진과 증칠은 긴장한 표정으로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참지 못하고 달려든다면 바로 말리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잠시 후, 사우림은 약간 가라앉은 눈빛으로 코웃음을 치며 모동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씹어뱉듯 말했다.

“흥! 네놈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구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네놈의 말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그저 선우 공자의 계획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 구해 주는 것일 뿐이다!”

그의 말에 선우진과 증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도 어쨌든 계획에는 협조할 생각인 모양이었으니까.

그러자 모동주 또한 그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하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소.”

“흥! 네놈 따위에게 은혜를 베푼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무튼 말이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선우진과 증칠은 진이 빠진 표정으로 서로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아직 형산파에 침투하지도 않았건만 벌써 피로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이 정도에서 일단락됐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형산파를 침투하려는 선우진의 계획에서 모동주의 존재는 사우림 못지않게 중요했다.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사우림이 없어도 형산파의 중심부는 어찌어찌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형산파의 바깥에 있다는 참회동은 모동주의 안내 없이는 절대 찾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약 사우림이 증오를 참지 못하고 모동주를 공격했다면 앞으로의 계획에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선우진은 속으로 하늘을 향해 빌었다.

‘제발 거기까지만 가지 않기를….’

그때였다.

증칠이 문득 선우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 근데 저 형산파 배신자 놈, 생각보다 꽤 괜찮은 놈인 것 같구나. 역시 막내 네가 살려 줄 만한 놈인 것 같다.

그 말에 선우진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짧은 시간 함께 하며 모동주가 생각보다도 더 괜찮은 인물이란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전에 안향의 천중문에서 선우진에게 항복했을 때, 자신을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냐는 선우진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었다.

‘선우 공자께서 원하시는 바가 형산파의 멸문이라면 본인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오. 또한 차라리 죽을지언정 도움을 드릴 생각도 없소. 허나 공자께서 원하시는 바가 혹시 형산파의 쇄신이라면 저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위정국 장문인에게 반대하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지금 어디에 구금되어 있는지를 공자께 알려드릴 수 있소. 혹시 그런 정보가 필요하지 않으시오?’

그의 말을 들은 선우진은 씨익 웃음 지었다.

모동주는 역시 매우 영리한 자였다.

그가 말해 준 것들이 선우진이 딱 원하고 있던 그런 종류의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의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선 위정국에 반하는 형산파의 인망 높은 인물들.

그런 인물들이 꼭 필요했다.

선우진은 모동주가 그랬듯 현재 형산파의 문도 모두가 위정국의 행보에 동조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천하의 공분을 사고 있는 형산파라면 위정국의 방법에 회의를 느낀 자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위정국에 반하는, 그러면서도 인망이 높은 형산파의 인물들을 섭외할 수만 있다면 형산파의 결속도 충분히 흔들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이 싸움 이후를 위해서라도 그런 인물들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이번 싸움으로 형산파를 완전히 지워버릴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위정국 이후의 형산파를 맡아줄 사람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선우진은 차후 천천히라도 그런 이들을 선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동주의 말에 따르면 이미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위정국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선우진으로선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마운 일이! 앞으로의 수고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겠군!’

그래서 선우진은 모동주를 일행에 합류시켰다.

그리고 전면에서 설풍이 모든 시선을 끌고 천천히 진군하는 사이 모동주, 증칠과 함께 형산파의 후방으로 이동해 왔던 것이었다.

비어있을 형산파에서 우난설과 정미희를 구해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얻은 정보로 육합검수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모동주가 안내해 줄 형산파의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마음 한편에선 자신이 옆에 없는 설풍 쪽이 살짝 걱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급히 참모 역할을 해줄 사람을 섭외해 불러놨으니, 지금으로선 그 사람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라면, 내가 없어도 잘해 줄 수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선우진은 이제 마음을 좀 가라앉힌 듯한 동정수귀 사우림을 향해 말했다.

“사 대협, 그럼 이제부터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사우림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맡겨주십시오, 공자. 그리고 죄송합니다. 더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 말에 선우진은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를 만난 이후 가장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마음의 정리를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말했다.

“마음이 복잡하셨을 거라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반형회 동지분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부디 사 대협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사우림이 당황한 표정으로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우 공자와 설 공자께서 저희 반형회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알면서도 어찌 공자의 계획에 불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원수 형산파 놈들을 이렇게 박살 내 주셨으니, 설사 목숨을 바치라고 하셔도 주저 없이 따를 것입니다! 다만 제가 워낙 성질이 급하고 모가 나 대업을 앞에 두고도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던 그는 선우진이 뭐라고 다시 말하기도 전에 급히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수중으로 먼저 이동하며 정찰하겠습니다. 제 뒤로 오 장 정도 거리를 벌리고 따라오십시오, 공자.”

그 말에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선우진의 심안이라면 딱히 정찰이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얘기를 굳이 열심히 해 보려는 사우림에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생해 주십시오.”

그러자 사우림은 바로 형산파 아래쪽에 위치한 계곡 쪽으로 날렵하게 입수했다.

퐁!

수공의 고수답게 물방울 하나 튀기지 않는 완벽한 입수였다.

그 깔끔한 입수에 일행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그는 커다란 물고기 같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빠르게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선우진이 증칠과 모동주에게 말했다.

“자, 그럼 우리도 이동하지요.”

세 사람은 굳이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곡가의 바위 위를 가볍게 달리며 상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계곡의 상류에는 바로 형산파가 위치해 있었다.

모동주는 물 위에서 볼 때 진짜 물고기처럼 보이는 사우림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문득 씁쓸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위 장문인이 만든 사치스러운 정원이 오히려 침투 경로가 되어 장문인을 몰락하게 만든 통로가 되다니,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구려.”

동정수귀 사우림이 계곡물을 따라 형산파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정국이 자신의 거처 앞 정원에 커다란 연못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연못의 물을 채우고 순환시키기 위해 근처 계곡에서부터 물을 끌어오도록 만든 통로가 바로 사우림의 침투 경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 연못의 존재로 인해 형산파 내부의 정보가 계속해서 새 나갔고 결국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니 모동주로선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 연못을 만들어 달라고 한 이가 반형회원인 선무우희 우 소저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위정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인계에 당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우 소저가 반형회에 입회한 이유 자체가 위정국의 악행 때문이었으니 결국 자업자득이지만요.”

그 말에 모동주는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라더니만.”

천망회회 소이불실, 하늘의 그물이 크고 성긴 듯하여도 무엇 하나 빠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선우진은 그의 말에 빙긋이 웃음 지었다.

그러고는 문득 저 멀리 운남성에 있을 혈마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너 또한 마찬가지다, 혈마. 결국 네 죄의 대가도 네 스스로가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전선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보고 싶은 당여은과 광검릉에서 수련 중일 그의 친우들을.

그리고… 혈마에게 붙잡혀 있을,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해청연을….

선우진은 해청연을 떠올리자 또다시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억눌러야만 했다.

그녀만 떠올리면 심장이 옥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는 고통받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 당장 달려가야 늦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해도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선우진은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안 돼. 안 된다, 선우진. 너에게 주어진 기회는 이제 한 번뿐이야. 조급하게 일을 진행하다 망치게 된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선우진은 잘 알고 있었다.

조급하게 일을 진행해서 실패하는 것보단, 차라리 늦어서 그녀를 잃게 되는 쪽이 더 낫다는 걸.

완벽하게 혈교를 물리쳐 그녀의 복수를 해줄 수 있게 되는 쪽을 택해야만 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가슴이 옥죄어 오는 느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문득 묵랑이 그를 위로했다.

- 자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네. 애뇌산으로 쳐들어가 그녀를 찾아봤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모한 짓이었지. 그러니 이제 나머지는 그만 하늘에 맡기게나. 이제 설풍을 사왕련의 후계자로 만들어 혈교에 쳐들어갈 날도 얼마 안 남았지 않은가? 그러니 그녀가 만약 살아날 운명이라면 그때 분명히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복수를 해 줘야겠지. 그게 무림인의 삶이 아니던가.

맞는 말이었다.

언제나 죽음과 함께 하는 것이 무림인의 삶.

결국 남은 자들이 해줄 수 있는 건 복수뿐이었다.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묵랑에게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 별말을 다 하는군.

하지만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가슴 한쪽이 옥죄어 오는 느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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