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318화 (318/359)

318화 침투-4

그때였다.

자공진인의 품에 안겨 가던 정미희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러곤 아까 상의를 아래로 내리며 소매에 감춰뒀던 비수로 그의 배를 힘껏 찔렀다.

푸욱!

“어억!”

정미희를 품에 확 끌어안았던 자공진인은 갑자기 배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정미희는 자공진인을 힘껏 밀치고는 온 힘을 다해 경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산 아래에 있는 형산파의 정문을 향해서였다.

파박!

그러자 너무 급작스러운 사태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젊은 무인들이 당황한 소리를 냈다.

“어, 어?!”

“뭐, 뭐야?!”

그사이 정미희는 있는 힘을 다해 산 아래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는 점이 좀 아쉽긴 했지만 이제 와선 어쩔 수 없었다.

부상을 입은 자공진인이 자신을 쫓을 수 없기만을 바랄 수밖에….

그때였다.

자공진인이 배에 박힌 비수를 거칠게 뽑으며 소리쳤다.

“뭐 하고 있느냐?! 당장 저년을 잡아 와라!”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사숙!”

젊은 무인들은 그제야 정미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산 아래쪽을 향한 추격전이었다.

“이년! 거기 서라!”

“멈춰라!”

그들이 그렇게 소리쳤지만 정미희가 멈출 리 없었다.

오히려 더욱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익!”

정미희는 일류 중급의 무인이었다.

그러니 역시 일류에 불과한 젊은 무인들만으론 그녀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정미희는 힐끗 뒤를 바라봤다가 좀처럼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젊은 무인들을 확인하고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확신을 하지 못했었건만, 계획이 너무 완벽하게 잘 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됐어!’

그녀가 막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앞으로 자공진인의 신형이 떨어져 내렸다.

화악!

그것은 너무도 급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미희는 깜짝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

“아악!”

황급히 신형을 멈추려던 그녀는 그 자리에 미끄러져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살기 어린 눈빛의 자공진인이 서 있었다.

부상을 당한 그가 벌써 자신을 따라잡았던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정미희의 눈이 문득 자공진인의 배로 향했다.

그러자 아직 통증이 남아있는지 왼손으로 배를 감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뿐, 이미 혈도를 짚었는지 피는 전혀 흐르고 있지 않았다.

또한 그의 오른손에도 멀쩡히 검이 쥐어져 있는 상태였다.

정미희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기습이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을….

그녀의 눈은 이제 절망의 빛으로 가득 찼다.

그때 자공진인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향해 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년이 감히!”

그러자 마지막을 예감한 정미희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문득 품속에 있는 서신의 감촉이 느껴졌다.

결국 그걸 전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났다.

그때였다.

칼날의 차가운 감촉을 예감하고 있던 그녀의 귀에 문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공 사형! 안 되오!”

막 검을 내리치려던 자공진인은 그 목소리에 손을 멈칫하고는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네 명의 사람들이 그들 쪽으로 달려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공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봤다.

뒤의 세 명은 모르겠지만 맨 앞의 한 명은 어쩐지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그가 자공진인을 향해 달려오며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었다.

“자공 사형! 저요! 모동주요! 검을 멈추시오!”

그 말에 자공진인이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모동주, 모 사제? 그가 왜?”

자공진인은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막 정미희를 죽이려던 장면을 목격당한 것도 그렇지만, 애초에 비고를 털고 있던 중이었으니 그를 만난 게 반가울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모동주의 실력은 초절정, 자신보다 고수가 아니었던가?

자공진인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외부에 나가 있어야 할 저놈이 대체 왜 여기에….’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쩌지? 반가운 척 맞이하다 기습해서 죽여야 하나?’

자공진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사이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벌써 그의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놀라운 신법이었다.

자공진인은 그들 중 문득 모동주의 옆에 있는 잘생긴 청년을 바라봤다.

무척 젊어 보이는 외모였는데도 나이에 맞지 않는 엄청난 신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나이에 설마 모동주처럼 초절정 고수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절정, 만만치 않은 실력자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자공진인은 더더욱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기습해서 모동주를 죽인다 해도 저 젊은 놈과 옆의 노인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모동주가 다시 반갑게 그의 이름을 외쳤다.

“자공 사형, 오랜만이오!”

그 말에 자공진인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 그래. 사제, 반갑…!”

그때였다.

모동주의 약간 뒤에서 달려오던 선우진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빛살처럼 튀어 나갔다.

“수고했소!”

샤아악!

다음 순간, 자공진인은 멍한 얼굴로 모동주를 바라봐야 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동주 옆에 있던 젊은 놈이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더니 빛줄기가….’

거기까지가 자공진인이 볼 수 있었던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젊은 놈의 모습이 다시 잔상처럼 사라져 버렸기에 지금 그의 눈에는 모동주와 노인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문득 모동주의 얼굴이 자공진인의 눈에 들어왔다.

모동주는 이제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어쩐지 씁쓸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공진인의 뒤에서 문득 소리가 들려왔다.

찰칵!

익숙한 소음.

검을 납검할 때 들리는 소리였다.

근데 그 소리가 왜 자신의 뒤에서….

자공진인은 문득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이 쩌억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푸화악!

“커헉!”

자공진인은 허공에 흩뿌려지는 자신의 피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의식이 흐려졌다.

위정국에게 아부하는 기술만으로 출세를 꿈꿨던 자공진인의 최후였다.

***

정미희는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자공진인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되고 있는 상황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귀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라, 형산파 개자식들아!”

푸화악!

“으아악!”

“치, 침입자, 끄아악!”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맨 마지막으로 달려오던 사람이 형산파의 젊은 무인들 사이로 뛰어들어 작살 같은 창으로 그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정미희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 대협?”

그는 분명 그녀와 같은 반형회원인 동정수귀 사우림임에 틀림이 없었다.

문득 그녀의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정미희 소저시오?”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흑의를 입은 잘생긴 청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맹세코 정미희가 이제껏 본 사내들 중 가장 잘생긴 외모의 남자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까지 받았기 때문인지 정미희는 어쩐지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오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혹시 천계의 신장님이신가요? 아니면 저승사자? 제가 혹시 죽은 건가요?”

“…….”

그러자 옆에 있던 증칠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쯧. 아무래도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구만.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도….”

그 목소리에 정미희는 문득 고개를 돌려 증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증칠의 외모가 너무 추레하고 못생겨 신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

동정수귀 사우림은 자공진인을 따르던 젊은 무인들을 모두 학살한 후 정미희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우난설이 위정국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듣고, 그녀가 남긴 서신을 드디어 전달받을 수 있었다.

마침내 선우진이 원하던 육합검수의 정보를 얻게 된 것이었다.

사우림은 그 서신을 선우진에게 건네준 후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하며 서성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욕을 내뱉었다.

“이런 개 같은!”

그러자 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비록 우난설이 위정국을 따라가긴 했지만 정미희도 구하고 정보도 무사히 받았는데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사우림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모동주를 향해 쿵쿵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행동에 선우진과 증칠이 슬쩍 시선을 교환하고는 끼어들 준비를 했다.

사우림이 갑자기 모동주를 공격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모동주 또한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가 또 갑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모동주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우림이 그를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모동주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사우림이 이를 악물었다가는 간신히 입을 열어 말을 내뱉었다.

“고… 맙다.”

“…예?”

모동주는 순간 당황했다.

진심으로 그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말이 고맙다는 얘기라는 건 알겠는데 그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사우림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고맙다! 고맙다고! 됐느냐?!”

그러더니 휙 등을 돌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선우진과 증칠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피식 웃음 지었다.

방금 정미희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오 할 이상은 모동주의 덕분이었다.

정미희를 죽이려던 자공진인을 멈추게 한 것도 그였지만, 그 전에 그냥 형산파에 들어가지 말고 바로 뒷산의 참회동으로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혹시 모르니 한번 들어가 보자고 말했던 사람도 모동주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내부를 안내할 테니 빠르게 돌아보자고 말하며 말이다.

그러니 만약 그가 없었다면 정미희를 구할 수도, 육합검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괴팍하기는 하지만 은원이 분명한 성격의 사우림은 거기에 대해 억지로라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제 상황을 이해하게 된 모동주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사우림에게 소리쳤다.

“사 대협! 요즘 제 귀가 어두워 소리가 잘 안 들리더구려! 방금 뭐라고 하셨소?! 혹시 고맙다고 하신 거요?!”

그 말에 사우림은 이를 악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모동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우림의 뒤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사 대협! 방금 고맙다고 하신 거냐고 제가 묻지 않았소?! 정말 제게 고맙다고 하신 거요?! 그 고맙다는 말이 정말이냔 말이오! 허 참! 사 대협이 제게 고맙다는 말을 하다니 정말 하늘에 고마워할 일이구려!”

그러자 견디지 못한 사우림이 뒤를 돌아보며 버럭 소리쳤다.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한마디만 더 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하지만 그런 협박에 굴하면 모동주가 아니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쳤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사 대협이 방금 고맙다는…!”

그러자 사우림이 괴성을 지르며 모동주를 덮쳐 갔다.

“으아아악! 이 개자식! 죽어라!”

하지만 그는 모동주를 멈출 수 없었다.

그가 도망치며 계속해서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사 대협! 왜 그러시는 거요?! 혹시 고맙다는 말을 해서 부끄러워 그러시오?! 그렇다면 염려 마시오! 내 아무에게도 사 대협이 내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는 걸…!”

“으아아아아악!”

추격전은 한동안 계속됐다.

절정의 무인인 사우림으로선 초절정인 모동주를 도저히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처음엔 말릴까 생각했던 선우진은 심안을 통해 근처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냥 두기로 했다.

‘뭐, 애들은 원래 싸우며 친해지는 법이니까.’

물론 두 사람 다 선우진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지만, 하는 짓들을 보건대 정신연령은 아직 이십 대에 이르려면 한참 먼 것 같지 않은가.

잠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선우진은 문득 산 아래쪽을 바라봤다.

그쪽, 형산의 아래쪽에선 아마도 위정국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설풍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일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아직 약간의 여유가 있긴 하지만,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아무래도 다시 바쁘게 움직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선우진은 아직도 서로 추격자 놀이를 하고 있는 두 철부지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사 대협! 왜 말을 못 하시오?! 아까 전에 분명히 나한테 고맙다고…!”

“닥쳐라! 이 개자식아!”

한숨을 내쉬고 문득 증칠을 바라보니 그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증칠이 상대적으로 어른스러워 보이는 건 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라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