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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21화 (321/359)

321화 논쟁의 목적

모두의 눈이 향한 곳에는 흑의를 입은 잘생긴 청년 한 명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바로 선우진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증칠과 삼십여 명쯤 되는 멍한 표정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 백색 무복에 청색 영웅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무심코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위정국의 눈이 경악해 크게 확대되고 말았다.

높은 무공 덕분에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다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선우진은 그의 표정이 변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는 바로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 이들은 전부 위정국 네놈이 얼마 전부터 실혼인으로 만들고 있던 형산파의 무인들이다!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위정국은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 어떻게 저들을…!’

위기였다.

북쪽의 초절정 고수들이 전멸했을 때도 위기라고까지 느끼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진짜 위기였다.

만약 지금 이 사태를, 그러니까 형산파 제자들이 모두 모인 이곳에서 본파의 제자들을 실혼인으로 만든 증거가 나타나 버린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싸움의 승패와 관계없이 자신은 매장당하게 될지도 몰랐다.

게다가 시간도 없었다.

지금도 그들의 얼굴을 알아본 형산파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분은… 자문진인이시잖아?! 얼마 전부터 안 보이셨었는데?!”

“저분은 자상진인이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친절하게 가르침을 주셨던 분이신데. 저분이 왜 저렇게…?!”

위정국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들을 모른 척한다는 선택지는 이미 사라진 상태인 것 같았다.

만약 저들의 얼굴을 알아본 자들이 나온 지금 상황에서 그랬다가는 역효과만 날 것이 뻔했으니까.

그러자 위정국의 두뇌는 빠르게 두 번째 방법을 떠올려 냈다.

‘저들을 모르는 척할 수 없다면….’

그럼 선우진의 말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위정국은 분노한 목소리를 가장하고는 황급히 소리쳤다.

- 이놈! 대체 우리 형산파의 제자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설마 내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실혼인으로 만들기라도 한 것이냐?!

그 말에 선우진은 피식 웃음 지었다.

딱 예상했던 대로의 대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말을 바로 맞받아치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아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러자 그 웃음에 위정국의 말은 살짝 맥이 끊기고 말았다.

웅성거리던 형산파 제자들도 모두 선우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웃음으로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우진이 바로 말을 이었다.

- 그것참 웃기는 얘기로구나! 그러니까 네 얘기는 내가 형산파에 침투해 한날한시에 삼십 명의 형산파 고수들을 모두 납치해 갔었다는 얘기냐?! 그것도 초절정 고수가 다섯 명이나 포함된?!

그 말에 형산파 제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일은 설사 십오 인의 절대자라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심지어 너는 그 사실을 모든 제자들을 집합시킨 지금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알게 됐다는 말이로구나?! 너희가 정말 구대문파라고 자부하던 형산파가 맞느냐?!

그 말에 형산파 무인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전까지 구대문파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기에 오히려 더 부끄러워진 것이었다.

그러자 그런 그들을 향해 선우진은 다시 한번 폭소를 터트렸다.

- 아하하하하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형산파 장문인이란 자가 자기가 살겠다고 자기 문파의 명예를 땅바닥에다 처박고 있구나! 아주 대단한 장문인이야! 하하하하하하!

형산파 무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선우진과 위정국, 둘 중 누가 논쟁에서 이겼는지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위정국은 이를 악물었다.

분노가 치솟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도 더 이상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향한 형산파 제자들의 실망이 가득한, 그리고 불신 어린 눈빛이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이, 건방진 놈이….’

위정국은 논쟁이란 행위에서의 진정한 승리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닌, 주변의 청자들을 설득시키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이미 패했다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패배를 자인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설사 억지를 부려서라도 상황을 반전시켜야만 했다.

위정국은 이를 한번 세게 악물었다가 다시 입을 크게 벌려 소리쳤다.

- 이 요망한 놈! 간교한 요설로 우리를 농락하려 하는구나! 여러 소리 할 것 없다! 그게 내가 한 짓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그 증거를 내놓아 보아라! 대체 내가 저들을 실혼인으로 만들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더란 말이냐?! 저들이 그렇게 말하더냐?!

위정국은 이제 단순하게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선우진이 실제로 실혼인들을 데리고 왔다고 해도, 자신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려면 실혼인을 만들던 자들을 데리고 오거나, 저 실혼인들이 증언을 해야만 할 것이었다.

하지만 실혼인을 만들던 자들은 이미 자신의 주변에 있었고, 이미 실혼인이 된 저들이 그 사실을 증언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결국 직접적인 증거는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증거가 없다고 적당히 우기다가 실력행사로 들어가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런 논쟁 따위는 다 소용없어질 테니까!’

위정국이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우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음 짓고는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모 대협, 진인을.”

그러자 멍한 얼굴의 육합검수들 뒤쪽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바로 형산파의 초절정 고수이면서도 선우진에게 투항했던 번강검객 모동주였다.

그는 이제껏 육합검수들의 뒤에 숨듯이 서 있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나서자 형산파의 무인들은 놀란 눈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모 사숙?!”

“번강검객 모동주 사숙이시잖아?!”

“모 사숙은 얼마 전 악양에서 저들에게 당해 돌아가셨다고 하셨지 않나? 근데 왜 저자와 함께 있는 거지?”

“그러게. 등엔 또 누굴 업고 계신 것 같은데?”

어려서부터 형산파의 사고뭉치로 유명했던 모동주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후 뛰어난 무공실력과 유쾌한 성격 덕분에 형산파 본산의 제자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인망이 높은 인물이 되었었다.

그런 모동주가 선우진 쪽에서 나타나자 형산파 제자 모두의 얼굴은 혼란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서, 설마 증인이라는 사람이 혹시 모 사숙인가?”

“그, 그런…. 그럼 정말 장문인이 사숙들을 실혼인으로 만들었다고?”

형산파 제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증인은 모동주가 아니었다.

선우진의 옆까지 온 모동주는 조심스럽게 등에 업고 있던 사람을 옆에다 내려줬다.

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추레하고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선우진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비틀거리는 노인을 옆에서 부축해주려 했다.

하지만 노인은 선우진의 손을 막으며 잠시 비틀거리더니만, 결국 혼자 힘으로 꼿꼿이 일어섰다.

그런 노인의 눈은 늙고 병들어 보이는 몸과 달리 호랑이처럼 사나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무서운 눈빛으로 위정국을 노려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 위정국 이놈!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겠느냐?!

그때 위정국은 그가 누구인지 몰라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반말에 분노한 표정을 지었던 그의 얼굴은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점점 놀란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서, 설마…?!”

그러자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사납게 소리쳤다.

- 그래! 역시 나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몇 년 전부터 보러 오지도 않기에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네놈을 잊지 않았다! 다시 네놈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 지옥에서도 꾸역꾸역 버텨왔었지! 결국 죽기 전에 그 소원을 이루고 마는구나!

위정국의 얼굴은 이제 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그가 누구인지 완전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노인의 이름이 튀어나온 곳은 그의 입이 아닌 다른 형산파 제자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의 목소리를 기억한 제자들이 문득 경악해 소리쳤던 것이었다.

“저, 저 목소리는 설마!”

“처, 청공 전 장문인?!”

그리고 그 이름을 들은 형산파 제자들은 다시 놀라 소리쳐야만 했다.

“뭐, 뭐라고?! 전 장문인이시라고?!”

“십 년 전에 장문인 자리를 물려주고 등선하셨던 청공 장문인 말이야?!”

그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전 형산파 제자들 사이로 파도처럼 퍼져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든 형산파 제자들의 얼굴에는 단 하나의 감정만이 떠올라 있는 상태였다.

바로 경악의 감정이었다.

병들고 약해 보이는 추레한 노인의 정체는 모든 형산파 제자들이 알게 됐듯이 위정국 이전의 형산파 장문인이었던 청공진인이었다.

위정국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주고 등선했다고 알려져 있던 그가 저런 추레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위정국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 당신이 어떻게…?”

그가 사라졌던 이유는 사실 등선이 아니라 위정국에 의해 감금되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심지어 위정국 자신조차도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는데….

청공진인은 과거 위정국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주기 직전 그에게서 함께 귀멸육합검진을 부활시키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청공진인은 경악했다.

‘귀멸육합검진이라고?!’

그는 사실 그 이전까지 한번도 위정국의 의견에 반대해본 적이 없었다.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실전된 무학을 복구해 형산파의 부흥을 이끌어 준 고마운 제자인 데다, 무공까지 강해 다음 대 장문인이 될 것이 분명한 그를 존중해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귀멸육합검진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동문인 형산파 제자들을 실혼인으로 만들어 검진의 부품으로 사용하겠다는 위정국의 생각은, 정파라는 선을 아득히 넘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청공진인은 처음으로 위정국에게 폭언을 쏟아냈었다.

‘이노옴! 정파의 제자인 네가 어떻게 그런 악랄한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지금 네놈의 말이 혈교의 마두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며, 그런 짓을 한다면 우리 형산파가 마교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네놈은 우리 형산파를 무림공적으로 만들 생각이더란 말이냐?! 나는 도저히 네놈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네놈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구나!’

물론 그 말은 진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위정국을 반성시키기 위해서 강력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청공진인은 이 사건을 통해 위정국이 제대로 된 반성을 하고 좀 더 좋은 장문인 감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위정국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위정국에게 당장 나가라는 호통을 치고 뒤돌아 앉았던 청공진인은 갑자기 의식을 잃고 말았다.

뒤에서 기습한 위정국에게 점혈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참회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갇힌 상태로 눈을 뜬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등선했다고 알려졌으며 그 직전 위정국에게 장문인 자리를 물려줬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참회동으로 자신을 찾아온 위정국에게서였다.

공력을 제압당한 채 감금당한 청공진인은 격분했다.

‘이노옴!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할 수가 있더란 말이냐?!’

하지만 전장문인의 분노에도 위정국은 음침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짐승 같은 짓이라. 그것참 재밌구려. 짐승 같은 짓이 이렇게 재밌는 일인지 진작에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크흐흐흐.’

‘뭐, 뭐라고?!’

위정국은 청공진인을 죽이지 않았다.

참회동에 가둬둔 채로 가끔씩 찾아와 그를 비난하고 모욕주며 괴롭힐 뿐이었다.

자신의 적을 살려둔 채로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가학적 습성, 그것이 청공진인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위정국의 본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청공진인이 참회동을 조사하던 선우진과 모동주에 의해 구출되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선우진이 찾고 있던 딱 적당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청공진인은 원한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안광을 뿜어내며 위정국을 향해 소리쳤다.

- 네놈이 본 파의 제자들을 실혼인으로 만들었다는 증인을 내놓으라고 했느냐?! 여기 있다! 그걸 반대했다가 죽지도 못하고 십 년 동안 벌레를 잡아먹으며 감금된 채 살아왔던 내가 바로 그 증인이다! 어떠냐?! 이젠 네놈의 악행을 인정하겠느냐?!

위정국은 이제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문득 형산파의 제자들을 멍하니 둘러봤다.

그러자 그들 모두가 경악과 혐오를 담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정국은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눈빛들은 이제 더 이상 장문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의 눈빛들은 용서할 수 없는 마두를 바라보는 눈빛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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