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322화 (322/359)

322화 상처 입은 호랑이-1

“으으으으….”

위정국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자신이 구대문파로 키워 줬고, 자신이 호남성의 지배자로 키워 준 형산파의 제자들이.

어떻게 장문인인 자신에게 저런 눈빛을 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지금의 현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자 결국 이성을 잃은 위정국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 거짓말! 저건 모두 다 거짓말이다! 모두 나를 음해하기 위한 헛소리일 뿐이란 말이다! 공격! 형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공격하라! 형산의 위대함을 만든 나를 음해하려는 저들을 쓸어버려라!

모든 내공을 실은 그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강력한 힘을 지닌 그의 목소리가 백여 장 밖까지, 온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목소리는 너무도 공허하기도 했다.

형산의 제자 누구도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명령에 따르기는커녕 이제 더욱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위정국을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형산파 무인들의 반응에 위정국은 순간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자신의 말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가 배신당한 눈빛으로 제자들을 둘러보며 다시 소리쳤다.

- 이, 이, 배은망덕한 놈들…. 뭣들 하느냐?! 내 명령이 들리지 않느냐?! 내가 바로 너희의 장문인이다! 너희 장문인의 명령이란 말이다!

그때였다.

천공진인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리쳤다.

- 틀렸다! 자파의 제자들을 실혼인으로 만든 너는 더 이상 장문인이 아니다! 자기 문파의 제자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희생시키는 자가 어찌 장문인이 될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는 형산파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 형산파 무인들은 모두 길을 비켜주어라! 저자가 뿌린 원한의 씨앗을 당사자들이 거둘 수 있게 해 주어라!

그 말을 들은 형산파 무인들은 잠시 놀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곧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좌우로 움직여 길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바로 설풍과 무인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선우진이 청공진인에게 깊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저 상황은 여기 오기 전 선우진이 청공진인에게 부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부탁을 받았다고 해서 쉽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자존심이 강한 구대문파의 무인들은 아무리 중죄인이라고 해도 자파의 제자를 타문파의 사람들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벌을 줘도 자신들의 손으로, 죽인다고 해도 자파 안에서 해결하곤 했지 절대 타 문파의 사람들이 건드리도록 놔두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심지어 위정국은 장문인이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그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절대 그에게 손대는 걸 허락해줬을 리가 없었다.

실제 청공진인도 선우진의 부탁을 받았을 때 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했었고 말이다.

그러자 선우진의 감사에 청공진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리가 한 일이 거의 없는데 어찌 권리를 주장하고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저놈을 멈출 수 있게 해준 공자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시게.”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은 다시 한번 그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유야 어찌 됐든 어려운 결심을 해준 그에게는 감사를 표하는 것이 맞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설풍과 무인들은 형산파 무인들이 열어준 길을 향해 위풍당당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열린 길 사이로 꿈에서도 잊을 수 없었던 원수 위정국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반형회원들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위정국….”

“드디어….”

그들은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서조차 그리던 복수의 시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랜 시간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일이 막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반면, 위정국은 자신을 향한 통로를 활짝 열어준 형산파 무인들을 씹어 죽일 듯이 바라봤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몇십 번은 죽였을 것만 같은 살기 가득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비록 잠시 흥분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일세의 효웅,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뒤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선무우희 우난설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그의 뒤쪽에 서 있는 중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도….’

위정국은 늘 자신을 흥분시키곤 했던 그녀의 무표정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쩐지 짜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위기 앞에서도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니, 그녀에게도 배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위정국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를 죽일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이니만큼 그게 맞는 판단일 것 같았다.

만에 하나라도 그녀만 살아남아 다른 남자에게 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녀를 죽인다는 게 어쩐지 자신의 패배를 자인하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자신은 패하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죽이는 순간 패배가 확정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던 위정국은 결국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자광진인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광혈단을 섭취해라.”

그러자 자광진인이 경악해 반문했다.

“예, 예?!”

그 순간, 위정국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시에 자광진인은 배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피를 토해야만 했다.

“커헉!”

자광진인은 엄청난 고통에 그대로 쓰러져 뒹굴며 땅바닥을 긁었다.

“끄으윽!”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고통에 가득 찬 눈빛으로 위정국을 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자, 장문….”

하지만 그게 그가 남길 수 있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그가 말을 하는 도중 다시 한번 피를 토하고는 그대로 고개를 떨군 채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커헉!”

죽은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장로들은 경악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왜 죽었는지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위정국이 움직인 뱃속의 고에 의해 내장이 녹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원인은 알아도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명의 전력이 아쉬운 지금 이 시점에서 자광진인을 저렇게 쉽게 죽였단 말인가?

그들은 그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전력을 강화해야 하는 지금 자광진인 같은 초절정 고수를 죽여 버리다니, 장문인이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상관없이 그들의 차례는 바로 돌아왔다.

위정국은 이제 그들을 둘러보며 말하고 있었다.

“모두 광혈단을 먹어라.”

“!”

그건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아까부터 제발 그것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있었던 말.

하지만 하늘은 그들의 기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광진인처럼 죽고 싶지 않다면 바로 그것을 먹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장로들 모두는 황급히 광혈단을 입에 넣고 삼켜 버렸다.

그 순간, 그들은 문득 위정국이 왜 먼저 자광진인을 희생시켰는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들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었던 거였구나!’

만약 그가 한 명을 먼저 본보기로 죽이지 않았다면 누구도 몰락할 것이 명확해 보이는 그의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한 명이 아쉬운 이때에 함부로 자신들을 희생시킬 리 없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니 위정국은 자신들이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 한 명을 죽여 버린 것이었다.

누구든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죽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역시 무서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중엔 죽은 자광진인의 무공이 가장 낮은 편이었지. 그래서 그가 먼저 선택된 거였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문득 ‘조금만 더 버텼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제는 늦은 얘기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젠 그런 생각을 할 정신도 없었다.

그들의 정신이 몽롱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몸속에서 솟구치는 엄청난 공력을 느끼며 멍하니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기분이 멍한 가운데 숨도 가빠오고 있었다.

“후우우! 후우우! 공력이, 공력이 솟구치고 있어!”

“이런 심후한 공력이라니!”

광혈단을 섭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공력이 솟구치고 있었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강력한 힘.

그와 동시에 머리 또한 점점 흥분감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

그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들의 눈은 이제 피에 절은 듯 붉게 충혈된 상태였다.

마인들처럼 붉어진 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무공의 고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맹수들 같았다.

위정국이 그런 그들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명령했다.

“놈들을 막아라.”

그러자 여덟 명의 초절정 고수들이 동시에 광기 어린 눈빛으로 설풍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으흐흐 웃으며 그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 한 명, 한 명이 천하삼십육성급의 강자인 듯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는 채로였다.

그러자 설풍과 주변인들은 그들의 강력해진 기세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붉어진 눈을 보고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추측할 수 있었다.

설풍의 근처에 있던 진소은이 신음하듯 말했다.

“광혈단! 그들이 광혈단을 섭취했군요!”

역시 문도 모두가 광혈단을 소지하고 다니는 광동 진가장의 사람이기에 가장 빨리 알아챘던 것이었다.

그러자 연태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군. 하지만 고양이가 발악해 봐야 살쾡이일 뿐이지.”

그녀의 말에 주변인들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제 승부는 어차피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모두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소은만큼은 그녀의 말에 웃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듯 문도 모두가 광혈단을 소지하고 다니는 광동 진가장의 일원이기에, 일행들 중 그녀가 광혈단의 무서움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경고했다.

“고양이는 발악해 봐야 살쾡이일 뿐이겠지만, 표범이 발악한다면 호랑이가 될 수도 있어요. 광혈단은 무공이 높을수록 그 공력 증가폭이 커지는 단환이니까요. 게다가 저들이 저걸 먹었다는 건 죽기를 각오했다는 얘기에요. 궁지에 몰린 쥐가 아니라 상처 입은 호랑이일 수도 있다는 얘기죠. 궁지에 몰린 쥐도 고양이를 무는데, 하물며 호랑이라면야…. 절대 방심하시면 안 돼요.”

일행들은 그녀의 심각한 말에 표정을 굳혔다.

진소은의 무위를 잘 알고 있는 설풍의 주변인들은 겉보기엔 그저 착하고 순해 보이는 저 어린 여인이 실제로 얼마나 무서운 무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말을 가벼이 여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형회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진소은의 무위를 본 적도 없었고, 이미 그런 말이 들릴 상태도 아니었다.

뜨거운 복수심으로 이미 머릿속이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성질 급한 반형회원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저놈들이 호랑이면 어떻고 사자면 어떻단 말이오?! 우리는 두렵지 않소! 설 공자, 이제는 우리를 말리지 마시오!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소이다!”

그러자 다른 반형회원들 또한 그에 동조했다.

“맞소! 설 공자의 말대로 이젠 전면전도 피할 수 있게 되지 않았소?! 그러니 놈에게 복수하는 것만큼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게 해주시오!”

“옳소! 우리 손으로 복수하게 해 주시오!”

“당장 공격명령을 내려주시오!”

그들은 이제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되어버린 상태였다.

더 이상 그들을 말렸다가는 그대로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당황한 설풍은 반형회주인 정소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소상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젠 그도 혼란스러워 보였다.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고 싶다는 충동이 냉정한 이성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