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상처 입은 호랑이-2
반형회원들의 살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설풍은 뒤쪽의 묘아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지모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젠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전음이 설풍의 귀에 들려왔다.
- 이제 어쩔 수 없습니다, 설 공자. 그들 스스로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엔 더 이상 말릴 수 없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피를 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쉰 설풍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형회원들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말리지 않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허나 희생이 너무 크거든 빨리 멈추셔야….”
설풍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였다.
반형회원들은 그 뒷말을 들을 수 없었다.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광소를 터트리며 뛰쳐나갔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하! 형산파, 이 개자식들아!”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다!”
“죽어라! 원수놈들아!”
오십여 명의 반형회원들은 노도와 같이 뛰쳐나갔다.
그간의 원한과 분노가 폭발한, 광혈단을 섭취한 초절정 고수들의 기세에도 밀리지 않는 거센 기세를 뿜어내면서였다.
“우와아아아!”
“죽어라아아아!”
그러자 초절정 고수들은 그 자리에 선 채 그들이 돌진해오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반형회원들의 기세에 질린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반형회원들이 드디어 그들을 덮쳐갔을 때,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은 그게 사실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형회원 한 명이 대도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그들을 향해 내리쳤다.
“이 개자…!”
푸화악!
거대한 대도를 내리치던 반형회원의 몸은 허공에서 두 동강 나 버리고 말았다.
그는 경악한 눈빛만을 남긴 채 의식이 사라졌다.
“!”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촤아악!
츄하악!
“크윽?!”
푸화악!
창을 찔러가던 반형회원은 자신도 모르는 새 창과 팔이 떨어져 나갔고, 검을 휘두르려던 반형회원은 어느새 머리가 베어져 잘린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이 모두가 양쪽이 충돌한 바로 그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선두의 반형회원들이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 바로 뒤에서 뛰어들던 반형회원들의 몸 또한 쩌억 갈라지며 피를 뿜어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허어억!”
“이, 이런…!”
촤아악!
푸화악!
그 광경은 마치 담장에 던져진 홍시를 보는 것만 같았다.
두 집단이 충돌한 순간 반형회원들이 말 그대로 갈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저 원한과 기세만으론 초절정의 무위를 극복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들은 허무하게 뿜어지는 동지들의 피를 보며 깨달아야만 했다.
설풍이 그들을 말렸던 이유도 말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후회였다.
오십여 명이었던 그들의 수는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그러자 설풍이 급히 소리쳤다.
“저들을 구하시오!”
설풍도 물론 반형회원들로는 상대가 안 될 거라는 사실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뛰쳐나간 직후부터 수하들에게 신호를 하면 뛰어들어 그들을 구하라고 명령하고 있던 참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렇게까지 무력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광혈단으로 증폭된 상대방의 무위도, 지나치게 흥분한 반형회원들의 무모함도 그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설풍의 다급한 명령에 삼지신창 감작형을 선두로 한 설풍 측 초절정 고수들이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멈춰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감작형은 거대한 삼지창을 도끼처럼 휘둘러 벼락처럼 내리찍었다.
일단 형산파의 고수들을 반형회원들로부터 물러서게 하기 위한 큰 일격이었다.
감작형은 자신하고 있었다.
호남제일검 위정국이 아닌 다음에야 형산파에서 자신의 삼지창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라고.
위정국과 동급인 천하삼십육성의 고수인 그이기에 당연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서 저들이 당연히 물러설 거라고 생각했던 감작형은 다음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쩌엉!
그의 거대한 삼지창을 막아 낸 형산파 고수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비록 튕겨나듯 속절없이 물러서기는 했지만 감작형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걸 버텨냈다고?’
그뿐이 아니었다.
한 명이 감작형의 삼지창을 막아 낸 사이, 주변에 있던 다른 형산파 고수가 덮쳐왔던 것이었다.
하늘색 검강이 감작형을 빛살처럼 찔러오고 있었다.
쉬이익!
“!”
감작형은 그 공격을 봤지만 굳이 방어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뒤에 누가 있을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그의 예상대로 뒤에서 또 다른 빛살이 날아들며 그 검을 쳐냈다.
챠앙!
귀도 백기량이었다.
그는 감작형을 향한 공격을 방어하고는 바로 도를 휘둘러 공격한 자를 그어 버렸다.
마치 한 동작처럼 보이는 부드럽고 신속한 연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 또한 성공할 수 없었다.
챠앙!
“?!”
백기량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전력으로 공격했던 빈틈을 노렸기에 그걸 막아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방금의 공격은 자신과 비슷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절대 막아낼 수 없는 공격이었다.
감작형과 백기량은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형산파에서 위정국 이외엔 자신들의 상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자들이 예상 밖의 무위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상대방의 전력을 너무 낮게 평가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온 다른 고수들의 싸움을 보고는 곧 방금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카캉! 캉! 캉!
“으윽?!”
형산파 고수 한 명을 덮쳐 갔던 백골괴마 홍추가 병장기를 부딪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순식간에 뒤로 밀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뒤로 바로 적들과 부딪쳤던 설풍 쪽 고수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금도무적 초하곤도, 온 힘을 다해 도끼를 내리쳤던 단악패부 고상종도, 세 명이 함께라면 초절정 고수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던 여등삼검도 순식간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채챙! 채채챙!
“으윽?! 이, 이놈들?!”
“뭐, 뭐야?! 왜 이렇게 강한 거냐?!”
그들 모두는 형산파 고수 한 명씩과 맞붙었음에도 승기를 잡기는커녕 순식간에 패색이 완연해지고 말았다.
심지어 형산파 고수들의 수는 여덟 명, 설풍 측 고수들과 한 명씩 붙고도 남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였다.
그중 남은 한 명이 걔 중 무력이 약한 여등삼검에게로 달려들었다.
약한 쪽부터 수를 줄이려는 속셈이었다.
“하아압!”
쉬이익!
안 그래도 밀리고 있던 여등삼검은 자신들의 빈틈을 노린 쾌속의 일격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억?!”
그러자 감작형이 삼지창을 길게 휘둘러 그를 멈춰 세웠다.
“어딜?!”
쩡!
하지만 그의 삼지창도 형산파의 고수를 멀리 쫓아내지는 못했다.
그것을 막은 형산파 고수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그사이 원래 상대하고 있던 자가 오히려 감작형을 공격해 왔던 것이었다.
슈학!
“!”
감작형은 문득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의 한 명, 한 명의 무위가 지나치게 높았다.
자신으로서도 두 명을 상대하는 정도가 한계인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두 명도 부담스러웠다.
‘이게… 광혈단의 효과인가?’
문득 표범이 광혈단을 복용하면 호랑이가 될 수도 있다던 진소은의 경고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기회만 노리고 있던 또 한 명의 형산파 고수가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이번엔 단악패부 고상종을 향해서였다.
쉬이익!
“헉!”
고상종은 거대한 도끼를 이용한 강격을 특기로 하는 고수였다.
때문에 그의 싸움은 섬세하기보단 단순하고 강력했고, 그 거센 강격을 받아내지 못하는 자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곤 했다.
다만 그는 강점이 명확한 만큼 단점도 명확했다.
강격이 통하지 않을 경우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채챙! 채채챙!
처음 돌진했던 고상종의 강격을 우습게 받아냈던 형산파 검사는 바싹 접근해 폭풍 같은 검격을 쏟아내고 있었다.
고상종이 감히 대응할 수 없을 정도의 맹렬하고 빠른 검격이었다.
“크으윽!”
이런 섬세하고 빠른 검격은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종류의 공격이었고, 그래서 그는 당장이라도 피를 뿌릴 것처럼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향해 또 한 명의 형산파 검사가 덮쳐왔던 것이었다.
쉬이익!
자신의 도끼가 한 명의 검격을 막고 있는 사이 빛살처럼 등을 찔러온 또 다른 검격에 고상종의 눈은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끝인가?’
하지만 그의 운은 아직 다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상종이 멍하니 자신을 찔러오는 검격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아온 은색 빛무리가 검면을 정확히 쳐냈기 때문이었다.
까앙!
그 은색 빛무리는 백색 강기를 뿜어내는 은빛 철곤, 바로 진소은이었다.
자신 쪽 고수들이 밀리는 모습에 그녀가 뒤늦게 참전한 것이었다.
사색이 된 고상종이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 고맙소, 진 소저!”
“별말씀을요!”
게다가 고상종 다음으로 밀리고 있던 금도무적 초하곤 쪽에는 연태진이 가세했다.
“초 대협! 힘내세요!”
“오! 고맙소! 연 소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던 설풍 쪽 고수들이 간신히 숨을 돌리게 된 순간이었다.
***
한편, 설풍은 그 상황에서도 그들을 지원하러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굳은 얼굴로 위정국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정국은 설풍이 나서면 자신 또한 나서겠다는 듯 그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위정국의 얼굴은 현재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상태였다.
진소은과 연태진이 가세했음에도 여전히 그들 쪽이 우세한 형세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가엔 비릿한 웃음까지 맺혀 있었다.
위정국이 생각할 때 저 상태라면 곧 누군가 한 명은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상대방 고수가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 것이었다.
위정국의 머릿속에는 벌써 이후의 계획이 떠오르고 있었다.
‘초절정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바로 합공해 설풍이란 놈을 죽이고 도주해야겠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형산의 비기들은 모두 내 머릿속에 있으니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재기할 수 있겠지.’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설풍이 문득 피식 웃음을 지었다.
현재의 불리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척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걸 본 위정국은 눈을 꿈틀했다.
놈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설풍을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애쓰는구나! 되지도 않는 여유 있는 척이라니….”
그때였다.
설풍이 그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 네가 뿌린 씨앗이 결국 너를 파멸시킬 것이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음에 위정국은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뭐?”
그때였다.
허공에서 갑자기 일단의 사람들이 날아들어 싸움에 난입했다.
휘이익!
“?!”
위정국은 깜짝 놀라 그들을 바라봤다.
모두 다섯 명의 사람들, 그것도 모두 초절정으로 보이는 검사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위정국은 갑작스러운 새 인물들의 등장에 순간 인상을 팍 찡그렸다가는, 이내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가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저들은?!”
그가 처음 놀랐던 이유는 난입한 다섯 명의 복장 때문이었다.
다섯 명이 입고 있는 복장이 백색무복에 청색 영웅건, 바로 형산파 무인들의 복장이었던 것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다섯 명의 형산파 검수들이 갑자기 나타나 장로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본파의 무인들이라고?”
하지만 잠시 후, 위정국은 방금의 놀라움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그들 다섯 명이 검진을 펼쳐 한 명의 장로를 상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감작형을 협공하고 있던 형산파 장로는 갑자기 공격해 온 같은 형산파 무인들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누구냐, 너희는?!”
하지만 돌아온 건 대답이 아닌 검격이었다.
쉬이익!
채앵!
선두의 검사가 날린 검격은 장로의 검에 부딪쳤고, 그 후 검사는 즉시 바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양쪽에서 톱니바퀴처럼 이동해 온 다른 두 명의 검수가 검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쉬이익!
장로는 당황했다.
“으윽!”
순식간에 이어진 연환격들이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광혈단으로 무위가 상승한 형산파 장로로서도 간신히 막을 수밖에 없는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채챙!
“이…?!”
하지만 그 검격을 간신히 막은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발밑과 머리 위에서 빛살 같은 검격이 찔러왔기 때문이었다.
푸푹!
“커억!”
가슴과 배가 꿰뚫린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다가 곧 의식이 흐려지고 말았다.
초절정 고수인 그가 호신강기조차 방출해 보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었다.
뭘 해볼 수조차 없는 속도의 톱니바퀴처럼 꽉 짜여진 연환격이었다.
그러자 위정국은 그 위협적인 연환격이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검진의 수법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눈에 익는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귀, 귀멸육합검진? 저, 저들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