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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29화 (329/359)

329화 강요된 선택

그랬다.

선우진의 눈앞에 있는 그녀는 분명히 청연이었다.

혈마에게 붙잡혀가 생사를 알 수 없었던 그녀가, 이곳 형산의 외딴 봉우리 위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선우진이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그러자 청연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적어도 저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네요.”

선우진은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목소리, 말투, 뚱한 듯 느껴지는 무표정까지.

그녀는 분명히 해청연이었다.

절대 다른 사람일 수도, 환상일 수도 없었다.

선우진은 믿기지 않는, 하지만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물었다.

“정말, 정말 청연 소저시오? 소저가 어떻게 이곳, 아니,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몸은 괜찮소? 정말 무사하신 거요?”

그러자 잠시 선우진을 바라보던 해청연의 입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기회를 보다 혈마에게서 탈출했어요. 요즘 설풍 조장에 대한 소문이 온 무림을 진동시키고 있기에 선우 공자 역시 이곳에 있지 않을까 했었죠.”

“아아!”

그 말에 선우진은 그녀의 손을 확 붙잡으며 말했다.

“잘됐소! 정말 잘됐소! 정말, 정말 다행이오, 소저!”

해청연은 잠시 자신의 손을 꽉 움켜잡은 선우진의 두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왜 몰랐을까.

이게 이렇게 행복한 느낌이라는 걸.

왜 진작 옆에 있을 때는 이 손을 자신의 것으로 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르오, 소저! 청연 소저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나는….”

물기 어린 눈빛으로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는 선우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해청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체 얼마 만에 짓게 되는 진심 어린 미소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다.

그녀는 문득 입을 열어 선우진에게 말했다.

“사랑해요, 선우 공자.”

“그런데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예?”

반가운 마음에 두서없이 말을 쏟아내던 선우진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고백에 깜짝 놀라 멍한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해청연이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올려 천천히 얼굴을 드러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사랑한다고요. 오래전부터. 공자를 사랑하고 있었어요.”

해청연이 앞머리를 넘기며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선우진의 뒤에 선 채 당황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소은은 순간 경악해 눈이 동그랗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헉!”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태양은 분명 서쪽 하늘로 넘어갔건만 갑자기 눈앞에 또 다른 태양이 나타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 또한 같은 여자이건만 너무도 눈이 부셨다.

도저히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미모가 아닌 것 같았다.

사파사대미녀라는 연태진과 우난설도, 해남제일미라고 불리는 묘아란도 절대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월궁의 항아가 실제로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자 그 순간 넋이 나간 건 선우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한번 본 적이 있었던 해청연의 미모이건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조막만한 하얀 얼굴, 그 안에 조화롭게 배치된 오똑한 코와 다홍색 입술도,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크고 아름다운 눈도, 무엇보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파랗고 빨간 두 가지 색의 신비한 눈동자도 모두가 다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묵랑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신 차리게, 진! 그녀의 눈이 좀 이상하네!

‘예?’

선우진은 묵랑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떠올렸다.

‘빨갛고 파란 눈이라고? 그녀의 눈은 분명….’

선우진의 기억이 잘못됐을 리 없었다.

그녀의 눈은 분명 검고 푸른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검은색이었던 눈이 왜 저런 붉은색으로….

선우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해청연이 문득 선우진에게 한 걸음 다가오며 물었다.

“놀랐나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에?”

문득 꿀꺽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 그, 그야….”

그러자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요사스럽고 매혹적인 웃음이었다.

“그럴 만하죠. 미안해요. 늦게 말해 줘서. 진작 말했더라면 당신도 다른 곳에서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한 해청연은 선우진을 향해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가요? 내 마음을 알게 된 기분이?”

천상의 선녀와도 같은 해청연의 입술이 선우진의 입술 한 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자체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선우진은 입술을 꽉 깨물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해청연의 어깨를 붙잡아 거리를 벌린 후 말했다.

“소저, 천하제일의 미인이자 재녀인 소저가 나 따위를 마음에 담아 주다니 정말 진심으로 영광이오. 그리고 나도 소저를 당연히 좋아한다오. 하지만… 내겐 이미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소. 그러니 그녀의 허락도 없이 소저의 마음을 받아 줄 수는….”

그 순간이었다.

해청연의 얼굴이 바로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그리고 선우진 뒤쪽에 있는 진소은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장래를 약속했다라…. 혹시 저 소저인가요?”

그 말에 선우진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오. 진 소저가 아니라….”

그 순간, 해청연이 단언하듯 말했다.

“그럼 당여은, 당 소저겠군요.”

그 말에 선우진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대번에 누구인지를 맞힌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해청연은 이제 유리같이 투명한 눈동자로 선우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녀에게 선우진의 대답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잠깐의 망설임, 그의 눈빛만으로도 이미 모든 대답을 들은 것과 같았으니까.

예전 몇 개월 동안 오직 그만을 바라보며 관찰했었던 그녀는 이미 그의 모든 표정을 해석할 수 있었다.

해청연은 이제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과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역시 그랬군요. 내가 혈마에게 붙잡혀 생사를 알 수 없는 동안 당신은 그녀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는 거로군요?”

그 순간, 유리알처럼 아무 감정도 없던 그녀의 눈에서 무언가가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선우진은 다급히 그녀를 만류하려 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아니오, 소저! 그건…!”

그때였다.

그녀의 푸르고 붉은 눈동자에서 요사스러운 광채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동시에 마음속에서 묵랑이 소리쳤다.

- 이럴 수가! 역천혈마?!

그때 선우진은 온몸이 덜컥 속박되는 느낌과 함께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헉!”

다음 순간, 그는 공중에 둥둥 뜬 채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완전히 속박된 것이었다.

“이, 이건?!”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선우진은 지금 이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바로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처음 광검릉에서 광협검괴 정명강에게 당한 것과, 또 무황총에서 무황에게 당한 것과 똑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무형지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형지기는 그냥 당대의 절대자들도 아닌 사왕 이상의 절대자들에게나 가능한 경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경지를 지금 해청연이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우진은 경악한 표정으로 해청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목격할 수 있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농염하고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녀가 처음 듣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호호호호! 참 잘생긴 아이로구나. 과연 우리 청연이의 마음을 훔칠 만도 해.”

그러자 마음속에서 묵랑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 진짜 역천혈마였다니! 설마 역천귀혼대법이 성공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걸 들을 수 없는 해청연은 여전히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로 우리 청연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니 어쩐다? 일단 얼굴 가죽부터 뜯어 줄까나?”

농담처럼 가볍게 던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얼굴에 느껴지는 섬뜩한 느낌에 선우진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으윽!”

잠깐 얼굴에서 느껴졌던 섬뜩한 예기에 선우진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다.

순식간에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방금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혼잣말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나 참, 이런 상황이 돼서까지 저 녀석은 건드리지 말라는 거니?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뭐, 알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자, 그럼 어쩐다?”

그렇게 말한 그녀의 눈이 문득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진소은에게로 향했다.

진소은은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 해청연이 선우진과 아는 사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후부터, 계속해서 거듭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전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진소은은 문득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몸이 덜컥 속박되고 선우진처럼 공중에 둥둥 뜨게 되었다는 사실도 말이다.

“!”

어째서인지 지금 이 순간, 해청연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미소가 뱀처럼 섬뜩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해청연이 말했다.

“그래, 청연이 네가 연모하는 남자에게 무슨 죄가 있겠니? 그에게 꼬리를 친 나쁜 년들이 문제지. 그렇지 않니?”

그 순간, 선우진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황급히 소리쳤다.

“안 돼! 진 소저! 도망치시오! 빨리!”

하지만 이미 무형지기에 속박된 진소은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선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 공자, 움직일 수가….”

그때였다.

해청연의 백옥처럼 하얀 손이 진소은의 배를 부드럽게 꿰뚫었다.

푸욱!

“허억!”

“진 소저어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눈빛을 한 진소은의 입에선 피가 울컥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해청연은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배에서 천천히 손을 뽑아냈다.

쑤우욱!

진소은은 끔찍한 고통에 다시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건 비명이 아닌 핏덩어리들뿐이었다.

“커헉!”

울컥!

해청연은 그런 그녀를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에 묻은 진소은의 피를 혀로 할짝 핥으며 말했다.

“자 이제 어떠니, 청연아? 속이 좀 풀리지 않니? 오, 그래, 맞다. 진짜 죽일 년은 이년이 아니지. 그 당여은이란 년이었지?”

그렇게 말한 해청연은 환하게 웃으며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답고도 사악한 미소에 선우진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쳤다.

“안 돼! 진 소저! 당 소저!”

하지만 그의 몸부림은 너무도 무력했다.

공중에 둥둥 뜬 채 무형지기에 속박된 그로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조차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해청연이 그를 향해 매혹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잘생긴 아이야, 나는 지금부터 우리 청연이를 위해 그 당여은이란 아이를 죽이러 갈 생각이란다. 자,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할까? 나를 막을까? 아니면, 저 아이를 살릴까?”

그녀의 물음에 선우진의 시선이 문득 진소은 쪽을 향했다.

진소은은 지금 땅에 털썩 떨어진 채로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죽어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해청연은 그런 선우진의 표정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 계속해서 웃으며 말했다.

“오호호호! 난 너의 선택이 아주 궁금하단다, 아이야. 너는 어떻게 할까? 연인을 위해 어떻게든 나를 막으려 할까?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건 불가능하단다. 그러니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저 아이를 살리려 할까? 물론, 그것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호호호호호호!”

그렇게 웃으며 해청연은 봉우리 밑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러자 동시에 선우진의 몸이 속박에서 풀려 땅으로 떨어졌다.

털썩!

선우진은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새처럼 날아가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고는 진소은을 향해 황급히 달려들었다.

“진 소저! 진 소저! 정신 차리시오! 소저!”

그러자 진소은이 흐릿해져 가는 눈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선우… 공자…. 사랑….”

“안 돼! 말하지 마시오! 진 소저! 진 소저어어어어어!”

구름 위로 솟은 낙원 같은 봉우리 위, 선우진의 절규만이 어둑해진 하늘 너머로 울려 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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