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330화 (330/359)

330화 냉철한 선택

나는 진 소저를 안고서 봉우리 아래로 몸을 날렸다.

천길 봉우리에서 수직으로 벽을 달려 내려오자 몸을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아래까지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가히 찰나였다.

그러고는 숲 위를 비조처럼 날아갔다.

온 정신과, 온 힘을 다해서.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해 경공을 전개한 적이 언제인가 싶었다.

암혈향에게서 도망쳤을 때?

아니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선우세가로 날아갔을 때?

내 몸에 닿은 진 소저의 감촉은 온통 피에 젖어 축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체온 또한 이미 많이 차가워진 상태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

문득 시선을 내려 진 소저에게로 향하자 그녀의 배 앞뒤로 크게 뚫려 있는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끔찍했다.

청연 소저가, 아니 ‘그것’이 배에서 손을 빼내며 헤집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죽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

어쩌면 이미 늦은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던 나는 이를 악물고는 크게 소리쳤다.

“웃기지 마! 누가 보내 줄까 보냐!”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진 소저! 절대 정신을 놓지 마시오! 내 분명히 말했소! 내 허락 없이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그녀는 분명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몰랐겠지만 내 옆에는 최고의 명의인 묵랑 어르신이 계셨다.

그러니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었다.

문득 머릿속에 당 소저의, 여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품에 안겨 행복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과 부드러운 입맞춤, 눈물짓던 마지막 인사까지도….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의 말도 함께 떠올랐다.

‘잘생긴 아이야, 나는 지금부터 우리 청연이를 위해 그 당여은이란 아이를 죽이러 갈 생각이란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할까? 나를 막을까? 아니면, 저 아이를 살릴까?’

청연 소저의 몸을 차지했던 그 괴물의 말이었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서 그녀를 구하러 가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제엔장!’

불안감과 조급함에 온몸이 불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천하삼십육성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그것’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여은으로선….

이대로는 그녀를 잃게 되고 말 것이었다.

어떻게든 ‘그것’이 그녀에게 도달하기 전에 먼저 그녀를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바로 보이는 건 진 소저의 창백한 모습이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축축한 피와 차가워진 체온.

죽어가는 그녀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대체 어떻게?!’

머리도, 심장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였다.

묵랑 어르신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흥분을 가라앉히게, 진. 자네 손으로 진 소저를 죽일 참인가? 공력이 너무 강맹하네. 이대로라면 자네 공력 때문에 그녀가 죽게 될 걸세.

“!”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정을 잃은 나머지 진 소저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주입하던 공력이 불안정해졌던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나는 바로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에게 공급하고 있던 내공을 최대한 부드럽게 조절하려 했다.

“후우우우.”

차갑게 느껴지는 그녀의 체온과 창백해진 얼굴, 머릿속을 온통 가득 채운 채 떠나지 않는 여은의 모습과 ‘그것’의 말.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진 소저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으득!

화끈한 고통과 함께 피맛이 느껴졌다.

그제야 조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묵랑 어르신께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가… 정말 역천혈마가 맞습니까?’

- 확실하네. 절대 잊을 리가 없지.

역천혈마 과염.

예전에 무황총에 갔을 때 묵랑 어르신께 들은 적이 있었다.

혈교 천하를 만들 수 있는 시기를 찾기 위해 오백 년을 잠들어 있다가, 하필 뇌신과 검신의 시대에 깨어났었던 혈교 역사상 최강의 무력을 지닌, 그리고 최고로 재수가 없었던 혈마.

그녀는 그때 결국 혈교천하를 만들지 못하고 진짜 죽고 말았다고 했었다.

- 그때 그녀가 죽은 후, 혈교의 잔당들이 역천귀혼대법이라는 사술로 그녀를 다시 살리려고 한 적이 있긴 했네. 하지만 실패했었지. 그녀의 혼을 빙의시킨 육신이 그녀의 격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 앞에서 붕괴되어 버렸거든. 그래서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건만….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게… 이번에는 성공했단 얘기로군요.’

- …그래, 아마 그런 모양일세.

“빌어먹을!”

끊임없이 욕을 내뱉고 싶은 기분이었다.

혈교 역사상 최강의 혈마라니….

그걸 성공한 시기가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그것도 왜 청연 소저의 몸에….

그러자 묵랑 어르신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 어쩌면 청연 소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르네.

‘…예?’

- 과염은, 역천혈마는 그때도 양쪽 눈동자의 색이 달랐었네. 한쪽은 푸른색이고, 한쪽은 붉은색이었지. 또한 전해 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녀의 미모와 재주는 하늘에서 내렸다고 할 만큼 뛰어났었다고 하더군. 그러니 어쩌면….

‘청연 소저의 몸이 그녀에게 딱 적합했다?’

-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군.

너무 어이가 없어 더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협객인 검성 어르신의 딸 청연 소저가 역천혈마의 귀환에 딱 적합한 사람이었다니, 그런 운명의 장난 같은 얘기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가 그때 어떻게 해서든 운남성으로 쳐들어가 그녀를 구해 냈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란 얘기였다.

역천혈마의 귀환도, 진 소저가 이렇게 되는 상황도, 그리고 여은이 위험해지는 상황도….

그때였다.

묵랑 어르신께서 엄하게 꾸짖으셨다.

- 정신 차리게, 진! 자네답지 않게 무슨 그따위 생각을 하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검성이 청연 소저를 낳지 않았으면 됐을 일이 아니던가?! 어찌 결과를 기준으로 과정을 판단하려 한단 말인가?! 그때의 자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네! 아니, 그것도 사실 충분히 무모한 짓이었지! 심마에 빠지지 말게!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아니라 닥쳐온 현재를 고민할 때가 아니던가?!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

묵랑 어르신의 말씀이 백번 맞았다.

결과를 기준으로 과정을 판단하는 건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확실히 심마에 빠졌던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르신께 사죄드렸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 괜찮네. 다만 급한 상황일수록 심마를 경계해야 함은 잊지 말게.

‘예, 어르신.’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

역대 최강의 혈마라는 역천혈마가, 그것도 청연 소저에게 빙의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무엇이 가장 현명한 행동일까?

그때였다.

숲 너머로 형산파의 건물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형산파 중턱의 내 숙소를 향해 돌진했다.

진 소저를 치료하기 위해 쓸 영약과 도구, 그리고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야만 했다.

내 일행들은 다행히 숙소 근처에 모여 있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진 소저를 안은 채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진 소저가 위급하오! 풍 형님! 연 소저! 빨리 내 짐에서 영약을…! 손 노사님! 전서응을 좀 빌려주십시오!”

갑작스러운 나의 난입에 처음엔 당황하던 일행들은 피투성이가 된 진 소저를 보고 경악하고는 곧 허둥지둥 내 말에 따라 움직여주기 시작했다.

***

진소은은 꿈을 꾸고 있었다.

어린 시절 돌아가셨던 어머니를 만난 꿈이었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던 진소은은 그 후로 몇 년간을 늘 울다 잠들곤 했었다.

조부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던 힘든 시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울다가 잠들어도 진소은의 어머니는 꿈속에 나타나 주지 않았었다.

마치 현실뿐만이 아니라 꿈속에서조차도 영영 헤어진 것처럼….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진소은의 어머니가 지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계셨다.

진소은은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떨리는 눈빛으로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 어머니? 저, 정말로 어머니예요?”

그러자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 그래, 엄마란다.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우리 딸. 그동안 고생 많았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우리 딸.

진소은의 어머니는 늘 그녀를 그렇게 부르곤 했었다.

심지어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있을 때조차도.

늘 저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말이다.

진소은은 더 버틸 수 없었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어머니! 어머니! 으아아아아! 어머니!”

진소은의 어머니는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이제 그녀의 눈에도 진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그래, 그래. 소은아. 어미란다. 우리 착한 딸.

진소은은 엉엉 오열하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왜 한 번도…. 나 너무 보고 싶어서…. 어머니, 아아아아!”

- 그래, 그래. 미안하다. 우리 딸. 많이 힘들었지? 정말 미안하다, 우리 딸. 정말 미안해.

진소은은 하염없이 울었다.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그때 아홉 살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그때 어른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참았던 눈물을 이제야 쏟아내는 것처럼.

그간의 그리움이 모두 눈물로 화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진소은의 어머니는 그런 그녀를 계속해서 꼭 안아 주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계속해서 속삭였다.

- 괜찮아, 우리 딸. 다 보고 있었단다.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하고 대견한지. 다 보고 있었어. 이 어미는 우리 딸이 너무도 자랑스럽단다.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을 울던 진소은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이제 다시는 가지 말아요, 어머니. 우리 계속 함께 있어요.”

그러자 진소은의 어머니는 약간은 곤란한, 하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안 된단다, 소은아. 너는 아직 나를 만나러 올 때가 아니거든.

그 말에 진소은의 얼굴은 다시 어린아이처럼 울상이 되었다.

“왜요?! 왜 안 돼요?!”

그때였다.

나지막한,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며 들려왔다.

- 진 소저, 정신 차리시오. 소저는 할 수 있소. 내 말을 따라 운기하시오. 협백, 음극, 소충, 신주….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하지만 어쩐지 반가워지는 그 목소리에 진소은이 문득 주변을 둘러봤을 때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 보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를 데리러 왔잖니?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란다.

진소은은 멍하니 그 말을 되뇌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순간 진소은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선우 공자.”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바라봤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진소은이 깜짝 놀라 황급히 소리쳤다.

“어머니!”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 부디 행복해지렴, 우리 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을 이 어미에게 보여줘.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만나자꾸나.

“어머니이이이!”

그 순간이었다.

마치 물속으로 확 추락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진소은의 의식이 한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갑자기 선명하게 들리는 선우진의 전음과 배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아으으윽!”

그때였다.

주변에서 노심초사하며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진 소저!”

“소은아!”

“정신이 들어요?!”

의식을 찾은 그녀는 힘겹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그녀는 현재 붕대에 칭칭 감긴 채로 앉혀져 선우진에게 공력을 주입 받고 있는 중이었다.

등에서부터 밀려들어 오는 엄청난 공력도 그제야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선우진은 주변 사람들에게 빠르게 소리쳤다.

“모두 조용!”

그러고는 진소은에게 전음을 보냈다.

- 진 소저, 지금부터가 중요하오. 내 말을 따라 운기하시오.

아까부터 선우진이 의식을 잃은 진소은에게 계속해서 속삭여주던 구결은 바로 묵랑심법이었다.

본래 천마신교 최고의 절학인 천마신공을 본 따 만든 묵랑심법은 불사신공이라 불렸던 천마신공보다도 신체를 보호하고 재생하는 공능이 탁월했다.

그것이 다른 사람과 교대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우진만이 공력을 주입해 주고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선우진은 지금 그 묵랑심법을 진소은에게 전수하려고 하고 있었다.

묵랑심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진소은을 회복시킬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까 선우진은 묵랑에게 묵랑심법을 그녀에게 전수해도 되는지를 물어봤었다.

그러자 묵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었다.

-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나? 어차피 자네 내자가 될 사람 아닌가?

‘예, 예?! 아, 아니, 그건 아직 잘 모르는….’

- 잘 모르기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군.

그렇게 된 일이었다.

선우진은 전음으로 진소은에게 구결을 전수하며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가슴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당여은에 대한 걱정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까 당여은에게 달려가는 걸 포기했었다.

그래 봐야 절대 역천혈마보다 먼저 도착할 수는 없을 거라고 묵랑이 단언했기 때문이었다.

- 놈은 아까 너무나도 가볍게 능공허도를 펼쳐 날아갔네. 최소한 사왕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의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거지. 그러니 자네의 경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놈을 따라잡을 수는 없네. 하늘을 날아가는 자보다 빠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일세.

그 말에 선우진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떠나면 반드시 죽게 될 진소은과 쫓아가도 소용없을 당여은 쪽으로 가기보다는, 이곳에 남아 진소은을 확실히 살리는 쪽의 선택을….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냉철한 선택이었다.

대신 선우진은 유운취객 손대수의 전서응과 형산파의 전서구들을 빌려 수십 마리를 날려 보내게 했다.

하오문과 전선 방향의 지인들, 어떻게든 전선에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로였다.

또한 신법만이라면 선우진과도 거의 비슷한 경지라 할 수 있는 증칠에게 부탁해 전선으로 달려가게 했다.

그러니 이제는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 새들이 새처럼 날아간 역천혈마보다 먼저 그녀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를.

그래서 그녀가 먼저 위험을 피할 수 있기를 말이다.

이건 선우진이 택할 수 있었던 가장 냉철하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묵랑 또한 그렇게 말했고, 선우진 자신도 냉정하게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심장이 수천 조각으로 찢기는 듯한 고통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묵랑에게 물었다.

‘여은이… 역천혈마를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묵랑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네. 놈이 쉬지 않고 바로 전선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네만….

그 말은 반대로 역천혈마가 쉬지 않고 전선으로 향했다면 그녀를 구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선우진은 심장이 끊어질 듯한 고통 속에서 빌고 또 빌었다.

당여은이 제발 무사하기를.

부디 역천혈마의 마수를 무사히 피할 수 있기를….

‘여은, 제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