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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32화 (332/359)

332화 역천혈마 과염-2

해청연이 당여은을 향해 유성처럼 내리꽂힐 때였다.

벽리중은 황급히 자신의 몸을 던져 당여은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멈춰라!”

하지만 불가능했다.

해청연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하자 그의 몸이 보이지 않는 거력에 휘말려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억!”

무형지기였다.

그 모습에 당여은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그녀도 이제는 다른 쪽에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았다.

오직 해청연에게만 집중하며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아압!”

그녀의 전면으로 붉은 달무리 같은 뿌연 검강이 안개처럼 흩뿌려졌다.

의조부 양문헌의 백학노검이었다.

당여은의 검격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미 월하환검무 삼 식 현망월을 발동했던 상태이기에 천하삼십육성급의 고수에 필적하는 위력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정도로는 역천혈마 과염을 막을 수 없었다.

째재쟁!

당여은의 검강은 해청연의 수강에 유리처럼 간단히 부서져 버렸다.

그러자 해청연은 이제 뻥 뚫린 전면으로 당여은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사악하게 웃음 지으며 그곳을 향해 손을 찔러 넣었다.

쉬이익!

아니, 찌르려 했다.

그 순간 그녀의 등 뒤로 뭔가가 날아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슈하아악!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다.

모두 세 개인 무언가.

그 속도는 역천혈마가 빙의한 해청연으로서도 무시하기 껄끄러울 정도였다.

해청연은 인상을 팍 찡그리고는 당여은을 향해 찌르려던 손을 확 휘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무형지기에 휘말린 당여은의 몸이 뒤로 휙 날아가더니 속박된 듯 공중에 둥둥 떴다.

“아악!”

고개를 돌린 해청연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무언가가 늑대 모양의 백색 강환임을 알 수 있었다.

얼음으로 된 것처럼 하얗고 투명한 백색의 늑대들.

해청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빙백신공?”

과거에 존재했던 북해빙궁의 무공을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던 해청연은 가볍게 손을 휘저어 세 개의 강환을 부숴버렸다.

파사삭!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는 봉두난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늑대머리가 새겨진 백색의 검을 들고 있는 사내였다.

***

비룡십삼대 사 조의 조장이자 혈마 전무광의 외손자, 그리고 해남파의 적수인 백랑검개로 활동했던 마유겸이 비룡십삼대 근처에까지 도착했던 건 벌써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는 선우진과 헤어진 후 바로 이곳으로 돌아왔었다.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마유겸은, 선우진이 비룡십삼대 사 조원들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부터 사무치도록 그들이 그리워졌었다.

자신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느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바보들이….’

과거 마유겸이 그들의 조장이었을 때, 그는 자신의 조원들을 그저 스쳐 가는 인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점창파의 부활이라는 유일한 삶의 목적이 있었기에, 비룡대의 동료들은 그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하는 곁가지들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조원들을 겪으며, 어느새 그도 조원들을 점창파의 사형제들만큼이나 아끼게 되고 말았었다.

그래서 더욱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의 모든 기대와 진심을 배신하고 그런 짓을 저질러 버렸던 자신이….

마유겸은 그들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도 차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벌써 오랜 기간을 비룡십삼대 주변에서 유령처럼 떠돌고만 있던 중이었다.

그랬는데….

‘당 소저!’

사실은 조원들보다 더 보고 싶었음에도 차마 그럴 마음조차 갖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녀, 당여은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속박되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람 또한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마유겸은 그녀에게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해 소저! 이게 무슨 짓이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해 소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괴물이 절대 그녀는 아닐 걸세!

묵랑검의 묵랑처럼 설랑검에 깃들어 있던 검신의 의지, 설랑이 한 말이었다.

그의 말에 마유겸 또한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게 대체….’

그러자 해청연이 짜증 난다는 듯이 소리쳤다.

“빙궁의 후손이냐?! 별의별 놈들이 다 기어 나오는구나!”

그 목소리에 설랑이 경악해 소리쳤다.

- …역천혈마라고?! 유겸! 당장 물러서게!

하지만 마유겸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상대가 검신을 놀라게 만들 정도의 괴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의 눈은 오직 해청연의 뒤, 허공에 둥둥 뜬 채 속박되어 있는 당여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삶을 포기했을 때조차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그녀였다.

그래서 매일 밤 하루도 빠짐없이 꿈에서 울며 사죄했던 그녀, 당여은이 거미줄에 걸린 나비가 되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녀를 구해 내야만 했다.

그 순간이었다.

해청연이 마유겸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붉은 손톱이 순식간에 뻗어 나와 마유겸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혈교의 절기 혈귀마조였다.

쉬이이익!

“!”

엄청난 속도의 공격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무색해져 버리는, 공간을 뛰어넘은 듯한 속도.

하지만 마유겸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가 황급히 검을 내리쳤다.

자신의 바로 앞, 땅을 향해서였다.

파아악!

그러자 땅에서부터 긴 얼음의 벽이 화악 솟구쳐 마유겸의 앞을 가렸다.

설랑검법의 이 초, 천장빙벽이었다.

그걸 본 해청연은 살짝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

하지만 탄성은 그저 제법이란 뜻일 뿐, 그녀의 공격을 막기엔 어림도 없었다.

콰과광!!

두꺼운 얼음의 벽이 붉은 손톱 모양의 강기에 산산조각으로 터져 나갔다.

그녀의 공격을 아주 잠깐조차도 저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해청연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작게 중얼거렸다.

“제법?”

그녀가 그를 인정한 건 저 얼음벽 때문이 아니었다.

부서진 얼음벽 뒤에서 마유겸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음벽만으로는 버티지 못할 거란 사실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먼저 옆쪽으로 피했던 모양이었다.

꽤나 재빠른 상황판단이 아닐 수 없었다.

“흐음, 한참 전에 멸문한 빙궁의 후예인 데다가 저런 상황 판단이라니. 흥미가 좀 끌리는데?”

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해청연은 이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귀찮아.”

동시에 그녀의 온몸에서 아홉 개의 혈룡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크롸라라라라라!

혈교 최강의 절기 구천혈룡마공이었다.

사납게 울부짖으며 뛰쳐나간 혈룡들은 이내 반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꿔 아직 부서지지 않은 얼음벽들을 향해 각각 돌진하기 시작했다.

얼음벽 뒤 어디에 숨어 있던 이 한 수로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사납게 입을 벌린 혈룡들이 길게 뻗은 얼음벽 이곳저곳을 폭격했다.

그러자 얼음벽을 따라 거대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쾅!

해청연은 그 광경을 보며 작게 코웃음을 쳤다.

이걸로 끝이었다.

애초에 구천혈룡마공을 쓸 필요도 없는 수준의 상대.

아까 화경의 벽을 넘어섰던 백학노검 양문헌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저 공격을, 고작 초절정에도 이르지 못한 저따위 놈이 버텨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해청연은 다음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아악!

폭발 속에서 마유겸이 살아서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까와 별 다를 바 없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떻게?!”

그 순간, 해청연을 덮쳐 가며 마유겸이 마음속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러자 설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괜찮네. 망아공이야 그 선우진이란 청년이 이어주겠지. 자네야말로 괜찮은가? 내가 버텨 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네. 아니, 사실 버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군.

지금 마유겸을 움직이고 있는 이는 마유겸 본인이 아닌 검신의 의지, 설랑이었다.

자신의 실력만으론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마유겸이 설랑에게 빠르게 부탁했던 것이었다.

설랑은 기합을 내지르며 해청연을 덮쳐갔다.

“하아압!”

설랑검법 일 초

북풍검파

슈하아악!

빠르게 휘두른 설랑검에서 검기가 뿌연 한파가 되어 뿜어져 나왔다.

해청연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대한 눈보라 같은 한파였다.

그 광범위한 공격에 해청연은 급히 호신강기를 전개해 한파를 막으며 소리쳤다.

“이놈! 실력을 감추고 있었구나!”

파바바바박!

그 순간 붉은 호신강기 위로 부딪친 한파가 그대로 얼음의 벽이 되어 해청연을 둘러쌌다.

주변이 갑자기 북해의 얼음 계곡이 된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자 산전수전 다 겪은 역천혈마 과염마저도 순간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주 잠깐 사이였는데 사방에 보이는 광경이 모두 투명한 빙벽이 된 상태였다.

과거에 겪었던 빙백신공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시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빙벽들 때문인지 당여은을 속박하고 있던 무형지기가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해청연은 이제 분노한 표정으로 공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감히!”

화아아악!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간 거대한 기파가 붉은 열풍이 되어 주변의 빙벽들을 휩쓸어 버렸다.

한순간 모든 것들을 다 날려 버릴 듯한 광폭한 폭풍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해청연이 호신강기를 푸는 순간만을 노리고 있던 설랑이 그녀를 기습했다.

설랑검법 사 초

절대빙검

샤아아아악!

그녀의 등 뒤에 위치했던 빙벽이 산산이 부스러지는 가운데 그 중간에서 투명한 얼음 칼날 하나가 순식간에 뻗어나왔다.

예전에 선우진이 마경 만학숭에게 일격을 성공시켰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절대빙검의 암습은 치명적이었다.

검을 찔러가는 것이 아닌 공기 중의 수증기로 생성한 얼음칼을 늘려 공격하는 수법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극히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이 시대의 절대자 십오 인 중에서도 막을 수 있는 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해청연의 몸을 차지한 이는 역천혈마 과염이었다.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혈교 역사상 최강의 혈마.

그녀는 순간 등 뒤에 느껴진 섬뜩한 느낌에 바로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호신강기를 뿜어냈다.

“하아아아압!”

파삭!

거세게 뿜어 나온 붉은 장막에 부딪친 투명한 빙검이 산산조각 났다.

기습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 순간, 그제야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된 해청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칫 잘못하면 처음 보는 괴이한 기습에 당할 뻔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는 시선을 뒤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꽤 제법이었다. 하지만 실패했구나, 빙궁의 후예. 아니, 빙궁의 후예인 게 맞기는 한 건가?”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마유겸과 당여은이 서 있었다.

이제 빙벽들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숨을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해청연은 사나운, 하지만 요사스럽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구나. 네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 청연이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야. 그렇게 망설임 없이 죽이려 하다니 말이다.”

그 순간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는 사람은 해청연뿐만은 아니었다.

당여은 또한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봉두난발과 허름한 옷, 잠깐 봤던 얼굴도 수염투성이라 도저히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마유겸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설랑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도망가시오, 소저.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소.”

그 말에 순간 망설였던 당여은은 곧 그에게 인사를 남기고는 다시 도주하기 시작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감사드립니다, 대협!”

파박!

그러자 마음속에서 설랑이 물었다.

- 정말 이걸로 괜찮겠는가? 지금 자네를 밝힌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네.

그 질문에 마유겸은 씁쓸히 웃음 지었다.

‘그녀에게 용서받는다.’라….

지난번 선우진이 그에게 그러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 이후로 마유겸은 단 한 순간도 그 말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무척이나 가슴이 설레고 뜨거워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 언젠가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 것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찾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녀를 살리는 것이지 그녀에게 용서를 받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시간을 쓸 수는 없지요.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그러게나.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설랑이 마유겸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고, 그 후엔 아마 다음 기회라는 게 없을 거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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