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유해응의 제안
회의가 끝난 후 선우진은 바로 절강성으로 출발하지 않고 하루를 더 형산파에서 기다렸다.
다음날 도착할 해남파의 사람들을 만나고 가기 위해서였다.
선우진은 설풍과 함께 형산파의 산문 앞까지 나와 직접 해남파의 사람들 오십여 명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러자 해남파의 임시장문인을 맡고 있는 용왕지궁 유해응이 무표정하게 포권하며 화답했다.
“싸움 한번 없이 그저 북상하는 임무만을 맡았는데 고생이랄 게 뭐가 있겠소? 단지 그 정도의 조력만으로도 형산파를 무너뜨린 공자가 한 일이 바로 고생이겠지요.”
분명 부드러운 인사말인 것 같건만 표정만 보면 화난 듯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전히 철탑 같은 그의 모습에 선우진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선우진은 그의 뒤로 시선을 돌려봤다.
그러자 유해응의 바로 뒤로 관운장 같은 멋진 수염을 기른 일도살경 오익덕과 왜소한 노인인 해남자가의 가주 자개추,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을 마중 나가겠다며 먼저 나갔었던 묘아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로 옆에 서 있는 땅땅한 체격의 남자는 아마도 말로만 들었던 해남파의 무장을 책임지는 해남신가의 가주 신두월인 것 같았다.
또한 가주 급들의 뒤로는 해남인가 무사들의 우두머리인 현청군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던 선우진은 현청군의 바로 옆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아버지인 선우세가의 가주 선우중과 아마도 새어머니가 되실 난혼마녀 소난소의 얼굴이었다.
‘아버지….’
선우중은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선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우진 또한 자기도 모르게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우진은 다시 유해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아버지께 달려가고 싶긴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일파의 장문인을 맞이하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선우진은 유해응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유 장문인. 형산파에서 쉴 곳을 준비해 줬습니다.”
그러자 유해응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럴 필요 없소. 지금은 쉴 때가 아니니 말이오.”
그의 말에 선우진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해응은 진중한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묘 소저에게 듣기로 선우 공자께서 이후 바로 절강성으로 출발할 예정이라고 들었소.”
그의 말에 선우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해남파를 맞이하는 대로 바로 출발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유해응이 약간 높아진 어조로 물었다.
“그 전에 지난번 제안에 대한 답을 해주셔야 하지 않겠소? 이제 선우세가도 우리 해남파의 식구가 되었으니 말이오.”
지난번 제안.
그의 말에 선우진은 살짝 당황했다.
그가 여기서 그 제안에 대한 말을 꺼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유 장문인, 그 제안은….”
그러자 유해응이 선우진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본인은 장문인이 아니오. 임시 장문인이지.”
선우진은 문득 그의 눈빛을 바라봤다.
늘 석상 같았던 얼굴, 그 한가운데 자리한 그의 두 눈이 지금 무척이나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뜨거운 갈망의 빛이었다.
선우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아직 지나치게 젊습니다. 그리고 해남파의 소속이 되었다고는 하나 이제 막 일어난 일일 뿐이지요. 그런 제가 만약 중책을 맡게 된다면 본파의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유해응의 뒤에 서 있던 노인 해남자가의 가주 자개추가 끼어들어 대답했다.
“아직 세상이 모를 뿐, 공자가 진태도를 꺾고 성녀를 끌어들여 마경 만학숭을 죽였음을 해남파 문도 모두가 다 알고 있소. 게다가 이번엔 형산파마저 무너뜨렸지요. 그런 영웅의 나이가 젊다고 무시한다면 대체 누가 존중받아야 한단 말이오?”
그가 그렇게 묻자 옆에 있던 해남신가의 가주 신두월이 그의 말을 받아 말을 이었다.
“게다가 공자는 우리 해남의 자존심이자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남십자검의 유일한 계승자가 아닙니까? 심지어 이젠 우리 해남파의 식구이기까지 하지요. 그런 공자께서 장문인의 자리를 맡아주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장문인의 자리를 맡을 수 있단 말이오?”
장문인.
그랬다.
이들이 선우진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해남파의 장문인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가 처음 나왔던 건 진태도와 마경을 죽인 후 찾아왔던 유해응, 자개추와 대화를 했을 때였다.
당시 유해응은 외인인 선우진이 아무리 부패한 망종이라고는 하나 해남파의 장문인인 진태도를 죽였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말했었다.
또한 해남파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해남인가의 남십자검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고 말이다.
하지만 묘아란이 기지를 발휘해 선우진의 선우세가를 해남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하자, 유해응은 갑자기 한술 더 떠 그럼 선우진이 해남파의 장문인 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공자는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인파랑 공자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진태도와의 싸움을 결정한 진정한 협객이오. 또한 진태도를 꺾을 정도의 무공과 마경 만학숭마저 함정에 빠트려 파멸시킬 정도의 지모를 갖춘 사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런 공자가 우리 해남의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남십자검의 유일한 계승자구려? 그러니 그런 공자가 한 식구가 된다면 대체 공자 이외의 누가 장문인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단 말이오?’
그 말에 선우진은 자신은 너무 젊고, 아버지인 선우가주 선우중이 결정하기 전까진 아직 해남파에 소속된 것도 아니니 그런 얘기는 불가하다며 완곡하게 거절했었다.
그 후 유해응이 임시 장문인의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그가 다시 그 말을 꺼낸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그 혼자만의 생각도 아닌 것 같았다.
선우진은 문득 유해응이 아닌 다른 해남파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자개추, 묘아란은 물론 한 번 봤을 뿐인 오익덕이나 처음 본 신두월까지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해남인가의 무사인 현청군이나 다른 무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문득 다시 시선을 돌려 아버지 선우중을 바라보자 그 또한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 사전에 서로 다 얘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그 상황에 살짝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묵랑이 마음속에서 웃으며 말했다.
- 내 서로 장문인이 되기 위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이렇게 본인도 원하지 않는 장문인 자리에 앉히기 위해 문도들이 담합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보는군. 그것도 아직 완전히 내부인이라고 말하기 힘든 자네를 위해서 말일세. 멋진 사람들이야. 아마 멋진 문도들도 되어 주겠지.
그 말에 선우진이 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선 제가 해남의 장문인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묵랑이 여전히 웃음기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 글쎄.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 다만… 내가 만약 그 인가 애송이라면 무척 만족스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군.
그가 말하는 인가 애송이가 억울하게 죽은 인가의 후계자 인파랑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해남파의 전설이 되었던 남해검왕 인중호를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선우진은 마침내 마음을 결정할 수 있었다.
선우진은 진중한 눈빛으로 해남파 사람들을 둘러본 후 물었다.
“저는 이제 혈교와 일전을 벌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어쩌면 무림맹도 저의 적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해남파의 장문인이 된다면 해남파 또한 그 싸움에 휘말릴 것이고 큰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자 해남오가의 가주 오익덕이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으하하하하! 큰 싸움이라,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요! 진태도와의 싸움에서도, 형산파와의 싸움에서도, 그저 지켜보는 역할만 맡고 있었더니 이젠 내가 무림인인지도 좀 의심스럽더구려. 그러니 공자께서 부디 내가 무림인이 맞다는 걸 좀 확인시켜 주시겠소?!”
그 말에 이어 묘아란 또한 또박또박 말했다.
“정파의 명문이었던 우리 해남파는 지금 무림인들에게 정사중간의 문파로 인식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진태도의 악행 때문이었죠. 그 인식을 바꿔주려면 아마도 커다란 사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무림공적인 혈교와의 싸움이라던가 하는 그런 것들이 말이죠.”
그러자 그들의 말에 이어 유해응이 드디어 그 석상 같은 입을 열어 말했다.
“장문인의 뜻이 의협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 뜻을 따르는 게 문도들의 역할이 아니겠소?”
그렇게 물은 유해응은 들고 있던 검을 선우진에게로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해남인가와 해남파의 신물인 백호검이었다.
선우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검을 바라봤다.
원래의 백호검이 설랑검에 장식을 덧씌운 것이기에, 필요에 의해 묵랑의 지도를 받아 직접 만들었던 백호검이 지금 다시 선우진의 손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선우진은 마침내 손을 내밀어 그 검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그 순간, 선우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뜨거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해남파의 모든 문도들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선우진은 백호검을 들고는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오십여 명의 사람들을 둘러봤다.
비록 지금 눈앞에는 오십여 명뿐이지만, 이들은 모두 해남십이가를 대표하는 해남파의 최정예들이었다.
구대문파에 오르지 못했을 뿐 그 전력만큼은 그들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문파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선우진은 그런 거대 문파의 장문인으로 추대된 것이었다.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해 거절하기는 했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묵랑이 마음속에서 그에게 말했다.
- 해남파의 장문인이 된 것을 축하하네. 선우 장문인.
선우 장문인.
그 말을 들은 선우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
원래 해남파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출발하려던 선우진은 조금 더 시간을 내 해남파의 수뇌부들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 대화를 통해 해남파의 정예들 또한 혈교 공격대로 참여하기로 한 후 선우진은 아버지인 선우중, 그리고 이제 그의 부인이 될 소난소와 따로 대화를 나누었다.
선우진은 소난소를 향해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소자가 어머니를 뵙습니다.”
그러자 소난소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머, 그땐 소저라고 불러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녀의 물음에 선우진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예전에 농담 삼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식 웃음 짓고는 아버지 선우중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그렇게 불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선우중이 짐짓 엄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난 허락할 수 없다. 허락해 줬다간 어쩐지 내 아들과 연적이 될 것 같거든.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면 내가 질 것 같아서 불안하구나. 하하하하!”
그 말에 소난소가 문득 선우중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상공. 상공이 질 것 같으면 제가 합공해 드릴게요. 상공이 이기든 지든 우리는 계속 함께일 거예요.”
그녀의 말과 애정 어린 눈빛에 선우중은 문득 뜨겁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소, 난소.”
두 사람은 마치 이십 대의 젊은 연인처럼 뜨겁고 열렬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선우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만히 있는 아들을 아버지와 여자 때문에 싸우는 패륜아로 만들지 마시고 이제 저도 좀 봐 주시지요. 어쩐지 자리를 비켜드려야만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말에 선우중은 슬쩍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선우진에게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직 거기 있었느냐? 미안하다.”
그 말에 선우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과는 달리 마음속으론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저렇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실 정도로 밝아지신 아버지의 모습도, 그리고 두 사람이 보여주는 뜨겁고 끈끈한 신뢰도 너무 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자신의 어머니와 계신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선우진은 그간 아버지가 늘 야망이 가득한 어머니들과 힘겨운 관계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모습만을 지켜봐 왔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마치 어린 연인들처럼 서로에 대한 애정에 집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란, 무척 새롭고 또 뿌듯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선우진과 선우중은 이제 뜨거운 눈빛으로 다가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러기를 잠시, 선우중은 살짝 떨어져서 그윽한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생했다, 진아. 그리고 고맙다. 무능한 나와 달리 너는 가주가 되기 전부터 우리 선우세가를 비상하게 만들어 주었구나.”
그러자 선우진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라는 사람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셨으니 아버지도 충분히 유능하신 거지요.”
그 말에 선우중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그때였다.
웃음 짓던 선우중의 얼굴에 문득 장난기가 떠올랐다.
그가 짓궂은 표정으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해남파에서 지켜보니 묘 소저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지혜로운 소저일 수가 없더구나.”
“…예? 갑자기 그 말씀을 왜?”
그러자 소난소 또한 끼어들었다.
“제가 보기에도 천하에 보기 드문 훌륭한 소저인 것 같더라고요, 상공.”
선우진은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얼마 전 묘아란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앞으로 하는 걸 봐서 그녀의 앞일을 결정하겠다고….’
아마 자신이 없는 동안 그녀와 두 분 사이에 뭔가 대화가 오갔던 모양이었다.
문득 지혜로운 묘아란의 득의한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기까지 생각한 선우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저는 혼인을 약속한 여인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자 선우중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알고말고. 내가 뭐라고 했느냐? 그냥 묘 소저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한 것이 아니더냐? 그리고 네가 혼인을 약속했다는 여인이 그… 진 소저였던가?”
“아, 아니, 그녀도 있긴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당 소저….”
거기까지 말한 선우진은 문득 장난기 가득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아마 묘아란에게서 굉장히 많은 일에 대해 들으신 모양이었다.
선우진은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새 부인을 맞이하셔서 정말 행복하신 모양입니다. 아무튼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나중에 당 소저와 함께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거기에 대해 얘기할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이제 절강성으로 출발해야 하니까요.”
그러자 선우중 또한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바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었다. 검제께 찾아간다지? 네가 알아서 충분히 잘하리라 믿지만, 그래도 부디 조심하거라. 그리고….”
선우중은 문득 등에 메고 있던 검을 풀어 아들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것을 가져가거라.”
선우진은 그 검을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그러자 선우중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해남파의 장문인이 선우세가의 가주도 아니라면 너무 이상한 얘기가 아니겠느냐? 이젠 네가 선우세가의 가주를 맡도록 해라.”
지금 선우중이 선우진에게 주려고 하는 검은 바로 선우세가의 신물인 홍연검이었다.
선우세가의 가주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을 지금 아버지가 가주 자리와 함께 물려주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선우진은 잠시 홍연검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을 내밀어 검의 검집을 잡았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선우세가의 가주도 아닌 자가 해남파의 장문인을 맡는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가 해남파의 장문인이 된 순간 당연히 선우세가의 가주 자리도 물려받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손에 잡힌 홍연검의 감촉이 어쩐지 익숙했다.
아마 지난 삶에서도 선우세가의 가주가 되며 그 검을 이어받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삶의 마지막 순간 내 심장을 찌르고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도 했었지.’
선우진이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묵랑이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 호오, 이 검은?
묵랑이 홍연검에서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선우진이 놀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묵랑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