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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38화 (338/359)

338화 적랑검협 반대하-1

현 무림의 천하제일인인 혈랑검제 반중양의 둘째 아들 적랑검협 ‘반대하’는 자신의 방에서 서신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안탕산 깊은 산중에 살고는 있지만 외부 무림의 동향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그렇기에 매일 외부에서 오는 보고서를 받아 읽곤 했다.

하지만 요즘의 그는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었다.

최근의 보고서에서 제일 많이 읽게 되는 얘기가 바로 설풍에 관한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반대하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또 이자에 관한 얘기인가?”

혜성같이 나타난 사왕의 후계자 후보인 설풍이 엄청난 활약으로 다른 후보들을 물리친 일들.

심지어 구대문파에서도 수위에 속하는 대문파 형산파까지 무릎 꿇린 사건은 마치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도 처음엔 말도 안 된다며 비웃었었다.

‘하여간 호사가들의 허풍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군. 이따위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정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자, 그는 점점 더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설풍의 모습이 바로 반대하 자신이 되고 싶었던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혜성같이 나타난 신진고수.

천하제일신성이란 호칭.

이십 대의 나이에 등극한 천하삼십육성의 자리.

그 모든 것들이 다 그가 꿈꾸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들이기도 했다.

그는 문득 그의 아버지 혈랑검제 반중양이 있을 비동 쪽의 방향을 노려보다가 다시 시선을 자신의 적랑검에게로 돌렸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아버지의 혈랑검을 본 따 만들었던 붉은 검.

하지만 이런 가짜 검으로는 결코 아버지처럼 될 수 없었다.

이 검처럼 그저 가짜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에겐 진짜 검이 필요했다.

지난번에 봤던 그 검처럼 말이다.

‘그 선우진이란 놈이 가지고 있던 묵랑검. 그것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선우진을 떠올리자 반대하의 눈이 섬뜩한 안광을 뿜어냈다.

처음 묵랑검을 봤을 때부터 반대하는 그 검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놈에게서 검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놈의 묵랑검이 아버지의 혈랑검과 비슷한 검이라면, 그리고 그런 이유로 놈도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던 거라면, 놈 역시 아버지처럼 검의 봉인을 풀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을 시켜 놈을 추적하는 동시에 은밀하게 정보를 수집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선우진에 대한 정보는 놀랄 만큼이나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너무 지나치게 활약이 없어 오히려 이상했을 정도였다.

알아낸 건 놈이 선우세가의 수치라고 불렸다는 사실과 전선의 근무자라는 사실,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일류의 무위로 절정고수를 잡아 비천흑랑이란 별호를 얻었을 때를 제외한다면 놈은 무림에서의 활약 자체가 거의 없는 상태인 것이었다.

‘이건 그냥 무명소졸이잖아?’

반대하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에 그냥 검을 빼앗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때쯤, 그는 선우진을 추격하던 자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급 살수에 준하는 능력을 갖춘 무사들이 그야말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져 버렸던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그에 대한 정보와 실제 보이는 모습과의 괴리감이 너무 컸다.

그래서 반대하는 처음부터 다시 선우진의 행적을 조사해봤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머물렀던 근방에서 늘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이었다.

‘선우세가에 머물 때는 혈교의 초절정 고수 축호탁과 천하삼십육성인 탐화색마 화사유가 여령색마에게 죽었고, 남해 쪽에 있을 때는 해남마검 진태도와 마경 만학숭이 남해성녀에게 죽었군. 그리고 사왕련에 갔더니 사왕련의 가장 강력한 후계자 괴정기가 몰락하고 이제 형산파에 갔더니 형산파 자체가 몰락했다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엄청난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유독 거기에 선우진의 이름만 빠져 있었다.

그냥 옆에서 말 한마디만 했어도 명성을 떨쳤을 것 같은 엄청난 사건들 사이에서 정말 아무런 명성도 얻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쯤 되면 그게 더 놀라울 정도였다.

‘게다가 같이 다니는 일행들은 천하삼십육성이자 사왕의 후계자인 광풍비룡 설풍에, 강력한 초절정 고수인 홍해아 증칠, 그리고 사파사대미녀이자 초절정 고수인 하원달기 연태진이지. 거기에 광동 진가장의 자연곤 계승자라는 소문이 도는 곤룡선자 진소은도 있고. 그런데 그 혼자만 일류에 불과한 비천흑랑 선우진이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반대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놈이 의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걸 포기했다는, 아니 오히려 감췄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보다 명성을 갈구하는 반대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간신히 얻은 정보의 파편으로 그의 무위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왕련에서 귀도 백기량을 기세만으로 굴복시켰다는 젊은 검수, 설풍의 옆에 있었다는 그자가 아마도 놈이겠지.’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반대하는 깊은 치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선우진이 자신에게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도 어쩐지 큰 모욕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욱 집착이 심해졌다.

‘그 검, 묵랑검만 내게 있었어도….’

수치심, 질투, 자괴감.

그 모든 감정들이 하나로 뭉쳐 묵랑검에 대한 탐욕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반대하는 갑자기 읽고 있던 서신을 거칠게 구겨 벽에 확 던져버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기랄!”

이대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뭘 해서든 기분을 좀 풀어야만 했다.

콰앙!

문을 박차고 나가자 복도를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공자.”

반대하는 그들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죄인들을 가두는 뇌옥이 있는 곳이었다.

산장의 지하뇌옥에는 다양한 죄인들이 갇혀 있었다.

감히 신지 절강성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잡혀 온 자들부터 시작해, 무모하게도 혈랑검제 반중양에게 도전하겠다며 행패를 부리다 갇힌 자들까지.

그리고 그들 중에는 그저 사파인이라는 이유로 잡혀 온 자들도 있었다.

반대하가 기분을 푸는 방법은 바로 그 죄인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사파의 죄인이기에 죄책감도 느낄 필요가 없었고, 점혈 당해 반항할 힘도 없는 그들을 괴롭히다 보면 묘한 쾌감과 함께 어느새 기분이 좋아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던 것이었다.

“이 공자를 뵙습니다!”

“이 공자를 뵙습니다!”

반대하는 자신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뇌옥의 무사들을 지나쳐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뇌옥의 한 감방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감히 절강성 안에서 일반인 가족을 모두 참살하고 도주하다가 잡혔던, 그야말로 죽어 마땅한 자가 갇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반대하가 평상시 가장 자주 들어가 기분을 푸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반대하는 이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오늘의 기분은 저따위 잔챙이로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신의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는 커다란 제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뇌옥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던 그가 마침내 걸음을 멈춘 곳은 가장 두꺼운, 거의 사람의 팔뚝만 한 쇠창살이 쳐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살짝 긴장한 듯한 웃음을 흘리며 안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셨소, 표 노사?”

그 목소리에 안에 갇혀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자 그 눈에서 짐승 같은 안광이 번뜩이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표 노사라고 불린 이는 봉두난발이 된 새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이 인상적인 커다란 체격의 노인이었다.

그는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 땅에 앉을 수도 없도록 벽에 매달려진 상태였다.

그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잘 지냈냐라…. 궁금하면 너도 한번 여기 매달려보지 그러느냐? 어디 잘 지낼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자 반대하가 애써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기운이 넘치시는 걸 보니 잘 지내셨던 모양이구려. 말투도 여전히 뻣뻣하시고…. 아무래도 간수들에게 말해 식사량을 좀 줄이라고 해야겠소.”

그 말에 노인이 피식 비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개새끼, 네놈이 나를 찾아온 걸 보니 또 뭔가 마음 상하는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왜? 또 누구에게 열등감이라도 느꼈느냐?”

그 질문에 반대하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정곡을 찌른 그 말에 더 이상 여유를 가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노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정답인 모양이로구나, 클클클클!”

그의 비웃음에 반대하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말았다.

그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제도 모르는 늙은이가 감히!”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열쇠로 창살문을 열고는 뇌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구석에 감겨 매달려 있던 채찍을 들고는 소리쳤다.

“늙은이! 네가 이곳에서도 천하삼십육성인 것 같으냐?! 사파의 버러지 주제에!”

그렇게 소리친 반대하는 노인의 몸에 힘껏 채찍을 내리쳤다.

짜악!

순간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그 끔찍한 고통에 노인은 웃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음 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반대하의 채찍질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놈이!”

촤악!

“천하삼십육성이라면!”

촤악!

“어디 한번!”

촤악!

“반항해!”

촤악!

“보란 말이다!”

촤악!

“무극패도!”

촤악!

“표서극!”

촤악!

무극패도 표서극.

그것은 천하삼십육성 중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도객의 이름이었다.

또한 딱히 정파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사파라고 부를 만큼 무도한 짓을 저지른 적도 없는, 그래서 정사 중간의 인물로 분류되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는 지독한 무공광이었기에 가끔 비상식적인 짓을 저지르기는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뇌옥에 갇힐 만큼의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 몰래 협행을 행한 적이 더 많은 협객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너무 무공에 미쳐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혈랑검제 반중양과 대결을 해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삼 년 동안 매년 안탕산 산장을 방문했다가, 도무지 끝나지 않는 검제의 폐관수련에 수상하다는 말 한마디를 흘렸었다.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날이었다.

그 후 이미 몇 번이나 만나 익숙한 얼굴이 됐던 반대하를 경계하지 않았던 그는, 반대하가 준 좋은 술을 마시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이 꼴이 된 상태였다.

한참을 채찍을 휘두르던 반대하가 잠시 손을 멈추고는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물었다.

“으흐흐흐! 전에는 맞으면서도 웃더니만 이제 웃음은 나오지 않는 모양이지? 천하삼십육성의 정신력도 여기까진가?”

그 말에 무극패도 표서극은 빠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분하지만 놈의 말대로였다.

이젠 고통을 참으며 웃을 수 있는 여유가 나오질 않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음식과 함께 복용하는 산공독.

거기에 혈도까지 집혀 있는 상태로 놈의 가혹행위를 버텨낸 일 년이란 시간은, 천하삼십육성의 고수인 그의 정신력마저도 점점 고갈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빠드득!

표서극은 이를 갈며 상처 입은 짐승 같은 눈빛으로 반대하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 눈빛에서 무너져 가는 표서극을 확인한 반대하는 더욱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반대하는 강렬한 쾌감이 밀려와 온몸을 가득 채우는 느낌에 전율했다.

천하삼십육성의 상위권에 꼽히는 고수를 자신의 손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만족감은 아까 설풍의 정보를 보며 상처 입었던 자존감을 채워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으흐흐흐흐!”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중독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보다도 더, 완벽하게 그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때였다.

“클클클클!”

표서극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마치 다시 여유를 되찾은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그러자 반대하가 웃음을 그치고는 무서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웃지? 더 맞고 싶은가?”

그 협박에 표서극이 웃으며 대답했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아무리 호부에 견자라지만 어떻게 검제의 밑에 너 같은 아들이 나올 수가 있었을까? 혹시 너 검제의 아들이 아닌 게 아니냐? 나한테 한 것처럼 검제도 약을 먹이고 어딘가에 가둬놓은 채 아들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의 물음에 반대하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뭐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표서극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네놈, 사파의 여인들에겐 너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풀어준다고 했다지?”

“!”

그 말을 듣자 반대하는 순간 눈을 움찔했다.

그의 표정은 한순간 딱딱하게 굳어져 버린 상태였다.

표서극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표서극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클클클! 놀라기는. 지난달까지 내 앞 방에 있던 경 소저가 얘기해 주더구나. 그 다음 날 경 소저가 사라진 걸 보면 그녀가 그렇게 했다는 얘기겠지? 봐라. 이게 과연 협객 중의 협객이라는 검제의 아들이 할 수 있는 짓이냐? 천만에! 검제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제일 먼저 네놈부터 가루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네놈은 사실…!”

그 순간이었다.

반대하가 미친 듯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닥쳐! 닥치라고!”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촤악!

온힘을 다한 채찍이 쉴 새 없이 날아들자, 표서극의 피부가 터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모두 곤두서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표서극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 저놈 앞에서 신음 소리를 흘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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