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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41화 (341/359)

341화 역천혈마 대(對) 사왕-1

안휘성 북부.

드넓은 화북평원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 회하는 안휘성 북쪽에서 그 걸음을 잠시 멈추고 머물러 갔다.

해청연, 역천혈마 과염은 지금 그 잠깐의 머무름이 만든 거대한 호수 홍택호 기슭에서 바다와 같이 드넓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육백 년 전, 그리고 백 년 전.

벌써 두 번의 삶을 살았던 과염이지만 이 홍택호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두 번의 삶 모두 감당할 수 없는 강적들의 견제로 이곳 안휘성까지는 한번도 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 눈으론 정작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홍택호를 다른 이의 눈으로 보게 되다니…. 묘하군.”

생각하면 지난 삶들은 지나치게 운이 나빴었다.

하필 구대문파가 막 태동해 욱일승천하던 시기였던 첫 번째 삶.

당시 초창기 구대문파의 무인들은 지나치게 순수했다.

모든 정파의 무인들이 자파의 이익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오직 협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듯 광인처럼 덤벼들었던 것이었다.

당시 그들 개개인의 무공이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 시대 무인들 중 과염의 실력은 천하제일이었고 정파의 누구든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놈들은 정파 무림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 덤벼들곤 했었지. 그 바퀴벌레처럼 징글징글한 놈들 같으니….’

목숨을 아끼지 않는 광인 같은 정파놈들과 그 지독한 놈들의 끝을 알 수 없는 파상공세에, 역천혈마 과염은 결국 혈교 천하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시대를 포기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봉인하기로 했었다.

그랬었는데….

‘두 번째 삶에서 만나게 된 놈들이 하필….’

오백 년이나 잠들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었지만, 깨어난 시대가 그 언제라 해도 과염은 자신이 그 시대의 천하제일인일 것임을 절대 의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그녀가 깨어났던 운남성에서 처음 대적하게 된 적수들은 남천무왕 자강이라는 자와 주작패검왕 여극천이란 자였다.

둘 모두 화경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고수들로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자들이긴 했다.

하지만 과염은 그 둘 정도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시대는 이제 정파인들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사분오열해 있던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전 무림의 정파인들을 상대로 홀로 싸울 필요는 없었고, 과염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두 사람이 그 시대의 최강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과염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뇌신과 검신, 신화경에 달한 그런 괴물들이 둘이나 있었을 줄이야….’

그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시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살짝 몸이 떨려왔다.

신화경에 도달한 괴물이 하나도 아닌 둘.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신과 무신까지 넷이나 있었으니 도저히 승산이란 게 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필 깨어나도 그런 시대에 깨어나 버리다니….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던 해청연은 곧 그 기억들을 떨쳐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악몽과도 같았던 그 괴물들은 이제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검신의 흔적마저도 자신이 깨끗이 지워 버리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시대는 자신의 것이었다.

아니,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

반드시….

해청연은 눈을 번뜩이며 각오를 다졌다.

‘오늘, 이곳에서 이 시대의 수준을 확인한다. 이 시대에 혈교천하를 방해할 만한 실력자가 있는지를….’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문득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지존이시여, 전무광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이는 바로 무림맹의 군사였던 제갈지강이었다.

그는 이 시대의 혈교도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과염만의 섭혼술에 의해 그녀의 완전한 추종자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그러자 해청연이 아름다운 눈을 돌려 그를 흘겨보며 물었다.

“왜? 그놈 없이는 안 될 것 같으냐?”

그 물음에 화들짝 놀란 제갈지강이 급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어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존이시여! 속하는 다만 놈이 혹시라도 많은 세력을 이끌고 올까 봐….”

그러자 잠시 제갈지강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해청연이 다시 수평선 멀리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너는 천하제일을 자부하는, 혹은 천하제일을 노리는 무인들의 심리를 잘 모르는구나. 놈은 결코 일대일의 승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무광 그놈이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기다린단 말이냐? 설풍이란 놈이 내 존재를 알고 있을 테니 사왕련부터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던 건 바로 네 녀석이 아니었더냐?”

그 말에 제갈지강은 고개를 땅에 처박을 듯 굽히며 사죄했다.

“용서하십시오, 지존. 속하는 그저 지존을 위하는 마음뿐이옵니다.”

해청연은 그의 절절한 말에 그저 코웃음을 쳤다.

놈이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로선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그래서 잠시 그냥 죽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해청연은 곧 그 생각을 버렸다.

적어도 무림맹을 완전히 접수할 때까진 그래도 살려 둬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해청연은 먼 수평선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늦는군. 함정을 팔 거라는 생각조차 안 한다는 건가?”

해청연은 지금 이곳 홍택호 기슭에서 사왕 괴갈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무림맹주 모용검의 이름으로 보낸 도전장에 그가 응답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무림맹주 모용검을 제압하자마자 바로 사왕 괴갈현에게 도전한 이유는 사왕련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제갈지강의 조언 때문이었다.

무림맹과 대등한 거대 세력 사왕련의 주인이기에 혈교천하에 가장 방해가 되는 존재인 데다, 그때 죽이지 못한 선우진이란 놈이 사왕의 후계자라는 설풍의 친우이니 놔두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자신이 역천혈마 과염이라는 것까지야 놈이 알 수 없겠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왕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녀에겐 그 이유 말고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당금 천하의 이인자라는 놈의 실력을 확인해 본다면 이 시대의 수준도 파악할 수 있겠지.’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뇌신과 검신의 시대를 한번 겪어본 그녀이기에 이 시대에도 혹시 또 다른 괴물이 있을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왕이란 놈이 혹시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도 해 놓은 상태였다.

‘전무광 그놈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당대의 혈마 전무광은 혈교천하를 위해 스스로의 무위를 높여야 한다며 자기의 몸을 혈마인으로 바꾸는 대법을 시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사실 그녀는 처음엔 전무광의 결정을 비웃었었다.

말이 좋아 혈마인이지 결국 스스로의 몸을 활강시로 만든다는 얘기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혈마인이 된 결허사태와 마원웅의 무위를 확인해 본 지금은 아니었다.

그 효과는 육백 년 전부터 살아왔던 그녀에게도 충분히 놀라운 것이었다.

‘고작 초절정에 불과했던 자들을 혈마인으로 만들었다고 화경 초입과 대등해지다니….’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시대의 절대자급인 실력자들을 양산해 낼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이젠 그녀도 혈마인이 된 전무광이 어느 정도로 강해져서 돌아올지 살짝 기대가 될 정도였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보다 더 강해질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해청연의 심장에 가해진 금제는 영원히 풀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자신이 놈에게 영원히 종속된다는 얘기.

그런 생각을 한 그녀는 기분이 나쁜 동시에 약간 설레기도 하는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전무광이 혈마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에는 자신의 존재도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강해져서 자신을 완전히 제어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해청연을 범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는 지난번에도 해청연의 몸을 범하고 싶어 눈이 벌게져 있지 않았던가?

그때는 금제를 이용할 방법밖에 없어 포기한 것 같았지만 만약 자신보다 강해진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문득 색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나보다 강한 자에게 강제로 범해진다라…. 그거 기대되는데?’

어쩐지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혀로 입술을 핥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해청연의 영혼만큼은 완전히 삼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순결한 그녀는 그 상황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녀가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제갈지강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존! 놈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필요 없었다.

그녀도 이미 그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택호의 수평선 너머로 거대한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돛대 위에서 휘날리는 붉은 깃발과 거기에 쓰인 ‘사왕련’이라는 웅장한 검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해청연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너라. 당대의 천하제이인자여.”

***

사왕 괴갈현은 뱃머리에 선 채 호숫가에 서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에 서 있는 자는 바로 자신에게 도전장을 보냈던 무림맹주 협왕 모용검.

하지만 사왕의 눈은 그의 뒤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 해청연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저게 바로 역천혈마인 모양이로군.’

이제 항시 앞머리를 넘겨 얼굴을 드러낸 그녀의 외모는 과연 천하제일미라고 할 만했다.

그녀에 비한다면 사왕이 이제껏 봐왔던 미인이라고 불렸던 여인들의 외모는 더 이상 ‘미’자를 붙여줄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경국지색.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미색이었다.

하지만 사왕은 그녀의 외모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육백 년 전부터 최강의 혈마라고 불렸다는 그녀의 무위만이 궁금할 뿐이었다.

사왕은 한순간 뱃전 위 허공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아직 배가 호숫가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았을 시점이었다.

그는 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허공을 뜬 채 그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경지에 달한 능공허도의 신법이었다.

잠깐만에 호수를 건너 그들의 머리 위에 도착한 사왕은 모용검의 앞으로 급강하했다.

탁!

그러자 모용검은 눈을 부릅뜬 채 바로 눈앞에 나타난 사왕을 바라보았다.

애써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커다랗게 확대된 눈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가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괴갈현….”

사왕 괴갈현은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모용검을 바라보더니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싶었건만, 역시나였군. 모용검 너 따위가 내게 결투를 신청했을 리가 없지. 그렇다고 나를 암살해 사왕련과 전쟁을 벌일 만한 배짱도 없을 것 같고…. 누구냐? 이 나를, 사왕을 불러낸 자는?”

그렇게 물은 사왕의 눈은 바로 앞의 모용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그 한 명, 한 명이 천하삼십육성급 고수라는 모용검의 사대호위들을 지나, 모두가 내공 팔십 년 이상의 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맹주호위대인 신검대를 스치고는, 마침내 뒤에 제갈지강과 두 명의 가면을 쓴 남녀를 대동하고 있는 해청연에게서 멈췄다.

사왕이 빙긋이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소저인가?”

그러자 해청연이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노려봤다.

설풍의 친우인 선우진으로부터 혹시라도 무슨 소식을 전달받게 될까 봐 먼저 처리하려 했던 건데 아무래도 이미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자신이 역천혈마라는 사실까지야 아직 알 방도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직 자신에 대한 정보가 풀리는 건 곤란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혈교의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지면 무림맹을 장악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당장 이곳에 와 있는 모용검의 호위들도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검성 해운백의 딸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해청연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사왕의 말에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검성의 여식인 해청연이라고 합니다. 말학 후배 해청연이 사왕 어르신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우아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해청연을 사왕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역천혈마는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왕은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선우진이었다면 그 상황을 이용해 공략해보려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왕은 그런 종류의 싸움에는 별로 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가 자신 있는 싸움을 하기로 했다.

바로 무력으로 부딪치는 싸움을 말이다.

그가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동시에 그의 주먹에 집중된 강기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해청연은 모용검에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 뭐 하는 거냐?! 그를 쳐!

모용검은 현재 해청연에 의해 금제를 당한 상태였다.

혈마 전무광이 해청연의 심장에 한 것과 같은, 명령을 듣지 않으면 심장을 터트려버릴 수 있는 금제였다.

물론 제갈지강처럼 섭혼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리 혈교 최강의 역천혈마라 해도 화경의 고수를 섭혼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이를 악문 모용검이 자신에게 등을 보인 사왕을 향해 소리치며 발검했다.

“나를 우습게 보느냐?!”

츄하아악!

하얗게 빛나는 짙은 강기로 인해 마치 빛으로 이루어진 듯한 그의 검이 사왕의 등을 그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사왕은 방어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됐다!’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검을 끝까지 휘두른 모용검은 득의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사왕이라 해도 호신강기도 쓰지 못한 채 기습을 당하면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모용검은 사왕 괴갈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려 자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광경을 보고는 경악하고 말았다.

그의 눈이 커다랗게 확대됐다.

사왕은 무심하게 말했다.

“거기 있었나? 미안하군. 잊어버리고 있었다네.”

모용검은 문득 흠집 하나 없는 사왕의 옷을 보고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호신강기를….’

사왕은 방금의 그 짧은 순간 호신강기를 아주 얇게 방출했었던 모양이었다.

그의 옷까지만 포함될 정도로 얇게 말이다.

근데 그런 얇은 호신강기가 자신의 전력을 다한 기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낸 것이었다.

꿀꺽!

모용검은 새삼 그가 끔찍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만 했다.

그는 질린 표정을 지으며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속도로 뒤로 물러섰다.

파박!

모용검의 마음속이 깊은 후회로 가득 찼다.

역시 저런 괴물을 상대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고 속도로 오장 밖으로 물러섰던 모용검은 무표정한 사왕의 얼굴이 자신으로부터 전혀 멀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핼쑥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저렇게 꼿꼿이 선 채로?!’

그러자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은 채 모용검의 최고 속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왔던 사왕은 아까부터 쥐고 있던 주먹을 살짝 들어올렸다.

강기가 집중돼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그의 주먹이 모용검의 눈에 크게 들어오고 있었다.

“훕!”

기합도 크게 지르지 않은 사왕의 주먹이 모용검에게 쏘아졌다.

평범해 보이는 일격.

하지만 모용검은 그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하아아압!”

콰아아아앙!

“크으윽!”

사왕의 주먹과 모용검의 검이 충돌하자 굉음과 함께 모용검의 신형이 빛살처럼 튕겨 나갔다.

“으그그극!”

모용검은 이를 악물었다.

그 엄청난 경력에 이대로는 땅을 뒹굴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절대 그런 꼴사나운 모습이 될 수는 없었다.

“으아아압!”

찌이이이익!

발을 땅에 박은 채 한참을 밀려 나갔던 모용검은 간신히 신형을 멈출 수 있었다.

그의 발이 끌렸던 땅이 눈앞에서 깊게, 그리고 길게 자국을 남긴 채 파여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모용검은 문득 자신의 검날을 바라봤다가는 곧 넋 나간 표정이 되고야 말았다.

잠시 강기를 풀자 그의 검날이 모래처럼 부서져 산산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파스스스!

이 모든 게 단 한 번의 충돌만으로 일어난 결과였다.

두 사람의 무력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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