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화 결전-4
파지지지직!
남해성녀 시서우는 푸른 전격이 전방 공간을 가득 채우자 춤을 추듯 유려하게 원을 그리며 순식간에 측면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녀가 방금 있던 곳으로 마원웅의 검과 함께 푸른 번개가 폭격을 가해왔다.
콰콰콰콰쾅!
혈교의 절기 혈뢰검결의 위력은 과연 굉장했다.
전격의 색이 푸른색인 걸 보면 혈교의 내공이 아닌 점창파의 북명신공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원래 남궁세가의 검법이었던 것을 변형시켜서 그런지 정파의 내공심법에도 무리 없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선우 공자에게 미리 얘기를 듣지 않았었다면 꽤나 고생했겠구나. 하지만!’
시서우는 마원웅의 측면을 향해 빛살처럼 돌진했다.
푸른 전격들은 이제 그녀의 몸 주변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호신강기에 막혀 더 다가갈 수 없었다.
차앙!
마원웅은 시서우의 쾌검을 간신히 막아 내고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그대로 몰아치면 이대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을지도 모를 상황.
하지만 시서우는 마원웅에게 돌진하는 대신 뒤쪽으로 은빛 강환 하나를 날렸다.
뒤쪽에서 싸우고 있는 또 다른 혈마인 결허 사태를 향해서였다.
슈아앙!
그러자 막 용우신을 향해 백색 전격을 휘두르려던 결허 사태가 황급히 검을 휘둘러 은빛 강환을 막아 냈다.
터엉!
그러자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용가주 용우신이 귀멸육합검진을 펼치고 있는 육합검수들의 옆쪽으로 신속하게 물러섰다.
살짝 위험했던 상황을 벗어나자 그는 급박한 와중에도 시서우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잊지 않았다.
그 순간 시서우의 강환을 방어하느라 잠시 멈칫했던 결허 사태가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를 막은 건 육합검수들이었다.
쉬이이익!
터엉!
두 명의 육합검수들은 힘을 합쳐 결허 사태의 백색 검강을 방어해 낼 수 있었다.
육합검수 다섯 명의 공력이 그 두 명에게 집중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혈뢰검결로 인해 주변 공간을 가득 채운 전격이었다.
파지지지직!
“으으윽!”
“크윽!”
백색의 전격이 환하게 발광하며 그들을 지지자 육합검수들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동급인 화경의 고수들이었다면 호신강기로 쉽게 막아 낼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화경의 고수가 아니었다.
경지가 떨어지는 그들에게 있어 혈뢰검결의 전격은 악몽과도 같았다.
파지지지직!
“끄으윽!”
“으그극!”
육합검수들은 결국 검진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호신강기를 방출해 전격을 막자니 공력 소모가 너무 극심했고, 그렇다고 그냥 몸으로 버티기엔 위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육합검진이 흐트러지자 결허사태는 망설이지 않고 이격을 날렸다.
앞을 막아섰던 두 명의 검수들에게로였다.
쉬이이익!
그 순간이었다.
육합검수들의 뒤에 숨어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설풍이 맹수처럼 튀어 나갔다.
“하아아압!”
붉은 흉광을 뿜어내는 눈, 용권풍처럼 맹렬히 회전한 그의 호조수가 붉은 유성처럼 결허 사태의 측면을 후려쳤다.
적안광혈공과 전륜박으로 증폭된 강격이었다.
“!”
콰아아아앙!
결허 사태는 황급히 검을 들어 설풍의 강격을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충격에 뒤로 튕겨 나간 것까진 그녀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점을 노린 강격인 데다 설풍의 모든 절기가 더해진 일격이 화경급의 무위를 자랑하는 결허 사태마저도 날려버렸던 것이었다.
게다가 공격한 건 설풍만이 아니었다.
그 순간 뒤로 튕겨 나간 결허 사태의 등 뒤로 용우신의 검강이 빛살처럼 찔러 오고 있었다.
쉬이이익!
결허사태는 황급히 백색 호신강기를 방출해 그것을 방어했다.
투우웅!
그러자 공격에 실패한 용우신은 바로 몸을 날려 다시 육합검수들의 뒤로 물러섰다.
귀멸육합검진으로 공격을 막고 설풍과 용우신이 그 틈을 노리는 전법이었다.
지금껏 그들은 이 전법으로 화경급의 무위를 지닌 결허 사태를 막아 낼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간간이 시서우가 검환을 날려 지원해 주고 있기에 아직까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용우신이 결허 사태를 주시한 채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저놈의 혈뢰검결만 아니었다면 훨씬 편하게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것참 짜증 나는 검법이로군.”
그 말에 역시 결허 사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설풍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화경급 고수를 상대로 이 정도면 양호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였다.
설풍의 귓가에 전음이 들려왔다.
- 련주, 오 장 안쪽으로 접근했습니다.
그 말에 설풍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전음의 주인공은 전대 사왕 괴갈현의 친우이자 그림자였던 표영도군 맹휘염이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사왕련주가 된 설풍의 그림자가 되기를 자처했고 그래서 이곳까지 따라온 상태였다.
하지만 설풍은 그에게 전투에 참전하기보다는 은신한 채 기회를 노리도록 지시했었다.
그는 근접전에서도 천하삼십육성급 고수들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였지만 은신 능력은 그보다도 더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은신한 채 결허 사태의 등 뒤를 향해 아주 조금씩 천천히 접근해 오고 있던 중이었다.
육합검진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버티고 있고 그들을 상대하는 결허 사태의 위치 또한 많이 변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풍이 역시 전음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 조금 더 가까이, 삼 장 안쪽으로 접근해 대기해 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련주.설풍은 그에게 바로 공격하기보단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지시했다.
습격의 성공률을 보다 높이기 위함과 동시에 아직 이 싸움을 끝맺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건 이쪽이 아닌 검성 어르신과 진 아우 쪽이니까.’
설풍은 이 전투의 향방이 자신들의 싸움이 아닌 역천혈마 쪽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괜히 변수를 주는 것보단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설풍은 결허 사태와 싸우는 와중에도 해청연과 선우진 쪽으로 감각을 활짝 열어 놓은 상태였다.
그때였다.
그의 귀에 문득 해청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버지.”
“!”
그 목소리에 설풍은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돌려 그녀 쪽을 바라봤다.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심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직접 보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직접 눈으로 본 해청연의 표정은 무척 괴로워 보였다.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쥔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버지 검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인가?!’
설풍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쪽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자 검성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청연아!”
그녀의 괴로운 표정을 본 검성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서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진은 눈을 번뜩였다.
지금 저 상황이 해청연의 의식이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 맞다면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청연을 향해 소리치고는 바로 몸을 날렸다.
“조금만 더 버텨 주시오, 소저!”
선우진의 신형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해청연을 향해 쏘아졌다.
홍연검을 해청연의 심장 쪽으로 겨눈 채였다.
이 검을 그녀의 심장에 꽂을 수만 있다면 역천혈마를 몰아내고 그녀를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쉬이이이익!
하지만 홍연검의 검 끝이 해청연의 근처까지 찔러갔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선우진의 몸이 허공에 우뚝 멈추고 말았다.
“!”
선우진은 엄청난 힘에 꽁꽁 묶인 듯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미 한번 겪어 봤던 감각이었다.
“무형지기!”
그랬다.
해청연의 무형지기가 선우진의 몸을 허공에서 붙잡아 버렸던 것이었다.
선우진은 이를 악문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언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냐는 듯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 보렴, 청연아. 자기를 믿으라던 작자가 틈을 보이자마자 네 심장을 찌르려고 하는구나. 참으로 추악한 작자가 아니더냐?”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검성 해운백이 황급히 달려들려 했다.
“안 돼!”
하지만 그 순간 해청연의 한쪽 손에서 거대한 손바닥 모양의 강기가 그를 향해 방출됐다.
혈교의 절기 폭뢰혈장이었다.
“!”
콰아아아앙!
“크윽!”
검성은 그 강력한 경력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해청연은 그런 그를 보고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쯧, 심지어 네 아비조차도 널 죽이려는 걸 막지 않는구나. 아마 네 아비는 널 버린 모양이다. 알량한 천하를 위해 딸을 버리겠다는 거지. 참 멋진 협객이 아니더냐? 쯧쯧, 불쌍한 것.”
해청연을 동정하듯 말을 하는 그녀를 보며 선우진은 방금 그녀가 보였던 행동이 덫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역천혈마가 자신과 검성의 습격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해청연인 척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당하다니….’
갑작스럽게 온 기회에 당황해 너무 서둘렀던 게 패인이었다.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것이었다.
‘젠장!’
선우진은 으득 이를 갈았다.
그러자 해청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히 우리 청연이의 마음을 가지고 논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까지 하다니, 이젠 청연이가 아무리 말려도 널 살려줄 수 없겠구나.”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즐거워 보이고 있었다.
이제 선우진을 죽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녀의 검지손가락이 공중에 둥둥 뜬 선우진의 머리를 향했다.
그러자 묵랑이 급히 소리쳤다.
- 이제 어쩔 수 없네, 진! 나를 현신시키게!
선우진은 이를 악물었다.
묵랑의 말대로 이젠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선우진의 묵랑의 현신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의 감각이 어쩐지 아직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청연 소저!”
그러자 해청연이 잠시 움찔했다.
또다시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선우진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를 믿으시오, 소저! 나는 절대로! 절대로 소저를 포기하지 않소!”
그 순간 해청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헛소리를….”
분노한 표정이었다.
당장이라도 선우진을 죽일 것 같은 표정.
하지만 그 표정과 달리 자신의 머리를 향했던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걸 선우진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해청연의 의식은 그녀의 육신 속에서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역천혈마의 영혼의 격은 해청연보다 훨씬 높았고, 그렇기에 같은 몸 안으로 들어온 역천혈마의 영혼은 해청연에게 있어 마치 광폭한 폭풍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압도적인 영혼의 폭압 앞에서 해청연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버텨 내는 것뿐이었다.
이성은 파편이 되어 깎여 나갔고 시야는 조각난 꿈결처럼 몽롱했다.
이성적인 판단은커녕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만도 벅찬 상황이었다.
몸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그녀의 시야는 늘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곳에서 그녀는 너무나도 외롭고 무서웠다.
거기서 들을 수 있는 건 오직 역천혈마의 목소리뿐이었다.
‘청연아, 네 곁엔 이제 나밖에 없단다. 너를 위해 주는 건 오직 나뿐이야. 네 아버지도, 그 선우진이란 놈도 아니란다. 그들은 너를 버렸을 뿐이잖니? 하지만 나는 절대 널 버리지 않는단다. 너와 한 몸이 된 나는 절대 너를 버릴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달콤한 독이라는 걸 해청연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한때는 그랬었다.
하지만 쓸려나간 이성과 아무것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외로움과 공포 속에서, 그녀는 점점 더 그 목소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마저 없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공간 속에서 해청연은 잔뜩 움츠린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싫어. 추워. 외로워. 무서워. 아버지도, 선우진도 나를 버렸어. 이제 내게 남은 건 오직 그녀뿐이야. 이제 그녀와 하나가 되어야….”
그렇게 그녀는 점점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귀에 아주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청연 소저!
해청연은 자기도 모르게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계속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를 믿으시오, 소저! 나는 절대로! 절대로 소저를 포기하지 않소!
그 순간 해청연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선우… 공자?”
그랬다.
선우진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그가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아아아!”
하지만 아직 육신의 제어권을 갖고 있는 건 역천혈마였다.
그녀가 해청연을 꾸짖듯 소리쳤다.
- 이 바보 같은 계집! 그렇게 배신을 당하고도 부족하더냐?!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저자가 무슨 짓을 했지?! 널 버리고 다른 여인과 장래를 약속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방금 했던 짓을 기억해 봐라! 자기를 믿으라 해 놓고 바로 너를 죽이려 하지 않았느냐?! 또 저자에게 속을 셈이냐?!
그러자 해청연은 방금 들은 그 얘기의 기억들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선우진은 자신이 혈교에 붙잡혀 있을 때 당여은과 장래를 약속했고 심지어 방금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고 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해청연은 다시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또 그에게 속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역천혈마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 그래, 그래야지. 현명한 네가 저런 자에게 또 속아서야 되겠느냐? 이젠 나와 있자꾸나. 내가 영원히 너를 보호해 줄 테니.
해청연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녀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역천혈마는 그런 그녀의 영혼을 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이대로라면 오히려 더 빨리 그녀의 영혼을 먹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선우진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가 끓는 듯한 절절한 목소리였다.
“청연아!”
그 순간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가던 해청연의 눈이 번쩍 빛을 되찾았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버지?!”
해청연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검성 해운백이 달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잠깐 육신의 제어를 되찾은 해청연이 외쳤다.
“아버지!”
***
“아버지!”
갑작스러운 해청연의 외침에 선우진과 해운백은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엔 가짜가 아닌 진짜 그녀라는 걸.해운백과 선우진이 다시 절절하게 외쳤다.
“청연아!”
“청연 소저!”
그 순간이었다.
해청연의 손바닥이 해운백을 향했다.
퍼어엉!
갑작스럽게 뿜어낸 붉고 거대한 손, 폭뢰혈장이었다.
그 기습적인 공격에 무방비로 달려오던 해운백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해운백은 황급히 호신강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붉고 거대한 손바닥이 그 위를 강타했다.
퍼어어엉!
“커헉!”
해운백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다시 뒤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급하게 방어했기에 호신강기로 막았음에도 내상을 입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자 해청연이 표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안 죽였어! 네 아버지는 멀쩡해! 너무 놀라 잠시 밀어낸 것뿐이야!”
역천혈마 과염은 지금 마음이 급해진 상태였다.
거의 다 먹었다고 생각했던 해청연의 영혼이 갑자기 다시 되살아나 길길이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으로 억지로 육체의 제어를 빼앗아오긴 했지만 이대로는 곤란했다.
‘어떻게든 저것들을 처리해야!’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여전히 무형지기에 묶인 채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선우진에게로 향했다.
일단 저놈부터라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선우진을 보며 외쳤다.
“저놈을 죽여야겠다! 설마 아직도 바보처럼 너를 죽이려고 했던 저놈을 살려 둘 생각은 아니겠지?!”
그러자 해청연의 영혼도 순간 멈칫했다.
선우진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역천혈마는 그 틈을 놓칠 수 없었다.
바로 선우진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이 위선자!”
해청연과 역천혈마는 자기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봤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바로 기억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동시에 목소리 주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 당여은?
“당여은?”
그녀는 바로 당여은이었다.
숲속에 숨어 있던 그녀가 어느새 밖으로 나와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해청연, 넌 위선자야! 뭐?! 그를 사랑한다고?! 웃기지 마!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살심을 품는 게 무슨 사랑이야! 그가 왜 나를 택했는지 알아?! 나는 그가 너를 택한다 해도 여전히 그를 사랑했을 거니까! 네 사랑은 가짜야! 너도 마찬가지고!”
그러자 해청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천혈마와 해청연이 지금만큼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짜증 나.
“짜증 나.”
그녀의 손가락은 이제 선우진이 아닌 당여은 쪽을 가리켰다.
당장이라도 죽여서 조용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자 그걸 본 당여은은 죽음을 각오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선우진이 절박하게 소리쳤다.
“안 돼!”
그 순간이었다.
해청연의 등 뒤, 그림자에서 갑자기 한 명이 튀어나와 그녀를 덮쳤다.
공간을 찢고 나타난 듯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쿡!
“됐어!”
해청연은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뒤까지 접근할 수 있는 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놈이…!”
***
비사영이 움직이기로 결정했던 건 선우진이 해청연의 무형지기에 붙잡혔던 순간이었다.
“저 바보가…!”
자신의 실력으로는 저 괴물의 일초지적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위기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비사영은 옆에서 창백해진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당여은을 향해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 당 소저, 제가 신호하면 딱 한 번만 저 괴물의 주의를 좀 끌어주시오. 아주 잠깐이면 되오.
그의 뜬금없는 말에 당여은은 놀라 반문했다.
- 네?
하지만 비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은신한 채 밖으로 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승인 광협검괴도 인정했던 신법과 은신술을 이용해 아주 천천히 해청연의 등 뒤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
해청연의 등 뒤 혈도를 점하는 데 성공한 비사영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탈했다.
비록 혈도를 점했다 해도 저 괴물에게 통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한 건 자신의 친구에게 아주 잠깐의 틈을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다.
비사영에 의해 혈도가 점해진 해청연은 바로 무형지기를 이용해 혈도를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해청연의 무형지기는 아주 잠깐 선우진의 구속을 풀고 말았다.
그러자 공중에서 자유로워진 선우진은 몸이 땅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바로 홍연검을 던졌다.
있는 힘껏, 해청연의 심장을 향해서였다.
지금 이 순간을 절대 놓칠 수 없었다.
“하아압!”
쉬이익!
찰나의 시간, 지근거리에서 날아간 홍연검이 혈도가 점해진 해청연의 가슴을 꿰뚫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흥!”
홍연검이 닿기 직전, 해청연은 혈도를 풀어냈다.
그녀가 급히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아압!”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붉은 장막이 뿜어져 나왔다.
호신강기였다.
화아아악!
아주 찰나의 차이였다.
홍연검이 가슴에 닿기 직전 호신강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그녀는 다시 환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소용없…!”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홍연검이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꿰뚫었다.
푸우욱!
“커헉!”
경악한 그녀는 커다래진 눈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우진의 검이 자신의 호신강기를 너무도 부드럽게 꿰뚫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화경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그로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이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비조검해다. 역천혈마.”
비조검해.
형산파의 전 장문인 위정국에게서 얻어낸 과거 천하제일인의 무공이었다.
그것을 이용해 드디어 홍연검을 해청연의 가슴에 박아 넣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