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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전선 비룡십삼대-354화 (354/359)

354화 결전-6

해청연의 말을 들은 당대의 혈마 전무광은 눈에 이채를 띠고는 되물었다.

“검신이라고? 백 년 전의 그 검신을 말하는 건가?”

그러자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윗사람을 대하는 말버릇이 고약하구먼. 역시 짐승만도 못해서 그런가?”

그의 대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전무광은 이번엔 해청연 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자 해청연이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선우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검신의 망령이다. 그 빌어먹을 놈이 자신의 기억을 후대에 남긴 것 같더구나. 영혼이 아닌 기억만 남겼기에 과거만큼의 무위를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꽤나 귀찮았었다. 지난번에 한 놈 죽인 걸로 끝일 줄 알았더니만….”

그녀의 말에 전무광은 이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선우진에게 말했다.

“그랬군. 그런데 그런 수준이라면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 말에 선우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샤악!

“음?!”

다음 순간 전무광은 한 손을 내밀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바닥에서부턴 핏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 떨어져 내렸다.

투둑!

핏물이 흐른 이유는 선우진의 묵랑검이 그의 손바닥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그가 극한의 속도로 찌른 검격을 전무광이 막아 냈던 것이었다.

선우진은 빙긋이 웃으며 전무광에게 물었다.

“손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던 게 아니었던가? 그런 줄 알고 좋아했더니만.”

방금 선우진은 검신의 점멸보에 점창파의 일시사일을 더해 전무광을 기습했었다.

그야말로 찰나라고 할 수 있는 극쾌속의 검격.

그걸 막아낸 전무광의 표정에선 이젠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전무광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묵랑검의 검날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진은 이미 오 장 밖으로 물러선 상태였다.

자유자재의 점멸보였다.

그러자 전무광이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과연, 망령에 불과해도 검신은 검신이라는 거로군. 좋아, 한번 상대해 보지.”

전무광은 한 손으로 붙잡고 있던 해청연을 무형지기를 이용해 공중에 띄워 척강에게 보냈다.

“그녀를 잘 지키고 있거라.”

“존명!”

그는 이제 양 주먹을 우득 소리가 나도록 쥐고선 사납게 웃으며 선우진에게로 걸어갔다.

“자, 제대로 붙어 보자. 검신이여.”

선우진, 검신은 무심한 눈빛으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는 전무광을 바라봤다.

그가 오든 말든 그다지 상관없다는 듯한 여유로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실제 그의 마음속은 전혀 무심하지 않았다.

검신이 마음속으로 신음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 거대하군.

그랬다.

전무광은 너무도 거대했다.

육신이 아닌 존재감이 그랬다.

마치 머리가 하늘에 닿은 거인이 거대한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머리 위로 발을 내딛고 있는 것만 같은 위압감이었다.

자신이 살아있었다면 절대 느껴 보지 못했을 압도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

게다가 그를 압박하고 있는 건 전무광만이 아니었다.

- 남은 시간은 대략 반 각 정도인가?

그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현신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반 각 정도, 그 시간 안에 놈을 처리할 수 없다면 검신은 선우진을 홀로 둔 채 영원히 사라져야만 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선우진은 아마도 저 괴물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었다.

그 모든 압박감 속에서 검신은 눈을 번뜩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사라졌다.

다시 한번의 점멸보였다.

그 순간 전무광의 측면에 나타난 선우진이 검을 베어갔다.

일시사일 못지않은 극쾌의 베기, 해남진가의 진룡검법이었다.

- 나도 명색이 ‘신’의 호칭을 받은 사람이거든!

샤아아악!

그의 속도는 그야말로 가공하다 할 만했다.

지난번 마유겸이 보여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놀라운 속도, 해청연 또한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초절정에도 이르지 못했던 마유겸과 달리 선우진의 무위가 천하삼십육성급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선우진의 육신을 움직였음에도 검신이 벨 수 있었던 건 이번에도 전무광의 손바닥뿐이었다.

검신의 움직임에 반응한 전무광이 손바닥을 내밀어 검을 받아냈던 것이었다.

찌이이익!

심지어 진룡검법에 베인 전무광의 손바닥은 그저 살짝 갈라진 상태였다.

호신강기를 방출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그걸 본 검신은 내심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내구도로군.’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순간, 전무광의 손에 있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거의 재생에 가까운 치유력이었다.

“으하하하하!”

전무광은 웃음을 터트리며 반대 손의 수도를 사선으로 내리쳤다.

쿠콰콰콰콰콰콰!

수도로 가른 공간이 순간 진공 상태가 될 만큼이나 강렬하고 빠른 일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선우진의 신형은 이미 그곳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샤악!

사라짐과 동시에 전무광의 뒤에 나타난 선우진이 그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빛살이 된 검격, 또 한 번의 일시사일이었다.

쉬이이익!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전무광이 짧게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압!”

그러자 폭풍처럼 거센 기파가 그의 몸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갔다.

검을 찔러가던 선우진마저 휘말려 뒤로 날려가 버렸을 정도였다.

화아아악!

“크으윽!”

전무광은 바로 뒤돌아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선우진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으하하하! 빠르기만 모기 같구나!”

그 말에 선우진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 나쁘게도 거의 정확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속도로는 압도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유효한 타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선우진은 일단 다시 피하기 위해 땅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 순간 전무광의 손이 천수관음처럼 수백 개로 분열했다.

“어디 이것도 피해 보거라!”

파바바바바바박!

그 순간 전무광의 분열한 팔들로부터 붉은 손 그림자 수백 개가 우박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혈교의 절기 천환마장이었다.

한 방으로 맞추는 대신 범위 전체에 공격을 흩뿌려 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선우진을 상대로 꽤나 정확한 대응방법이었다.

전무광이 선우진의 공격에 거의 타격이 없는 것과는 달리, 선우진은 상대의 가벼운 공격 한 방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반경 오 장 정도가 붉은 수강에 의해 뒤덮이자 선우진은 움직이지 못했다.

점멸보로는 그 이상의 범위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크흐흐흐흐!”

전무광은 비릿하게 웃음 지었다.

아무래도 이걸로 끝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선우진의 몸이 한순간 연보라빛 태양처럼 찬란하게 발광했다.

선우십삼검 십삼 초

환검경

선우십삼검 십오 초

공즉시색

화아아아악!

그러자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던 수강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태양빛처럼 뻗어 나간 수백, 수천 개의 연보라빛 환검들이 실체화되어 수강을 요격해 버렸던 것이었다.

퍼퍼퍼퍼퍼퍼펑!

그것은 실로 놀라운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전무광은 거기에 감탄만 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공격이 무력화될 것 같자 바로 뛰어올라 다음 공격을 전개했던 것이었다.

“하아아압!”

선우진이 아직 붉은 수강들을 터트리고 있을 때 허공에서부터 이 장도 넘는 거대한 붉은 손 그림자가 그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혈교의 절기 폭뢰혈장이었다.

쿠콰콰콰콰콰콰!

그것은 마치 손오공을 누르는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보는 듯 거대했다.

금방이라도 개미처럼 짓눌려 버릴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선우진의 검법 또한 변화했다.

남십자검 절초

관해십자격

촤아아악!

연보라빛으로 빛나는 열십자 검격이 붉은 손바닥에 십자선을 그었다.

바다를 열십자로 꿰뚫어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던 남해검왕 인중호의 전설이 담긴 검격이었다.

그러자 살짝 틈이 벌어지는 듯했던 붉은 수강은 이내 쩌억 갈라지더니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앙!

그걸 본 전무광의 표정은 이제 무섭게 일그러졌다.

“이놈!”

그는 바로 추락하듯 떨어지며 선우진을 향해 정권을 쏘아냈다.

하지만 선우진의 신형은 어느새 다시 사라져 오 장 밖에 나타난 상태였다.

목표를 잃은 전무광의 정권은 허무하게 땅을 부쉈을 뿐이었다.

콰아아아앙!

선우진이 그 모습을 보고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짐승인 줄 알았더니 벌레였군. 굼벵이였어.”

전무광은 분노했다.

검신의 현신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걸 모르는 그로서는 이런 식으로 싸움이 길어지는 게 전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압도적으로 놈을 짓밟아 버리고 싶었다.

그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 언제까지 빠져나갈 수 있나 한번 보자.”

그렇게 말한 그는 기합을 내질렀다.

“으아아압!”

그러자 그의 전신에서 붉은 혈룡 모양의 강기 아홉 개가 뿜어져 나왔다.

혈교의 최강 절기 구천혈룡마공이었다.

크롸라라라라락!

그의 온몸에서 뻗어 나간 아홉 개의 혈룡은 바로 달려들지 않고 선우진을 향해 잔뜩 도사리고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독사와도 같은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본 선우진이 중얼거렸다.

“구천혈룡마공.”

사왕과 역천혈마의 결전을 옆에서 지켜봤던 맹휘염 덕분에 저런 식으로 구천혈룡마공을 운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검신이 직접 과거에 역천혈마와 싸워 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혈룡의 돌진에 대비하고 있던 선우진은 다음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에서 혈룡을 날려 공격했던 역천혈마와는 달리 전무광은 자신이 먼저 직접 돌진해왔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하하!”

전면으로 거대한 손바닥이 짓누를 듯 돌진해왔다.

폭뢰혈장이었다.

“흥!”

선우진은 코웃음을 치며 오 장 밖으로 신형을 이동시켰다.

샤아악!

그러자 그 순간 바로 옆에서부터 거대한 혈룡 한 마리가 그에게 돌진해왔다.

이미 아홉 마리의 혈룡이 각각 범위를 나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크롸롸롸롸라!

선우진은 황급히 다시 몸을 날려 혈룡을 피했다.

“큭!”

그의 옆으로 거대한 혈룡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공격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무광이 바로 직접 돌진해 왔던 것이었다.

“으하하하하!”

“이런!”

선우진은 다시 그를 피해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전무광이 먼저였다.

“죽어랏!”

한순간 그의 붉은 손톱이 쭉 뻗어 나왔다.

혈교의 절기 혈귀마조였다.

쉬이익!

장창처럼 길게 뻗은 손톱 모양의 강기는 결국 선우진의 몸을 창끝처럼 꿰뚫는 데 성공했다.

푸우욱!

드디어 적중한 것이었다.

전무광은 환호성을 질렀다.

“잡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선우진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스르륵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잔상이었다.

“음?!”

전무광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선우진의 신형을 찾았다.

‘후방 오 장!’

그와 동시에 거대한 혈룡 한 마리가 선우진의 신형을 덮쳤다.

이미 주변에서 도사리고 있던 혈룡들이었기에 조금도 틈을 주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혈룡의 거대한 입이 선우진을 삼키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자 전무광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아주 잠깐은 그랬다.

하지만 전무광은 다음 순간 자신의 머리 위에서 검을 베어 오는 선우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묵랑검법 일 초

개천

공간을 찢는 검격이 전무광에게 작렬했다.

단발성 공격으론 최강의 파괴력을 지닌 개천이었다.

전무광은 그 심상치 않은 검격에 황급히 팔을 올려 머리를 방어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으로도 소용이 없었다.

촤아아아아악!

전무광의 강철 같은 팔뚝이 삼분지 이쯤 갈라졌다.

거의 떨어져 나가기 일보직전인 상태였다.

“으으윽!”

그는 다른 팔로 팔뚝을 감싸고는 급히 뒤로 몸을 날리며 남은 혈룡들을 선우진에게로 돌진시켰다.

그러자 여덟 마리의 혈룡들이 선우진을 향해 돌진해 폭격을 가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하지만 그 순간 전무광은 목격해야 했다.

몇 개로 분열한 선우진의 신형이 마치 질량이 없는 것처럼 하늘하늘 흩날리며 혈룡들의 맹폭을 피하고 있는 모습을.

경지에 달한 천풍화엽이었다.

“이놈!”

전무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마치 허깨비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놈의 모습이 너무 짜증 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벌써 거의 재생된 자신의 팔뚝을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혈룡들을 뿜어냈다.

화아아악!

그러자 여유 있는 태도로 땅에 착지한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혈교는 무공이 좀 부실하군.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인가 보지?”

그 말에 전무광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이!”

선우진은, 아니 검신의 마음은 여유로운 표정과는 달리 사실 무척 조급한 상태였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단일 공격으로는 최강의 파괴력을 지닌 ‘개천’을 고작 팔뚝으로 방어할 수 있는 엄청난 내구력, 게다가 그것마저도 순식간에 다시 원상복구시켜 버리는 재생력까지.

실로 괴물 같은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간이 무의미하게 끝나 버리면 자신이 사라진 후 선우진이 혼자 남게 될 거라는 사실이 제일 두려웠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가 홀로 남아 저자에게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어떻게 해서든 놈을 해치워야만 했다.

하지만 검신은 그러기 위해선 오히려 여유를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급할수록 한 걸음 더 물러서야 하고, 시간이 없을수록 더 여유 있게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우진은 문득 하품을 하며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아암, 내가 좀 지겨워져서 물어보는 건데 말일세. 더 보여줄 수 있는 게 있기는 한 건가?”

그러자 전무광이 드디어 폭발했다.

“이 노옴!”

그의 몸이 포탄처럼 맹렬히 돌진해 왔다.

도사리고 있던 아홉 마리의 혈룡들 또한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붉은 수강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아!

그 뒤로 거대한 붉은 손바닥이 짓눌러오는 모습 또한 보이고 있었다.

후우우우웅!

거대한 혈룡들은 반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져 각각 다른 방위에서 덮쳐왔다.

크롸라라라라락!

멀찍이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일행들은 넋을 잃은 채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비사영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꼭 세상이 무너지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 같군. 저게 사람이긴 한 건가?”

다른 사람들 또한 대답 없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정말 끔찍한 광경, 말도 안 되는 무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세상이 무너지는 풍경 속에서 선우진은 냉정한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살짝 눈을 감은 그의 심안이 심상 속에서 세상을 그대로 구현해 줬다.

아무런 색도 없는 흑백의 공간에서 선우진은 자신을 덮쳐 오는 모든 것들을 관조할 수 있었다.

여러 개로 분화된 그의 신형이 꽃잎처럼 하늘거리며 수강들을 흘려 냈다.

폭뢰혈장의 거대한 손바닥과 혈룡들은 점멸보를 연속으로 사용해 피해 냈다.

광분한 전무광이 소리쳤다.

“도망가지 마라! 이 미꾸라지야!”

하지만 선우진은 눈을 감은 채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전무광의 능력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었다.

- 만들어진 육신이라 그런지 신체 능력에 비해 무형지기가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군. 오히려 역천혈마 쪽이 내공이나 무형지기의 운용은 더 나아.

압도적인 존재감과 신체 능력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을 뿐 혈마인으로 증폭할 수 있는 무위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 그렇다면!

선우진은 드디어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돌진해오는 전무광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유성처럼 돌진하며 정권을 내질러오고 있었다.

“이놈!”

순간 전무광의 눈이 번뜩였다.

어쩐 일인지 선우진이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던 것이다.

저 상태라면 이번만큼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어랏!”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돌풍이 불어오더니 그의 몸을 살짝 옆으로 밀어냈다.

“뭣!?”

부아아앙!

그의 정권이 간발의 차로 선우진의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그 순간 선우진의 검이 전무광의 옆구리를 그었다.

묵랑검법 일 초

개천

촤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전무광은 이곳에 나타난 후 처음으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옆구리가 쩌억 갈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혈마인이기에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붉은 살 안쪽의 내장까지 드러난 상태였다.

전무광은 급히 한 팔로 자신의 옆구리를 감쌌다.

그리고 어느새 머리 위에서 다시 검을 그어 오는 선우진을 바라보며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땅을 박차고 물러서려던 그의 발이 갑자기 땅속으로 쑤욱 들어가고 말았다.

푸우욱!

“!”

전무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진흙처럼 변해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선우진의 개천이 작렬했다.

“하아아압!”

촤아아아악!

“윽!”

전무광은 급히 호신강기를 두른 팔을 들어 그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푸화아악!

“크윽!”

호신강기를 가볍게 베어 낸 검날이 전무광의 팔뚝마저 반쯤 베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혈마인인 전무광으로서도 위협적인 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전무광은 이제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돌풍과 진흙도, 갑자기 매서워진 놈의 공세도 모두 당황스러웠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전무광으로선 알 수 없었지만 선우진이 방금 사용한 무공은 망아공이었다.

검신 최강의 비기인 망아공이 선우진의 몸으로 구현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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