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교전선 비룡십삼대-355화 (355/359)

355화 결전-7

원래 망아공은 자신을 지우고 천지와 하나가 되어 적을 섬멸하는 신공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대자연이 한 명을 적으로 삼는 것이기에 그것을 당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옛날 신화경에 도달했던 천마신교의 마신조차도 그 망아공을 당해 내지 못해 다시 십만대산으로 돌아가 은거해야 했을 정도였다.

검신은 아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걸 제대로 쓸 수 있었다면 저런 놈쯤은 한 식경이면 끝이었을 텐데.

하지만 아직 화경에 이르지 못한 선우진의 몸으론 그 위력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방금처럼 대기의 흐름이나 땅의 성질을 약간씩 바꾸는 정도뿐이었다.

조금 전 전무광의 전력을 분석해 봤던 검신은 그가 육신의 강력함에 비해 기운의 운용은 다소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화경의 극에 이른 수준이긴 했지만 말이다.

-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상대적으로 약한 그곳을 파고드는 수밖에.

그게 아직 위력이 약하다 해도 망아공을 사용하기로 한 이유였다.

전무광이 무형지기의 운용이 다소 부족한 만큼 외부의 환경을 이용해 흔들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결정한 검신은 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맹견처럼 놈에게 딱 붙어서 다시 그에게 개천을 날렸다.

“하아아압!”

촤아아아악!

전무광의 눈이 당황의 빛으로 가득 찼다.

옆구리와 팔뚝이 갈라진 상태인데 놈이 진드기처럼 딱 붙어 계속 검격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황급히 기합을 내질렀다.

“으하아아아압!”

화아아아악!

그러자 그의 몸에서 거센 기세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갔다.

그 돌풍 같은 기세에 선우진의 몸도 날려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그를 떼어 낸 것이었다.

전무광은 힐끗 자신의 옆구리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은 아직 반쯤 재생되고 있는 중이었다.

완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았다.

반쯤 갈라진 팔뚝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이었다.

기세에 날려 갔던 선우진이 갑자기 다시 전무광의 눈앞에 나타났다.

점멸보였다.

“!”

깜짝 놀란 전무광은 급히 팔을 휘둘러 선우진을 쳐내려 했다.

“이런…!”

하지만 그는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흙의 성질이 바뀌며 디딤발이 흙 속으로 푹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아주 찰나의 흔들림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선우진에겐 충분했다.

전무광의 팔에 강타당하기 전 선우진의 신형이 또 사라져 버리자 그가 분노를 터트렸다.

“이… 크악!”

전무광은 순간 등에 느껴진 화끈한 통증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난 선우진이 다시 개천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등마저 쩌억 갈라져 버린 상태였다.

“이놈….”

전무광은 이제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아까는 모기와도 같았던 놈이 이제는 말벌이 된 것만 같았다.

워낙 빠른 데다 환경을 조종하는 이상한 수법 때문에 잡을 수도 없는데, 화끈한 독침까지 겸비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전무광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기합을 내지르며 기운을 방출했다.

“으하아아압!”

화아아아악!

선우진의 몸이 다시 기운에 휩쓸려 날아갔다.

아주 잠깐이겠지만 여유를 얻은 것이었다.

그사이 전무광은 급히 머리를 굴렸다.

놈은 위험했다.

적어도 저 이상한 수법이 뭔지 파악할 때까지 만이라도 시간을 좀 끌어야 했다.

그때였다.

전무광의 눈에 문득 멍한 시선으로 구경하고 있는 선우진의 지인들이 들어왔다.

‘저거로군.’

그는 저들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모품에 불과한 주변인들 때문에 목숨까지 걸곤 하는 게 멍청한 정파놈들의 특성이 아니던가.

그 유용성은 정파인이었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전무광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자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놈들을 쳐라! 다 죽여 버려!”

그러자 철신광마 척강이 기다렸다는 듯 사납게 웃으며 도약할 준비를 했다.

“존명!”

그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협왕 모용검과 괴검 서일, 결허사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각자의 병장기를 들고는 앞으로 뛰어나갈 준비를 했다.

탈진한 듯 앉아 있었던 해청연마저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의 일행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화경의 고수인 여령색마 손은상, 남해성녀 시서우, 괴선 청광진인이 앞을 막아섰고, 그 뒤로 설풍과 용가주 용우신, 육합검수들과 무극패도 표서극도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결과는 명약관화할 수밖에 없었다.

화경 고수의 수와 질 모두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버려둔 채 선우진도 전무광과 계속 싸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전무광의 이번 한 수는 무척 시기적절했다고 할 수 있었다.

선우진의 신경을 분산시켜 시간을 끌 수 있는 절묘한 한 수였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선우진이 그 상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점에 있었다.

“으하하하하! 싸움이다!”

철신광마 척강은 드디어 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환희에 찬 얼굴로 앞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의 뒤에선 다른 고수들이 이미 기합을 지르며 뛰어나가는 중이었다.

“하아아압!”

하지만 그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푸우욱!

“커헉!”

척강은 자신의 뒷목을 꿰뚫고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검날을 보고는 잠시 멍해졌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상황을 이해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검날에서 푸른 검강이 뿜어져 나오며 목이 완전히 떨어져 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푸화악!

그 사태에 가장 놀란 건 전무광이었다.

자신의 가장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척강의 죽음에 전무광은 광분해 소리쳤다.

“척강!”

그러자 척강의 뒤에서 그를 기습해 죽였던 괴검 서일이 황급히 몸을 날려 전무광에게서 멀어졌다.

파박!

“서일?!”

“괴검, 저자가 왜?!”

서일의 배신에 당황한 건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함께 공격하려던 모용검은 물론 그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손은상이나 시서우 또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배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이유를 알고 있는 한 사람, 검신이 허탈한 말투로 선우진에게 말했다.

- 정말 자네 말대로 됐군. 들으면서도 설마 했는데 말일세.

그 말에 선우진인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전부터 어르신의 무학을 익히는 게 일생의 목표인 자였으니까요. 이제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테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선우진은 방금 검신이 망아공으로 전무광을 몰아붙였던 직후 서일에게 전음을 보냈었다.

- 저는 검신의 무학을 얻었습니다만, 서 대협께선 그 기회를 차버릴 생각이신가 보군요.

그 딱 한마디의 전음이었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서일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서일은 예전부터 벽랑검에 숨겨져 있을 검신의 무학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협객만이 그것을 이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선우진의 말에 결국 선우진과 검성을 죽이지 않았었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에게 상대도 되지 않았던 선우진이 검신의 무학을 얻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자신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위를 지닌 채로 말이다.

그러니 그로선 지난번 선우진이 한 말을 완전히 믿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협객이 되어야만 검신의 무학을 이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로선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우진의 말이 맞다면 절대 혈교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편을 바꾸기에는 전무광의 존재감이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선우진은 전무광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 줬었다.

전무광과 선우진의 실력이 대등하다고 착각할 만큼의 엄청난 무위였다.

그 광경을 본 서일은 이제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정곡을 찌르듯 들려온 선우진의 전음, 그로선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검신이 마음속에서 말했다.

- 이제 균형이 맞춰졌군.

선우진이 말 한마디로 전무광의 편에서 척강과 서일이라는 두 명의 화경 고수를 이탈시켜버리는 놀라운 마법을 발휘하자, 이제 결과는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전무광과 선우진을 제외한다면 화경 고수의 숫자가 똑같이 세 명씩으로 맞춰졌던 것이었다.

해청연, 모용검, 결허사태 대 손은상, 시서우, 청광진인만 남은 상태였다.

덕분에 양쪽은 이제 함부로 부딪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도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선우진은 이제 망설임 없이 전무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젠 진짜 시간이 없었다.

“전무광!”

선우진의 외침에 전무광 또한 이를 악물었다.

아직 상대의 수법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지금 붙기 껄끄러웠지만 척강마저 죽은 이상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전무광은 선우진이 날아오는 쪽을 향해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팔이 천수관음처럼 분열하고 그 각각의 손에서 수백 개의 수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혈교의 절기 천환마장이었다.

파바바바바바박!

아까보다도 더 넓은 공간으로 퍼트린 수강들은 선우진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치 붉은 우박의 폭풍우를 보는 것만 같았다.

선우진은 적무광이 대놓고 자신의 접근을 막으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속도를 높이며 한순간 일곱 명의 신형으로 분열했다.

쉬이이익!

“!”

전무광은 경악했다.

갑자기 일곱 명으로 늘어난 선우진이 각각 일곱 방향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부드럽게 수강들을 피해내며 자신을 향해 접근해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로선 알 수 없었지만 극에 이르면 일곱 개의 잔상이 모두 실체가 된다는 검신의 비기 칠성현신이었다.

으득!

이를 악문 전무광은 근거리까지 다가온 선우진들을 향해 혈룡들을 쏘아 냈다.

다시 한번 펼쳐진 구천혈룡마공이었다.

크롸라라라라라!

근거리에서 방출된 혈룡들의 위력은 엄청났다.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네 명의 선우진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혈룡들의 입속으로 삼켜졌던 것이었다.

파스슥!

하지만 잠시 득의만만한 웃음을 지으려던 전무광은 곧 다시 긴장된 표정으로 혈룡들을 조종해야 했다.

남은 세 명의 선우진이 여전히 접근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체가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이노옴!”

전무광은 그들을 향해 각각 폭뢰혈장을 날렸다.

거대한 수강으로 일단 접근을 막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혈룡들을 조종해 선우진 한 명당 각각 세 마리씩의 혈룡들을 덮치게 했다.

“가랏!”

그러자 간신히 폭뢰혈장을 피한 선우진들에게 거대한 혈룡들이 세 방위에서 덮쳐 갔다.

크롸라라라라!

전무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설사 이번 한 수로 놈을 죽이지는 못한다 해도 이제 어떤 게 진신인지는 알 수 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전무광의 주변에서 갑자기 커다란 빙벽이 솟구쳤다.

슈우우우우욱!

“?!”

그는 당황했다.

갑작스럽게 빙벽이 등장했다는 자체도 그랬지만 거기에 가려 선우진이 어떻게 됐는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빙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폭발음만이 일단 혈룡들이 충돌했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귀찮게!”

전무광은 짜증이 난 표정으로 기합을 내질러 그 기세만으로 빙벽들을 부숴 버렸다.

파사삭!

그러자 조각난 얼음 조각들 사이로 선우진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세 명이나.

모두가 혈룡들을 피해 전무광을 덮쳐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전무광은 훌쩍 몸을 날려 일단 허공으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발로 땅을 박차려는 순간 또다시 흙이 물컹해지며 발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푸욱!

“으윽!”

전무광은 다급해졌다.

이제 세 방향의 선우진들이 모두 그에게로 덮쳐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대로는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놈의 검격을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다시 몸을 솟구쳤다.

발의 탄력이 아닌 무형지기를 이용해서였다.

슈하악!

그의 몸이 포탄처럼 급속하게 솟구치자 간신히 선우진의 검격을 피할 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을 번 것이었다.

전무광은 이제 공중에서 자세를 잡고 반격의 여지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막 자신을 향해 뛰어오르는 선우진을 향해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휘이이잉!

“!”

갑자기 용권풍 같은 돌풍이 생성되더니만 공중에 떠 있던 전무광의 몸을 휙 돌려 버렸다.

땅에 이어 이젠 바람까지 그를 방해한 것이었다.

“안 돼!”

경악한 전무광은 온몸에서 혈룡을 뿜어내 선우진을 향해 돌진시켰다.

구천혈룡마공을 이용해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것이었다.

크롸라라라라라라!

선우진은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는 아홉 개의 혈룡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직선적 공격이기에 한번 피하고 다시 틈을 노리는 게 왕도일 텐데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검신 또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신은 제일 먼저 돌진해 온 혈룡을 향해 ‘개천’을 휘둘렀다.

츄하아아아악!

그러자 반으로 쪼개진 혈룡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앙!

선우진은 폭발을 등진 채 계속해서 전진했다.

엄청난 충격파가 전신을 때렸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제2, 제3의 혈룡들이 계속해서 몰아쳐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롸라라라라락!

“후우웁!”

쉬이이이익!

그 순간 선우진은 기류를 타고 새처럼 비행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조종하는 망아공의 위력이었다.

그는 협곡 사이를 비행하는 매처럼 혈룡들을 부드럽게 피하고는 그것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하나하나를 베어 갔다.

샤아아악!

콰콰콰콰콰쾅!

샤아아악!

콰콰콰콰콰쾅!

둘, 셋, 넷, 선우진에 의해 혈룡들이 폭파될 때마다 전무광의 표정은 점점 다급해져 갔다.

“이놈!”

전무광은 다시 한번 온 힘을 끌어내 아홉 개의 혈룡들을 뿜어냈다.

선우진과의 거리를 보건대 아마도 이게 최후의 공격이 될 것 같았다.

화아아아아악!

그러자 마침내 아홉 개의 혈룡을 베어 낸 선우진이 다시 아홉 개의 혈룡들을 쏘아 낸 전무광을 향해 돌진했다.

정면 돌파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문득 해청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도와주지!”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해청연의 몸에서 아홉 마리의 혈룡이 뿜어져 나와 이쪽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기운을 차린 것이었다.

그러자 그 광경을 본 두 사람의 얼굴색이 대조됐다.

전무광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고 선우진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크하하하하! 어서 와라, 과염!”

“이런!”

아홉 개의 혈룡을 상대하는 것과 열여덟 개의 혈룡을 상대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검신으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무광은 광소를 터트리며 혈룡들을 돌진시켰다.

“으하하하하! 이제 죽어라!”

그 순간이었다.

선우진을 향해 돌진하던 해청연의 혈룡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전무광을 덮쳤다.

크롸라라라라라락!

이상함을 느낀 전무광이 황급히 뒤돌아봤을 때는 이미 커다랗게 입을 벌린 혈룡들이 그의 등 뒤까지 접근한 후였다.

경악한 그의 눈이 크게 확대됐다.

“…무슨?!”

콰콰콰콰콰콰콰쾅!

“크아아아아악!”

혈마인의 튼튼한 몸도 갑작스럽게 폭격당한 구천혈룡마공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넝마가 된 채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기회였다.

하지만 그 사태에 당황한 건 검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차마 전무광을 공격하지 못하고 놀란 표정으로 해청연 쪽을 바라봤다.

그녀가 경계 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선우진이 소리쳤다.

‘저 눈을 보세요, 어르신! 청연 소접니다! 해냈어요!’

- …뭐라고?

그 말에 검신은 순간 멍해졌다.

문득 바라본 그녀의 눈은 더 이상 붉은빛을 띠고 있지 않았다.

다시 예전처럼 검은색으로 돌아온 눈, 아마도 역천혈마 과염이 아닌 해청연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 나서도 검신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건지, 또 그녀가 진짜 해청연이라면 구천혈룡마공은 어떻게 쓸 수 있었던 건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선우진이 다시 외쳤다.

‘홍연검입니다! 역천혈마의 영혼이 홍연검에 이미 많이 흡수당했기에 더 이상 청연 소저의 영혼을 제어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그 말에 검신도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천혈마의 영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힘을 많이 빼 놨기에 해청연이 다시 육신의 제어권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더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검신은 이제 추락하고 있는 전무광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했다.

“자아!”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검신은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드디어 다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었지만 그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검신은 소멸해 가는 자신의 의식을 억지로 붙잡으며 선우진에게 소리쳤다.

- 진아! 부디…!

그 말을 끝으로 검신의 의식은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말조차 끝까지 남기지 못한 채였다.

그러자 갑자기 육신의 제어권을 되찾은 선우진은 너무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자신 혼자만 남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선우진은 뒤늦게 그를 불러 봤다.

‘어르…. 스승님, 스승님! 스승니이임!’

하지만 한 번도 불러 주지 못했던 스승이라는 호칭에 그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이젠 너무 늦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선우진은 결국 전무광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한 채 다시 땅으로 착지하고 말았다.

그의 망연자실한 얼굴에는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전무광 또한 넝마가 된 채 땅으로 추락했다.

쿠우우웅!

그의 몸은 뼈가 부서진 듯 여기저기가 엉망으로 으깨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그 상태로도 급속도로 몸을 재생하며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해청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선우진에게 소리쳤다.

“선우 공자! 지금 무슨 짓을…!”

당연히 그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해청연은 지금 선우진의 멍해진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전무광이 결국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

엉망으로 으깨졌던 그의 몸은 그 짧은 사이 어느 정도 복구되어 가고 있는 상태였다.

실로 엄청난 재생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사나운 흉광을 뿜어내는 눈으로 해청연을 바라보더니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네년, 해청연이로구나. 과염을 제압한 모양이지?”

그러자 해청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비록 역천혈마에게서 몸의 제어권을 빼앗아 오고, 잠깐 그녀의 무위를 이용해 구천혈룡마공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그녀만큼의 무위를 갖게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무광은 완전한 역천혈마보다도 더 강하지 않았던가.

제대로 싸운다면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방금 놓친 기회가 너무도 뼈아파지는 순간이었다.

안타까운 표정의 해청연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전무광은 문득 다시 고개를 돌려 선우진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멍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우진이 아까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더 이상 그는 검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전무광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말했다.

“애송아, 너도 몸을 되찾은 모양이로구나. 그는 이제 갔느냐?”

그러자 선우진이 슬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텅 비어 버린 듯 공허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전무광에게 그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제 자신의 적수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으흐흐흐흐! 잘됐구나. 그럼, 이제 네놈도 잘 가거라!”

그렇게 소리친 전무광이 선우진에게 돌진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땅을 박차려던 전무광의 몸이 땅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헉!”

전무광은 경악했다.

갑자기 늪처럼 변해 버린 땅이 그를 삼켜 버렸던 것이었다.

아까 검신과 싸울 때보다도 더한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팔과 목만 나올 정도로 파묻힌 그는 황급히 무형지기를 발산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기합을 지르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던 그는 순간 숨이 막혀 꺽꺽 소리만 내고 말았다.

“커억!”

아무리 공기를 빨아들이려고 해 봐도 숨이 그의 목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호흡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들숨이 쉬어지지 않으니 날숨을 통해 기합을 발산하는 것 또한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전무광은 경악한 눈빛으로 이 모든 일의 원흉일 선우진을 바라봤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 선우진의 시선은 전무광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먼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가 아닌 과거, 현실이 아닌 꿈속의 기억이었다.

스스로 유일하게 자부하곤 했던 축복받은 기억력 덕분에 그는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스승과의 첫 만남, 그와 함께 나눴던 대화들, 그리고 그에게 배운 모든 것들을….

‘스승님….’

그렇기에 그는 그 감각 또한 기억했다.

방금 스승이 전무광과 싸우며 사용했던 망아공의 감각들을.

그리고 그 감각은 망아공의 전부였다.

천지와 하나가 되는 그 감각을 깨닫는 것이 망아공의 요체였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살아있을 때 제자들에게 끝내 망아공을 전수해 주지 못했던 검신은 죽음 이후에야 의도치 않게 망아공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망아공을 깨달은 선우진은 한순간 화경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방금 전 검신이 움직였을 때보다 오히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선우진은 문득 시선을 돌려 무심한 눈빛으로 전무광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를 잊으면.”

그 순간 전무광의 안구가 터져버렸다.

파아아악!

“끄아아아악!”

전무광은 그 갑작스러운 통증에 두 손으로 눈을 움켜잡으며 괴로워했다.

공기의 압력이 눈을 뽑아내 그렇게 된 것이었지만 그로선 그 이유까진 알 방법이 없었다.

선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직 천지뿐이니.”

그 순간 전무광의 귀에서도 피가 터져 나왔다.

공기의 압력이 고막을 뜯어냈기 때문이었다.

푸화아악!

“꺼어어어억!”

전무광은 그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에겐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그의 폐 속에 비명을 지를 공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꺽꺽거리며 몸부림칠 뿐이었다.

그러자 고막을 잃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선우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천지가 나이고, 내가 천지임을 깨우친다면.”

무표정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린 선우진은 묵랑검을 들어 몸부림치고 있는 전무광의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가 곧 신화가 되리라.”

그 순간 묵랑검이 소리 없이 공간을 갈랐다.

예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조용한 ‘개천’이었다.

샤아아아악!

선우진은 공간과 함께 두 쪽으로 쪼개진 전무광에게서 시선을 돌려 문득 자신의 손에 들린 묵랑검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다 끝이었다.

혈교와의 전쟁도.

악몽 같았던 과거도.그리고… 스승과의 즐거웠던 여정도 말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일행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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