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화 (2/226)

§ 1화

······사건의 발단이 있던 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직 한 게임에 몰두해 있었다.

<이터니티 검성전기>

주요 캐릭터들을 모아 세상의 파멸을 막는 흔하디 흔한 배틀 시뮬레이션 게임.

그러나 그 미친 난이도 때문에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엔딩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중에 죽으면 끝이고 엔딩조차 알 수 없는 정신 나간 게임.

개발자의 말에서도 그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었다.

─누구도 깨지 못하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엔딩은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할 뿐이지만요. 하하.

애초에 대가리 깨지라고 만든 게임.

이딴 게임을 진심으로 붙잡고 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리라 개발자는 확신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게 있다.

여기까지만 깨자.

여기까지만.

진짜 딱 여기까지만.

이것만 깨고 그만한다.

시발 이제 안 함.

사람 미쳐버리게 하는 ‘절제력’.

나는 그 절제력이란 게 결여된 인간이었다.

‘여기까지만’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그렇게 폐인처럼 2년을 달려왔다.

그리고.

“씨바알! 깼드아아아아─!”

마우스를 집어 던지며 의자에 드러누웠다.

그동안의 플레이가 떠오르고 내 업적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플레이 시간 13140시간. 788400분. 547일하고도 5시간.]

지난 2년간 하루 네 시간도 자지 않고 플레이에 몰두한 충실한 나날이 표기된 숫자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전 세계에서 누구도 깨지 못했다는 이 정신 나간 게임을 나 ‘이해솔’이 클리어한 것이다.

“내가 이겼다. 새끼들아.”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나를 비웃고 떠나간 가족 친적 지인 등등을 떠올리며 폐인처럼 히죽거리고 있기도 잠시.

“······아, 존나 힘 빠지네. 진짜.”

뒤늦게 2년이란 시간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니 반쯤 드러난 창가로 쪽빛이 비친다.

째깍째깍─

벽시계를 보니 마우스를 잡은 지 32시간이 흘러있었다.

“32시간? 진짜 미친 새끼네.”

어이가 없어 키득거리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문득 개발자의 염장을 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흐아함, 일단 자야지.”

잠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그대로 골아떨어졌다. 그랬기에 나는 보지 못했다.

엔딩 크레딧이 넘어가고 하얀 바탕에 글귀가 떠오르는 것을.

[축하합니다.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튜토리얼을 최초로 클리어하셨습니다. 2회차부터는 ‘리얼리티모드’가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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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모드란?>

튜토리얼을 통해 접했던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세계를 플레이어가 직접 체험하실 수 있게 됩니다.

단, 자유도가 보장되는 만큼 플레이어에겐 어떠한 특전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의.

─플레이어는 ‘외부자’이기에 마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합니다.

─플레이어는 이터니티에서 중도이탈, 즉. ‘로그아웃’하실 수 없습니다.

─이터니티에서의 ‘사망’은 현실에서의 ‘사망’과 동일하게 간주됩니다.

=================================

[리얼리티모드에 동기화하시겠습니까?]

“······.”

누구도 동기화를 하지 않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으나 거부 의사를 밝힐 대상은 이미 잠에 빠져든 뒤였다.

[5분 내로 선택이 없으면 자동으로 동기화에 들어갑니다.]

“······.”

[······동기화에 들어갑니다.]

[환영합니다. 신비와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 이터니티에서 살아남으십시오.]

.

.

.

째깍째깍─

시계 초침만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방안.

한 사람의 온기가 남은 의자. 먹다 남긴 식탁 위의 컵라면, 꺼지지 못한 모니터가 텅 비어버린 공간을 비추었다.

그렇게, 이터니티 검성전기를 최초로 클리어한 이해솔은 지구상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1

······자고 일어났더니 게임 속이다.

편의성 좋고 사이다 주기 쉬워서 아카데미물에서 사랑받는 왕도식 전개다.

하지만 설마 그 전개를 내가 몸소 겪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시발. 이게 말이 돼?”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그런다고 차디찬 현실이 변할 리 없었다.

사흘.

내가 <이터니티 검성전기>에 떨어지고 난 뒤에 흐른 시간이다.

뭐, 솔직히 여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내가 떨어진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엔딩을 본 유일한 인간이니까.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것들을 활용할 방법도 차고 넘쳤다.

다시 말해 나는 꿀 빠는 삶을 살아줄 준비된 인간이었다.

“문제는 내가 주인공도 조연도 뭣도 아니라는 거지.”

거울을 본다.

달라진 게 하나 없는 인간 ‘이해솔’ 그대로의 모습이다.

즉, 나는 ‘빙의’도 아니고, 그냥 자다가 떨어진 거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심각한 차이다.

학연, 지연, 혈연, 집, 재산. 인간으로써 있어야 할 기반 자체가 없다.

하다못해 엑스트라는 [마력]이라도 있는데 나는 인간 이해솔이기에 그조차도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 ‘쥐뿔도 없는 진입’이었다.

“염병.”

양판소도 회빙환은 주는데 이런 성의 없는 진입이라니.

문득 개발자의 말이 떠올랐다.

─누구도 깨지 못하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씨발새끼···”

어쩐지 생각(?)보다 쉽더라.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튜토리얼이었고,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소리다.

“미친 새끼, 또라이 새끼, 사이코 새끼······”

개발자의 모가지를 비틀어 따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물리적 거리상 불가능했다.

일단 진정부터 하고······는 개뿔.

진정이 될 리가 없었지만 냉정하게 상황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내가 머무는 곳은 [이터니티 아카데미] 별관 4층. 나는 입학시험 대기자라는 명목으로 들어와 있었다.

가진 거라곤 자기 전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 몸뚱아리가 전부다.

아니, 하나 더 있긴 했다.

=======동기화 진행 중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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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전 깨어났을 때 보았던 메세지가 여전히 시야에 떠올라 있었다.

차이라면 15%였던 퍼센테이지가 76%까지 차올랐다는 것이랄까.

“진짜 더럽게 안 오르네.”

위이이잉─

상태창으로 짐작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입학시험 대기자 386번 이해솔. 시험시간은 오전 12시입니다. 10분 전까지 실기시험장으로 입실해 주십시오.]

X됐다는 걸 이리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는 없는데······

“이걸 가, 말아?”

마음 같아선 입학이고 뭐고 튀어버리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입학 포기라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게임은 개발자 공인 ‘공략불가’딱지가 붙은 게임이니까.

주연들끼리 내버려 뒀다간 알아서 멸망엔딩으로 나아간다는, 뭐, 그런 X같은 설정이다.

가만히 앉아서 멸망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입학은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마력도 없는 인간이 전 세계에서 거르고 거른 괴물들만 모이는 이터니티에 입학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니, 입학이고 뭐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창가를 내다보았다. 아침부터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야 이 새끼야! 빨랑빨랑 안 가? 타이어 박살났냐!”

앞차 안 간다고 차창 너머로 삼단봉 대신 ‘대검’을 휘젓는 민머리 아저씨.

“아, 아저씨 비켜요, 쫌. 뒤에 사람 지나가는 거 안 보여요?”

이어폰 끼고 걷다가 지가 부딪혀놓고 ‘지팡이’ 들고 되려 성질내는 아가씨.

“뭡니까?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지?”

그걸 또 성질냈다고 다짜고짜 시계부터 풀고 손목을 돌리는 직장인까지.

그밖에도 길거리에는 흉기를 든 인간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다. 거기까지만 보고 나는 창을 닫았다.

“진짜 조졌는데.”

보다시피 이터니티는 대낮에 흉기를 들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정신 나간 세상이다.

이런 야만이 팽배한 세상에서 마력도 없이 돌아다닌다?

공략게임에서 순식간에 생존 서바이벌로 장르변경이다. 이건 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입학을 해야 하는 팔자다.

생존 서바이벌보다야 공략게임이 그나마 나으니까.

“우선 이 빌어먹을 막대기부터 다 차야 하는······ 어?”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그래프가 내 말이라도 알아들은 것 마냥 80%가 넘어가자 순식간에 차올랐다.

81% 82% 83% 84%······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인식 중······]

“뭐야, 이거 설마······”

새롭게 떠오른 알림창을 보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이 양식을 잘 알고 있다. 불과 나흘 전까지만 해도 내가 만지작 거리던 거였으니까.

눈앞에 떠오른 익숙한 창들. 이건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시스템’이었다.

“그러면 이 뒤에는······”

나는 뒤따라올 상황에 눈을 빛냈다.

아니나 다를까.

[인식 완료. 플레이어 이해솔.]

[스토리모드가 개방됩니다.]

[초심자의 혜택 1000SP가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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