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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화 (3/226)

§ 2화

[이터니티 검성전기]는 스토리를 공략할 때마다 포인트가 들어온다.

포인트는 캐릭터를 강화하거나 스킬을 획득하고 레벨을 올릴 때 사용된다.

[보유포인트 : 1000SP]

1000SP란 처음 시작할 때 주어지는 포인트로 스킬강화에 몰빵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나는 스킬이 없기에 스킬 몰빵은 불가능하다.

혹시나 싶어서 신체강화는 되나 봤는데.

[리얼리티 모드에서는 SP를 이용한 신체강화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리얼하네.”

물론 몸뚱아리에다가 SP를 낭비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아쉽지도 않았다.

알림창을 닫고, 메인 화면을 보았다.

[스토리퀘스트 : 이터니티에 입학하세요!]

[보상 : 500SP, 이상의 투영자.]

나는 메세지를 빤히 노려보았다. 실기시험장에 오면서도 수십 번은 더 읽었다.

혹시 내 정신착란이 일으킨 환상이 아닐까 싶어서.

실은 보상목록에 500SP만 적혀있고, ‘이상의투영자’란 문구는 없는 게 아닐까?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도 ‘이상의 투영자’라는 문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친. 실화냐.”

내 짐작이 맞다면 이건 [기프트]다.

초인으로서 일정 경지 이상을 이루면 얻게 되는 고유권능.

[기프트]는 흡수, 증폭, 마력독재, 중력제어 등, 보조적인 것부터 속성능력까지 종류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사기성을 띠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물며 보상항목에 나온 기프트는 이름부터가 ‘이상의 투영자’였다. 이건 현실조작계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현실조작계열 기프트는 이터니티에 거의 없다시피 하다.

현실을 조작한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사기였으니까.

그런데 그 사기가 여기 있었다.

‘이상의 투영자.’

이름 그대로 풀이해보면 ‘상상한 그대로가 현실이 된다.’라는 소리다.

물론 그만큼 [제약]이 까다롭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얻어야 하는 기프트였다.

상태창을 닫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이터니티 아카데미 2층 실기시험장.

시험 시작 5분 전이라고 다들 몸을 풀기 바쁘다.

세계적인 경쟁률을 뚫고 이터니티의 입학시험까지 도달한 천재들······이라는 설정이다.

실상 언급은커녕 등장도 안 하는 백지 여백같은 존재들이지만.

아무튼 이중에서 이터니티에 입학해 엑스트라가 되는 건 고작 한 둘 뿐이다.

그런데 마력도 없고 스킬도 안 찍은 내가 그 한 둘에 속한다?

이건 개발자 할아버지가 와도 못한다.

‘엑스트라 허들 존나게 높네, 진짜.’

상식적으로 내가 이터니티에 입학할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이대로 얌전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그게 내가 플레이하는 방식이니까.

이럴 땐······

“386번 생도후보, 이해솔. 보구의 간택에 도전하겠는가?”

“예, 도전하겠습니다.”

기연 강탈이다.

***

이터니티의 몇몇 무구들은 어이없게도 무구 스스로가 주인을 택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무구가 거부하면 그 무구는 사용하지 못한다.

쓰더라도 제대로 된 힘을 못 뽑아내니 쓸모없는 고철일 뿐.

그런 분별력을 지닌 에고무구들을 통틀어 ‘보구’라 부른다.

더럽고 치사해서 누가 쓰나 싶겠지만 오히려 없어서 안달이다.

안 쓰기에는 이 보구란 것들의 성능이 너무 좋았으니까.

가끔 기프트까지 지닌 것마저 있어서 일국의 보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대표 격인 보구가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영국의 엑스칼리버다.

땅 박아놓고 뽑아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전설의 보구. 실제로 보구 중에는 저런 ‘뽑기식’이 은근히 많다.

‘보구 간택식’이란 문화도 그렇게 생겨났다.

암만 보구를 가지고 있어 봐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애물단지니까.

이터니티에는 그런 애물단지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해마다 생도후보들을 모아다가 실기시험 전에 간택식부터 치른다.

엄한 사람한테 들어가면 어쩌나 싶겠지만 다들 사전에 이터니티에 협력한다는 동의서를 작성하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아무튼.

“386번.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골라도 좋다.”

“아니요, 이거면 됩니다.”

내가 벽에 걸린 녹슨 검을 택하자 시험관이 혀를 찼다.

“급이 떨어지는 보구라고 간택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수험생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뒤에서 키득거리며 나를 비웃어댔다.

내가 시험에 앞서 허겁지겁 전력증강이나 노리는 허접한 놈처럼 보였나 보다. 그런데 택한 게 고작 이런 고철덩어리였으니.

‘하여간, 멍청한 새끼들, 꼭 낡으면 다 구린 줄 알아요.’

내 상태창 메시지를 읽으면 저런 생각도 못하겠지만.

[히든피스, 잊혀진 전설을 발견했습니다.]

[보상포인트 5000SP가 수여됩니다.]

[대보구, 선택하는 왕의 검. 그람.]

‘이거지.’

검을 잡자 떠오른 수많은 알림창들. 흐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야? 기분 나빠.”

“미쳤나 봐.”

주변에서 수군거렸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으니까.

선택하는 왕의 검, 그람.

겉보기엔 낡아빠진 고철이고, 실제로도 고철이라 보구 취급도 못 받고 실기시험장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먹던 물건.

하지만 그 실체는 노르드 신화의 영웅, 지그문트의 애장이다.

용을 살해했다는 일화가 담긴 보구.

이터니티에 기증된 여러 보구들에 딸려 들어왔다는 편의적인 설정이다.

원래라면 주인공인 차세대 검성 천우진이 발견해 사용하게 되겠지만······

‘뭐, 어때.’

천우진은 보구컬렉션에서 대보구 하나 빼가 봤자 티도 안 나는 사기캐다.

애초에 잘 쓰지도 않는다.

그람의 성능이 딸려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그람의 기프트, [분열]이 검 하나만 쓰는 외골수인 천우진과 잘 맞지를 않아서 그랬다.

먼지 먹히느니 내가 쓰는 게 훨씬 낫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람은 찬밥신세를 당하긴 했어도 명색이 대성보구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을 고르는 눈도 심각하게 높았다. 역시나 마력도 없는 나 따위한테는 반응조차 안 했다.

뭐, 이미 예상한 바다.

[보구와의 강제감응을 시도합니다. 500SP가 소모됩니다.]

[남은 잔여 포인트는 5500SP입니다.]

놀이기구를 탈 때와 같은 붕 뜨는 감각이 들더니 배경이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이 끝없이 펼쳐졌다.

내 맞은편에는 중세영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기사가 서 있었다.

풀플레이트 아머에 먼지 먹은 갈색 망토를 두르고 부러진 검을 든 백금발의 미녀.

여기서 나올 사람이야 한 명밖에 없으니 정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검령, 그람이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지?>

그람이 경계하듯 나를 차게 노려보았다. 검까지 든 걸 보면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다.

<나는 너를 초대하지 않았다. 하물며 마력도 없는 무능력자가······>

어휴, 무능력자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원.

“수상한 사람 아니니까 그 검 좀 내려놓고 말로 합시다. 그람.”

양손을 들어 올리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혔지만, 되려 그람의 경계는 한층 강화되었다. 노려보는 눈초리에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것이냐.>

아, 저것 때문이었나?

나는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입을 다물었다.

내가 게임에 떨어지기 전에 당신을 휘둘러봐서 안다고 어떻게 말할까.

미친놈 취급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음, 그거야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일단 저 좀 도와주시죠.”

<나가라. 그대를 도와줄 의무는 없다.>

그람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듯 아예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하기사, 나 같아도 마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놈이 다짜고짜 내 주인이 되겠다면서 설치면 욕부터 박고 보겠다.

하물며, 그람은 모습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사’였다.

곰팡내 나는 기사도 정신에 갇혀 주인이었던 지그문트 외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우둔한 검.

오죽했으면 지그문트의 아들이던 시구르드조차 그람을 물려받기만 했을 뿐, 그람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지그문트뿐이었다.

‘이건 뭔 죽은 남편 기다리는 망부석도 아니고······’

이런 앞뒤 꽉 막힌 중세 아가씨를 구워삶은 천우진의 재능이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아무튼,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무조건 그람을 얻어야 했다.

대화 한번 해보자고 500SP를 날렸는데 빈손으로 나가는 건 못 참지.

이건 못 먹어도 고다.

“라그나로크가 다가오는데 계속 그렇게 가만히 계시든가요.”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람의 눈이 커다래졌다. 내게서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읽어낸 것이다. 검령 그람은 감응한 자의 진의를 읽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하르마게돈, 라그나로크, 칼리 유가, 묵시록······

신화마다 부르는 명칭도 다르고, 과정도 달랐으나 결국 이것들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멸망.

<라그나로크는 이미 지나갔다.>

그람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대의 주인인 지그문트도 그렇게 경계하던게 라그나로크인데······ 그람님은 이곳에서 계속 허송세월을 하겠다는 것이군요.”

지그문트의 정체는 천둥신 토르다. 그리고 토르를 비롯한 발할라의 신들이 라그나로크를 경계하고 대비해왔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과연 찔렸는지 그람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내친김에 더 세게 나갔다.

“후, 지그문트님의 유언이 뭐였더라?”

“뭣?! 어떻게 그걸······!”

그람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야말로 더 놀랐다.

‘뭐야, 진짜 있었어?’

맞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식으로 그냥 질러나 본 건데······

<그렇군. 너는 지그문트가 가끔 말하던 예언자인가?>

“예?”

이건 갑자기 뭔 소리야?

<지그문트에게 들은 적이 있다. 라그나로크를 알려올 예언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를 지니고 라그나로크를 대비할 것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다.>

“······.”

나는 한 마디 던졌을 뿐이건만, 그람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무궁무진하게 펼쳤다.

<그렇다면 지그문트의 유언을 아는 것도 납득이 간다.>

뭔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한 것 같아서 살짝 섬뜩해지기까지 했다.

<좋다. 예언자여. 라그나로크가 끝날 때까지 그대에게 협력하겠다.>

“······이렇게 쉽게?”

<그대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그 외에 뭐가 더 필요하지?>

“맞는 말이긴 한데······”

멸망이 온다는 건 사실이었고, 예언자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거긴 했다.

어쨌든 미래를 알고 있는 거야 나나 예언자나 거기서 거기니까.

너무 쉬워서 살짝 허탈해졌다. 이게 혼자 북치고장구치기라는 건가?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라 웃음이 나왔다.

‘대박이다.’

중후반부에서나 쓸 수 있는 대보구를 고작 500SP로 얻는다? 이거야말로 500원 주고 핵무기 구매한 격이다.

<단, 그대가 기사도에 어긋나는 악행을 저지른다면 협력은 철회하겠다.>

“암, 당연히 그러셔야죠.”

악행? 그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그러지 않아도 꿀 빨 방법이 수십 가지가 넘어가는데 뭐하러 그럴까. 괜히 나만 피곤해질 뿐이다.

[선택하는 왕의 검, 그람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상으로 1000SP를 수여합니다.]

[잔여 포인트 : 6500SP]

······리얼리티 모드. 이거 은근히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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