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하는 ‘이터니티아카데미’는 세계 최고의 초인양성기관이다.
그렇기에 해마다 전세계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이터니티에 지원하고, 그중에서도 예선을 통과한 5000명만이 이터니티의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줄이고 줄여놓은 5000명이라는 숫자도 너무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다 확인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이터니티의 실기시험은 상당히 심플하게 진행된다.
어떻게?
‘난투.’
야만스러운 방식이지만 초인이 사냥해야 하는 마물이야말로 가장 야만스러운 존재이기에 나름 일리가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실기시험장에 모인 40명의 생도 후보들을 훑어보았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이 있을까 봐서였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필이면······’
어깨까지 오는 검은 단발. 새하얀 피부. 다소 큰 눈.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소녀였다.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허리에 찬 고풍스러운 예도(銳刀), 창가에 기대 발을 까딱이며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 묘하게 나른한 눈매까지.
저 귀찮음으로 가득 찬 분위기······ 틀림없었다.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이자 [중력]이라는 사기적인 기프트를 다루는 능력자.
검으로는 주인공인 천우진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캐릭터, 은가예였다.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는 것은 분명 게임이겠지. 은가예는 따분할 때마다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성격이니까.
처음으로 아는 얼굴을 봤기 때문일까. 왠지 모를 반가움에 내가 은가예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다. 시선을 느낀 은가예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은가예는 못 볼 걸 봤다는 양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나는 멋쩍게 손을 내려놓았다.
이거, 첫 인상부터 조진 건가?
“주목!”
시험시간이 됐는지 교관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인사가 늦었군. 다들 반갑다. 나는 이번 실기시험의 진행을 맡게 된 교관 한진철이라고 한다.”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마친 한진철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모두 시험장에 들어올 때 번호표를 배부 받았을 거다. 그 번호 순서대로 20명씩 짝을 지어 난투를 벌인다.”
한진철이 시험장 바닥에 그려진 거대한 원을 가리켰다.
“바닥의 원에서 벗어나면 탈락으로 간주한다. 혹시라도 부상을 입을 걱정은 하지 마라. 번호표에 내장된 실드가 어지간한 건 막아줄 테니. 대신 실드가 깨지면 탈락이다.”
그때 후보생 하나가 손을 들며 물었다.
“몇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합니까?”
“한 명이다.”
“하, 한 명이라면 그 외에는······”
“탈락이다.”
질문을 한 후보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한진철이 말을 덧붙였다.
“물론 패자들을 모아 한 명을 더 선발하니 걱정하지 말도록.”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를 뻔뻔하게 내뱉은 한진철이 물었다.
“더 질문 있나? 없으면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오도록.”
한진철의 말이 끝나고 호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가예가 1조, 나는 2조로 배정을 받은 것이다.
‘폭탄은 피했네.’
내가 그람을 얻었다지만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은가예를 이길 가능성? 그딴 게 있을 리가.
이터니티 검성전기가 밸런스를 말아먹은 게임이라지만 그렇다고 검 하나 얻었다고 메인 캐릭터를 뚜드려 팰 정도의 막장은 아니었다. 훨씬 막장이지.
나는 원안에 들어가는 은가예를 바라보았다.
치마가 불편한지 걷는 게 어색해 보였다.
검 하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저 안에 도사린 건······
“시작!”
삐이이익! 호루라기 소리를 신호로 1조의 난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후보생 한 명이 밖으로 튕겨나갔다.
“374번 오학종, 탈락!”
탈락한 후보생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제대로 막았는데 날아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 같아도 어이가 없겠다.
검을 휘두른 것은 다름 아닌 은가예였다. 그녀는 상대를 원밖으로 날려버리고도 별달리 힘이 들어보이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첫 번째 희생양을 시작으로 난전이 벌어졌다.
덩치 큰 후보생 하나가 은가예에게 달려들었다. 좀 전에 후보생 하나가 날아가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은가예는 겉보기에 그저 검을 좀 잘 다룰 뿐인 가녀린 여자로밖에 안 보였으니까.
후우웅!
거대한 대검이 은가예를 내리 찍는 광경은 누가 봐도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명복을 빌어주었다.
‘저 새끼, 저거 알아서 자살하네.’
아니나 다를까, 대검을 내리찍던 후보생은 덤프트럭에 치인 사슴마냥 날아가 시험장의 벽에 처박혔다.
은가예의 기프트, [중력]이다.
그녀는 중력을 조종해 본인 스스로나 자신에게 닿는 물체의 '무게'를 마음대로 줄이는 게 가능했다.
그 탓에 암만 무거운 물체를 들어도 실상 그녀 자신에게 적용되는 물체의 무게는 '0'에 가까웠기에 움직임이 느려지지도 않는다. 반면, 타인에게는 그 물체의 무게가 그대로 적용되게끔 할 수도 있다. 참고로, 그녀가 휘두르는 예도의 무게는 중량마법이 적용된 마검으로, 4톤이었다. 상대는 그 4톤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기적인 특성 덕에 그녀는 검뿐만 아니라, 체술에도 능한 무투가였다. 그냥 몸 자체가 흉기라고 봐도 좋았다.
오죽하면 그 생도 레벨을 넘어선 미친 파괴력 때문에 은가예는 무희(武姬)라는 별호까지 얻게 되는 괴물이었다. 무녀할 때 무(巫)가 아니다. 굳셀 무(武)다.
‘아직 완성되려면 먼 것 같지만.’
덩치가 날아가자 은가예가 괴물이란 걸 알아차린 후보생들이 힘을 합쳤으나 소용없었다.
엑스트라 미만인 쩌리들이 은가예를 당해내는 건 계란으로 암석치기니까.
부딪힐 때마다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뻥뻥 날아가는 것이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저기에 내가 끼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삐이이이익!
1조의 경기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승자는 당연하게도 은가예였다.
패배한 1조원들이 들것에 실려나가고 실기시험장이 깔끔하게 비워졌다. 이어지는 2조의 차례.
'너만 믿는다.'
나는 그람을 꼭 쥔 채 원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 후.
삐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2조의 난투가 시작되었다.
***
“아, 또 죽었네.”
은가예는 혀를 차며 RPG게임어플을 지웠다.
처음 몇 번은 그럭저럭 재밌었는데 금새 흥이 식어버렸다.
“이건 언제 끝나는 거야?”
실기가 좀처럼 끝나지를 않았다. 은가예가 창가에 기대 발을 까딱이고 있을 때다.
“가예야~”
누가 그녀의 목을 팔로 감았다. 은가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3초.”
2초. 1초. 숫자를 빠르게 세니 ‘치’ 소리와 함께 엉겨 붙은 게 떨어져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의 소꿉친구이자 유일한 친구인 한세연이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가예야, 지루하니?”
“응, 기대 잔뜩하고 왔는데 비실비실한 놈들만 있으니까 김이 팍 새버렸어.”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까 좋지 않아?”
“사람 좋아하는 척은.”
코웃음을 치자 한세연은 말없이 싱긋 웃어 보였다. 은가예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야, 한세연.”
“응?”
“그렇게 웃지 마. 너, 그거 무서워.”
“가예 너 이외에는 다 좋아하던걸?”
“그거야 몰라서 그러는 거고. 알면서 시치미는.”
한세연이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말똥거렸다. 이에 은가예가 고개를 내저을 때다.
문득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은가예는 난투가 치러지는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2조의 난투가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서 있는 사람은 단둘. 그조차도 한 명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피하는 쪽을 본 은가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쟤는······”
“아는 사람이야?”
“얼굴만.”
아까 느끼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던 놈이다.
난투를 구경하러 온 생도들이 떠들어댔다.
“끝났네. 더 볼 것도 없겠다, 저건.”
“근데 진짜 잘 피하긴 한다.”
“의미가 있긴 하냐? 공격 하나 못 하는데.”
“왜, 불쌍해 보이긴 하잖아.”
왁 웃음이 터진다. 이건 누가 봐도 공격을 퍼붓는 후보생의 승리였다. 반면 은가예는 눈살을 찌푸렸다.
“쟤 뭐 하는 거야?”
생도들은 모르겠으나 그녀에게는 보였다.
피하는 쪽이 상대의 공격에 앞서 미리 반응하는 모습들이.
이는 상대의 수를 다 훤히 파악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피하기만 하는 거지? 그것도 저리 어설픈 척까지 해대면서.
“아! 설마 저거, 연기하는 거야?”
“풋, 그런가 본데?”
한세연이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은가예는 혀를 내둘렀다.
암만 연기를 한다 해도 그렇지, 바닥을 구르면서까지 한다고?
“······별 웃기는 놈도 다 있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경기가 이어지자 은가예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뭐야, 저거······”
겉보기에는 어설프다 못해 아슬아슬해 보인다. 하지만 그 피하는 방향이나 파고드는 위치를 선별하는 판단력은 소름 끼치게 정확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Lv1이 Lv20을 컨트롤만으로 상대하는 격이었다.
구경하던 생도들도 경기가 길어지자 차츰 의문을 품었다. 이쯤 되니 둘이 짜고 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야, 저거 일부로 가지고 노는 거 아니야?”
“맞네. 어쩐지 이상하더라.”
“와, 쟤 이명학이랬던가? 그렇게 안 봤는데 잔인한 새끼였네. 저거.”
이명학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어차피 이긴 상대를 저렇게 괴롭힐 이유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한편 비난을 받는 당사자인 이명학은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시발 나도 끝내고 싶다고! 안 맞는 거를 나더러 어쩌라고!’
그는 이미 이긴 상대를 가지고 노는 잔인한 성격도 아니었고 되려 마수를 보면 기절하는 새가슴이었다.
그런데 인간쓰레기로 낙인이 찍히게 생긴 것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는 생도들도 보였다.
“허억, 헉. 제발 좀 맞아줘라, 부탁이다.”
“굳이?”
이명학의 검을 피하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좀, 아니 솔직히 많이 불쌍해보이긴 했지만 거기에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이만큼이나 길게 끌게 된 것도 나로서는 계산착오다.
‘설마 그람의 기프트를 못 쓸 줄이야.’
그람의 기프트 [분열]은 말 그대로 검이 여러개로 분열해 날아다니는 ‘비도’다. 그리고 분열한 비도는 이러한 난전에 있어서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때문에 [분열]을 쓰면 수월하게 실기시험을 통과하리라는 계산이었는데,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던 것이다.
신체스펙이 그람의 기프트를 쓰기에 모자라다는 이유에서였다.
천우진을 플레이 할 때는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했다.
뭐 뜬 적이 있어야 알지. 새삼 내가 게임에 떨어졌다는 게 실감이 갔다.
아무튼, 예상 밖의 상황이긴 했으나 내가 질 일은 없었다.
그람같은 대보구에는 단순히 기프트만 달려있는 게 아니니까.
쐐애액!
검이 내리쳐온다. 제법 빠른 게 평소의 나였다면 피하기는커녕 반응조차 못할 검격이다.
그리고 나는 옆으로 슬쩍 움직여 검을 피했다. 뒤이어 휘둘러 오던 검마저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피한 게 아니었다. ‘그람’이 내 몸을 움직인 것이다.
[그람◆이해솔 동화율 5%]
뭐, 그조차도 고작 5%라서 대충 느낌만 받고 내가 움직이는 거에 가깝기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려 북유럽신화의 영웅, 지그문트의 움직임을 가져오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거기다 그람은 자체적인 마력까지 보유했다. 입학시험 레벨로는 차고 넘쳤다.
“죽어라아!”
그때 이명학이 마력이 넘실거리는 검을 내리쳐왔다. 어지간히도 열이 뻗쳤는지 입학시험에서 살인예고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거 영상 찍고 있던데······
아무튼, 기회였다. 흥분으로 이명학의 동작이 커졌다. 저 정도라면 나도 파고들 수 있었다.
후우웅!
바닥을 굴러 검을 피하곤 가드가 비어버린 이명학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헛!”
화들짝 놀란 이명학이 다급히 검을 회수했으나 이미 늦었다.
휘이익!
안전장치인 실드가 깨져 나가고, 그람이 이명학의 목에 겨누어졌다.
“승자! 386번 후보생 이해솔!”
이윽고 울려 퍼지는 이름.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몸을 돌렸다.
그람의 기프트를 못 쓰는 돌발상황이 벌어지긴 했으나 어찌저찌 넘긴 것이다.
‘이제 필기시험만 치면 되나.’
뭐, 필기야 이것보단 쉬울 거다.
게임을 클리어까지 했는데 설마 모르는 게 나오려고. 이건 입학 확정이다. 나는 여유롭게 난투장을 벗어났다.
한편, 난투가 벌어졌던 실기시험장에는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아 깨졌다.
“이야, 뽀록 터졌네.”
“와, 이걸 이긴다고? 실화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경기내용은 일방적이었는데 결과가 반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만 은가예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있잖아, 세연아.”
“응?”
“이터니티 온 거 말이야, 잘한 거 같아.”
“훗, 그거 다행이네.”
은가예의 나른하던 눈에 빛이 났다. 그 눈은 실기시험장을 걸어 나가는 이해솔을 향해 있었다.
실력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판단력만으로 상대를 이겼다.
이터니티에는 저런 놈들이 입학하는 건가?
그녀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벌써부터 이터니티에서의 생활이 기대가 되었다.
“아, 잘 봤다. 이제 필기만 치면 되겠네?”
“윽.”
한세연의 말에 은가예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마치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다.
“가자, 가예야.”
“자, 잠깐,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예예, 마음의 준비는 가서 실컷 하세요.”
한세연에게 팔을 잡혀 끌려나가며 은가예가 울상을 지었다.
“제발 반타작만······”
그녀는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어도 머리 쪽으론 영 소질이 없었다.
비가 내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얼마 후, 난투를 끝낸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필기시험장에 도착했다.
시험 시작 전이라고 다들 의자에 앉아 노트를 들여다보기 바빴다.
마치 수능 때의 수험생들을 보는 것 같아 입가에 절로 훈훈함이 걸렸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끔찍했겠지만 엔딩까지 클리어 한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던 것이다.
하지만 시험지를 받아보자마자 나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착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다음은 마수 A에 관한 내용이다. 마수A는 6급 개체이고, 총 100마리의 마물을 잡아먹었다. 이때 마수A가 지니게 되는 마력량을 구하시오. 또 마수A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을 3가지 이상 서술하시오.]
“시발.”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