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이터니티의 첫 번째 스테이지, 다이어울프 실습.
게임에서 무사히 사람들을 구출한 생도들에게 하진우가 꺼낸 첫마디는 이거였다.
─좋아, 다들 잘해주었군. 전원탈락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생도들에게 하진우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바로 위기에 처한 여자아이와 남자가 실은 ‘마인’이라는 것. 그리고 너희는 방금 마인에게 죽었다는 것.
그 뒤로 왜 두 사람이 마인인지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으나,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의 정체가 마족과 계약한 마인이라는 것.
나는 기력을 먹인 돌멩이를 여자아이를 향해 겨냥했다. 가상이기에 거리낌은 없었다.
‘단숨에 머리통을 날린다.’
여자아이를 노리고 연이어 남자를 없애야 한다. 어차피 말단 마인이기에 기습으로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마인은 마인. 한 발이라도 빗나가 반격이 일어나면 골치가 아파질 것이기에 실수는 없어야 했다.
“후우.”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돌멩이를 거머쥐었다.
재능, ‘비도술의 귀재’가 둘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그려준다.
싸아아······
그림에 따라 돌멩이를 쥔 손을 뒤로 젖힌다. 이윽고 불어온 바람이 풀숲을 뒤흔든다 싶은 순간.
휘이익!
돌멩이가 날았다. 빛살처럼 날아간 돌멩이가 풀숲을 지나 늑대들을 넘어 여자아이의 머리를 꿰뚫는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내 쪽을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또 하나의 돌멩이가 남자의 미간을 꿰뚫은 뒤였다.
퍼억!
마인들이 모두 죽자 뒤늦게 늑대무리가 내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사나운 이빨이 내 어깨를 물어뜯으려던 순간, 녀석들이 포말처럼 부서져 내렸다.
─실습 종료다.
하진우의 목소리가 체험장을 울렸다. 마인을 모두 죽임으로써 실습이 끝난 것이었다.
“휴우. 성공했네.”
긴장으로 흘러내린 이마의 땀을 닦고 체험장을 나오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지금 뭐 한 거야?”
“사람을 왜 죽여?”
“이야~ 수석이 제대로 한 건 저질렀네.”
나는 쏟아지는 시선들을 무시하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아멜리아가 곧장 물어왔다.
“왜 그들을 죽인 거죠?”
“이유가 있으니까.”
“안 알려주실 거예요?”
“아직 수업 안 끝났잖아.”
“······.”
아멜리아가 살짝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더이상 물어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알아내려는지 이어지는 실습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그렇게 실습이 끝나갈 무렵, 무언가 깨달았는지 아멜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저 사람들······”
역시 아멜리아. 눈치가 빠르네. 내가 피식 웃자 아멜리아가 입을 벌렸다.
그때 마지막 생도가 대기실로 들어오자 하진우가 마무리를 했다.
“다들 잘해주었다. 동기가 자신과 어떻게 다른 대처를 하는지 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을 거다. 도중에 사람을 죽인 녀석도 있더군.”
말을 하며 내 쪽을 쳐다보며 웃는 하진우. 그가 생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 이해솔이 사람을 죽인 이유를 아는 녀석이 있나?”
“······.”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아멜리아는 짐작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러자 하진우가 나를 보며 물었다.
“이해솔, 네가 대답해봐라. 왜 사람들을 죽였지?”
“마인이니까요.”
마인이라는 내 말에 대기실이 술렁였다. 하진우가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위험에 처했다기엔 남자와 여자아이가 불안해하는 것 같지 않더군요. 또 저런 풀숲에서 다이어울프에게 쫓겼다면 옷에 풀이나 흙이 묻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깔끔했습니다. 다이어울프가 둘을 위협하는 느낌도 전혀 없었고요. 마수가 따른다는 건 마인이라는 소리죠.”
이게 사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을 뿐이다. 어쨌든 두 사람이 마인이라는 건 확실했으니까.
그리고 하진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가 생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잘 들었지? 이해솔의 말이 정답이다.다만 몇 가지 부연설명을 하자면······”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결정적인 증거들을 제시하며 하진우가 나를 칭찬했다.
“······이상이다. 사실 맞추라고 낸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라는 의미에서 만든 함정이었다만, 그걸 제대로 파악하는 녀석이 있었군.”
마인을 위기에 빠진 부녀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생도들은 역시 수석은 보는 눈도 다르구나 하며 감탄하는 반응들이었다.
“오늘 실습은 여기까지다. 녹화된 실습 영상은 학급 카페에 게시될 테니 분석해 오도록. ···그리고 이해솔.”
“예.”
“앞으로 나와라. 실습 1위 보상이다.”
***
이터니티에서 첫 실습을 1위로 끝냈을 경우 주어지는 보상은 랜덤이다.
물론 보상인 만큼 뭐를 받든 쓸만할 것이기에 상관은 없지만, 단 하나 피해야 하는 게 있었다.
바로 카르마의 구슬. ‘마력용적’을 늘려주는 일회성 마도구로 전 세계에서 오직 이터니티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지만, 마력이 없는 내게는 가장 쓸모없는 마도구였다.
‘제발 카르마의 구슬만 주지 말아라. 제발.’
그리고 하진우가 웃으며 보상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카르마의 구슬이다.”
“······.”
“마력용적을 늘려주는 일회성 마도구다. 원래 보상은 몸을 보호해주는 호신용 마도구였다만, 너희에겐 성장이 우선이기에 내가 특별히 요청해서 바꿔왔다.”
그냥 주는 거나 받아오지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아, 내 마도구······’
“박수.”
짝짝짝!
생도들의 박수를 받으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인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이 카르마의 구슬이라는 애물단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문득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흘낏 돌아보니 아멜리아가 부러움이 잔뜩 깃든 눈으로 나를, 아니. 내 손에 들린 카르마의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손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니 아멜리아의 눈동자도 똑같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이번에는 위아래로 움직여봤다. 역시 아멜리아의 눈동자 또한 위아래로 따라 움직였다.
다음에는 좌우, 그리고 대각선, 다시 위아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아멜리아가 나를 빤히 노려보았다.
“팔이 저려서.”
“······.”
되도않는 변명을 해본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화제를 돌렸다.
“아멜리아, 이거, 교환할래?”
“뭐랑요?”
과연 아멜리아가 바로 반응했다.
“네 손목에 찬 그 팔찌랑.”
“이게 뭔 줄 알고요?”
“흑등고래 팔찌.”
착용한 대상에게 활력을 주는 마도구로 별의 성좌에서 지닌 수많은 유물 중 하나다.
내가 팔찌의 명칭을 정확히 알자 아멜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나름 정보를 얻는 곳이 있거든.”
“······좋아요, 바꾸죠.”
아멜리아는 별다른 고민 하나 없이 바로 승낙했다. 그러곤 내 눈치를 조심스레 살폈다.
그도 그럴 게 아멜리아에게 흑등고래의 팔찌는 순전히 활력을 주는 물건에 불과했다.
그걸 마력을 높여주는 카르마의 구슬과 바꾸겠다니 이게 웬 떡이냐 싶을 거다. 하지만 실상 이건 내게 훨씬 득이 되는 거래였다.
아멜리아에게는 단순한 컨디션 조절 용도인 팔찌일지 몰라도, 툭 치면 날아가는 유리 몸인 내게 흑등고래 팔찌의 ‘활력 증진’은 무려 신체 능력의 향상이라는 효과까지 보일 테니까.
그 말은 즉, 반응하지 못하는 공격에 적어도 반응은 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팔찌를 부수면 흑등고래의 정수가 흘러나와 그게 영구적인 능력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눈치를 보니 아멜리아는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아무튼, 이런 귀물을 시작부터 날로 먹을 수 있다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역시 관둘래.”
“왜, 왜요?”
“내가 손해잖아.”
카르마의 구슬을 거두자 아멜리아가 당황했다. 반면 나는 겉으로는 하나도 아쉬울 게 없다는 표정을 가장했다. 그것도 모르고 아멜리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로마노의 의장을 드릴게요. 물론 맞춤제작으로요!”
내 입이 살짝 씰룩였다.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이게 걸어 다니는 통장인가?
별의 성좌의 의류 브랜드, 로마노의 의장은 뛰어난 성능으로 유명하다. 거기다 맞춤제작이라면 단연 최고다.
당장 아멜리아가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옷만 해도 얇은 천 조각 주제에 어지간한 도검 정도는 우습게 막아낸다.
이렇듯 겉으로는 일상복 같아 보여도 방어기능이 확실한 의류를 일컬어 ‘의장’이라 부른다. 당연히 부르는 게 값이라 나는 마련할 엄두도 못 낸다.
아멜리아는 내게 그런 의장을 맞춰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개꿀이네.’
파격적인 조건에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나는 마지못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잘 생각하셨어요.”
내가 먼저 교환하자 했는데 오히려 아멜리아가 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그나저나 저 웃을 때마다 흔들리는 윗 머리카락, 묘하게 귀엽네.
아무튼 그렇게 주객이 전도된 이상한 거래가 끝날 즈음, 하진우가 첫날의 종례를 마쳤다.
생도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도 슬슬 일어나려는데 아멜리아가 말했다.
“가요.”
“어딜?”
“어디긴요, 의장 맞추러 가야죠.”
“이렇게 바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멜리아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예, 이터니티에도 로마노의 지점이 있거든요.”
***
정문 앞에 세워진 기다란 리무진을 타고 우리는 이터니티 로마노(Romano) 지사에 들어섰다.
그리고 웬 기계 슈트를 제작할 법한 공학소 같은 곳에서 디자이너를 배정받아 의장제작에 착수했다.
원단을 고르고, 디자인을 선택하고 치수를 재고······
무슨 인체공학 어쩌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들으며 다양한 테스트까지 거쳤다.
옷을 만든다기보단 내게 꼭 맞는 첨단 슈트를 제작하는 기분이다.
살면서 옷조차 맞춤제작 해 본 적이 없는데 게임 속으로 들어와서 이런 걸 경험하게 될 줄이야.
“오늘 맞춘 의장은 일주일이 뒤에 나올 거예요.”
“딱히 정장으로 안 해줘도 되는데.”
“무슨 소리예요. 이런 건 당연히 정장으로 해야죠. 프리다, 롱코트도 한 벌 준비해줘요.”
“예, 아가씨.”
내 옷을 맞추는데 어째서인지 아멜리아가 더 열성이다.
원체 코디를 좋아하는 성격인 듯도 했으나 카르마의 구슬을 받은 뒤로 종일 뿌듯한 표정이었다.
이거,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비싸게 불러 볼 그랬나?
“이왕이면 여벌도 만들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은데.”
“이거 얼마인 지나 아세요?”
“얼만데?”
“소재 비용만 다 합쳐서 3억이에요.”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만족해야겠다.
***
“아, 피곤하네. 흐흐.”
저녁 7시. 기숙사로 돌아오니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흑등고래의 팔찌를 구한 데다 계획에도 없던 의장까지 맞춘 것이다.
초반에 뽑아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뽑아먹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부숴볼까.”
나는 기대 어린 마음으로 흑등고래의 팔찌를 바라보았다. 기력을 강하게 주입하자 팔찌는 간단하게 부숴져 나갔다.
부수어진 표면에서 희뿌연 우윳빛 기운이 흘러나와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피곤했던 몸에 활력이 솟구쳤다. 그리고 갱신된 상태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이해솔
[체력 : 1.5(+2)]
[근력 : 0.8(+0.5)]
[민첩 : 2.8(+1.3)]
[지구력 : 1(+1)]
[손재주 : 3]
손재주를 제외한 전반적인 신체능력이 모두 향상했다. 그래봤자 일반 생도들의 능력치가 평균 10을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절망스러운 능력치였지만 이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게다가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신체능력의 향상으로 그람의 기프트가 일부 해금됩니다.]
그람에서 뚝! 소리가 나며 분열했다. 내 눈이 크게 떠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