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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화 (11/226)

§ 10화

나는 은가예와 천우진을 데리고 필드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마물들을 마주쳤지만 은가예 선에서 손쉽게 정리가 되었다.

그렇게 10분쯤 걸어 도달한 곳에는 거대한 절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

던전은 절벽의 무성하게 자란 수풀에 가리어져 있었다.

“······이런데 진짜 던전이 있었네.”

반신반의하던 은가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우진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해솔아, 뭐가 나오는지는 확인했어?”

“뱀굴이야. 새끼들이라 그리 강하지는 않아.”

“안에 모체가 있다는 말이구나.”

“맞아. 이만한 던전이면 4급에서 5급 마수 정도는 되겠지.”

4급에서 5급 마수라는 말에 두 사람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긴장보단 흥미가 더 컸는지 돌아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수풀을 지나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음습한 공기가 몸을 엄습했다.

채 1분도 걷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교복 안쪽이 축축해졌다.

“으, 기분 나쁘네.”

인상을 쓴 은가예가 손을 휘저었다. 마력이 방사되며 습기가 싸악 가신다.

인간제습기가 따로 없다. 역시 데려오길 잘했다며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어둠 저편에서 수십 쌍의 샛노란 눈동자가 번뜩였다. 육각사의 새끼들. 뱀떼가 나타난 것이다.

“앞에.”

“알고 있어.”

내 경고에 은가예가 검을 들어 올렸다. 천우진 또한 검을 쥐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몸을 마력이 얇은 막처럼 감싸 안았다.

독사의 독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사전작업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둘을 스치며 철의 무리가 날아갔다. 내가 날린 그람의 비도였다.

키이이이이!

어둠 속에서 뱀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세 자루의 비도는 뱀들을 휘저으며 순식간에 분쇄해버렸다. 고작 마물 따위가 그람의 비도를 버틸 수는 없으니까.

하물며 원거리 공격이기에 나는 독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거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데, 주위가 조용했다. 천우진과 은가예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내 뒤로 돌아와 둥둥 떠 있는 비도들을 바라보며 은가예가 떠듬거리며 물었다.

“너, 그거 뭐야?”

“뭐긴 뭐야, 비도지.”

“비도술사였어?”

“일단은.”

“이야, 신기하네. 비도술사는 역사책에서나 보는 건 줄 알았는데.”

은가예가 날 희귀동물 보듯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게, 요즘처럼 총과 마법이 발달한 시대에 비도는 비주류에 속한다.

빠르기로는 총보다 느리고, 강하기로는 마법보다 약하니까.

심지어 마력으로 비도를 조종해야 하기에 그 난이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더럽게 어렵고 더럽게 약한 것.

그게 요즘 사람들의 비도술에 대한 평가였다. 물론 나는 예외다.

단순한 비도가 아닌 그람의 비도가 마법보다 약할 리야 없으니까.

“생각보다 쓸만하네.”

은가예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천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해솔아.”

“응? 왜?”

앞장서 걷던 내가 뒤를 돌아보자 천우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이대로 쭉 가면 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온 김에 싹 다 털어야지.”

던전은 일자형 큰길로 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야광석이 박혀 길을 비추고 있었다.

이건 누가 봐도 큰길을 쭉 따라가면 육각사가 있는 보스룸이 나오는 구조다.

하지만 나는 바로 육각사에게 가지 않고, 군데군데 나 있는 작은 굴부터 정리해나갔다.

그도 그럴 게.

[···일각사를 사냥했습니다. 이기어검의 숙련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일각사를 사냥했습니다. 이기어검의 숙련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일각사를 사냥했습니다. 이기어검의 숙련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이렇게 버스 탈 수 있는 기회를 뭐하러 벌써 날려 먹어?’

지금도 봐라, 은가예의 정면 돌격에 뱀들이 맥을 못 춘다.

중력을 가미한 묵직한 검격으로 밀고 나가는 게 완전 불도저가 따로 없다.

은가예 뿐만이 아니다.

천우진의 검은 한 번 그어질 때마다 뱀들이 뭉텅이로 썰려나갔다.

놈들이 자랑하는 독은 둘의 마력에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그냥 뒤에서 무지성으로 짤짤이만 넣는데도 알아서 숙련도가 쭉쭉 올랐다.

그렇게 순식간에 3개의 뱀굴이 정리되자 은가예가 나를 돌아보며 작게 인상을 썼다.

“이상하네.”

“뭐가?”

“분명 같이 사냥하고 있는데 뭔가 손해 보는 기분?”

하지만 막상 뭐를 손해 보는지는 알 수가 없는지 은가예는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마 죽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본인의 불도저 같은 활약 덕에 내 이기어검의 숙련도가 어느새 2레벨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나도 뒤에서 숟가락 정도는 얹었으니 아예 업혀 간 것만은 아니지만······

‘개꿀이네.’

내가 입가를 씰룩이자 은가예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그렇게 뱀굴을 차례로 정리해나가던 때였다. 갑작스레 던전이 흔들렸다. 앞을 내다 본 나는 혀를 찼다.

“쯧, 어쩐지 잘 나간다 했다.”

던전의 넓직한 통로. 사람을 본뜬 철제인형이 땅을 쿵쿵 울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라이프 가디언.’

필드의 던전에 존재하는 골렘이었다.

녀석의 임무는 허가받지 않은 생도가 던전에 들어섰을 시 생도의 안전을 위해 던전 밖으로 생도를 내보내는 것.

초입이라 괜찮을 줄 알았건만 여지없이 가디언이 등장해버렸다.

‘이걸 가, 말아?’

가디언이 떴다면 육각사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맞았다.

가디언에 반했다간 벌점이 부가되는 걸 떠나서 징계감이니까.

그런데.

“여기 골렘도 나와?”

“그런 것 같네.”

라이프 가디언을 처음 보는 은가예와 천우진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까짓 거, 부수고 몰랐다 하지. 뭐.’

고작 가디언 하나 때문에 육각사를 포기하는 건 너무 아쉬웠다.

그때, 마침 다가온 가디언에게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스피커가 켜지는 듯한 소리.

녀석이 허튼소리를 하려 한다는 걸 직감한 내가 버럭 소리쳤다.

“부숴!”

까아아앙!

그람의 비도가 날아가 녀석의 깡통 대가리를 후려쳤다.

***

라이프가디언은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떡도 없는 놈이다. 던전에 배치된 골렘이니 그 내구도야 말해 입만 아프다.

물론 골렘이니만큼 핵을 부수면 동작을 멈추기야 한다. 그리고 그 핵이 가슴의 이음매에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이를 부수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핵을 감싼 마력장을 뚫어야 하는 데다 핵 자체의 강도 또한 단단하다.

그러니까, 미친 듯이 두드려야 겨우 금이나 갈까 하는 수준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콰직!

‘저거 저렇게 쉽게 깨지는 거 아닌데······’

불량품인가?

은가예의 일격에 달걀마냥 깨져버리는 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역시 무희인가.’

기프트를 쓰니까 위력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다.

“아으으······ 어지러워. 5분만 쉬었다 가자.”

휘청이더니 인상을 쓰며 주저앉는 게 반작용이 심한 듯했지만.

아무튼 라이프 가디언을 가볍게 쓰러트린 우리는 잠깐의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그때, 벽에 기대 쉬던 천우진이 나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솔아, 뭐 하는 거야?”

“뱀 가죽 벗기지.”

나는 바닥에 널린 일각사 한 마리의 가죽을 벗겨냈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대가리 목 부분을 칼로 툭 찍어 쳐내고, 손으로 껍질 끝을 잡아서 양말 벗기듯이 쭈욱 벗겨내면 된다.

“뱀 가죽을 갑자기 왜 벗겨?”

천우진과 은가예가 눈을 깜빡였다.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마수 잡으러 간다는 것들이······’

하기야, 천우진과 은가예가 또래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하다 뿐이지, 경험적으로는 새파란 풋내기나 다름없었다.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마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끽해봐야, 1, 2급 쭉정이들이나 상대해봤겠지.

그러니까 천우진과 은가예는 지금 마수의 기준을 1, 2급으로 삼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육각사를 그런 잡몹들 따위랑 비교하면 곤란했다.

이놈은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않고 상대했다간, 미래의 검성이고 나발이고 한 줌 독수로 녹여버릴 수 있는 괴물이었으니까.

뭐, 던전에 묶인 녀석이니만큼 여차하면 도망가면 그만이라지만 그래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면, 천우진과 은가예는 뭐가 문제냐는 태평한 표정이나 짓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것들이랑 던전을 들어와 가지고서는······’

나는 내심 한숨을 쉬곤 물었다.

“너네 여기가 무슨 던전이야?”

“뱀굴이지.”

“무슨 뱀굴?”

“···독사?”

“그래, 독사가 나오는 뱀굴이지. 그리고 우리가 만나려는 건 마수고.”

“······.”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한 두 사람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야 마력만 살짝 두르면 되는 독사같지도 않은 독사들을 상대했다지만, 이제 상대할 마수는 그것 가지고는 안될 거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거랑 뱀 가죽 뜯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게 독을 막아주거든.”

정석적으로 육각사를 상대하자면 제대로 된 방독구를 준비하고, 해독제를 미리 복용해야 했으나 여기에는 독을 막아줄 방독구나 해독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보다 좋은 천연 방독구가 널려있었다. 바로 죽은 ‘일각사’의 가죽이었다.

육각사의 새끼인 이놈들은 육각사의 독에 대한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어서 방독구로 쓰기에 최고였던 것이다.

“뭐해. 너희도 빨리 벗겨.”

벗긴 뱀가죽을 잘라 어깨에 착 붙이며 말하자 은가예와 천우진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날 따라 일각사의 껍질을 벗겼다.

일각사의 체액이 어찌나 끈끈한지 별다른 접착제를 바르지 않았음에도 뱀가죽은 몸에 착 달라붙었다.

보이지 않는 등 같은 곳은 서로가 꼼꼼하게 붙여주었다.

“으, 찝찝하네. 다 됐어?”

“덜 붙였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

그렇게 우리 셋이 뱀 가죽을 뜯어다 몸에 붙이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

다시금 던전이 흔들렸다. 이번 흔들림은 골렘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바닥을 쿵쿵 울려대기보단 뭔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

‘거대한 것?’

내가 설마하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쉬이이이이이!

멀리서 불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울음소리의 주인. 은가예와 천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뭐야?”

“······뱀?”

뱀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생명체가 통로를 가득 메운 채 빠른 속도로 기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틀림없는 뱀이었다. 내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저건 또 어떻게 기어 나온 거야?”

뱀의 정체는 보스룸에 묶여있어야 할 마수, 육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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