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원래라면 육각사는 반신이 묶여 보스룸에서 꼼작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지금 맹렬한 적의를 내뿜으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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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 ‘이해솔’의 성장속도가 ‘빠름’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기존의 스토리모드와 다른 ‘변곡점’이 추가됩니다.]
◆ 마수 육각사
상태 : 봉인 → 봉인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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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아니,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성장속도를 판단해? 그건 그렇고 난이도를 올린다고? 이거 맞아?
“뭐 이딴 망겜이······”
욕이 절로 나왔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반신이 묶였다면 모를까, 온전히 풀려난 육각사는 무척이나 위험한 존재였으니까.
심지어 지 새끼로 보이는 뱀의 잔해가 이에 잔뜩 끼어 있었다.
저 새끼, 저거 눈까지 돌아갔네.
▶경고 : 기나긴 굶주림으로 인해 마수 육각사의 성정이 극도로 포악해져 있습니다. 조우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도망을 권고드립니다.
“도망?”
저렇게 빠른 놈을 무슨 수로? 차라리 기차를 피해 달아나라 해라.
기차는 피하기라도 하면 되지, 저놈은 아예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올 기세다.
그보다 이대로라면 던전을 나가기도 전에 따라잡히게 생겼다.
‘그러면 잡는 수밖에.’
애초에 얌전히 먹힐 게 아니라면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솔직히 아주 못 잡을 것 같지도 않아 보였고.
탁!
나는 은가예의 비워진 등에 뱀 가죽을 찰싹 소리나게 붙이며 말했다.
“은가예, 막아.”
“뭐? 미쳤어? 저딴 걸 내가 무슨 수로 막아?”
“기프트 최대로 풀어.”
“기프트가 무슨 만능인 줄 알아?”
“막으면 알아서 잡을게.”
은가예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지만 나는 나름 진지했다. 은가예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심이야?”
“몇 초 막을 수 있어?”
“······4초? 더 짧을 수도 있어.”
“5초.”
“야이······”
“시간 없어. 빨리 해.”
쿠구구구구궁!
어느새 육각사가 지척까지 도달했다. 던전이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린다.
“아오, 못 잡기만 해봐.”
투덜거린 은가예의 단발이 너울져 떠오른다.
그녀가 기프트, 중력을 완전히 개방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은가예의 몸이 순간 크게 휘청였다.
다루기는커녕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뛰는 중력이 은가예의 검을 타고 육각사를 덮친다.
콰과과과과광!
던전이 흔들리고 풍경이 뭉개진다.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러한 파괴도 육각사를 밀려나게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내 목적도 육각사가 밀려나는 것이었다.
‘마력이 약해졌다.’
육각사가 무서운 이유는 녀석이 지닌 마력에 있다.
닿는 모든 것들을 한 줌 독수로 녹아내리게 하는 치명적인 맹독성 마력.
그런데 그 강력한 무기가 은가예의 중력에 의해 한풀 기세가 꺾여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의 틈을 천우진은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뛰어나간 천우진이 허공으로 도약한다. 푸른 마력의 참격이 육각사의 미간을 갈라놓았다.
“키에에에에에!”
보랏빛 피가 솟구치고 육각사의 비명이 던전을 메아리쳤다.
녀석이 발광하듯 휘두른 이마의 뿔이 천우진을 후려쳤다.
천우진은 예상한 듯 이를 검으로 수월하게 막아냈다.
그때였다. 뿔에서 시꺼먼 마력이 탁류처럼 뭉클 쏟아져나왔다.
“······!”
검은 파도가 순식간에 천우진을 덮쳤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그대로 검은 마력과 하나가 된 천우진이 던전의 벽에 처박혔다.
치이이이이.
검은 마력에 닿은 던전의 벽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야, 괜찮······”
“크으으윽······”
안 괜찮아 보이네.
다행히 늦지 않게 마력으로 몸을 감쌌는지 천우진의 사지는 멀쩡했다. 뱀 가죽을 붙여놔서 저 정도로 끝난 것이다. 그래봤자 오래 싸우기는 글러 보였지만.
‘쯧, 역시 한번 가지고는 안되나.’
육각사의 벌어진 미간을 본 내가 혀를 찼다.
한 번만 더 제대로 된 타격을 먹이면 될듯싶었으나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그때, 혀를 날름거리던 육각사의 샛노란 눈이 은가예를 향해 돌아갔다. 여지없이 마력의 해일이 쏟아졌다.
“흡!”
표정을 굳힌 은가예가 남은 여력을 쥐어짜 마력을 막아냈다.
치이이이이!
어찌나 지독한지 덕지덕지 붙여놓은 뱀가죽에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은가예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동안, 정신을 차린 천우진이 다시금 육각사에게 달려들었다.
예리하게 벼려진 마력의 칼날이 육각사를 노린다. 하지만 육각사는 뿔을 이용해 여유롭게 천우진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 뿔을 감싼 마력을 천우진의 검은 뚫어내지 못했다. 되려 힘에서 밀려 튕겨 나갔다.
한편, 은가예는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은가예와 천우진 둘 모두가 위험한 상황. 내가 뭔가를 해야만 했다.
나는 그람의 비도에 기력을 있는 대로 불어넣었다.
우웅.
기력을 머금은 비도가 잘게 떨었다.
나름 위력을 기대할 수 있을 듯했으나 고작 이 정도가지고 육각사에게 타격을 입히기란 무리였다.
타격을 입히기도 전에 녀석의 마력에 막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그람의 마력을 더한다고 해서 통할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기가 존재했다.
이카루스의 반지에 담긴 능력, 마력무효화.
그것을 이용한다면 육각사의 저 두터운 마력조차 뚫어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곧장 이카루스의 반지를 활성화시키고 그 능력을 그람의 비도에 담았다.
[그람의 비도에 마력 무효화가 적용됩니다.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크으······”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마력을 무효화 하는 조건은 내 정신력의 소모. 그런데 이 정신력의 소모란 게 생각보다 기분이 더러웠다. 하루 반나절을 꼬박 눈을 뜨고 지새운 기분?
그에 반해 무효화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은 쥐꼬리만큼 적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카루스라는 놈이 비웃는 것만 같았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으득, 소리나게 이를 깨물은 나는 억지로 정신력을 비도에 갈아 넣기 시작했다.
[그람의 비도에 마력 무효화가 적용됩니다.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그람의 비도에 마력 무효화가 적용됩니다.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그람의 비도에 마력 무효화가 적용됩니다.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그람의 비도에 마력 무효화가······]
“흐으으으······”
눈과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손발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나는 반지의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의식이 꺼질락 말락 할 때였다. 이전과는 다른 알림창이 떠올랐다.
[······마력 무효화가 일정치를 넘어섰습니다!]
[그람의 비도가 항마(降魔)의 비도로 변화합니다.]
화아앗!
순간 비도가 하얀 백광을 내뿜었다.
“됐······다!”
나는 가물거리는 눈을 억지로 뜨고, 전황을 살펴보았다.
천우진은 여전히 지지부진 대치 중이었고, 은가예는 육각사의 마력에 잠식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육각사의 아물고 있는 미간을 향해 항마의 비도를 집어던졌다.
파아아아!
눈부신 백광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비도.
갑작스러운 빛에 놀란 육각사가 마력의 방벽을 일으켰으나, 항마의 비도는 이를 가볍게 뚫어냈다.
그리고.
푸우욱!
녀석의 벌어진 미간에, 항마의 비도가 박혀들었다.
치명상은커녕 얕게 박힌 게 전부였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비도에 맺힌 항마의 기운이 육각사의 마력을 내리눌렀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
육각사가 난동을 부리자 던전이 지진을 만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녀석의 마력이 난폭하게 요동치며 항마의 기운이 금방이라도 깨져 나가려 했다.
“뭐하고 있어! 죽여!”
“······!”
처음 보는 현상에 놀라 눈만 깜빡이던 천우진이 내 외침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지면을 박찬 천우진이 육각사의 머리를 베어냈다.
서걱!
[···육각사를 사냥했습니다! 이기어검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이기어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기어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기어검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을 한계치까지 다루었습니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아으······”
육각사가 쓰러지기 무섭게 눈을 어지럽히는 알림창들.
상황이 끝난 걸 확인한 나는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놓아버렸다.
***
“김종학, 18마리!”
필드의 공터에는 1반 생도들이 각자 사냥한 마물이 쌓여있었다.
교관 하진우는 생도들을 순서대로 호명하며 사냥한 마물의 개수를 발표했다.
물론 발표를 하지 않아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기에 자신의 등수 정도야 다들 확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자신의 결과에 나름 만족했다.
【38마리 / 아멜리아 로마노】
‘2등.’
공터에 모인 생도들이 사냥한 마물의 개수를 아닌 척 하나하나 눈으로 다 세어 본 그녀는 자신의 등수가 2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등이 아니라는 점이 살짝 아쉽긴 했으나, 어차피 이건 단순한 실습이다.
4등까지는 동일한 점수를 받기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멜리아는 흘낏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작은 동산 마냥 마물이 쌓여있었다.
그 앞에서 니콜라이가 몇몇 생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아직 등수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생도들은 니콜라이가 1등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육안으로만 봐도 니콜라이가 사냥한 마물의 개수는 압도적이었으니까.
니콜라이와 생도들이 수군대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니콜라이, 너 진짜 대단하다. 이거 다 어떻게 잡은 거야?”
“별거 아니다. 눈에 보이는 건 다 잡아 왔지.”
별거 아니라는 말과는 달리 니콜라이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때 생도 하나가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얘네는 아직도 안 오네.”
“이해솔이 니콜라이랑 내기했다잖아. 질까봐 종료 전까지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는 거겠지.”
생도들이 말하는 이들이란 이해솔과 천우진, 은가예였다.
세 사람은 종료시간이 다가옴에도 아직까지 복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어디 간 걸까?’
아멜리아 또한 이해솔의 행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해솔이 별다른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궁금한데, 거기다 천우진과 은가예가 이해솔을 따라갔다.
두 사람 모두 아멜리아가 눈여겨보던 최상위 인재들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혹해서 따라갈 정도라면 이해솔에게도 나름의 작전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멜리아는 그 작전이 무엇인지 몹시도 궁금했다. 아무리 봐도 이해솔이 니콜라이를 이길 가능성은 보이지를 않았으니까.
그도 그럴 게 초입에 있는 마물이란 마물은 니콜라이가 닥치는 대로 다 쓸어 담은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이해솔이 이길 수 없는 내기였다.
하지만 이해솔이 떠나기 전에 보여주었던 여유를 떠올리자니 정말 이길 수 없는 내기인지 자꾸만 헷갈렸다.
그렇게 아멜리아가 풀리지 않는 의문에 눈을 굴리고 있을 때였다.
“저, 저거 뭐야!? 뭐를 잡아 온 거야?”
“미친! 저거 마수잖아!”
문득 주변이 소란스러워져 옴에 아멜리아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이해솔과 천우진, 은가예가 언덕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는지 교복이 잔뜩 해지고, 부상을 입은 채였다.
그런 세 사람의 손에는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쥐여져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체가 아니라 커다란 무언가의 머리였다.
이를 유심히 쳐다보던 아멜리아의 눈이 서서히 커져갔다.
“······!”
육각의 뿔을 지닌 거대한 뱀의 머리.
그게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아멜리아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유, 육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