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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화 (14/226)

§ 13화

“해솔 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200kg를 공기돌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어쩌랴, 이게 이터니티인 것을.

속으로 한숨을 내쉰 나는 조용히 기력을 끌어올렸다.

오로지 순수 근력으로 치러야 하는 체력측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랬다간 체력측정을 끝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깔려 죽는다.

교관이란 인간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200kg쯤은 가볍다고 여기는지 안전 대비 따위는 개나 줘버린 눈치였으니까.

그나마 다행히도 기력은 마력과 달랐기에 교관은 내가 기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해솔, B+다.”

기력까지 써가며 죽기 살기로 측정을 모두 마치자 나온 결과는 B+.

기력을 쓰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점수다.

“수석이 고작 이 정도라, 흠. 재능만 믿고 육체단련은 게을리했나 보군.”

교관이 측정지에 체크를 하며 중얼거렸다.

“······.”

교관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흘려 들으며 자리로 돌아가자 아멜리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쪽도 모두 잘하는 건 아닌가 보네요.”

“시끄러워.”

무언가 대단한 착각을 한 듯한 아멜리아를 가볍게 무시하곤 측정이 이어지는 강당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은 철근을 씹어 먹었나.’

200kg나 되는 바벨을 면봉처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생도들을 보고 있자니 저것들이 나와 같은 인간 카테고리에 속하는 놈들이 맞는지부터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다른 생도들의 짐승 같은 퍼포먼스를 멍하니 구경하고 있을 때다.

“박유천. F-다.”

“······예.”

박유천이라 불린 생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로 돌아갔다.

생도들이 그 모습을 무슨 진귀한 동물 보듯 쳐다보며 수군댔다.

“아, 쟤가 그 F급인가 보네.”

“이터니티는 어떻게 들어왔대?”

“3대 800? 와, 저게 사람이냐?”

나는 구석지에 쪼그려 앉은 ‘박유천’이라 불린 생도를 바라보았다.

실습 첫날부터 마물 하나 제대로 못 잡아서 유명해진 교내 유일의 F급 생도.

하지만 굳이 F급이 아니더라도 나는 박유천을 잘 알고 있었다. 저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니까.

‘저거 조만간 터지겠는데.’

보다시피 박유천은 이터니티의 바닥을 깔아주는 F급 생도다.

저조한 성적 때문에 언제 퇴출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문제는 저놈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조만간 ‘마인’으로 각성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무려 캐릭터의 ‘사망선’을 제공하는 마인으로 말이다.

이터니티 전기에는 각 메인 캐릭터마다 ‘사망선’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이 사망선을 넘기지 못하고 캐릭터가 죽게 되면 그만큼 게임의 난이도가 올라가 버린다. 그리고 첫 번째 사망선을 겪게 되는 이는······

“은가예, 체력측정이다. 나와라.”

***

1학기 첫 주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필드의 던전탐험이었다.

필드의 던전은 이터니티가 관리하는 만큼 일반 던전보다야 위험도가 낮았으나 그보다 다양한 속성의 마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장점 또한 존재했다.

“필드의 던전에서는 밖에서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거다.”

교관인 하진우의 말마따나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유용했고.

거대한 절벽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던전은 척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안전을 위해 4인 1조로 인원을 편성해 움직이도록 하겠다.”

던전의 앞에 선 하진우가 차례로 조를 호명했다.

“1조. 천우진, 신유학, 케일, 아멜리아.”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봐 천우진은 1조로 호명되었다.

팀 구성원마저 상위 엘리트들로 꾸려진 게 운이란 운은 죄다 몰아받은 놈이다.

“2조. 은가예, 박유천, 이순철, 남민우.”

1조가 던전으로 들어가고, 이어서 2조가 호명되었다. 사실 이 팀이 가장 문제였다.

“아, 망했다.”

“···올F랑 한 조라니.”

이순철과 남민우는 박유천과 한 조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놓고 투덜거렸다.

은가예는 구성원에 관심이 없는지 아무렴 좋은 눈치였고.

나는 박유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게임에서의 박유천이 마인으로 각성하는 시기는 정해진 바가 없는 ‘랜덤’이다.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래서 유심히 지켜본 거였는데······

‘폭탄 터졌네.’

박유천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이미 마인으로 각성해 있었다.

[박유천이 마인으로 각성했습니다.]

[경고! 사망선이 발생합니다.]

떡하니 상태창에 녀석의 각성 알림과 사망선이 떠올랐으니까.

나는 막 이동하려던 은가예를 불러세웠다.

“은가예.”

“응?”

“너, 박유천 조심해라.”

“내가? 쟤를 왜?”

“저놈이 너 공격할지도 몰라.”

“야, 그게 무슨······”

은가예가 눈을 찌푸리며 되물으려던 때, 하진우가 소리쳤다.

“호명된 2조는 앞으로 나와라.”

“아무튼 조심해서 손해 볼 거 없어. 이거 가져가라.”

“이걸 왜······”

“나중에 알려줄게.”

나는 던전에 들어서는 은가예에게 그람의 비도 한 자루를 억지로 쥐여주었다.

저게 있으면 던전에서 길이 엇갈리더라도 내가 찾아갈 수가 있었으니까. 일종의 보험이었다.

그렇게 1조에 이어 2조가 던전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조가 호명되었다.

“3조. 이해솔, 한세연, 오진혁, 김하윤.”

한 조 차이. 다행히 순서가 벌어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 학급 반장인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같은 조가 됐네? 잘 부탁해.”

“어, 나도.”

교실에서도 옆자리인 만큼 우리 둘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아니었다.

“···오, 오진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거구를 가진 오진혁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험악하게 생긴 외면과 달리,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가 보다.

반면 김하윤은 또 달랐다.

“와아! 한세연이다! 반가워요! 저 엄청엄청 팬이에요! 아, 거기 해솔씨도.”

······어째 나한테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해 보였지만.

아무튼 새 학기 첫 주라 그런지 다들 서먹함이 느껴졌다.

“다들 잘 부탁해.”

한세연은 이런 서먹함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방긋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친화력이 장난 아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나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마냥 불편했다.

“동갑끼리 어색하게 무슨 존대야? 말 놔.”

“···음, 그, 그럴까? 잘 부탁한다.”

오진혁이 어색하게 말을 놓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있을 때였다.

“3조! 잡담 그만하고 빨리 던전으로 입장해라!”

“가면서 이야기하자.”

하진우의 외침에 우리는 으스스하게 아가리를 벌린 던전의 어둠으로 걸음을 옮겼다.

***

우리 조의 구성은 제법 알차게 꾸려졌다.

전사인 오진혁, 치유술사 김하윤, 사수 한세연, 그리고 나.

원거리 둘에 서포터 하나, 전방의 전사.

오진혁을 앞에 세우고 김하윤이 중간에, 나와 한세연이 뒤에 서니 포지션이 딱 떨어졌다.

어두운 통로는 김하윤이 마법으로 밝혔기에 시야에 장애는 없었다. 다만.

“으, 너무 질퍽해. 나 신발 다 젖었어.”

김하윤이 울상을 지으며 푹 빠지려는 신을 올려 신었다. 아닌 게 아니라 던전이 늪지대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조금만 세게 밟아도 푹푹 빠지는 신발 탓에 우리가 불편하게 통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으악!”

앞장 서 걷던 오진혁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놀란 김하윤이 인상을 썼다.

“깜짝이야! 뭔데 그래?”

“저, 저기!”

오진혁이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오진혁의 발치 앞으로 빨판이 달린 촉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으······ 뭐야, 저게?”

김하윤이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촉수를 따라 올라간 곳에 괴상하게 생긴 문어가 커다란 눈을 굴리고 있던 것이다.

“옥토퍼스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옥토퍼스. 일명 문어 대가리.

이런 습한 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1급 마수였다.

“정수리나 미간이 약점이야. 반응이 은근히 빨라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앙! 타앙!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두 발의 총성이 던전을 울렸다.

각기 정수리와 미간에 바람구멍이 난 옥토퍼스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세연이 싱긋 웃으며 총구를 호 불고 있었다.

“와와! 세연이 대단하다! 어떻게 옥토퍼스를 그렇게 간단히 잡는 거야?”

나사라도 빠진 것처럼 김하윤이 환하게 웃으며 좋아한다. 반면 내 표정은 어색하게 굳어졌다.

“···야, 너 내 앞에 서라.”

“왜?”

“몰라서 물어?”

한세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쏠 까봐 쫄려서 그런다.”

그것도 저렇게 웃는 얼굴로 총구까지 불어대니 심장이 쪼그라들겠다.

내 강력한 요청으로 포지션을 재정비한 우리는 다시금 던전의 통로를 걸었다.

그 뒤로 이어진 10분간, 우리는 옥토퍼스 4마리에 달팽이 마물 3마리를 더 잡았다.

퍼억!

그람의 비도에 미간을 뚫린 옥토퍼스가 쓰러지자 김하윤이 놀랍단 표정을 지었다.

“와, 나 비도로 마물 잡는 거 처음 봤어.”

현대 이터니티에서 비도는 사장되다시피 했기에 그걸 주력으로 삼는 내가 김하윤은 어지간히도 신기했나 보다.

한세연 또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마냥 내 비도를 보며 눈을 빛냈다.

그렇게 무슨 박물관 고인돌 취급을 받으며 걷길 얼마나 되었을까. 전방에 갈래 길이 나왔다.

“어디로 갈까?”

“오른쪽.”

오진혁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김하윤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왜 오른쪽이야?”

“그냥. 왼쪽은 느낌이 별로여서.”

“느낌?”

“내가 감이 좋거든.”

은가예에게 그람의 비도를 쥐여주었기에 위치 파악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대충 감 따위로 얼버무렸다. 그리고 오른쪽 길로 간 것은 여러모로 정답이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

늪지대 마냥 푹푹 빠지던 땅이 갈래길로 들어서기 무섭게 평평해진 것이다.

습했던 공기도 다소 건조해져서 숨쉬기가 편해졌다.

오진혁이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와, 무슨 던전이 방향 하나 틀었다고 환경이 이렇게 확 바뀌지?”

“그야 배치된 마수가 다르니까.”

한 던전에 여러 환경이 공존하는 것은 자연적으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처럼 필드의 인공던전이라면 달랐다.

각 통로마다 배치된 마물의 속성이 다르다보니 그에 따라 환경 또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던전은 다중 던전으로 어느 길을 택하냐에 따라 던전 보스 또한 달라지게 설계되어 있었다.

아무튼 나아진 환경에 우리는 다소의 편안함을 만끽했다. 조금 어둡기야 했지만.

······응? 어두워?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력구로 시야를 밝혔는데 어두울 수가 있나?

던전의 벽은 단순히 그림자가 졌다고 보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빛과의 경계지점이 너무 뚜렷하달까? 저런 건 내가 알기로 그림자 계열의 마수가 벽에 깃들었을 경우밖에는 없었다.

추측하기로 1급 마수, 그림자 사마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놀랄 뿐이지, 전투력은 약한 마수다.

그런데 어째 벽이 좀 많이 어두웠다. 그것도 빈틈 없이. 마치 그림자 사마귀 수십 마리가 뭉쳐있는 것 마냥.

······미친.

“뛰어!”

“뭐?”

나는 대답할 새도 없이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갔다.

동시에 통로의 벽에서 무수한 갈고리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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