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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6화 (17/226)

§ 16화

“······죽는 줄 알았네.”

박유천의 죽음에 긴장이 풀린 나는 뒤늦게 몸서리쳤다.

육각사를 죽이면서 4번째 비도를 해금해놓지 못했다면 위험했다. 그만큼 아슬아슬한 교전이었다.

이번 사건은 내게 빨리 강해져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박유천의 마인 각성 이후로는 더욱 많은 마인이 출현하게 될테니까.

복잡한 생각을 접어둔 채 나는 은가예부터 살폈다.

피를 게웠는지 입가가 살짝 붉었으나 다행히도 그리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야, 괜찮냐?”

“······어, 어. 응.”

죽다 살아나서인지 은가예는 어딘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러다 2조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게 떠올랐는지 퍼뜩 고개를 돌린다.

나도 은가예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2조의 상황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박유천에게 이끌린 마수라 해봤자 하급 마수가 고작이었기에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다.

상황이 대충 끝난 걸 확인한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데다 기운을 남김없이 써버렸기에 서 있을 힘도 없었다.

그런 나를 은가예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 말했다.

“이제 말해봐.”

“뭐를?”

“어떻게 안 거야? 박유천이 마인이라는 거.”

“아.”

나는 그제야 은가예에게 박유천을 조심하라고 한 이유를 끝나고 나서 말해주기로 한 것을 떠올렸다.

은가예는 내가 박유천이 마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저놈, 너한테 원한 가지고 있었거든.”

마인은 단순히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마인이 된 이를 통해 마기를 주입받거나, 또는 스스로 마족과 계약을 해야만 했다.

전자야 상황에 따라 쉬울 수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는 여간해선 어려웠다.

쌓이고 쌓여 정신이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만이 마족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유혹에 빠지고 마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박유천의 경우는 후자였다. 이미 여러 차례 사고를 친 전적을 가진 망나니.

심지어 입학시험에서 은가예에게 개박살이 났다가 뒤늦게 추가합격을 했다······라는 게 녀석의 배경 스토리다.

정작 개박살을 낸 장본인인 은가예는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 눈치였지만.

아무튼 녀석이 마인이 된 결정적인 원인은 체력테스트의 결과였으나 위의 내용도 대충 둘러대기엔 적당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은가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 때문에 조심하라 한 거였다고?”

“그럼 뭐라 생각했는데?”

“그야 박유천이 마인인 걸 알아서······”

“내가 무슨 수로?”

“······.”

은가예는 뭔가 시원치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렸으나 막상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어버렸다. 상식적으로 내가 박유천이 마인이라는 걸 미리 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 뒤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할 말이 없던 나는 괜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내 눈이 커졌다.

“······!”

어느새 마수 한 마리가 가까이 다가와 있던 것이다. 그림자 계열의 마수라 지척에 도달할 때까지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녀석이 앞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비도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기력을 먹인 비도를 발출하려는데 섬뜩한 기운이 볼가를 스쳐 지나갔다.

다음 순간, 검은 재가 흩날렸다. 소멸한 마수의 잔재였다.

“이건······”

나는 놀란 눈으로 마수를 소멸시킨 광포한 푸른 마력을, 그리고 이를 일으킨 주체를 바라보았다.

은가예의 검 끝에서 푸른 마력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건 평소의 거칠지만 어딘가 절제된 은가예의 마력과는 달랐다. 거침없이 타오르며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마력.

은가예가 지닌 마력의 참모습, ‘중력의 마력’이었다.

‘자의로 일으킨 건 아니네.’

스스로 해놓고도 놀랐는지 은가예의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저렇게 끝내게 내버려 뒀다간 금새 잊어먹을 듯해 나는 일전에 주었던 ‘힌트’를 다시금 말해주었다.

“거봐, 힘 빼니까 되잖아.”

“뭐?”

은가예의 의문 어린 눈이 나를 향했다. 그렇게 그녀가 막 뭐라 말하려 할 때였다.

“야! 괜찮냐?!”

마수를 해치운 2조가 달려왔다.

“미안. 마수 한 마리 놓쳐서 그쪽으로 간 거 같은데, 어떻게 됐어?”

“은가예가 처리했어.”

“······어, 내가 잡았어.”

“그래? 휴우, 다행이다.”

내 대답에 은가예가 고개를 끄덕였고, 화두는 자연스레 박유천으로 넘어갔다.

죽은 박유천의 몰골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피부는 까맸고 외관은 짐승처럼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이순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마인······ 이겠지?”

“응, 마인이겠지.”

내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세상에······”

그들은 동급생이 마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졌지만 나는 굳이 환기를 시키지 않았다.

저들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

학기가 거듭될수록 그들이 마인을 마주할 일은 많아질 것이다. 이터니티는 그런 게임이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곧이어 3조가 도착했다. 꽤나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오면서 함정으로 보이는 게 간간히 보였는데, 마력이 없는 내게는 반응하지 않던 것들을 고스란히 당했나 보다.

이윽고 이어진 3조의 반응은 2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 이해솔! 갑자기 먼저 가버리면 어떻······!”

소리를 치려던 김하윤은 박유천의 시체를 보곤 흠칫 놀라 말을 멈췄고, 오진혁은 선 채로 굳어졌다.

특히 언제나 웃기만 하던 한세연의 얼굴에선 표정이란 게 사라져 있었다.

그건 마인을 보아 놀랐다는 반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다 더 직관적인, 한세연이 짊어진 천형(天刑)에 기인한 뒤틀림이었다.

‘참기 힘든가 보네.’

사실 한세연이야 말로 박유천과는 비교도 안 될 폭탄이었다.

박유천이 언제 터질지 몰라 신경을 써야 했다면, 저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와서 문제였으니까.

마수지체(魔獸肢體).

한세연은 무려 마수를 끌어들이는 체질을 타고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저주받은 체질로 인해 2학년 1학기 무렵, 전 교사에 마수를 소환하고 폭주를 해버리고 만다.

그저 게임에 긴장감을 더해주기 위한 이벤트 보스. 그게 바로 한세연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세연을 마냥 단순한 이벤트 보스 따위로 버릴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조우하게 될 적들을 생각하자면 없는 전력도 만들어서 끌어모아야 하는 게 내 팔자였으니까.

그런 마당에 비록 이벤트이긴 하나, 무려 보스씩이나 되는 존재가 떡 하니 곁에 있는 것이었으니······

‘어떻게든 살려야지.’

박유천이 인간 말종에 구제할 수 없는 마인의 씨앗이었다면 한세연은 달랐다. 특이체질을 타고나 고통 받고 있을 뿐, 마인은 아니었으니까. 얼마든지 회유할 수 있는 인재였던 것이다.

한세연을 살린다는 내 다짐을 시스템이 읽기라도 한 것일까. 갑자기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캐릭터 퀘스트 : 한세연]

[한세연을 마력 폭주라는 운명으로부터 구해내시오.]

[보상 : 기력 최대치 증가]

이건 무조건 살려야겠네.

안 그래도 기력의 양이 적다는 게 내 가장 큰 고민거리였는데 그게 이런 보상으로 나올 줄이야.

그렇게 내가 퀘스트 알림창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을 때였다. 하진우가 필드의 요원들과 들이닥쳤다.

이내 공동을 둘러보던 하진우는 박유천의 사체를 발견하곤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수업은 중지다. 다들 밖으로 나가 있거라.”

***

박유천이 마인이었다는 소식은 이터니티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던전에 설치되어있던 장비들이 박유천의 마기에 전부 먹통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알아차리는 게 늦어졌다는 게 하진우의 설명이었다.

아무튼, 2조가 습격을 받고 수업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나, 사건은 박유천 개인의 우발적인 마인화라는 결론으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다 은가예의 부상도 생각보다 경미한 수준이었고, 결정적으로 박유천의 마인화는 드물다 뿐이지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된 날 밤 자정.

불이 모두 꺼진 기숙사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생도가 있었다.

생도의 정체는 한세연이었다.

기숙사를 나온 그녀는 누가 따라오지는 않나 주변을 확인하면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그렇게 아카데미를 벗어나 뒷산 깊숙이까지 한참을 들어오고서야 그녀는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후우.”

내려앉는 숨결이 유난히 뜨거웠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낮에 박유천의 마기를 접한 뒤로 마력을 해방하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이 들었다.

석달에 한 번 있는 마력의 해방을 한 게 불과 일주일 전이니, 다음 해방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으나, 지금 마력을 푼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있다면 마수가 좀 더 많이 모여든다는 정도이려나.

싸아아아······

어두운 밤. 귀기처럼 푸르게 광망하는 마력이 숲의 공터를 서늘하게 밝히었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공간이 이지러지며 반투명한 괴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낮게 깔린 저주파의 울음이 소름 끼치게 공터를 울린다.

한세연의 마력에 이끌려 나타난 세계의 이면에 기생하는 마수들이었다.

동시에 한세연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타앙타앙!

마력을 머금은 푸른 궤적이 어둠을 밝히고 요란한 총성이 적막한 공간을 울린다.

익숙한 듯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총탄의 세례는 모습을 드러내던 마수들을 나오는 족족 소멸시켰다.

마수를 제거하는 그 일련의 작업은 탄피가 바닥을 메우고 달궈진 총신이 공기를 달굴 때까지 계속되었다.

총성이 멎은 것은 공간의 파문이 어떠한 간섭에 의해 지워졌을 때였다. 이윽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마수들. 놀란 한세연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사박사박.

풀을 밟는 소리가 울리고, 달빛 아래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세연의 눈이 커졌다.

“좋은 밤.”

웃으며 장난스레 손을 흔들어 보이는 생도는 이해솔이었다.

***

한세연은 어릴 적 마수로 인해 주변인을 잃는 사고를 겪고 난 뒤 자신의 마력이 마수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지옥이었다.

억지로 마력을 억눌렀고, 그 반동으로 고통과 발작에 시달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런 한세연이 마력을 풀어놓는 것은 석달에 한 번. 자정이 되는 시각.

나는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던전에서 한세연이 보인 반응이 느낌상 오늘일 것 같다는 추측을 심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정이 되기 직전 한세연은 기숙사를 나와 아카데미의 뒷산으로 향했다.

‘왠지 나올 것 같더라니.’

나는 들키지 않게끔 멀리 떨어져서 숲길을 거니는 한세연을 미행했다.

이윽고 야산의 어귀에 멈춰 선 한세연이 마력을 개방했다.

억눌림에서 해방된 한세연의 마력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 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올 정도였다.

이어진 광경은 더 놀라웠다. 공간이 이지러지며 사방에서 나타나는 마수들.

한세연의 총이 그런 마수들을 사정없이 난사했다. 폭사하듯 퍼부어지는 총탄의 세례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저게 과연 낮에 나랑 같이 던전을 돈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화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저런 한세연의 마력이 폭주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카루스의 반지를 사용하며 마력을 무효화시킬 대상을 지정했다.

대상은 파문을 일으키며 마수가 밀려 나오는 마력적 공간 전부.

[마력 무효화를 사용합니다.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시스템 창이 떠오르고, 이내 항마의 기운이 마력적 공간을 지워 간다.

그렇게 같은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자 한세연의 사방에서 마수를 토해내던 공간이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총성 또한 멎었다. 놀란 한세연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왔다.

“좋은 밤.”

정신력의 소모로 머리가 아찔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억지로 웃어 보였다.

“어떻게 한 거야?”

“지웠어.”

“···지웠다고?”

내 말을 되묻는 한세연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마수를 불러들이는 체질 탓에 평생을 고생해왔으니까.

그런 고질적인 문제를 내가 겉보기에는 간단히 없애버렸으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력을 무효화할 수 있는 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세연의 마력이 폭주하지 않게 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지금부터 나는 그 해결책을 제시해줄 생각이었다.

“마수지체, 고치고 싶지 않아?”

“······!”

한세연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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