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내가 마수지체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그건 알 필요 없고, 고칠 건지나 말해.”
“응, 고칠래.”
한세연의 대답에 망설임이 있을 리 없었다.
“좋아.”
대답을 들은 나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나뭇가지를 들어 땅에 ‘계약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
마수지체인 한세연의 마력은 독특한 향을 풍긴다. 오직 마수만이 맡을 수 있는 그 독특한 향에 마수들이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세연의 마력에서 그 향을 지워내야 했으나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한세연이 이 야밤에 산을 오르는 고생도 안 했을 것이다.
아니,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마수를 소환하면 부려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아깝게 그걸 왜 포기한단 말인가?
마수도 부리고 문제도 해결하는 일석이조를 노리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수랑 계약해.”
“······마수랑 계약?”
“어.”
내 말이 너무 뜻밖이었는지 한세연이 눈을 깜빡였다.
솔직히 안될 것도 없었다. 이터니티에는 계약을 통해 이형의 존재를 다루는 소환사라는 직업이 버젓이 존재하니까.
대표적으로는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가 있고, 드물게 환수나 동식물을 소환하는 이도 있다.
그러니 한세연이 마수와 계약한들 문제 될 건 없었다.
조금 특별할 뿐이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마수를 다루는 소환사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표면적으로는 말이지.’
아주 드물게 마수소환사가 나오기도 했으나 이는 오직 극소수만이 아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는 마수와의 계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소환계약이란 ‘친화력’을 전제로 한다. 소환하려는 존재와의 상성이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마수가 지닌 기운은 마기. 마인이 아니고서야 마기와 상성이 맞는 인간이 존재할 리 없기에 마수와는 계약을 하지 못한다는 게 세상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상식’이었다.
한세연 또한 마수와 계약을 한다는 발상을 해 본 적이 없는지 내 말에 의문을 품었다.
“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마수랑 계약하는 거지 마기와 계약하는 게 아니잖아.”
“······?”
‘그게 그 말이지 않아?’라는 의문이 어린 눈초리에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달라.”
사람의 신체가 마력이 아니듯 마수 또한 마기와 구분 지어 보아야 했다.
하지만 ‘마’라는 것에 부정적인 관념을 가진 이 세상에서는 마수와 마기를 구분 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마수와의 계약조차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마수를 마기와 구분 짓기 위해선 한 가지 행동만 취해주면 된다.
“마수를 만져. 그러면 마기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마수 친화력이 높은 이가 마수와 접촉해 교감을 나누게 되면 마기의 간섭은 배제된다.
“가능하다고 생각해?”
“충분히.”
한세연의 반문에 나는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한세연 본인은 마수만 보면 없애기 바빠 잘 모르는 모양인데, 기실 그녀는 마수소환사가 되기에 최고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마수지체라는 것 자체가 마수를 다룰 수 있는 체질을 뜻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해봐.”
“······.”
한세연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이해했기에 망설이는 것이었다.
마수와 계약하려면 마수를 소환해야 했고, 내 제대로 해보라는 말은 좀전의 마수같지도 않은 놈들이 아니라, ‘진짜 마수’를 소환해보라는 소리였으니까. 그녀가 소환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고위 마수를.
그래야 그놈이 무서워서라도 다른 놈들이 그녀의 주위를 얼씬도 안 할 터였다.
마수 부리고, 문제도 해결하면서, 나도 조력자를 얻는 일석 삼조의 해결방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순수한 의도를 한세연이 알아줄 리 없었다.
얼굴 본 지 며칠도 안 된 놈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마수계약을 하라 하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당연했으니까.
정작 소환을 했는데 계약이 안 되면 졸지에 자신이 불러들인 고위 마수와 사투를 벌이는 불상사가 발생해버릴 수도 있었고.
무턱대고 시도하기에는 여러모로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나도 한세연이 처음부터 믿어주길 바라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의심이 들면 ‘가계약’부터 해보든가.”
소환사의 계약은 함부로 남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 계약하면 계약한 존재와 정신을 공유해야 하는 데다, 마음대로 무를 수도 없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간만 보라는 의미에서 있는 것이 바로 가계약이었다.
본계약보다 구속력은 낮으나 언제든 마음대로 무를 수 있는 계약.
그거라면 마수와 계약할 수 있다는 내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쯤은 분간이 가능했다.
과연 한세연도 가계약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는지 시험 삼아 하급마수를 불러들였다.
‘가계약’의 방법은 간단하다.
계약할 대상이 나타나면 미리 그려 놓은 계약진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그걸로 끝.
다만 한세연의 경우는 마력이 오랫동안 억눌려서 난폭해져 있었기에 계약진의 흐름을 따라 마력이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이럴 때는 제 삼자가 나서서 마력을 조율해줘야 하는데 그건 마력운용에 통달한 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조율해 주는 자와 계약자 모두 마력의 폭주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기력을 지닌 나에게 기운의 조율이란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내 몸이나 다름없는 기력을 움직이는데, 엇나가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으니까.
아마 ‘조율’이라는 전제 하나만 놓고 보면 이터니티에서 나만큼 뛰어난 이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랬기에 마력을 거둬들이려는 한세연의 행동을 제지했다.
“멈추지 마.”
그녀의 어깨에 올려진 내 손을 타고 기력이 일어난다.
날뛰려는 한세연의 마력을 감싸 안은 기력이 계약진의 흐름을 따라 술식을 그려 나간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웅···.
계약진의 푸른 빛이 마수를 휘감는다. 본래라면 여기서 가계약이 완성되었겠으나, 마수계약에는 한 가지 절차가 더 필요하다.
잠시 나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던 한세연이 마수에게 다가가 녀석의 신체에 손을 얹었다.
순간, 마수에게서 마기가 일어났으나 이는 금방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동안 눈을 감고 마수와 교감을 나누던 한세연이 손을 떼고 물러났다.
소환진의 빛이 잦아들고 한세연이 물러났음에도 마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한세연의 눈이 흔들렸다. 놀랍게도 마수와 그녀의 의식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마수.
이를 멍하니 쳐다보던 한세연이 이내 아하하,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만도 했다. 평생의 저주라 여기던 마수 문제가 너무도 간단히 풀리고 있었으니까.
웃음을 그친 한세연이 나를 돌아보며 의문어린 표정을 지었다.
“왜 날 도와주는 거야?”
“쓸모가 있으니까.”
한세연이란 캐릭터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에 필요에 따라선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선(善)이다.
물론 이터니티에 나오는 주조연치고 악역은 있지도 않았지만 한세연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재였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줘야지.’
버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나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어서 좋고, 한세연은 저주로부터 해방되니 좋은,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였다.
거기다 덤으로 퀘스트 보상인 기력 증가까지 있으니, 도와주는 거야 당연했다.
이런 내 솔직한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일까.
타앙!
가계약을 한 지 1분이 채 안 된 마수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한세연이 싱긋 웃어 보였다.
“좋아, 할게.”
···얘, 이거 선역 맞겠지?
이런 내 불안을 뒤로한 채 한세연이 마력을 개방했다.
싸아아······
조금 전의 마력개방은 장난이었다는 듯, 서늘한 바람이 공터에 불어닥쳤다. 이윽고 사방에 생겨나는 파문들.
─그어, 그으으. 그으으으.
파문을 넘어 수십의 마수들이 넘어온다. 소름 끼치는 울림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일순 공터에 마계가 구현된 듯만 했다.
나는 긴장한 채 언제라도 비도를 움직일 수 있도록 기력을 끌어올리며 마수들을 살폈다.
그저 그런 하급 마수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지 나타난 마수들은 하나같이 5급에 준하는 녀석들이었다.
필드에서 사냥했던 육각사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마수들.
그런 놈들이 한세연의 마력에 이끌려 무더기로 나타난 것이다.
녀석들은 서로를 의식한 듯 잠시 대치하는 듯했으나, 힘의 우열은 금방 드러났다.
눈이 여러 개 달린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한 녀석이 다른 놈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다가왔다.
풍기는 기세가 5급을 벗어나 6급에 가까워 보이는 놈이었다.
한세연 역시 녀석이 가장 강하다는 걸 직감하곤 놈을 계약의 대상으로 정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왜?”
“다른 놈들이 더 올지도 모르잖아.”
한세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마수가 모일 수 있도록 이미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올 놈들은 진즉에 다 왔기에 더 이상 기다리는 것에는 의미가 없었다.
하물며 여기서 시간을 끄는 건 위험했다.
마수들이 저들끼리 눈치를 보느라 그들이 이렇게 여유롭게 있을 수 있던 것뿐이지, 그 시간도 이제 다 끝났으니까.
저기, 저 기어 오는 거미 마수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기다려 줄 리 만무했다.
물론, 지금이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됐는데······’
보여야 할 놈이 보이지를 않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여기서는 ‘그놈’이 튀어나와야 했으니까.
콰드득!
순간, 기어 오던 거미 마수의 머리가 짓뭉개지고 터져나갔다.
5급 마수가 한순간에 죽는 광경에 충격을 받기도 잠시, 녀석의 사체가 마치 어둠에 집어삼켜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어서 짐승이 고기를 씹듯 우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거미 마수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았다. 공터에 밤이 내려앉은 것처럼 어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형상을 갖추지 않은 어둠 덩어리. 나는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터니티 아카데미 2학년 1학기 이벤트 스테이지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수이자, 한세연이 폭주하게 되는 원흉.
내가 녀석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모르도.”
***
모르도.
보이는 모든 것을 부피와 질량에 관계없이 빨아들이고, 물리력마저 무시해버리는 어둠속성의 7급 고위 마수.
2학년 1학기 이벤트 스테이지의 피날레에 처음 등장하는 녀석은 한세연이 폭주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는 마수였다.
오랜 시간 숙주를 찾아 헤매던 녀석에게 마수지체인 한세연이 눈에 띄었고, 한계에 다다라 있던 한세연은 모르도의 어둠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결국 폭주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지금, 모르도는 또다시 한세연을 원하고 있었다.
우웅.
녀석이 발하는 어둠의 울림은 언어보다 더욱 선명한 의사가 되어 공간에 전해졌다.
내 힘을 빌려주겠다. 그러니, 나를 받아 들여라······
“함정이야. 무시해.”
“응.”
모호한 표정을 짓던 한세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건만 따지고 보면 숙주계약 자체는 소환계약보다 훨씬 좋았다.
소환계약이 마력을 소모해야지만 힘을 빌릴 수 있는 반면 숙주계약에는 정말 아무런 대가도 필요치 않았으니까.
게다가 현재의 한세연은 한계에 다다르기 훨씬 이전이기에 모르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계약. 그러나 그건 모르도가 딴마음을 품지 않았을 경우다.
만약 모르도가 한세연의 몸을 빼앗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무슨 짓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게임에서의 한세연이 폭주해버린 것도 모르도와의 숙주계약이 원인일지도 몰랐다.
그러니 아쉽지만 숙주계약은 포기하는 게 맞았다. 반면, 소환계약이라면 괜찮았다.
계약의 강제성을 띠는 소환계약이라면 모르도도 어쩔 수 없이 힘을 빌려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모르도가 이러한 소환계약을 마냥 반길 리 없겠지만······
‘싫으면 어쩔 거야, 싫어도 받아야지.’
마수지체가 괜히 마수지체가 아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마수지체는 마수를 끌어들이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계약이 조금 마음에 안 들지라도 아쉬워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모르도처럼 숙주에 환장한 놈이라면 더더욱.
이윽고, 내 조율을 받은 한세연의 마력이 계약진에 스며들며 술식이 완성되었다.
─······.
모르도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으나, 그 시간은 짧았다.
멋대로 할 수 없는 게 마음에 안 든다 뿐이지 몸을 공유하는 것은 소환계약이나 숙주계약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화아앗!
계약진이 푸른 빛을 내뿜으며 모르도를 휘감는다. 한세연은 가계약 때와 같이 모르도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완전한 어둠으로 변한 모르도가 물결처럼 한세연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퀘스트 완료 : 한세연]
[보상으로 기력의 용적이 증가합니다.]
계약을 지켜보던 내 앞으로 상태창 알림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