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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8화 (19/226)

§ 18화

신학기가 시작되고 맞이하는 첫 주말.

니콜라이에게 주문해놓았던 육각사의 뿔을 중화시킬 재료들이 도착했다.

“오, 금방 보내주네.”

나는 혹시라도 빠진 건 없나 재료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벼락 맞은 나무의 묘목이라던가, 사형수의 피를 먹고 자란 꽃 등 구하기가 어려운 것들도 제법 있었는데 다행히도 니콜라이는 그것들을 빠짐없이 배달해주었다.

하기야, 초인협회라면 별의별 해괴한 재료들이 다 모여들 테니 이 정도쯤은 일도 아니겠지. 자주 애용해줘야겠다. 아무튼.

“일단 재료는 다 모았는데.”

이걸로 중화제를 만들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게임에서는 그냥 재료만 모아다 500골드 내고 합성 버튼 누르면 끝이었으니까.

“설마 이거······”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상의 투영자를 사용해보았다.

[상급 중화제]

[비용 : 500SP]

[보유 포인트가 충분하여 투영이 가능합니다. 투영하시겠습니까?]

“···허.”

비용란에 적힌 500SP란 문구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게, 게임에서의 500골드가 던전 몹 몇 마리 잡으면 벌어들일 수 있는 푼돈이었다면, SP는 내가 벌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오직 퀘스트를 통해서만 들어오는 한정 자원. 하물며 500SP라면 내가 이터니티 입학을 통과해서 얻은 포인트와 같다. 500골드따위랑은 당연히 가치부터가 다르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걸 이렇게 똑같이 매겨버린다고?

“···어질어질하네.”

양심 없는 시스템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안 살 수도 없었다. 육각사의 뿔이 지닌 효능을 얻으려면 반드시 상급 중화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상급 중화제는 이 세계의 제약사같은 곳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 몇 주간 지내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몇몇 기본적인 것들을 제외한 ‘이터니티 게임시절’에 사용했던 대부분의 아이템들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말인즉, 이터니티 게임의 아이템은 오직 SP를 통해서만 획득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피 같은 SP를 지출해 상급 중화제를 구매했다.

[500SP를 소모합니다.]

화아악!

하얀빛이 번쩍이더니 재료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익숙하게 생긴 파란 물약이 생겨났다.

[이상의 투영자 이해솔이 투영한 이터니티의 상급 중화제. 특정 마수의 독을 중화하거나 해독제를 만들 때 사용된다.]

나는 육각사의 뿔이 담겨있는 커다란 철제 통에 상급 중화제를 들이부었다.

치이이이······

뿌연 연기가 올라오며 육각사의 뿔이 보랏빛 액체가 되어 녹아내렸다.

띠링!

[축하합니다! 육각사의 정수를 얻으셨습니다.]

[육각사의 정수]

[5급 마수 육각사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용액. 이상의 투영자 이해솔이 상급 중화제를 이용해 제조했다.]

*복용 시 <중급 독 면역>, <하급 저주 회피> 획득.

“오, 저주회피까지 붙었네.”

독 면역 하나만 있어도 이득인데 추가 속성으로 저주 회피까지 붙었다.

이러면 500SP 써도 인정이지.

나름 결과물에 만족한 나는 철제 용기 안에 담긴 육각사의 정수를 들이마셨다.

“크으···”

화끈한 기운이 전신을 맴돌다 사라졌다.

갱신된 상태창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말에는 방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나를 마냥 쉬고만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어휴, 무슨 통장에 돈이 10원도 없냐.”

스마트폰에 연동된 통장 어플에 찍힌 0원이란 잔액을 확인한 내가 한숨을 쉬었다.

무슨 놈의 인간이 매점에서 빵 하나 사 먹을 돈도 없다. 자판기 몇 번 이용했더니 금새 잔고가 동이 나버린 것이다.

이터니티가 생도 무료급식이라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당장 끼니 때우는 것부터 걱정할 뻔했다. 거기다 내가 먹고 싸기만 할 것도 아니고··· 당장 히든피스만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구하지 못하는 것들도 널려있었다.

“···돈부터 벌어야겠네.”

그렇다면 답은 역시 마물 사냥이다. 사체를 가져다 팔면 수입이 꽤 짭짤해서 마물사냥을 부업으로 삼는 초인들도 가끔 있을 정도였으니까. 마침 독 면역에 저주회피까지 얻었겠다, 능력을 시험해볼 수도 있을 테고.

“이터니티는 주말이니 안 되고, 북한산이나 가볼까?”

북한산의 필드는 서울에서 이터니티 다음으로 마물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다.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이었으나,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생도라면 문제 될 건 없었다.

계획을 세우고 방문을 열던 순간, 나는 무언가 고장난 기계처럼 우뚝 멈춰 섰다.

“아, 차비.”

그러고 보니 북한산까지 갈 차비가 없었다.

“걸어가려면 너무 먼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1반 생도 전화부를 쭈륵 내렸다. 그리고 아멜리아라는 이름을 클릭했다.

***

북한산의 풍경은 ‘현대 판타지’였다.

무구점, 마법상, 대장간 등이 자리한 거리로 포션 가판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 판타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병기를 찬 이들이 돌아다닌다.

검, 도끼, 지팡이, 마법서, 총······

냉병기부터 판타지, 현대식을 넘나드는 다양한 무기들이 보였으나 그중에 비도를 지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비도를 쓰느니 총을 쓰는 게 현실적이었으니까.

대로를 지나 북한산의 입구로 들어서자 통문소가 나타났다.

참고로 마물이 출몰하는 필드 지역은 초인협회에서 도맡아 관리하고 있다.

“어디서 오신 분인지 성함하고, 소속 길드를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통문소 직원이 데스크의 방명록을 가리켰다.

“길드 소속은 아닌데요.”

“그럼 초인 자격증을 제시해주시겠습니까?”

소속 길드가 없다니까 귀찮은 티를 내며 손을 내미는 직원. 나는 초인 자격증 대신 아카데미 생도증을 건네주었다.

흘낏 이를 확인한 직원의 태도가 순식간에 살가워졌다.

“아! 이터니티 생도셨군요. 하하, 북한산에 잘 오셨습니다. 들어가시죠.”

남들은 10분에 걸쳐 하는 절차가 생도증 하나 내미니 묻지마 통과였다.

역시 이터니티. 엘리트 중의 엘리트 학교의 생도는 대우부터가 다르다는 건가.

그렇게 통문소를 하이패스로 나오자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이해솔님 맞습니까?”

“예, 그런데요.”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이드 신동훈입니다.”

가이드. 마물의 사체를 운반하고 정산까지 해주는 짐꾼 겸 길잡이다.

북한산 같은 험지에서는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에 이러한 길잡이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가이드를 예약한 적이 없는데요?”

“아멜리아라는 분이 선불로 예약을 해놓으셨습니다.”

“······.”

‘잘 다녀오세요’라며 손을 흔드는 아멜리아의 환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북한산에 간다는 내 문자 한 통에 아멜리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운전수 딸린 차를 대여해주었다.

게임에서도 가끔 써먹었던 수단이었기에 나중에 갚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설마 가이드까지 수배해 놓았을 줄이야.

내심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기다리던 사람을 돌아가라 할 수도 없고······

“음,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가시죠.”

앞장서는 신동훈의 뒤를 따라갔다.

***

신동훈의 안내를 받아 사냥터로 향하는 과정은 나름 색다로운 경험이었다.

뭐랄까, 신선했다.

“···앗! 조심! 조심하세요!”

누군가의 경고가 울리기 무섭게, 수풀에서 튀어나온 늑대가 나를 덮쳤다.

송곳니를 내보이던 녀석은 이마에 비도를 꽂은 채 뒤로 넘어갔다.

“와. 울프독을 한 방에······”

뒤늦게 나타난 창을 든 여성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마물 한 마리 잡은 것치고는 조금 과한 반응이 영 어색했다.

‘하긴,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지.’

그동안은 이터니티 안에서만 생활해서 실감이 안 갔지, 기실 이터니티는 전세계 최고의 괴수들이 모인 교육기관이다.

초인사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이들은 마물 한 마리 잡는데도 애를 먹는 게 보통이었다.

이터니티 생도라면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보구’조차 그들에겐 하늘의 별 따기였으니······

“동훈씨, 가죠.”

“예. 해솔님.”

너른 들판, 마물을 사냥하는 초인들을 잠시 바라보던 우리는 놀란 여성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산길을 걷길 한참. 주변을 살피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음, 역시 모르겠네.”

북한산은 나도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재료를 수집하려 수백 번은 들렀던 장소다.

어디에 어떤 마물이 있고, 어디에서 마수가 출몰하는지 쯤은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마치 처음 보는 장소에 온 것처럼 지리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으니까. 모니터 너머로 보던 게임 속 세상과 이 세계가 같을 리 없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게임에서 5분이면 이동했던 거리가 이곳에서는 30분인 경우가 파다했으니까. 하물며 현실에서의 북한산과도 완전 딴판이었다.

‘그래도 중요 포인트 지점은 같은 것 같지만.’

신동훈을 따라 얼마간 산길을 오르자 나온 두 갈래 길.

이곳은 나도 잘 아는 북한산의 주요 포인트지점이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하급 마물이 출몰하는 계곡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면 마수가 서식하는 숲이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우측으로 이동했다.

마수가 나온다지만 그리 난이도가 높은 지역은 아니었기에 지금의 나라도 충분히 홀로 사냥이 가능했다.

돈을 벌려면 마물보다야 마수 쪽이 훨씬 값이 나가기도 했고.

그런데 이런 나를 신동훈이 제지했다.

“···저, 해솔님? 죄송하지만 그쪽으로는 가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마수 때문에요?”

“음, 그것도 있긴 합니다만, 사상회가 자리를 잡아서 그렇습니다.”

“사상회? 길드인가요?”

“길드는 아니고, 마물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용병들인데, 질이 좀 나쁜 놈들인지라···”

“아아.”

신동훈의 설명에 짚이는 바가 있던 나는 피식 웃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상관없으니 가죠.”

“괜찮겠습니까?”

“가보고 안되면 돌아오는 거죠,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길드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 자리를 잡은 용병이라면 마물을 사냥하는 일반 초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그저 마물을 독식하기 위해 연합을 이룬 양아치들이었다.

공유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초인협회가 관리할 법도 했지만 협회도 운영하는 건 사람인지라, 뒷돈을 찔러주거나 얽힌 게 있다면 간혹 이런 식으로 구역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게임에서도 지역마다 이런 용병들이 있었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보니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아무튼, 용병들과 사서 부딪칠 필요는 없었으나 사냥터를 새로 찾자면 시간이 꽤 소요될 것이기에 그편이 오히려 더 귀찮았다.

‘까짓 거 그냥 부딪치고 말지 뭐.’

그렇게 우측 길로 들어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신동훈이 경고했던 사상회의 용병과 조우했다.

“어이, 거기 정지.”

바위에 기대있던 덩치 큰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동훈?”

“···안녕하십니까.”

“옆은 처음 보는 친구군.”

나를 훑어보던 용병은 대충 상황을 알겠다는 듯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봐, 여기는 입장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다. 하지만 특별히 20만원만 내면 내가 발급해 줄 수도 있다.”

“······.”

20만원? 나는 잠시 내 귀가 잘못됐는지 고민했다. 그런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듯 소박하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는 용병.

“···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바가지를 씌우면 정당하게 후드려 패주려 했는데 20만원이면 꽤나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고블린만 잡아도 두 당 10이었으니까. 그 정도 값으로 용병과의 트러블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는 게 맞았다. 문제는 내가 지금 땡전 한 푼 없다는 거지만.

“동훈씨. 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예? 귀중품은 통문에 맡기고 왔습니다만······”

“뭐,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

“야, 새끼야! 움직이지 말라고······크억?!”

비도 자루에 턱을 얻어맞은 용병이 눈을 까뒤집고 넘어갔다.

“가죠.”

“······아, 예.”

얼이 나간 신동훈을 내버려 둔 채 나는 마수가 출몰하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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