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2화 (23/226)

§ 22화

“뭐? 검을?”

내 대답에 은가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되물었다.

“그러니까, 마력에서 힘은 빼고, 검은 큰 거를 들라 이 말이지?”

“잘 알아들었네.”

“······에휴.”

은가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가문 은가의 가전검법은 날이 얇아야지만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검법이었다.

검날이 두꺼워지면 닿는 면적은 늘어날지 몰라도 그만큼 정교한 맛이 떨어지고, 예리함도 함께 죽어 버리는 것이다.

그건 그저 순수한 마력으로 찍어 누르는 패도(覇道)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이는 정교함을 추구하는 은가의 검과는 방향성부터가 달랐다.

하물며 마력에서 힘을 빼라는 말은 듣기에 따라 굉장히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힘을 빼라는 게 마력제어를 느슨하게 하라는 소리 같은데 맞아?”

“어. 아예 놔버리진 말고 큰 줄기만 제어한다는 느낌으로.”

은가예의 얼굴이 대번 찌푸려졌다. 맞은편에서 듣고 있던 천우진 또한 굳은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해솔아, 마력제어를 푸는 건 큰일 날 소리야. 은가예 너도 듣지 마.”

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이래서 말을 안 하려 한 건데.’

이 세계의 사람들은 마력을 무조건 제어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물론 그건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래야지만 마력을 원하는 위치로 보낼 수 있는 데다, 마력제어가 풀린 마력은 자칫하면 폭주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까.

하물며, 천우진은 마력의 세밀한 응용에 특화된 녀석이다 보니, 마력제어를 풀으라는 내 말을 무슨 자살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은가예의 마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은가예가 지닌 중력의 마력은 옥죄이면 옥죄일수록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 듣는 타입의 마력이었으니까.

게임에서의 은가예 또한, 이런 청개구리같은 마력을 다루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마력응용법을 개발했었다.

그게 내가 말한 마력의 제어를 느슨하게 풀고, 방향만을 조정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은가예가 그러한 자신만의 응용법을 정립하는 시기는 앞으로 한참 뒤인 3학년에 다다라서다. 내 말이 헛소리로 들리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남한테 물어볼 게 아닌데 내 잘못이야.”

은가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돌연 못 볼 걸 봤다는 듯 표정이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식판을 들고 자리를 옮겨버린다. 맞은편에선 천우진이 양파를 통으로 들고 있었다.

“······.”

나는 최대한 앞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깔았다. 들려오는 아삭거림도 무시했다. 그렇게 마저 식사를 이어가려 할 때였다.

“김주혁교관을 건든 건 실수였어요.”

뭐야, 이것들 단체로 나 밥 먹는 거 방해하려고 작전이라도 짜고 온 건가?

내가 짜증스러운 감정을 담아 옆을 바라보았다. 은가예와 바톤을 이어받듯 내 옆에 자리한 생도는 아멜리아였다.

‘아니, 그보다 건든 건 내가 아니라 김주혁인데······’

억울했지만 아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김주혁교관의 가문은 한국 5대 마법 명가 중 한 곳이에요. 초인협회하고도 끈이 닿아있고요.”

“지금 나 퇴학당할까 봐 걱정해주는 거냐?”

“···걱정은 아니고, 자극해서 좋을 건 없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그게 그거 아닌가?

애가 솔직하지를 못하네···

아무튼.

“알려줘서 고맙기는 한데, 괜찮아.”

“제가 이런 걸 왜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내 상관없다는 태도가 어이없었는지 아멜리아의 표정이 살짝 새초롬해졌다. 하지만 나는 정말 상관이 없었다.

김주혁이 마법명가의 자제고, 그 가문의 후광을 봤다 한들, 그는 이미 쓰임새가 다한 말이었으니까.

아카데미의 교관. 김주혁의 가문에서 그에게 바라는 위치란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김주혁을 죽이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쪽에서 내게 먼저 시비를 걸어올 일은 없을 것이다. 게임에서도 그랬으니까.

되려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아멜리아다. 나는 취사장 맞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멜리아의 사촌, 에드먼이 자리해 있었다.

에드먼은 낮에 보았던 것처럼 푸석한 머릿결에 피부도 우중충해 보였다.

그건 결코 에머슨의 타고난 유전자가 좋지 못해서가 아니다.

당장 옆의 아멜리아만 보더라도 유전자 하나만큼은 보장된 혈통이었으니까.

로마노의 일족이라는 그의 신분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놈들에게 마약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은 영향이었다.

내가 에드먼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멜리아의 표정이 살짝 어색해졌다. 내가 툭 던지듯 말했다.

“마력초.”

“······?”

“에드먼, 마력초 핀다더라.”

“!”

뜻밖의 말이었는지 아멜리아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마력초는 체내의 마력 순환을 급속도로 촉진시키는 약초로 포션에 쓰이는 재료다.

하지만 마력초만을 따로 복용하면 마력의 불균형을 일으키고, 환각을 보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쉽게 말해 ‘마약’이었다.

“그, 그게 사실인가요?”

“못 믿겠으면 직접 알아보던지.”

“······.”

말이 사라진 아멜리아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소세지 한 점을 입에 물었다.

***

······방과 후,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정혼의 씨앗을 꺼내 들었다.

[정혼의 씨앗]

[정혼의 술을 만들기 위한 마법시약.]

*정혼의 술을 제조해 복용 시, 부동의 각인을 새길 수 있다.

[비용 : 3000SP]

학기가 시작되고 여러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틈틈이 벌어들인 SP는 총 6500SP.

정혼의 술을 제조하면 그중 절반이 날아가는 셈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정혼의 술을 제조했다.

하얀빛이 스쳐 가고, 정혼의 씨앗이 있던 손 위로 오색 투명한 물이 담긴 잔이 생겨났다.

띠링!

[축하합니다! 정혼의 술을 얻으셨습니다.]

[정혼의 술]

[부동의 각인을 새길 수 있는 이터니티의 아이템. 이상의 투영자 이해솔이 정혼의 씨앗을 이용해 제조했다.]

*복용 시 <하급 부동의 각인> 획득.

“······.”

정혼의 술이 완성되었지만 나는 그것을 곧장 들이키지 않았다.

<하급 부동의 각인>을 얻으면 정신의 피로도는 크게 줄어들겠지만 이카루스의 반지를 사용함으로써 오는 정신의 피폐를 견디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간극을 줄이자면 부동의 각인이 지닌 효능을 어떻게든 상향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부동의 각인이란 몸이 아닌 정신에 새겨지는 각인. 다만 정신의 방벽을 뚫고 억지로 새겨넣는 각인이기에, 그 각인의 선명도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선명해진다.

표면에 새겨지면 하급, 표면의 아래에 닿으면 중급, 심층의 기저를 건드리면 상급 등으로.

하지만 여기서 정신의 방벽을 일시적으로 없애버리면······

“하급 부동의 각인으로도 선명하게 각인을 새길 수 있겠지.”

문제라고 한다면 어떻게 정신의 방벽을 걷어낼 것이냐와, 방벽이 사라져 무방비가 된 정신에 각인을 새길 때 발생하는 타격이 치명적일 것이란 점이었다.

그건 단순히 인두로 몸을 지지는 수준이 아닌, 말 그대로 정신을 후벼파는 작업이었으니까. 어쩌면 정신이 무너져 백치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컸다.

‘하지만 정신이 무너지더라도 각인이 완성되면 정신은 다시 복구된다.’

부동의 각인이란, 정신을 온전히 유지시키는 힘이었으니까.

무너진 정신이더라도 시간은 걸릴지언정 온전한 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정신의 방벽을 걷어내는 것도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카루스의 반지를 한계까지 사용한다면 정신의 방벽은 알아서 무너질 것이었으니까.

“진짜 미친 짓이기는 한데······”

의외로 할 만했다.

물론, 정신을 박살 낸다는 점에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기는 하겠지만.

“후우.”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양 뺨을 짝 때린 내가 이카루스의 반지를 사용했다. 순간 의자에 앉은 내 몸이 휘청였다.

마치 둑이 뚫린 항아리처럼 이카루스의 반지를 통해 정신이 급속도로 빨려 나갔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고, 차츰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시야가 흐려지며 의식이 무너져내렸다.

그렇게 마지막 의식마저 한 점의 명멸로 꺼지려던 그때, 휘청이는 내 입가로 정혼의 술이 날아와 스며들었다.

나와 의식을 공유하는 그람이 스스로의 마력을 움직여 행한 일이었다.

[정혼의 술을 복용하였습니다. <하급 부동의 각인>이 정신에 새겨집니다.]

“······!”

순간, 가공할 고통이 뇌리를 엄습했다.

칼로 머리를 가르고, 송곳으로 뇌를 후벼파는 듯한, 세포가 분자 단위로 파멸되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아득한 고통.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고 눈앞에 푸른 빛이 수 차례고 명멸했다.

정신의 과부하에 오감이 날아가며 자율신경계가 미쳐 날뛴다.

파도가 몰아치듯 심장의 박동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잔잔해지는 등 계속해서 오작동을 일으켜 댔다.

번개를 맞은 듯 부르르 몸을 떤 나는 의식을 잃고 바닥으로 우당탕 쓰러졌다.

“······.”

고요가 내려앉았다.

방안에는 한동안 적막이 가득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축하합니다! <하급 부동의 각인>이 정신에 새겨졌습니다.]

[······부동의 각인이 깊습니다. <하급 부동의 각인>이 <중급 부동의 각인>으로 격상됩니다.]

[······부동의 각인이 깊습니다. <중급 부동의 각인>이 <상급 부동의 각인>으로 격상됩니다.]

[플레이어 이해솔의 정신이 무너졌습니다. 정신의 수복이 이루어집니다.]

적막한 공간에 상태창 알림이 연이어 떠오르고 사라졌다.

***

······다음날. 열려진 창가로 선선한 바람이 해를 타고 들어오는 오전.

“으으음······”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상태창부터 열어보았다.

“···오.”

▶패시브 특성

<중급 독 면역>Lv.1

<하급 저주 회피>Lv.1

NEW <상급 부동의 각인>Lv.1

패시브 특성란의 가장 끝부분. 새로 얻은 능력이라는 걸 알려주듯 NEW라는 문구가 붙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특성. 거기에 적힌 스킬을 읽은 순간, 입이 벌어지고 웃음이 지어졌다.

“상급이라니. 와, 진짜 대박쳤네.”

중급만 떠줘도 충분히 성공이라고 자축할 만한데, 거기서 한술 더 떠 상급이라니. 이 정도라면 항마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지금은 어려웠다. 정신이 수복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머리가 띵했다.

“어우.”

바닥에서 일어나자, 온몸이 안쑤시는 데가 없었다. 이거,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거지?

“지각이네.”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해보자 등교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1교시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일까.

2교시인 김주혁의 수업을 빼먹었다면 이 인간은 옳다구나 벌점을 무더기로 매길 터였으니까. 나는 느긋하게 일어나 천천히 세면대로 향했다. 어차피 1교시는 늦어버렸으니 시간은 여유로웠다.

***

“지난번에 예고했던 대로 다음 주에는 학년대항전이 있을 예정이다. 다들 준비를 철저히 하길 바라마.”

종례시간. 교탁에 선 하진우가 말했다.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교실을 동굴처럼 울렸다. 학년대항전. 그 단어가 주는 무게에 교실은 긴장감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해마다 치러지는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학년대항전은 1학년과 2학년이. 2학년과 3학년이 1대1로 비무를 치루는 대전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변이 없다면 무조건 고학년의 승리로 끝이 난다.

당연히 성적에는 반영이 되지 않지만, 학년대항전에는 외부에서 참관하러 온 인사나, 이터니티의 교관들이 지켜보기에 신입생들에게는 ‘데뷔전’이나 마찬가지인 자리였다.

그리고 그 데뷔전에서 이변을 일으킬 만한 생도가 올해에는 생각보다 많이 나올지도 몰랐다. 생도들도 이를 아는지 벌써부터 천우진과 니콜라이, 나를 흘낏거렸다.

‘응? 나?’

저것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상급 부동의 각인>을 얻었다곤 하지만, 그게 항마력을 무한대로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정신력은 단단하기 그지없으나, 정작 항마력을 일으키는 주체인 ‘이카루스의 반지’에는 한계라는 게 존재했으니까.

일례로 전날 부동의 각인을 새기면서 이카루스의 반지를 한계까지 다루었더니 반지가 과열되었다.

그리고 과열된 마도구는 한시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해 진다. 이카루스의 반지 같은 경우는 그게 대략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항마력의 사용에도 분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학년 대항전에 관한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충고로 이야기하자면 승패에 연연하지 말아라. 지더라도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라. 그게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을 거다.”

하진우의 말대로였다. 학년대항전을 참관하러 오는 인사들은 생도들이 가지는 당장의 승패 따위는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러한 승패 따위야 향후 얼마든지 뒤집 어질 수 있는 허울에 불과했으니까.

중요한 것은 ‘잠재력’이다. 잠재력이야말로 그 생도가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지침표였다.

“물론 승패에 연연하지 말랬다고 아무 것도 못하고 지는 놈이 나온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말을 마친 하진우가 몇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으로 종례를 끝내고 나가자 생도들 사이에 팽배하던 긴장감이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하는 교실. 그 흥분의 도가니를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교실을 나가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혹시 지금 바빠? 안 바쁘면 할 말이 좀 있는데······”

나는 눈을 깜빡이며 앞을 막아선 생도를 바라보았다. 멋쩍은지 한 손으로 머리를 꼬고 있는 생도는 은가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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