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3화 (24/226)

§ 23화

“혹시 지금 바빠? 안 바쁘면 할 말이 좀 있는데······”

멋쩍은지 한 손으로 머리를 꼬는 은가예.

“응, 바빠.”

나는 그렇게 내뱉곤 은가예를 지나쳤다.

“어, 어, 야······!”

당황한 은가예가 따라붙는 게 느껴졌으나, 그냥 무시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은가예의 용건이야 안 봐도 뻔했다.

보나 마나 다음 주에 있을 학년대항전에 관해서겠지. 은가예에게는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울려대는 스마트폰을 침대에 던지곤 의자에 앉으니 자연스레 생각이 학년대항전으로 이어졌다.

기실 이번 학년대항전은 이터니티의 스토리에 있어서도 나름 중요한 부분이었다.

기존에 등장하지 않던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2학년, 3학년 생도들이 대거 조명되고, 천우진을 비롯한 1학년의 주연들이 그런 선배들을 꺾는 파란을 연이어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힘을 입증하는 ‘데뷔전’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천우진은 여기서 무려 2학년의 생도 3위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한다.

니콜라이와 아멜리아, 은가예 또한 2학년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게 되고.

그렇게 참관하러 온 외부인사들의 눈길은 온통 1학년 생도들에게 쏠리게 된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한세연이려나? 모르도와 계약한 그녀는 이제 마음 놓고 본연의 마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나 정도야 상관없겠지.”

애초에 내가 개입한 이상 이미 게임의 내용과는 완전히 같다고 볼 수도 없어졌으니까.

아무튼, 학교의 축제이니만큼, 나 또한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했다.

물론 나야, 승패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2학년생을 이겼다고 해서 당장 내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진우의 말마따나 승패란 허울에 불과했으니까.

게다가, 내가 작정하고 기력을 응용하면 기운을 감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이터니티 내에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오죽하면 ‘마력지배자’란 별명까지 붙어버렸을까.

2학년생들이 이에 대비하고 나올 거야 안 봐도 뻔했다,

하물며 항마력은 상극인 마인에게나 통하지, 일반적으로는 그저 마력을 지우는 용도에 불과했다.

요컨대, 괜히 힘 뺄 필요 없이 적당히 싸우는 시늉만 하고 져버리는 게 베스트라는 소리다.

“어우······”

상념을 접은 나는 앓는 소리를 냈다.

내 손에는 하진우가 내준 과제용지들이 쥐여져 있었다.

던전 공략론에, 마력 이론에 심지어는 별 잡다한 마물의 이름까지 죄다 외워야 하는 암기과목까지.

“어떻게 된 게임이 메인 스토리보다 수업따라가기가 더 빡쎄냐.”

그렇다고 낙제를 당할 수도 없고···

혀를 찬 나는 과제용지들을 챙겨서 도서실로 향했다. 이건 나 혼자 자습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에.

***

기숙사를 나온 나는 생도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터니티의 제 1도서관으로 향했다.

참고로 이터니티에는 총 2개의 도서관이 존재하는데, 제1 도서관은 신입생들을 위한 장소로 그 규모나 크기가 작다. 중앙의 제2 도서관이야 말로 모든 학년들이 두루 사용하는 공간이었고.

아무튼, 제1 도서관에 도착하자 한편에서 서적을 정리 중인 사서를 제외하곤 생도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주에 있을 학년대항전을 준비하느라 전부 훈련장으로 몰린 탓이다.

문득 한편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림에 시선을 돌리니 창가에 앉은 한세연이 교과서를 펼쳐놓고 노트를 정리중에 있었다.

역시, 필기로 교내 1등을 다투는 우등생이라 그런지, 포스부터가 남달랐다.

오는 길의 자판기에서 뽑은 수박음료를 한세연의 옆에 올려놓았다.

“왔어?”

한세연이 고개를 들더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반겨주었다.

과제를 도와달라는 내 구조요청을 그녀가 흔쾌히 응해준 것이다.

“어, 조금 늦었나 보네. 그건 마셔라.”

수박 음료를 보며 한세연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나 이거 좋아하는데, 우연이네.”

우연일 리가. 알고 고른 건데.

한세연은 수박음료에 진심이다. 어느 정도냐면 기숙사 냉장고에 수박 음료가 박스 채로 들어가 있다는 설정까지 있을 정도다.

아무튼, 나는 콜라를 따고 한세연은 수박음료에 빨대를 꼽으며 시작된 개인 과외.

“음,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아졌어.”

신학기 처음이 일주일 전인데 안 나아졌으면 그건 그냥 공부를 안 한 게 아닐까요?

내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을 한세연은 애써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고생 많았어.”

“끄으~”

한세연의 말에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니 어느덧 창가로 노을이 져오고 있었다.

“신기하네. 룬어는 그렇게 잘하는데 다른 건 처음 배운다니.”

“내가 좀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는 타입이거든.”

게임 원툴이니 한 우물만 판 건 맞다. 그래도 룬어 외에 아예 무지하다는 건 말이 안 되었지만, 이미 은가예로 단련될 대로 단련되어 있던 한세연은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무튼 도와줘서 고맙다.”

“고맙긴, 받은 게 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싱긋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한세연. 저 얼굴로 노을을 끼고 웃는 건 좀 반칙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보면 천사가 따로 없는데 말이지.’

저 속에 웃으며 총질을 할 수 있는 소시오패스 기질이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너무 빤히 쳐다봤는지 의아해 하는 한세연을 뒤로 하고 먼저 도서관을 나왔다.

위이잉─

마저 뒷정리를 하고 나오던 한세연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본 한세연이 말했다.

“아! 학년대항전 대진표 나왔다.”

대진표라······

나는 이번에 치러질 학년대항전의 대진에 대해선 당연히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랑 치르게 되는 지에 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주머니를 뒤지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아, 맞다. 놓고 왔지.’

뒤늦게 침대에 스마트폰을 던져 놓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세연의 화면을 흘낏 바라보자 내 시선을 눈치챈 한세연이 스마트폰을 넘겨주었다.

“여기.”

“땡큐.”

‘이해솔 이해솔 이해솔······ 여기 있네.’

내 이름을 찾아 눈을 굴리자, 가장자리에 쓰인 이해솔이란 석 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쓰인 2학년생의 이름을 보았을 때, 나는 그만 선 채로 굳어졌다. 한세연이 그 이름을 대신 읽어주었다.

“유스칼 아르세이. 응? 아르세이?”

······유스칼 아르세이.

영국의 마법명가, 아르세이의 떠오르는 신성이자, 원래라면 천우진이 상대했어야 할 2학년의 랭커.

순간, 절대 듣기 싫은 알람이 울려왔다.

띠링!

[학년대항전 퀘스트! 영국의 유망주 유스칼 아르세이와의 비무에서 승리하세요!]

[보상 : 3000SP, <기척 차단>]

······이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

한세연과 헤어져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침상에 앉아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플레이어 이해솔

[체력 : 1.8(+2)]

[근력 : 1.2(+0.5)]

[민첩 : 3.5(+1.3)]

[지구력 : 2(+1)]

[손재주 : 3]

“음······.”

그동안의 노력으로 제법 오르긴 했으나 여전히 쓰레기 같은 신체 능력이다.

그나마 유스칼이 마법사라 항마력으로 어찌 비벼볼 가능성이라도 있지, 전사계열이었다면 끔살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기척 차단이라······’

이번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어지는 기척 차단은 기력의 하위 특성으로 나하고는 상성이 무척이나 잘 맞는 능력이었다.

기력 자체만 해도 감지에 걸리지 않는 기운인데, 기척마저 차단되면 그것은 완전한 은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상대에게 적의를 품거나 공격을 가하면 기척 차단이 해제된다는 설명이 적혀있긴 했으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얻어야 하는 능력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거기다 덤으로 3000SP라는 보상까지 걸려있었으니······

문득 스마트폰을 열어보았다.

그 사이 은가예로부터 문자 5통에 부재중 1통이 와있었다.

[기분 상했어?]

[취사장에서 말 안 들어줘서 그러냐?]

[···미안.]

[그래도 자리 옮긴 건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다. 천우진이 걔가 앞에서 양파 그런 식으로 씹어먹으니까 비위상하잖아.]

[아무튼 미안.]

“음······”

딱히 내 말이 무시 받아서 기분이 상하거나 그런 건 없었다. 살짝 짜증이 나긴 했지만.

은가예의 입장이 이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마력을 제어하지 않으면 폭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한 이 세상에서 마력을 제어하지 말라는 내 말은 조언처럼 들리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런데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말한 대로 해본 것 같은데······ 진짜 그걸 해봤다고?

“그만큼 이기고 싶다는 건가.”

사실 이번 학년대항전에는 은가예의 개인스토리가 얽혀있었다.

은가예의 가문인 검술의 명가, 천검은가(天劍恩家). 은가예는 기실 그 은가의 직계 태생이 아니다.

은가예의 아버지이자 현 은가주의 막내동생이 가문을 버리고 떠나서 낳은 자식이 은가예였다. 그리고 은가예는 1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은가주에게 맡겨졌다.

혈연을 중시하는 은가에서 가문을 버리고 떠난 이의 자식이 은가예였으니 천덕꾸러기 신세를 받았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심지어 마력까지 이질적이어서 은가의 검술을 익히기에 적합하지도 못했다. 현재의 검술은 순전히 은가예의 집념이 일궈낸 결과물일 뿐.

아무튼,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은가예는 가문의 직계와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현 이터니티 2학년에 자신을 괴롭히던 직계가 떡하니 있던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은 건 당연했다.

대련 상대가 랜덤이라지만 서로가 사전에 합의하면 비무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룰이기도 했고.

문제는 은가예의 현재 수준으로 2학년의 그 녀석을 이기는 건 어렵다는 것이다. 그건 은가예 본인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은가예는 녀석을 상대로 단 한 번도 이겨본 역사가 없었으니까.

‘은가예가 약하다기보단, 녀석이 약점을 잘 짚어내서 그런 거지만.’

아무튼, 알아도 챙겨줄 여유는 없었다. 당장 내 코가 석 자인 마당에 챙기긴 누굴 챙겨.

“···어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막상 같이 대련해 줄 사람이 없었다.

아멜리아는 이미 파트너를 구한 모양이었고, 한세연은 공부까지 도와주는 마당에 대련 상대까지 해달라 하기에는 미안했다.

‘천우진, 그놈이랑은 죽어도 안 되고.’

그 녀석이랑 했다가는 대련이고 뭐고 내가 죽는다. 어떻게 된 놈이 수위조절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녀석이었으니까.

잠깐 같은 조였던 오진혁이 떠오르긴 했지만 바로 패스했다. 그놈은 굼떠서 유스칼과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그나마 은가예가 낫나.’

나는 결국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메시지를 보내기 무섭게 1초 만에 답장이 돌아왔다.

[지금?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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