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마력훈련장은 학년 대항전을 준비하는 생도들로 번잡하다.
나는 번잡함을 피해 생도동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원에서 은가예를 만났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 너한테 알려 줄 수 있는 거 별거 없다.”
“상관없어. 어제 말해줬던 마력을 제어하지 않고 흐름만 다스리는 법. 그것만 가르쳐주면 돼.”
은가예가 확신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던전에서 고작 단 한 번 다뤄본 것이 전부였으나, 제 위력을 내었던 ‘중력의 마력’은 은가예에게 2학년의 직계를 이기기에 충분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나 보다.
하긴, 확실히 그때 보았던 중력의 마력이 그만큼 인상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안 될걸.”
은가예의 확신은 미안하지만 틀렸다. 내가 마력을 제어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당장 그때의 위력이 나올지도 미지수인데다, 본질적인 해결책도 아니었으니까. 내 부정적인 대답에 은가예가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뭐 하려는 줄 알고?”
“은소백한테 이기려는 거잖아.”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알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지 은가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돌연 표정을 굳힌다.
“······뭐야, 너 설마 은소백이 보내서 온 거였냐?”
그 빈약한 추리에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은소백이 보냈으면 내가 너를 도와주겠냐? 이런 말도 안 꺼냈겠지.”
“그, 그건 그러네?”
“아무튼, 이기려는 거면 내 말대로 해. 대신 너도 나 도와주고.”
“알았어.”
은가예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우선 막아 봐.”
그람의 비도 네 자루가 두둥실 떠오르자 은가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막아 보라고?”
“어. 움직이거나 피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비도를 막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해하는 은가예.
“이거 다 막을 수 있으면 은소백도 이길 수 있을걸?”
“······!”
그 말이 결정타였다. 은가예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내가 비도를 전개했다.
“그럼 우선, 한 자루부터 간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앞에 떠 있던 비도가 은가예를 노리고 쇄도했다.
날아오는 비도를 주시하던 은가예가 검을 휘둘렀다.
타앙!
금속음이 울리고, 비도가 튕겨 나갔다. 하지만 정작 비도를 쳐낸 은가예의 눈은 당황으로 흔들렸다.
“···뭐, 뭐야? 이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도를 쳐내는 순간 은가예의 검에 어려있던 마력이 송두리째 증발해버렸으니까.
항마의 비도였다. 그것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의.
<상급 부동의 각인>을 얻으며 내가 운용 가능한 항마력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좋은데?’
만족스러운 결과에 웃음이 나왔다. 물론, 은가예의 마력을 일순간 증발시킬 정도로 강한 항마력을 연달아 운용하는 것은 나로써도 무리였다.
정신력이 받쳐주더라도 이카루스의 반지가 가열되기에 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텀을 두고 여유롭게 하는 거라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두 자루 간다.”
“야, 자, 잠깐! 타임! 타이임!”
휘이익!
당황한 은가예를 향해 두 자루의 비도가 쏘아졌다. 두 번의 금속음이 연달아 울리고 은가예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윽!”
인상을 찡그린 은가예가 손목을 털었다.
첫 번째 비도에 마력이 날아가고, 두 번째 비도를 마력이 없는 채로 막은 거였으니 뼈가 아릴 만도 할 거다.
“그래가지고 대항전 전까지 어디 세 자루는 막을 수 있겠냐?”
“아오······”
은가예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다.
뭘 하는가 싶어 봤더니 발검술로 가속도를 붙이려는지 오른발을 내디디며 자세를 잡는다. 난 코웃음을 치며 다시금 비도를 날렸다.
과연, 발검술이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첫 번째 비도가 발검술에 튕겨 나가고, 두 번째 비도를 마력을 담은 검으로 쳐낸다. 하지만, 세 번째 비도를 막자 여지없이 넘어져 버린다.
그 뒤로도, 은가예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두 번째 비도까지만 어찌 막을 수 있었을 뿐, 세 번째 비도는 도저히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마력을 왜 자꾸 미리 검에 담아놔? 그러니까 날아가 버리지.”
“···그럼 어쩌라고?”
“끊어서 한 방씩 분출시키라고. 비도랑 부딪힐 때마다.”
마력은 미리 담아두는 것보다 단숨에 폭발 시켰을 때 그 위력이 배가 된다.
부딪힐 때마다 발출하면 마력이 증발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
딱히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도 아니건만 은가예에게는 아니었는지 눈을 크게 뜬다.
그도 그럴 게, 은가예의 검술은 면면부절 이어지는 마력의 흐름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그와는 반대되는 방식을 생각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야, 근데 넌 그걸 왜 이제야 알려줘?”
“이런 건 알려 준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한 번 알려준다고 뚝딱 해내면 그건 괴물이지, 사람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해보든가.”
“좋아.”
다시금 검을 드는 은가예.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이런 게 듣기엔 쉬워 보여도 막상 해보면 어려운 법이니까. 특히나 은가예처럼 정반대의 방식을 사용하던 이라면 더더욱.
‘기본만 때는 데도 며칠은 걸리겠지.’
어쩌면 학년 대항전까지는 아슬아슬할지도 몰랐다. 은가예가 타고난 천재라고는 하지만 천재도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순간, 은가예가 비도를 연달아 쳐냈다. 기본은커녕, 완벽에 가까운 운용이었다.
“뭐야, 별거 아니네.”
“······.”
이러니까 게임이 망했지.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에 나는 조용히 비도를 회수했다.
“그래서, 이게 끝이야?”
“어, 나머진 내일 하자.”
마력제어가 남아 있었으나, 이 이상 했다간 이카루스의 반지가 가열이 되어버리기에 더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렇게, 훈련의 첫날은 은가예의 미친 재능으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
“···풋, 개가 수련을 하고 있다고?”
“어, 보니까 공원에서 비도를 쳐내고 있더라. 누구 노리는 2학년생이라도 있나 보던데?”
은가예가 학년 대항전을 대비한 수련을 하고 있다는 동기생의 말에 은소백은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노리는 2학년생이라는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밟히고도 고개를 쳐드는 걸 보면 참 억척스럽단 말이지.’
은소백은 어려서부터 은가예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혈족사회인 은가를 벗어난 이의 자식인데다, 마력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 반쪽짜리 검술이나 쓰는 아이였으니까.
그럼에도 가주의 주목을 받는다는 게 은소백으로써는 여간 눈에 밟히는 게 아니었다.
그랬기에, 온갖 술수를 부려 은가예를 가문에서 고립시켜 놓았다.
그런데 어딜 또 기어 나와서 건방지게 자신을 노리고 수련을 하고 있단 말인가.
기가 차서 웃음조차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비도?”
“왜, 있잖아. 1학년 수석 녀석이 비도 쓴다던 거.”
“아아. 그 수석.”
은소백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 수석이랑 대련 연습을 하고 있나 보지?”
“어, 그러는 것 같더라. 매일같이 하는 거 보면. 아마 오늘도 있을걸?”
은소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기가 물었다.
“구경이라도 가려고?”
“사촌동생이 수련을 한다는데, 가만히 있기는 좀 그렇지. 가서 응원이라도 해주고 오려고.”
말과는 달리 기숙사를 나가는 은소백의 눈가는 차게 식어있었다.
***
나는 요즘 방과 후가 되면 은가예와 학년대항전을 대비한 수련을 했다.
표면상으로는 내가 비도를 던지고 은가예가 막는 것이기에 내가 은가예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야말로 엄청난 수련이 되고 있었다.
비도마다 항마력을 최대로 담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괴물이네.’
비도를 가볍게 팡팡 쳐대는 은가예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마력을 단숨에 뿜어내면 된다고 말하기야 했지만, 그걸 저렇게 바로 소화시키는 건 진짜 재능의 영역이었다.
‘하긴, 자기 옷 입는 거니까 쉬운 게 당연하려나.’
이건 나중에 3학년으로 올라선 은가예가 주로 사용하게 되는 마력의 응용법이었으니까.
이름하여, 폭검(暴劍). 이 폭검이야말로 은가예가 은소백을 이길 수 있는 핵심 카드였다.
은소백의 잔잔하면서도 면면부절하게 이어지는 마력의 응용은 폭발적인 마력과 만나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갈 테니까.
“어때, 감은 와?”
“어느 정도는? 하지만 어려워.”
은가예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어렵다고 한 것은 폭검이 아니라 내가 제시한 새로운 마력의 제어법이었다.
어려운 건 당연했다. 제어가 풀린 마력의 방향만을 잡아준다는 것은 센스와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려워도 해야 했다. 중력의 마력이 지닌 위력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제어법의 변화는 필수였다.
그렇게 나는 항마력을, 은가예는 폭검과 제어법을 다루고 있자니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2학년을 상징하는 보라색 넥타이에, 은가예와 닮은 듯하면서도 거만함이 담긴 얼굴.
‘은소백.’
“왜 그래?”
내가 비도를 거두자 은가예가 의아해했다. 그에 대한 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구나.”
뒤를 돌아본 은가예의 인상이 불쾌하게 찌푸려졌다.
“······은소백? 또 무슨 시비를 걸러 온 거야?”
“시비라니. 동생이 수련한다니 응원이라도 해주러 왔지.”
“지랄하네.”
원색적인 욕설에 은소백의 눈썹이 일순 씰룩였으나 금새 표정을 풀곤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은가예 못지않게 신랄했다.
“응원이라도 해줘야 네가 쓸모없는 헛짓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할 거 아니냐.”
······와, 말하는 거 보게.
전형적인 콩가루 집안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그때 은소백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해솔이라고 했지? 보니까 다 아는 것 같던데.”
“그런데요?”
“무슨 생각으로 가예를 도와주는 거냐?”
“당연히 이길 거니까 돕죠.”
“···뭐? 풋! 푸하하!”
얼빠진 표정을 지었던 은소백이 미친놈처럼 폭소를 터트렸다. 이내 눈가를 닦으며 은소백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 하하. 수석이라 해서 조금은 기대했더니, 눈이 빠진 녀석이었군.”
“글쎄, 누가 빠졌는지는 보면 알지 않을까 싶은데.”
“······.”
은소백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표독스러운 눈이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나는 내심 살짝 쫄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마주 바라보았다. 은소백이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입은 살았군. 뭐, 대항전 때 보면 알 거다. 네 눈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그리 말한 은소백은 은가예를 한차례 바라보더니 등을 돌려 그대로 공원 너머로 사라졌다. 이내 은소백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은가예가 나를 돌아보았다.
“···야, 너 왜 그래?”
“뭐가?”
“왜 그렇게 말했냐고.”
“내가 틀린 말 했냐?”
“아니, 그건 아닌데······”
당황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린 은가예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모르겠다.”
“모르겠으면 하던 거나 마저 하든가.”
“그러자.”
은소백이 사라진 공터, 우리는 다시금 수련에 들어갔다.
***
일주일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3월의 셋째주 월요일.
콜로세움을 연상하는 이터니티의 거대한 대련장이 수많은 인파로 채워졌다.
관중석은 이터니티의 전교생으로 가득했으며, 참관석으로 하진우를 비롯한 이터니티의 관계자와 외부 인사들이 자리했다. 이어서, 로브를 입은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오색 찬연한 마력의 폭죽이 날아올랐다.
퍼어어엉!
화려하게 비산하는 마력의 폭죽.
······학년 대항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