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학년 대항전의 메인이 되는 꽃은 누가 뭐라해도 2학년과 3학년의 대결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1학년 생도들이야 아직 이렇다 할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기에 소위 말하는 볼거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2학년부터는 다르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특기를 개발하게 되니까.
1학년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그저 그런 꽃봉우리라면, 2학년부터는 얼마든지 3학년을 이기는 파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시합장에서 3학년 생도를 아예 요리해버리고 있는 유스칼 아르세이처럼.
“한 번에 마법을 몇 개나 만들어내는 거야?”
“몇 개 수준이 아니야, 저거 전부 3서클 이상의 마법이야.”
“헐, 저게 다?”
관중석에서 유스칼의 대련을 지켜보던 생도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빛과 불이 사방을 날아다니는 유스칼의 마법은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그 정령의 무도회 같은 마법의 향연에 전사계열의 3학년 생도는 실에 매인 인형처럼 놀아났다.
마치 인형을 조종하는 듯한 유스칼의 손짓에 따라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사방에서 쏘아지는 마법을 막기에 급급해 보였으니까.
게다가 이는 단순히 겉보기만 화려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마법의 수준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3서클 마법을 무려 5개나 동시에 다루려면 이터니티에서도 3학년 중위권 이상의 실력은 되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관중석의 열기는 뜨거웠다.
“유스칼! 유스칼!”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유스칼을 연호하는 목소리들이 귀가 따갑게 들려온다.
그리고 나는 그걸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마법 하나는 기가 막히네.”
그새 3학년생을 때려눕히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유스칼을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원작게임에서야 천우진에게 져서 빛이 바랬을 뿐이지, 유스칼은 ‘마력의 조율자’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마법에 조예가 깊은 생도였다.
무려 2학년 TOP3에 드는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천우진을 띄워주기 위해 고안된 캐릭터이니 만큼 강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나는 이겨야 하고 말이다.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내 마음은 의외로 차분했다.
‘어째 질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솔직히 유스칼과 나의 격차는 현격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할 만큼 컸다.
유스칼의 마력이 대해라면 내 기력은 그 대해에서 찻잔으로 물을 한 잔 떠 올린 수준이다.
기량은 말할 것도 없고, 그걸 지속할 수 있는 유지력조차도 밀리는 실정이었다. 대련은커녕 지도를 받아야 되는 수준.
다만, 이번에는 경우가 조금 특수했다.
유스칼은 오로지 ‘마력의 조율’ 하나에만 특화된 생도였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항마력을 사용하는 나하고는 상극 중의 상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카루스의 반지가 가열된다면 그조차도 무의미해지겠지만. 확실한 건 붙어봐야 안다는 이야기였다.
고개를 내저은 나는 이어지는 경기들을 지켜보았다.
3학년과 2학년의 경기는 과연 화려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눈요깃거리가 넘쳐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원작의 주인공인 ‘천우진’이 ‘유스칼 아르세이’를 격파했을 때의 뽕을 채우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그 메인 이벤트의 흥을 돋우기 위해 마련된 무대가 바로 은가예와 은소백의 비무였고.
참고로 원작에서는 은가예가 은소백에게 거의 농락당하다시피 가지고 놀려지다 허무한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
은소백은 인성이 글렀다 뿐이지, 2학년에서는 나름 top5안에 드는 강자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은소백에게 패배해 울분에 젖어있는 은가예를 천우진이 달래주면서 은가예가 주인공 팀에 합류하게 되는 거였고.
‘이번에는 전혀 다를 테지만.’
나는 어느새 비무대로 올라서는 은가예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
“용케도 겁먹지 않고 나왔구나.”
비무대로 올라서는 은가예를 은소백이 장하다는 듯이 칭찬했다. 그런 은소백의 표정은 여유가 넘쳐보였다.
그도 그럴 게 은소백은 은가예를 상대로 단 한 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웅.
은소백의 검으로 물이 흐르는 듯한 마력이 맺혀 들었다. 그 마력은 검을 넘어 공간에 물결쳤다.
면면부절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줄기를 연상화한 은가의 검법 청하류(淸河流).
청하류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을 물처럼 받아넘길 수 있는 검법이었다.
그리고 은소백은 그 청하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천재였다.
“어디 한 번 마음껏 설쳐봐라.”
“웃기고 있네.”
은가예가 코웃음을 쳤다. 마음껏 설쳐보라는 말과 다르게 은소백은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니까.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인간. 저게 바로 은소백이라는 인간의 본질이었다.
“후우.”
숨을 내쉰 은가예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 그녀의 검으로 은소백과 같은 푸른 검기가 맺혀 들었다. 다만, 그 검기는 은소백과는 다르게 거칠고 사나웠다. 이를 본 은소백이 짐짓 놀란 척을 해보였다.
“오, 그래도 예전처럼 마력이 튀지 않는 걸 보니 많이 나아졌어. 형편없는 건 여전하지만 말이야. 하하!”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 은가예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마치 받아줄 것처럼 느긋하게 서 있던 은소백은 은가예의 검이 다가오기 무섭게 이를 가볍게 튕겨냈다. 그리고 하나의 동작이었다는 양, 은가예의 어깨를 노리고 번개처럼 검을 찔러 들어갔다.
은가예도 이를 예상했는지 은소백의 검을 쳐내며 둘 간의 공방이 한동안 요란하게 이어졌다.
“···와, 둘 다 장난 아니다.”
“은소백을 상대로 완전 박빙인데?”
“저게 1학년이라고?”
1학년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던 생도들은 은가예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놀라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겉보기로 은가예는 은소백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 ‘박빙’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야말로 은소백의 노림수였다.
‘실력이 비슷한 줄 착각하면 상대도 검술로 승부를 보려 할 테니까.’
은가예를 자신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하기 위해 은소백이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한 공방이라는 소리였다.
은가예의 장기는 검술이 아닌, 특유의 강렬한 마력에 있었으니까.
반면 은소백은 청하류를 이용한 검술이 특기였으니, 검술대결로 가버리면 은가예가 은소백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근접전에서 벌어지는 모든 공격을 가볍게 받아 넘겨버리는 것. 그게 바로 청하류가 가진 사기성이었다.
‘그 때문에 은가예가 은소백을 상대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던 거고.’
심지어 은소백은 받아 넘기기만 하기에 체력소모가 적은 반면 공격하는 쪽인 은가예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몰아붙이던 은가예가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때가 무르익었다 판단한 은소백이 받아넘기는 것을 그만두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은가예 또한 지지 않고 맞섰으나 그녀의 검은 청하류에 막혀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은소백은 승기를 잡았다 판단했는지 은가예를 연신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거, 끝난 것 같지?”
“그러게, 아깝다. 제법 분전했는데.”
“상대가 은소백이면 저렇게 되는 게 맞지.”
예상했던 결과라는 듯 생도들은 은소백의 승리를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게, 은소백의 페이스에 휘말린 은가예는 어느덧 비무대의 외곽까지 밀려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또한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슬슬 때가 됐는데.’
내가 그런 생각을 품기 무섭게 작은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은가예를 몰아치던 은소백이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
“이, 이게 뭐가 어떻게 된······”
은소백은 교복이 피로 물든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나 터져 나간 자신의 검만을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돌연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리곤 은가예를 노려보았다.
“내 검에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거냐!”
“아직도 모르겠어?”
은가예가 가라앉은 시선으로 은소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충격이 계속 쌓여서 터져 나간 거잖아.”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은소백의 모습에 은가예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네가 자랑하는 청하류는 무적이 아니라고.”
“······!”
은가예는 처음부터 은소백의 페이스에 말려든 것도, 검술대결을 하고자 공방을 펼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계속해서 두드렸다. 은소백의 ‘검’을.
은소백은 청하류가 그 충격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고 굳게 믿은 모양이지만, 청하류는 ‘물리공격 무시’같은 만능의 마법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충격을 더 가벼이 받아넘길 뿐. 그렇기에 은가예는 폭검을 이용해 은소백의 검을 계속해서 두드렸을 뿐이다.
순간순간, 짧게 이루어지는 마력의 분출이 가지는 폭발력을 청하류가 전부 해소하기란 무리가 있던 것이다.
연못에 자갈을 던지면 파문이 일고, 종이를 치면 찢겨나가듯이, 청하류 또한 그렇게 깨져나갔을 뿐이다.
“너, 이······”
욕설을 내뱉으려던 은소백이 흠칫 말을 멈췄다. 은가예의 검이 그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꺼져. 멍청하게 입 벌리고 서 있지 말고. 병신같으니까.”
“······.”
일그러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던 은소백은 검이 목에 더 가까이 다가들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승자! 1학년 1반 생도, 은가예!
사회를 보던 마법사가 확성기를 들고 외치자 관중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그리고, 은가예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은소백 앞에서는 강한 척을 했지만 실상 그녀는 은소백의 검을 깨트렸을 때 모든 힘을 다 쏟아붓고 난 뒤였다.
만약 은소백이 이를 눈치 챘다면 어쩌면 상황이 역전됐을지도 몰랐다. 아무튼.
“진짜 이겼네.”
은소백을 이겼다는 사실이 실감이 가지를 않았다. 솔직히 비무장에 설 때까지만 해도 이기리란 확신이 없었으니까. 이해솔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마침 이쪽을 쳐다보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이해솔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은가예는 정말, 답지 않게, 마주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
한편, 참관석에서 비무를 구경하던 여명의 수호자의 간부 서하린은 비무장을 나가는 은가예를 바라보며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 저 나이에 폭검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게, 마력을 단숨에 발출해야 하는 폭검은 그 높은 난이도 탓에 실전에서 사용하는 초인이 드문 기술이었다.
그런 고급기술을 이제 갓 입학한 이터니티의 신입생에게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마력이 좀 특이한 모양이더군. 저건 폭검에 특화된 마력이야.”
“그런 경우도 있군요, 신기하네요.”
학년 주임, 정해준의 말에 서하린이 살짝 입을 벌렸다.
폭검에 특화된 체질이라니, 어째 이번 1학년에는 인재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몰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 보니 자연 다음 시합 또한 기대가 되었다.
사실 이 시합이야말로 그녀가 보기에는 제일 흥미진진한 시합이었으니까.
유스칼 아르세이 대 이해솔.
무려 2학년의 top3와 1학년 수석의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물론, 수석이라곤 해도 1학년 생도가 유스칼을 이길 가능성은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터니티의 교관인 정해준의 평가는 달랐다.
“이해솔, 저 녀석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지.”
“그 정도인가요?”
“유스칼도 마력을 다루는 데는 도가 튼 녀석이지만, 이해솔은 정말 특이하게 마력을 응용하는 녀석이니까.”
이터니티의 교관씩이나 되는 정해준의 입에서 특이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니. 서하린은 궁금해졌다.
“대체 마력을 어떻게 다루길래 그래요?”
“저 녀석의 마력은 아예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거든.”
“······예?”
서하린이 눈을 깜빡였다.
“그런 마력도 다 있어요?”
폭검에 특화된 마력이라는 것을 들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마력이란 말인가? 처음 듣는 해괴한 마력들을 오늘 한 자리에서 다 듣게 되는 서하린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 보이지 않는 마력의 주인공인 이해솔이 유스칼과 비무대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