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6화 (27/226)

§ 26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한 수 부탁하지.”

비무대에 올라서자, 유스칼이 웃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조각을 해 놓은 듯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엘리트의 표본 같은 남자였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악수를 나누고 거리를 벌리고 서자 진행자로 나선 교관이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사전에 미리 계획한 대로 유스칼의 마법이 날아들면 받아칠 생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유스칼과 나의 기량의 격차는 현저했기에 내가 먼저 선공을 날려봤자 통할 리가 없었다.

수비적으로 나서며 기력을 이용한 깜짝 빈틈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었다.

그조차 기회는 몇 번 없을 테니 신중에 신중을 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서 있는 거지?’

이상하게도 공격을 해오지 않는 유스칼의 모습에 내가 의아해할 때였다.

“역시 소문대로야. 보이지 않네.”

비무장의 사방을 둘러보면서 손을 뻗어본 유스칼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였다.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다 포기한 사람처럼.

“뭐가 안 보인다는 거죠?”

“시치미를 떼려고?”

“······예?”

뭔 시치미?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스칼이 한숨을 내쉬더니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비무장에 마력을 퍼트려놨겠지. 함정을 파놓고 내가 움직일 때를 노리려고 말이야. 그러니까 거기 가만히 서 있는 거잖아. 내가 먼저 움직이게 만들려고. 안 그래?”

“······.”

“하지만 어쩌지?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생각이 없는데.”

내가 쓸 수 있는 수를 봉쇄했다는 듯이 웃으며 유스칼이 말했다.

“네가 자랑하는 ‘무마력’에 대한 대비는 모두 해왔거든.”

“무마력이요?”

내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지자, 유스칼이 이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력.”

“···아.”

무마력이라는 게 설마 기력을 말하는 거였어?

하지만 기력은 유스칼의 말처럼 미리 사방에 퍼트려놓을 수 있는 만능의 기운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방대한 양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총처럼 아예 쏘는 게 아닌 이상, 기력은 내 손발처럼 붙어서 움직이는 기운이다. 몸에서 분리되지 않는. 제 3의 팔이라고 해야 할까.

몸에서 떼어놓아도 조종이 가능한 마력과 달리 기력은 한 번 몸에서 떨어지면 조종이 불가능했으니까.

그람의 비도에 담긴 기력이야, 비도 자체를 움직이면 되니 상관없었지만.

아무튼, 내가 무마력이 뭔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짓자 유스칼이 자신의 추측을 늘어놓았다.

“내가 있는 곳까지 공격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흔적을 감추는 대신 거리에 제약이라도 걸려있는 모양이야. 아니면 ‘발동 조건’이 있다거나.”

“······.”

이래서 사람도 머리가 적당히 좋아야 한다는 건가 보다.

유스칼은 그 좋은 머리 탓에 억측에 억측을 해버림으로써 스스로에게 제약을 걸어버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기나긴 분석을 끝냈는지 유스칼이 팔을 들어 올렸다.

“느낄 수 없다면 보지도, 잡지도 않아도 되게 만들면 그만이지.”

유스칼이 손목에 찬 팔찌로 심상치 않은 가공할 마력이 맺혀 들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거 잘못 맞았다간 골로 가겠는데.’

이카루스의 반지를 사용해도 미처 다 해소하지 못하고 직격당할 것 같은 방대한 마력에 내가 바짝 긴장했을 때였다.

화아악! 팔찌에 담긴 마력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비무장 전체를 푸르게 감싸며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지금 뭐 한 거지? 의아해진 내가 유스칼을 쳐다보았다.

“후욱, 후우.”

유스칼은 무언가 대단히 힘든 작업이라도 한 사람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성취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내 의아한 표정을 본 유스칼이 피식 웃어보였다.

“뭘 한지 몰라 의아한 얼굴이네.”

“···아, 예. 뭘 한 거죠?”

“이 비무장 일대를 내 마력의 영역으로 선포했어.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마력을 사용할 수 없지. 그러니까······”

유스칼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싱긋 웃어보였다.

“무마력이든, 뭐든, 마력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리야.”

“······.”

‘무마력’을 봉쇄하기 위해 유스칼은 나름 대단한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그 ‘무마력’이 진짜 ‘무’마력이라는 것도 모르고······

“와, 마력필드라니. 유스칼 저 녀석, 아예 이기려고 작정을 했네.”

“이래서야 저 1학년 수석도 끝이군.”

“하긴, 무마력이라도 마력 자체를 못 쓰게 되면 답이 없겠는걸.”

나만이 당황스러울 뿐, 관중석에서는 연신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당연했다. 마력 필드는 무려 4서클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마법이었으니까.

2학년 생도중에 마력필드를 펼칠 수 있는 생도는 오직 유스칼이 유일하다고 보아도 좋았다.

일대를 감쌀 수 있는 방대한 마력과, 수준 높은 마력의 조율이 어우러져야지만 가능한 마법이 바로 마력필드였다.

그리고, 유스칼은 그 ‘마력필드’를 사용한 반동으로 상당히 지쳐버린 상태였다.

“후우, 이만 끝내지.”

유스칼의 팔찌가 번쩍이더니, 하얀 빛무리 3개가 떠올랐다.

1서클 마법, 매직 미사일 3발이다.

마력필드를 펼치는데 모든 힘을 쏟아부은 유스칼이었기에, 저 이상의 마법을 펼치기는 어려워보였다.

“······음.”

그 초라한 위용에 왠지 모르게 멋쩍은 기분이 되어버린 나는 볼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이거······

“꽁승이란 건가?”

퍼버벙!

날아들던 매직 미사일 3발을 기력으로 가볍게 격추시키자 당황한 유스칼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떻게 그럴 수······!”

퍼억!

기력에 머리를 후려 맞은 유스칼이 뒤로 쓰러졌다.

“······.”

뜻밖의 결과에 관중석 전체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교관님.”

“···아!”

심판을 맡은 교관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내 승리를 선언하자 관중석에서 뒤늦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띠링!

[학년대항전 퀘스트, 영국의 유망주 유스칼 아르세이와의 비무에서 승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보상으로 3000SP와 <기척 차단>이 지급됩니다.]

······아무래도, 진짜 이긴 모양이다.

***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서하린은 유스칼이 쓰러진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유스칼이 펼친 ‘마력필드’는 제대로 가동되었고, 그 안에서 이해솔이 마력을 쓰는 건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유스칼이 매직미사일 3발을 발출한 순간,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버린 것이다.

그때,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있던 정해준이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마력의 벽이다.”

“···마력의 벽이라고요?”

서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정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스칼의 대처는 정확했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능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력필드’를 펼치는 건 분명 정석적인 방법이야. 하지만 마력필드를 펼칠 것을 사전에 미리 알고 마력의 벽을 단단히 쌓아 올려두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지.”

몰아쳐 오는 파도를 방파제로 막을 수 있듯이, 마력의 벽을 미리 쌓아 올려두면 마력필드의 영향력 아래서 벗어나는 게 가능했다. 그건 서하린도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마력의 벽을 쌓을 때 공격을 받으면 위험할 텐데요?”

마력의 벽을 쌓는 건 상당한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 사이에 공격을 받으면 아무것도 못 해보고 당할 수가 있었다.

서하린의 이러한 지적에 정해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해솔 저 녀석이 더욱 대단하다는 거다. 처음에 녀석이 가만히 서 있던 건 마력의 벽을 쌓기 위함이었겠지. 만약 그때 유스칼이 공격을 했다면 승부는 유스칼의 승리였을 거다.”

하지만 유스칼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는 이해솔이 무마력을 이용한 함정을 파고 있다고 생각해 섣불리 공격하는 대신 마력필드를 펼치는 쪽을 택했다.

정해준이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유스칼은 이해솔에게 처음부터 심리전에서 지고 들어간 거지.”

“······그렇게까지 앞을 내다봤다고요? 두 수씩이나?”

놀란 서하린이 비무장을 내려가는 이해솔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해솔, 정말 무서운 녀석이야.”

정해준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

유스칼의 패배에 생도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게 은소백의 경우와 달리 유스칼은 무려 3학년에 준하는 강자였으니까.

그런 생도를 1학년생이 꺾었다는 사실에 참관석에서도 동요가 일었을 정도다. 하지만 유스칼의 패배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1학년, 아니. 1학년 1반에는 게임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아멜리아’ ‘니콜라이’ ‘천우진’ 그 외 기타 조연까지 2학년을 가뿐히 요리할 수 있는 괴물들이 다수 포진해있었으니까.

애초에 이 학년 대항전이라는 것 자체가 주연들을 빛나게 하기 위한 편파적인 이벤트였던 것이다.

2학년 생도들에게는 암울하다면 암울한 이벤트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연이 빛나기 위해선 반드시 그에 따른 희생양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저건 좀 심하네.”

비무장을 내려다보며 은가예가 드물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 또한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게, 비무장에서는 때아닌 한편의 유린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린극을 주도하는 생도는 다름 아닌 한세연이었다.

타앙! 타앙! 타앙!

무차별적으로 퍼부어지는 탄환의 세례에 검을 든 2학년 선배는 비무장 사방을 누비며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기 바빴다.

한세연이 양손에 쌍권총을 든 채 상대가 접근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사격을 해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마력을 탄환 대용으로 쏘아대고 있었기에 총알이 떨어질 염려도 없어보였다.

“누가 검이 총보다 유리하대?”

나는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일 대 일 대결에서는 검이 총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이터니티의 상식을 저기다 대입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었다.

이름 모를 2학년 선배는 검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비무 내내 도망만 다니다가 마력탄의 제물이 되었다.

그렇게 기절한 선배가 들것에 실려 씁쓸히 퇴장했으나, 관중석에선 여느 때보다 열렬한 환호성이 쏟아졌다.

‘쌍권총’이라는 특이한 무기에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인 한세연이었으니 어린 생도들이 환장할 수밖에.

동기가 들것에 실려 나갔음에도 열광하는 2학년 생도들은 좀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한세연의 시합이 지나고 이어진 시합은 더욱 미친 수준이었다.

무려, 2학년 top2인 철벽의 오스틴과 천우진의 대결이었으니까.

원작에서 유스칼을 상대로 뽕을 채우던 천우진이 내가 끼어드는 바람에 훨씬 더 어려운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수준 뭐야?”

검과 주먹이 오가며 본인들이 아닌, 비무장을 박살 내 버리는 두 사람의 경기는 보는 사람의 기를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저거 팔 부러진 거 아닌가?’

오스틴의 주먹에 팔목이 박살났음에도 아랑곳없이 검을 휘두르는 천우진의 박력에 내가 기가 막혀 할 때였다.

콰아아앙!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대련장이 지진을 만난 것처럼 떨려왔다.

“뭐, 뭐야?!”

“어디 사고라도 났나본데?”

“나가야 하는 거 아니야?”

대련장이 흔들리자 당황한 생도들이 웅성여댔다.

그리고, 잠시 후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이터니티의 관계자가 대련장에 나타나더니 참관석으로 뛰어 올라갔다.

교관과 무언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듯했지만, 거리가 멀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테러인가.’

[이터니티 아카데미에 집단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경고 : 사망선이 발생합니다.]

[대상 : 아멜리아 로마노]

상태창에 테러의 알림이 나타났으니까.

······아멜리아 사망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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