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28화 (29/226)

§ 28화

이터니티의 생도동. 그중에서도 1학년생이 거주하는 제 3동의 통로.

오진혁, 김하윤, 이순철 등 세 명의 생도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을 구르고 있었다.

대련장을 나와 기숙사로 돌아가던 도중, 느닷없이 마수가 출몰한 것이다.

심지어 그들로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기괴한 외양을 가진 사족보행의 거대한 마수였다.

알지 못하는 형태의 마수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그들은 1학년생일지라도 명색이 이터니티의 생도들이었다.

필드의 던전에서 마수를 사냥한 경험도 있었기에, 자신들의 선에서 마수를 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검을 찌르고, 마법을 퍼부어도 마수에게는 제대로 된 공격이 먹혀들지를 않았다.

“무슨 가죽이 저리 질겨?!”

“틀렸어, 디버프도 안 통해!”

마수의 발을 막으며 물러난 오진혁이 당황하자 디버프 마법을 걸던 김하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마수를 바라보던 이순철이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등허리를 가리켰다.

“저, 저거······”

“응?”

“헙!”

이순철을 따라 고개를 돌렸던 두 사람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녀석의 등이 꿈틀거리며 부풀어 오르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풍겨오는 마기 또한 심상치가 않았다.

크르르르르······

저주파의 낮은 울림에 이순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이건 당장 교관님부터 불러와야 돼.”

뒷걸음질치던 이순철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놀라 굳어졌다.

“언제······”

그의 바로 뒤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생도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이해솔?”

걸어오는 생도가 이해솔임을 알아 본 김하윤은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자 소리쳤다.

“위험해, 물러나!”

하지만 이러한 경고에도 이해솔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지나쳐 마수에게 걸어갔다.

휘이익!

푸른 마력이 담긴 비도가 마수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마수의 고개가 비도를 쫓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쿠우웅!

비도가 닿지 않았음에도, 마수가 땅을 울리며 쓰러졌다.

***

‘크루트’란, 마인들이 초인에게 대항해 만들어낸 개조마수였다. 여러 잡다한 것들을 섞어낸, 이른 바 키메라.

크루트는 게임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발전을 거듭해 종국에는 일류초인조차 1대1로는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크루트까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약점이 뚜렷하지.’

크루트가 강해지는 건 먼 나중의 일이다. 현재의 크루트는 그저 여러 잡다한 생명체들을 뭉뚱그려놓은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아랫배에 인간의 심장에 해당하는 핵이 뭉쳐져 있다.

물론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핵을 최우선으로 지키려 하기에, 배를 지면에 깔고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랬기에 아랫배에 핵이 있다는 걸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를 알아내기조차 어려웠고, 설령 알아낸다 하더라도 녀석이 지키려 들기에 까다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이를 남보다 좀 더 쉽고 간편하게 공략하는 게 가능했다.

크루트가 최우선으로 하는 건 자신의 핵 다음으로는 ‘마력’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람의 마력이 담긴 비도를 쏘아 올리자, 녀석의 고개도 덩달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기력을 담은 비도가 시선이 팔린 녀석의 아랫배를 파고들었다.

파각!

핵이 깨지고, 생기를 잃은 크루트가 바닥에 몸을 누였다.

“······와.”

“뭐야, 지금 어떻게 잡은 거야?”

크루트와 마찬가지로 위에 시선이 팔렸던 세 사람은 비도가 아래로 파고드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랫배.”

“아랫배?”

“거기가 녀석의 약점이야.”

물론 알아봤자 나처럼 사냥하는 건 어렵겠지만.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닌, 효율의 문제였다.

“너네는 대련장으로 돌아가 있어.”

“해솔이, 너는?”

“나는 좀 더 돌다 들어가게.”

오진혁의 물음에 대답해 준 나는 그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기숙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목표는 이 안의 어딘가에 있을 아멜리아의 구출이었으니까.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퀘스트 알람창이 갱신되었다.

[이터니티 아카데미를 마인들의 집단 테러로부터 구하세요!]

▶본관 (0/1)

▶생도동 (0/1)

▶외곽 도주게이트 (1/1)

‘오우, 벌써 깼나 보네.’

생도동 외곽의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번 이터니티의 테러에서 마인들이 자리한 곳은 총 3군데였다.

이터니티의 본관.

1학년 생도동.

일이 끝났을 때를 대비한 마인들의 도주 게이트.

여기서 본관과 생도동이 특정 지어지는 뚜렷한 장소라면, 게이트를 마련해놓은 장소는 찾기가 어려웠다.

도주로인 만큼, 마인들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게이트는 꽁꽁 숨겨 놓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마인들의 도주로는 탐색마법에 특화된 마법사라도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었다.

심지어 이번 사태에서 도주로를 맡은 마인은 게이트의 마기를 감추는데 도가 튼 녀석이었다.

만약 녀석이 작정하고 도주로를 숨기려 든다면 찾기가 어려워질 만큼.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무엇보다 가장 먼저 없애놔야 할 곳이 바로 도주로였다.

만약 녀석들이 아멜리아를 납치해 도주게이트로 도망이라도 가버린다면?

‘그때부터 완전 꼬여버리는 거지.’

굳이 아멜리아가 아니더라도 놈들이 다른 생도들을 납치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기에 도주로는 먼저 차단해두는 편이 여러모로 좋았다.

물론 정석대로라면 도주게이트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건 아멜리아를 구출하고 본관의 소동까지잠재우고 난 이후에 탐색계열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반드시 퀘스트를 정석대로 처리하라는 법은 없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오면 되고, 위험하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패를 꺼내면 된다.

그랬기에, 녀석들의 도주로를 찾아 지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패를 보내놓았었다.

바로 한세연을.

······결과야 뭐, 보는 바대로였고.

***

“과연, 쉽네.”

생도동의 외곽, 인적이 드문 공터.

크르르르······.

무언가에 홀린 듯 나타난 마수를 보며 한세연이 싱긋 웃어보였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대련장에서 이해솔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외곽 쪽을 뒤지다 보면 마인들이 도주게이트를 숨겨놨을 거야. 거길 찾아서 없애.’

‘내가 찾을 수 있을까?’

‘충분해. 용의주도한 놈들이라 게이트에 마수를 배치해놨을 거거든.’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겠네. 해솔이는 어디 가려고?’

‘생도동.’

‘생도동은 왜?’

‘처리 할 일이 있거든.’

‘같이 안 가도 괜찮겠어?’

‘나 혼자서 충분해.’

······그렇게 한세연은 이해솔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마수지체였다. 비록 모르도와 계약을 함으로써 더 이상 마수들이 얼씬을 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게 마수지체로서의 능력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가 원하면 언제든 마수를 끌어들일 수 있는 몸. 그게 바로 마수지체였으니까.

그러니까, 게이트에 마수를 배치해놓았다면 이를 찾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외곽을 돈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루트’가 나타났다. 그와 더불어 게이트를 지키던 마인까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허, 이놈이 왜 갑자기 움직이나 싶더니 먹잇감이 왔었군.”

한세연같은 마수지체는 전 세계에서도 발생하는 빈도가 극히 드문 체질이었기에 마인은 마수가 그녀의 기운에 이끌린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마수가 갑자기 움직인 것에 의아함을 느꼈을 뿐, 한세연이 길을 잘못 든 생도라 여겼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는 불과 1분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콰드득!

어둠에 휘감긴 크루트의 머리가 짓뭉개졌다. 이어서 남은 몸통마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광경에 마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무슨··· 크아악!”

경악도 잠시, 크루트를 해치운 어둠이 몰려오자 뒤늦게 달아나려던 마인은 허우적거리다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에 휩싸인 공터. 크루토와 마인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적막이 자리한 공터에서 한세연이 생도동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구경 가볼까.”

이해솔이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보고 싶어졌다.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한세연의 입가에 싱긋 웃음이 맺혔다.

***

한편, 아멜리아는 달아오른 안색으로 기숙사의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닥에 처음 보는 마법진을 그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마인.’

짙게 풍겨오는 마기가 남자가 마인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알려주었다.

그가 그리는 마법진이 무엇인진 알 수 없었으나, 마인들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멜리아는 질리도록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마력’이다. 마인들은 초인의 마력을 먹이 삼아 자신의 마기를 증가시키니까.

그리고, 그중 극상의 먹이가 바로 그녀가 지닌 ‘순수 마력.’

저 마인의 목적 또한, 그녀가 지닌 순수마력의 갈취이리라.

이 특유의 마력 탓에 그녀는 어려서부터 종종 마인의 표적이 되곤 했으니까.

“잠깐, 이, 이런 거라곤 말하지 않았잖아.”

마법진을 그리는 마인의 옆에서 에머슨이 당황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멍청하게도 물건만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뿐, 설마 아멜리아 그녀를 제물로 삼으려고까지 하는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녀가 순수마력을 지녔다는 것은 아는 이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중에 에머슨은 제외되어 있었고.

아무튼,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력이 안 움직여.’

마력을 모으려 할 때마다 체내의 마력은 뭉치지 않고, 자꾸만 흩어져 내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머리는 어지러웠고, 전신은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웠다.

그게 좀 전에 에머슨이 보여준 붉은 보석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멜리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 ‘독’과 관련된 마도구이리라.

설마 에머슨이 그런 위험한 물건을 건네올 줄은 미처 몰랐기에 방심하다 당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력을 장시간 모으면 흩어진다 뿐이지, 아예 뭉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만 이런 마력의 출력을 가지곤 1~2서클의 마법을 사용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눈앞의 마인에게 타격을 주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별의 성좌라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벗어나 이터니티 아카데미에 들어왔을 때, 이런 일이 한 번쯤은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그녀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의 복부에는 이런 위기 상황을 대비해 항시 가문의 결계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제대로 발동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다행히 기회는 있어.’

에머슨이 까맣게 죽은 얼굴로 마인의 앞에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마인은 그런 에머슨이 신경 쓰이는지,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물론, 에머슨으로 인해 마인의 신경이 분산되고, 결계가 성공적으로 펼쳐진다고 해도 그녀가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은 건 여전했다. 하지만······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없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런 건 다른 대안이 있을 때나 따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느냐 마느냐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에머슨과 마인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지켜보던 아멜리아의 눈이 일순 파랗게 번뜩였다. 다음 순간, 복부에 새겨진 결계 술식이 하얗게 터져 나와 주변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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