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파아아아아!
새하얀 빛무리가 터져 나와 주변을 밝힌다.
이윽고 빛무리는 아멜리아의 주변을 둥글게 감싸 안았다. 결계술식, 광휘의 성막이었다.
“호오, 숨겨둔 수가 있었다는 건가.”
광휘의 성막을 본 마인, 구준명이 재미있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막아서 뭐를 어쩔 거지? 혈류석에 당한 그 몸으로는 마력조차 끌어올릴 수 없을 텐데?”
조롱하듯 이죽이던 구준명의 눈이 일순 커다래졌다.
“······!”
예상과 달리 아멜리아가 빠르게 마법술식을 짜 올리고 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광휘의 성막은 구준명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결계가 아니었다.
혈류석에 당해 마력을 모을 수 없는 아멜리아였지만, 그녀의 몸에 새겨진 결계 술식은 마력을 저장하는 저장고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으니까.
이른 바, <제2 마력>.
그 <제2 마력>이 가동된 상태의 아멜리아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다룰 수 있다.
다만, 한계를 초월한 마력을 받아들이게 되기에, 몸에 무리가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혈류석에까지 당해버린 상황. 전신에서 뜨거운 열기가 증류처럼 피어올랐다.
‘······얼마 못 버티겠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제대로 된 일격을 선사해야 했다.
화륵!
술식에 마력이 담기며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이 떠오른다.
3서클 화(火)속성 마법, <타오르는 불>.
뒤이어 불어닥친 바람이 불길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3서클 바람속성 마법, <풍왕의 바람>.
이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불에 빛속성 마법, ‘별의 무리’가 중첩되며 타오르는 불이 수십 개의 화구로 쪼개져 재탄생했다.
모든 속성계열을 자유로이 다룰 수 있는 순수마력의 소유자인 아멜리아의 장기인 조합마법이자, 시그니쳐 마법인 <불의 폭주>.
과정은 복잡했으나 마법이 완성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기숙사를 밝히며 떠오른 수십 개의 불덩이가 구준명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과과과광!
화광이 충천하고, 땅이 터져 나갔다. 공간이 일그러질 만큼의 가공한 화력.
3서클로 이루어진 마법이었으나, 조합을 통해 중첩되고, 가중된 그 위력은 능히 5서클에 비견되었다.
이게 바로 아멜리아가 자랑하는 조합마법의 무서움이었다.
“하아, 하아!”
<불의 폭주>를 사용한 아멜리아는 다리가 풀려 휘청거렸다.
한계에 달하는 마력을 사용한 여파로 전신이 과열되고, 피부가 짓이겨졌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표정만큼은 밝았다.
그도 그럴 게, 평소라면 성공시키기도 어려운 <불의 폭주>가 완벽 그 이상의 위력을 지닌 채 일대를 불태웠으니까.
하물며 구준명은 막거나, 피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직격’당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마인이라도 이러한 폭격 마법을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무사하기는 어려웠다.
불에 탔거나, 숯덩이가 되어버렸을 거다. 그도 아니면 재가 되어 날아갔거나.
하지만······
타닥, 타닥.
불길이 걷히고 드러난 광경에 아멜리아는 경악했다.
‘···멀쩡해?!’
그 많은 화구에 직격당했음에도 구준명은 조금의 그을림 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 불가사의한 광경에 아멜리아는 당황했으나, 이내 이를 악물었다. 연이은 화구가 구준명을 노리고 쏘아졌다.
퍼엉! 퍼어엉!
조합을 통해 위력이 가중된 화구는 분명 아무런 방비 없이 받아낼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구준명은 멀쩡했다. 분명 직격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이게 무슨······”
“계속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구준명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피할 수 없었다.
아니, 몸이 안 움직였다.
“······!”
아멜리아의 눈이 흔들리자, 구준명이 피식 웃었다.
“왜 몸이 안 움직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
구준명이 땅을 가리켰다.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난 아멜리아의 그림자가 구준명의 발치에 밟혀있었다.
“그림자 옭아매기다. 내게 그림자를 밟히면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지.”
“······.”
구준명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아멜리아는 그림자가 밟힌 것을 본 순간 어찌 된 상황인지를 알 수 있었다.
구준명과 닿은 그림자를 통해 들어온 마기가 그녀의 몸을 옭아맨 것이다.
물론 이는 일시적이라 언제든 마력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움직이면 곤란하니······”
“아윽!”
구준명의 주먹이 아멜리아의 복부에 박혀 들었다. 파고든 주먹을 통해 음습한 마기가 밀려 들어왔다.
좀 더 확실하게 그녀를 제압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게 구준명이 마기를 주입할 때였다.
위이잉─ 위이잉─
그의 팔목에 차인 스마트워치가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붉은 빛을 토해냈다.
구준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명훈이 당했다? 어떻게 벌써······”
그와 마인들은 각자의 신변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공유하고 있었다.
지금 신호는 도주로를 확보하기로 한 마인인 기명훈의 신호가 끊어졌다는 경고음이었다.
기명훈이 고의로 신호를 끊었을 리는 없으니, 이는 무슨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도주로가 막혔음을 깨달은 구준명이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화아앗!
아멜리아의 복부에 새겨진 술식에서 마력이 터져 나왔다. 방심하고 있던 구준명이 뒤로 튕기듯 밀려났다.
“하아, 하아······”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은 아멜리아가 가쁜 숨을 토했다.
몸의 상태는 최악이었지만 다행히 술식에 저장된 마력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구준명에게 타격을 입히기란 불가능했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공격은 구준명에게 통하지를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 스마트워치의 경고음을 들은 구준명의 표정이 굳어졌으니까. 그건 구준명에게 무언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시간을 벌어야 해.’
본능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아멜리아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시간을 벌기 위해선 구준명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특히 조금 전처럼 그림자를 밟히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결코 안 된다.
“쓸데없는 발악을······”
아멜리아가 술식을 짜 올리자 구준명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머리가 좋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까 봐서 알 텐데?”
구준명의 말에 아랑곳없이 아멜리아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불의 구가 공간을 갈랐다. 하지만 그것은 구준명을 노린 게 아니었다.
퍼어어엉!
모래 무더기가 거칠게 피어올랐다. 화구가 땅을 헤집어 놓은 것이다.
“······!”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던 구준명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멜리아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닌, 도주를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모래 먼지가 일어나기 무섭게 도주를 감행했다.
“하아, 하아!”
혈류석에 당한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올라오는 열기에 시야마저 가물거렸지만, 결코 내딛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속화 버프를 걸은 몸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리지 않다는 점이었다.
모래 먼지가 걷히기 전에 그녀는 기숙사 모퉁이까지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뒤를 힐끗 보니 어째서인지 구준명은 제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왜 쫓아오지 않는 건지 의아했지만, 어쨌든 그녀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됐어. 이 정도 거리라면 시간은 벌었어.’
구준명과 그녀의 거리는 10m 가까이나 벌어져 있었다.
어쩌면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멜리아가 그런 작은 희망을 품었을 때였다.
“······!”
시선을 돌리던 그녀의 몸이 마치 못에 박힌 듯이 고정되었다. 억지로 움직여 보려 했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를 않았다.
“······어떻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당황한 아멜리아의 눈이 흔들렸다.
“아무리 도망쳐봐야 소용없다.”
“······!”
구준명의 목소리는 어느새 그녀의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이 짧은 시간에 이동했다고?’
놀란 아멜리아가 앞을 바라보니 구준명은 여전히 10m 밖에 서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가체마법이라는 거다. 거짓인 허상과 진신인 육체. 두 개의 몸을 공유하는 마법이지.”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이······’
경악한 아멜리아가 중얼거렸으나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구준명의 마기에 침식되어버렸기에.
“그럼, 마력을 뽑도록 하지.”
아멜리아의 머리끄덩이를 쥐어 잡은 구준명이 미리 그려 놓았던 마법진으로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그렇게 마법진 안에 아멜리아를 던져 넣은 구준명은 그림자가 되어 허물어져 내렸다.
뒤이어 처음의 구준명이 걸어왔다.
곁에서 이 모습을 멍청히 지켜보던 에머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주, 죽이진 않을 거지?”
“아직 있었군.”
콰아악!
에머슨의 얼굴을 번개처럼 낚아챈 구준명이 마기를 주입했다.
“으아악!”
구준명의 손에 붙잡힌 채 버둥거리던 에머슨이 이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아멜리아를 잡았으니 에머슨에게 남은 이용가치는 크지 않다고 판단해 처분한 것이었다.
“······!”
사촌의 죽음을 목도한 아멜리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눈가에 방울이 맺혀 흘러내렸다. 에머슨의 죽음에 뒤늦은 공포가 몸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탐욕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구준명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작하지.”
이내 구준명이 땅에 손을 가져다 대자 마법진이 음습한 빛을 토해냈다.
아멜리아의 몸에서 하얀 마력이 스르르 흘러나와 마법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순수마력이구나.”
마법진에 양손을 올려놓고 있던 구준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엄청나군! 이런 것을 독식할 수 있다니!”
구준명의 얼굴이 환희에 젖어 들었다.
원래는 마인들이 모두 모이고 나누어 가져야 할 순수마력이었으나 구준명은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필요에 의해 뭉쳤을 뿐. 마인에게 동료의식 따위는 없었으니까. 구준명 그가 아니라 다른 마인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죽는 건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마력에 아멜리아의 눈에서 차츰 생기가 사라졌다.
이내 공허함이 들어찬 눈으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퍼어억!
마법진에 손을 올리고 있던 구준명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크아악!”
어깨를 움켜쥔 구준명이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누구냐!”
“누군지 알면 어쩔 건데.”
“······!”
아멜리아의 눈이 커졌다. 들려온 목소리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내,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마법진 곁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잡혔다.
“후, 안 늦어서 다행이네.”
그녀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남자는 바로 이해솔이었다.
***
허귀(虛鬼) 구준명은 모르면 까다롭지만, 알고 나면 의외로 상대하기 쉬운 마인이었다.
구준명 본신의 전투력은 진짜 별 거 아닌 수준이었으니까.
다만, 타격을 입히려면 구준명이 지닌 능력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우선, 구준명이 지닌 몸은 2개다.
바로 ‘그림자’와 ‘가체’.
그림자는 가체와 최대 10m 반경까지 떨어져 있을 수 있는데 이 그림자야말로 구준명의 ‘본체’였다.
반면 ‘가체’는 허상이나 다름없었기에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가체가 온전한 허상이 아니라, 실체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구준명의 마기가 그림자와 가체를 오가기에, 마기가 가체에 머물러 있을 때는 실체감을 지니게 되는 구조였다.
그리고 마기가 머물러 있는 동안의 가체는 일반적인 육체와 다를 바 없기에 타격 또한 입는다.
반대로 구준명의 가체가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도 마기가 있어야 했고.
이런 복잡한 능력 덕에 잡기가 까다로운 마인이 바로 구준명이었다.
물론, 나야 구준명의 공략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녀석이 가체에 마기를 불어넣었을 때.
그때 녀석의 ‘양 발’이 지면에 닿지 못하게 한다면, 마기를 고립시킬 수 있다.
녀석은 지면에 반드시 양 발이 모두 닿아야지만 땅을 통해 그림자와 마기를 소통할 수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나는 아멜리아가 구준명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녀석이 발을 지면에서 떼어 놓게 할 확실한 순간을 노려야 했으니까.
바로 아멜리아의 순수마력에 취해서 경계가 흐트러지는 그 순간을.
“···너, 어떻게 안 거냐?”
한쪽 다리를 기력에 붙잡힌 구준명이 굳어진 표정으로 물어왔다.
물론, 나는 거기에 답해 줄 이유가 없었다.
구준명도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고.
기습할 틈을 노리려 눈알을 굴리는 게 빤히 보였으니까.
“아멜리아. 저거 튄다. 잡아 놔.”
검은색 그림자가 꾸물거리며 조용히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마법진에서 힘겹게 일어난 아멜리아가 그림자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쫄 필요 없어, 저거 별 거 아니니까.”
구준명의 마기는 현재 ‘가체’에 묶여있었다. 그림자가 가진 힘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당연히 아멜리아가 그림자를 잡아버리면 일이 수월하겠지만, 그래서야 안된다.
저걸 잡아야 내가 ‘막타’를 치고 경험치를 챙기게 되는 거였으니까.
다만, 그러자면 가체와 본체를 동시에 죽이는 편이 좋았다.
가체만 죽였다간 마기가 본체로 돌아가서 자칫 튀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이내 아멜리아가 붙잡아 놓은 그림자 위로 그람의 비도가 자리를 잡았다.
“이, 이게 무슨······!”
반면 가체는 마기를 가눌 수 없는 상황에 경악했는지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나에게 붙잡힌 녀석은 ‘항마력’으로 인해 마기가 완전히 봉쇄된 상황이었으니까.
푸우욱!
이윽고 내 비도가 녀석의 본체와 가체를 동시에 꿰뚫었다.
[이터니티 아카데미를 마인들의 집단 테러로부터 구하세요!]
▶본관 (0/1)
▶생도동 (1/1)
▶외곽 도주게이트 (1/1)
[서브퀘스트 : 아멜리아의 사망선이 해제됩니다.]
[보상으로 5000SP가 지급됩니다.]
······이어서 경험치에 관한 다수의 알림창이 시야를 가득 메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