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테러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이터니티에서는 그동안 테러의 배후를 밝히려 동분서주했으나, 그에 대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입을 열 마인들이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이터니티 본관 테러 사건은 흐지부지 종식되었다.
반면, 테러의 여파는 남아 파손된 학생 광장과 본관의 외벽은 여전히 수리가 한창이었으나, 초인사회에서 이러한 풍경은 흔한 일이었기에 생도들은 빠르게 일상을 회복해갔다.
그렇게 다가온 3월의 말. 조례시간.
교탁에 선 하진우가 말했다.
“내일부터는 공통수업 이외에 각자 특기에 따른 수업을 듣게 될 거다.”
이터니티에는 공통 수업 외의 특기 수업이란 게 따로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게, 각자가 지닌 무기와, 마법의 계열이 다르고, 그에 따른 전문 분야가 다르다 보니 수업이 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월의 첫 주부터 개강하는 그 특기 수업이 어느덧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선택할 수 있는 특기는 총 3개. 다만 한 번 신청하면 학기 중에 바꾸기 어려우니, 신중을 기해 선택해야 할 거다.”
하진우의 말에 생도들의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기서 정하게 되는 특기는 앞으로 바꾸기 어려웠으니까.
검이라고 다 같은 검이 아니고, 마법이라고 다 같은 마법이 아니다.
어느 계열을 정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지니게 되는 ‘특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아직 기프트도 깨닫지 못한 생도들로서는 자신의 적성에 대해 고민해 볼 만도 할 테지.
‘청춘이군.’
생도들의 긍정적인 진로 고민에 하진우가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그거 가지고 알아 먹겠어?”
“······?”
드르륵.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건 금발의 미소녀였다. 하진우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반면 처음 보는 낯선 소녀의 등장에 생도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하진우의 소개 한 방에 날아가 버렸지만.
“노아 맥도웰 님이시다.”
“헙!”
“저 분이·····!”
생도들의 눈에 경악이 들어찼다. 이터니티 아카데미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네임드 마인, '영멸의 밤'을 잠재운 초인이 바로 검의 마녀 노아 맥도웰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니콜라이가 낭패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얼마 전 가문의 정보통을 통해 한 가지 소식을 입수했는데,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마도의 화신인 노아가 이터니티에 출몰했다는 소식이었다.
같은 이터니티 내에 있다고는 하나, 노아가 바깥에 나오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았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리 느닷없이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제대로 다려 놓는 건데, 실수했다.
그렇게 니콜라이가 옷을 다리지 못했다는 낭패감에 젖어있는 사이, 오진혁은 자신의 또래 같은 노아의 외견에 눈치 없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맥도웰님이라면 연세가 꽤 있으시지······ 으엇!”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의자를 넘어 트리며 나뒹굴었지만.
우드득─
느닷없이 그의 책상이 우그러들며 위로 치솟은 것이다.
그 형태의 변형은 오진혁이 쓰러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 상태로 돌아왔지만, 이미 교실에서는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노아는 그 분위기가 보이지도 않는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방긋 웃어 보였다.
“반갑다, 노아 맥도웰이야.”
“······.”
등장한 지 채 10초도 안 되어서 노아의 ‘금기’를 인지한 생도들이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다들 쓸데없는 적성을 고민하는 것 같아서 내가 친절히 알려줄까 해서 왔는데 괜찮지?”
그때, 김하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말해봐.”
“기프트 발현 이전에는 적성 테스트가 의미가 없다고 들었는데, 적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선택한 특기라도, 막상 기프트를 개화하게 되면 그 기프트에 따라 특기를 바꾸게 되는 게 초인이었다.
예를 들어, 검술을 연습했는데 느닷없이 치유 계열의 기프트를 각성해버리면 난감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초인 사회에서는 기프트 각성 전의 적성 테스트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생도들이 특기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그래서였고. 하지만 노아의 말은 전혀 달랐다.
“누가 그래? 확실하게 적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적성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생도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옆에서 이를 듣는 하진우는 조용히 이마를 매만졌고.
“알고 싶어? 알려준다? 불만 없지?”
알려준다는 것치곤 말투가 어째 묘하게 이상했지만 그에 신경 쓰는 생도는 아무도 없었다. 기프트에 맞는 적성만 알 수 있다면야 말투야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그렇게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낸 노아가 입꼬리를 사악하게 올렸다. 그리고.
딱!
그녀의 손가락이 튕겨졌다.
다만, 그 튕김이 일으킨 파장은 격렬하다 못해 처참했다.
“으아악!”
“흐엇!”
“허어억!”
느닷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 공격을 가하는 마수. 기겁한 생도들이 반사적인 반응을 표출했다.
방어 마법을 전개하는 생도, 속성 계열의 공격마법을 쓰는 생도, 피하거나 구르고, 막고, 맞서 찌르는 생도 등.
생도들의 대응은 정말이지, 천차만별이었다.
그 천차만별만큼 교실도 천차만별로 난장판이 나버리기 시작했지만.
하진우가 재차 미간을 문질렀다.
반면,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든 장본인은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 보인 대응이 너희들에게 가장 맞는 적성이다.”
부지불식간에 공격을 가하고 반응을 파악하는 것. 그게 바로 노아 맥도웰 식의 ‘적성 판별법’이었다.
죽음의 순간에 보이는 반응이야말로 진짜 적성이라나 뭐라나······
참으로 무식한 방법이 아닐 수 없으나, 반박할 수도 없는 게 이게 타율이 은근 좋았다.
이 방식으로 인해 적성을 바꾸고 성공한 생도도 더러 있었으니까.
기프트와의 상성은 2차적인 문제고, 몸에 맞는 특기가 최고라는 게 노아의 지론이었다.
한편, 대부분의 생도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마수의 일격에 제대로 된 대응조차 보이지 못했다.
넘어지고, 바닥을 기고, 비명을 지르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노아가 소환한 건 평범한 마수가 아니었으니까.
환영이라곤 하나, 3급 마수를 면전에 소환했는데, 그걸 보고도 제정신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난장판이란 노아의 ‘적성판별법’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애초에 제대로 대응하는 생도를 보기 어려운 판별법이기도 했고······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오히려 마수를 압도하는 생도들 또한 존재했던 것이다.
니콜라이, 은가예, 한세연, 아멜리아, 그 외 조연들······.
“으악!”
포도 음료 캔을 쪽쪽 빨아 마시다 느닷없이 마수와 맞닥뜨린 은가예가 책상 위로 번쩍 뛰어올랐다.
그 아래를 마수의 손이 훑고 지나갔다. 뒤이어 은가예의 검이 위에서 내리치며 마수를 반으로 갈라 놓았다.
“아으, 어제 빨았는데 옷 다 버렸네.”
음료 캔을 교복 상의에 쏟아버린 은가예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다 돌연 식겁하며 옆으로 물러났다.
타앙! 타앙!
마력탄이 그녀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가슴을 쓸어 내린 은가예가 인상을 쓰며 옆을 째려보았다.
“한세연! 말 좀 하고 쏴. 깜짝 놀랐잖아.”
“응, 미안.”
입으로는 미안하다면서 한세연이 다시금 총을 쏘았다. 타앙! 달려들던 마수가 머리에 바람 구멍이 난 채 뒤로 넘어갔다.
마수를 해치운 건 비단 그 둘 뿐만이 아니었다. 니콜라이의 창술은 질풍 같이 마수를 도륙해 버렸고, 아멜리아의 공방일체 조합마법은 문제의 해답을 보듯 깔끔하게 마수를 제압했다.
그렇게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 많은 생도가 마수를 몰아내고 있었으나, 노아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기만 했다.
“······흐음.”
저 정도 재능이야, 노아 맥도웰이 이터니티 아카데미에 자리 잡은 지난 반세기 동안 눈에 채이게 보아왔으니까.
한 반에 이렇게 여럿이나 몰린 건 확실히 처음이었지만······ 아무튼, 신선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노아도 눈여겨보는 생도가 있었다. 애초에 그 생도 하나 때문에 그녀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니까.
바로 천우진.
일격에 마수를 잠재우는 천우진의 깔끔한 검로에는 노아조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검의 축복’을 타고난 천우진은 어떻게 휘두르든 그게 곧 최상의 대응으로 직결되는 사기적인 재능의 소유자였으니까.
하진우 또한 나직이 감탄했다.
“매번 보지만 저 검격은 정말 신기하군요.”
“재능이라는 거지.”
노아는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하곤 만족했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쟤는 뭐지?’
어느 한 생도에게 고개를 돌린 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들이 모두 마수에 대응할 동안, 저 생도 혼자 멀뚱히 자리에 앉아 눈만 깜빡이고 있던 것이다.
그녀가 불러낸 마수가 마법으로 만든 환영이라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곤 하지만, 저런 ‘무반응’은 노아로서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만들어낸 환영은 나름 실체감을 지닌데다 부지불식간의 일격이기에 누구나 반응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저럴 수도 있나?’
노아가 의아해하자 이를 눈치챈 하진우가 이해한다는 듯이 피식 웃어 보였다.
“저 생도는 원래 저렇습니다.”
“···원래 저렇다고?”
“예, 마력 쪽으로 탁월한 감각을 타고난 녀석입니다. 환영이란 걸 구분하고 반응하지 않은 걸 겁니다.”
“······.”
노아가 놀랍단 눈으로 유일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생도, ‘이해솔’을 바라보았다.
하진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건 저것대로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진우의 추측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틀린 것이었다.
나는 환영을 구분할 만한 탁월한 감각도, 그렇다고 반응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겁나 빠르네.’
그냥 너무 빨라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을 뿐.
이럴 때를 대비해 <신체 가속>이란 기프트를 익혀놓은 것이긴 했으나 애초에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노아 맥도웰을 본 순간 지금이 무슨 장면인지 알아차렸으니까.
마인의 테러 현장에 나왔다가 우연치 않게 ‘천우진’을 보게 된 노아 맥도웰이 자신이 본 천우진의 재능이 진짜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다른 생도들의 수준 체크는 덤이었고.
그리고 그 수준 체크에 사용되는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마수의 환영을 통한 기습이었다.
그러니까, ‘환영’이기에 애써서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신체 가속이란 거, 한 번 쓸 때마다 몸에 부담이 엄청 가는 기술이었으니까.
물론, 신체 가속은 하지 않더라도 피하려는 시늉은 해보려 했는데······
“와, 심장이 강철이냐? 그걸 가만히 앉아서 맞아버리네.”
“······.”
은가예의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에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내 참담한 반사신경에 내가 더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아무튼, 이 다음으로 이어질 수순은, 천우진의 재능을 확인한 노아 맥도웰이 천우진을 데리고 나가버리는 장면이다.
“거기 너.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바로 지금처럼.
노아의 손에 이끌려 나가는 천우진.
천우진의 특기 수업 에피소드의 시작이었다.
다른 생도들과 달리 아카데미의 네임드인 노아에게 1:1 지도를 받는 것이야 말로 천우진이 가진 주인공으로서의 특전(?)이었으니까. 정말 하나도 부럽지 않았지만······
되려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가는 천우진이 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저 앞에 끝도 없는 ‘수련 지옥’이 펼쳐지리란 사실을 녀석은 꿈에도 모를 테니까.
‘고생 좀 해라.’
너가 강해져야 나도 좀 편하지.
그렇게 노아와 천우진이 사라진 교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만 같이 난장판이 되어버린 교실의 풍경에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음, 그러면 앞서 말했던 대로 특기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겠다.”
하진우의 어색한 헛기침이 정적을 깼다.
***
특기 과목은 총 3개로, 의무적인 수강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의 3개가 내가 선택한 수강과목이다.
<마력 탐구 심화>. <마수 사냥>. <대인전>.
마수사냥이나 대인전이야 그렇다 쳐도, 마력도 없는 내가 마력 탐구를 들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툭 까놓고 말해서 ‘특기 과목’이라는 것 자체가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애초에 퀘스트를 통해 능력치를 올리는 이레귤러인 나한테 ‘특기’나 ‘적성’ 따위가 있을 리 없었으니까.
저 세 과목을 뽑은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첫째가 학점을 벌어들이기 위함이요, 둘째는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구실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첫 번째 특기수업. 마력탐구 심화.
이름만 들어봤을 땐, 무슨 이론만 주구장창 공부할 것만 같은 과목이다. 하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생도동 후면으로 넓게 펼쳐진 숲.
각 반에서 마력탐구를 수강한 생도들이 자리했다.
그 앞에 교관으로 나선 건 협회의 마법사, 김주혁이었다.
생도들 사이에서 나를 발견한 김주혁은 잠시 인상을 구겼지만, 이내 표정을 풀곤 오늘의 수업 내용에 대해 늘어놓았다.
“현재 생도동 숲에는 탐지가 어렵게끔 하는 시약이 도포된 마력석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양질의 마력석을 가장 많이 가져오는 생도부터 순위를 매기겠습니다.”
말과 함께 바위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시계의 버튼을 누르는 김주혁. 질문도 안받고 얄짤 없이 바로 시작이었다.
생도들은 행여나 늦을 새랴 부랴부랴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만 나는 가만히 자리에 서서 머리를 긁적였다.
‘마력석 탐지는 못하는데······’
그람과 동화하면 마력의 탐지가 가능하기야 하지만, 그 가동 시간은 정말 짧았으니까.
후유증도 장난 아니었고. 마력석 하나 찾자고 그 고생을 할 순 없었다.
이런 내 고민이 통했던 걸까. 때마침 구세주가 내려왔다.
“안 가요?”
아멜리아였다.
일명, 인간 마력 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