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34화 (35/226)

§ 34화

“어, 음. 그러니까······ 이십, 이십 사개?”

김주혁은 최대한 담담함을 가장했으나, 결과지를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이건 더 이상 ‘학점방어 실패’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그가 생도동의 숲에 뿌려놓은 마력석의 개수는 총 60개.

정확히는 상급 마력석 5개, 중급 10개, 하급 45개다.

김주혁의 예상대로라면, 아무리 뛰어난 생도라도 최대 3개 이상의 마력석을 찾기가 어려워야 정상이었다.

탐지하는 것도 탐지하는 것이지만, 알아보기 어렵게끔 심혈을 기울여 숨겨 놓았으니까.

심지어 그중 상급 마력석은 아예 찾지도 못하게끔 탐지방해 시약을 듬뿍 도포시키고 위치도 바위 사이나, 땅속, 절벽 아래등 교묘하게 감춰두었다.

김주혁 본인조차 위치를 모르고 찾으려면 애를 먹어야 하는 초 하드코어 고난이도 문제인 것이다.

찾으라고 내는 문제를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이유야 당연했다.

저건 애초에 찾으라고 배치해놓은 게 아니었으니까!

인형뽑기 기계에 지포라이터를 집어 넣어놓는 상점 주인의 마음가짐이었다.

상점주인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지포라이터를 진짜 뽑으라고 집어넣어 놓을 리 없지 않은가?

난 이런 것도 가지고 있다면서 어그로는 끌고 싶지만 막상 줄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지포라이터에 무지개찰흙도 같이 붙여 놓는 거다.

그거 다 뽑혔다간 그날부로 장사 접어야 하니까. 수업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명성을 날리려면 과목이 인기가 있어야 하고, 과목이 인기가 있으려면 생도들을 잔뜩 유치시켜야 한다.

그 생도들을 유치하려면 그에 걸맞는 어그로성 상품이 있어야 하는 거고. 그 상품이 바로 상급 마력석이었다. 수업계의 지포라이터.

그래서 찾아야 될 목록에 상급 마력석이 있다고, 찾으면 그건 너희 거라고 생도들에게 쿨한 척이란 쿨한 척은 다 해 놓은 김주혁이었다. 어차피 기를 쓰고 찾아봐야 절대 못 찾을 테니까.

그런데, 그 기를 써도 찾지 못해야 할 상급마력석이 털려버렸다. 그것도 5개 싹 다.

머릿속이 하얗게 불타고,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지만 이제와서 줄 수 없다며 무르기에는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

“거기다 육십 개 중에 이십 사개나······”

“···그, 48개입니다.”

김주혁의 넋이 나간 중얼거림을 조교수가 조심스럽게 정정해주었다. 마력석을 24개씩 찾아간 생도는 2명이었으니.

“그나저나 10개를 만점으로 해놨는데, 24개나 찾다니, 정말 악질들이군요.”

조교수는 김주혁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기에 혀를 내둘렀다.

만약 그가 마력석을 저렇게 털린다면 김주혁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테니까.

한편, 김주혁은 뒤늦게 찾아온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력석을 24개씩, 그것도 상급 마력석까지 다 터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게 가능하려면 마력석을 숨겨 놓은 범위를 파악할 수 있는 탐색장비와, 그 탐색장비로 파악한 범위를 돌면서 스캔할 수 있는 감정마도구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 아니. 확신이었다.

인간적으로 마력석을 60개씩이나 뿌려놓았는데, 하급 마력석 8개를 제외하고 전부 회수한다고? 그게 말이 돼?

‘말도 안 되지.’

빠져나갈 구멍을 확보한 김주혁의 표정이 평온하게 풀어졌다.

‘부정을 저지른 거였군.’

짐짓 표정을 엄숙하게 굳힌 김주혁이 생도들의 앞으로 나섰다.

“크흠, 이번 수업에 반······”

“교수님.”

“칙······ 예?”

“별다른 마도구 없이 단시간 안에 마력석을 24개씩 모으는 게 가능한가요?”

“······.”

김주혁이 말을 한 생도를 쳐다보았다.

150cm가량의 아담하다 못해 작달 만한 키.

은빛 단발.

가슴에 끌어안은 하얀 곰 인형.

1학년 1반 여생도, 일레인 디아즈였다.

불과 10분 전까지 마력석을 3개씩이나 찾아 표정이 밝았던 생도. 그 눈엔 짙은 의혹이 떠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자기보다 자그마치 8배 씩이나 더 많이 찾은 생도가 무려 둘이나 등장했으니 현실 부정 타임에 들어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저러한 반응은 김주혁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의혹에 긍정 했다간 자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문제를 제출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맞기도 했지만 그게 밝혀지는 것과 스스로 인정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결국 아니라고 잡아 땔 수밖에.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일레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급 마력석 5개를 포함해서 말인가요?”

“예, 가능합니다.”

5서클 찍고 광역 탐지마법 배우고, 어디다 숨겨 놨는지 50m 단위로 범위만 알아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말하고 나니 이게 생도레벨에서 가능한가 싶었지만, 김주혁은 일단 가능하다고 빡빡 우기고 봤다.

여기서 부정이란 걸 인정해버리면 그는 부정조차 걸러내지 못한 무능한 교수로 낙인찍혀 버리는 것이었으니.

소지품 검사 하나 제대로 못해서 탐색 장비와 감정 마도구를 시험에서 대놓고 사용하는 걸 걸러내지 못했다고 소문이라도 나봐라.

이건 진짜 나락 각이다.

“일레인 생도의 의문도 일리가 없는 바는 아니나 열심히 고생해서 마력석을 찾아온 동기생을 부정하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김주혁의 단호한 대응에 일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동기분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이대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넘어가면 저를 포함해 모두가 납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래요.”

수업을 들었던 생도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24개나 되는 마력석을 단시간 안에 찾아냈다는 건 그들의 입장에선 의혹을 가지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그 의혹의 눈초리가 향한 곳은 김주혁이었다. ······왜?

내가 뭘 했다고?

따지려면 당사자한테 따져야지.

갑작스럽게 튄 불똥에 김주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이 이렇게 될까 봐 그저 반칙한 걸 안다는 뉘앙스만 풍기고 뒤에서 마력석만 조용히 돌려받을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마력석을 주고 끝내는 게 더 나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저 그런 생도라면 권위로 찍어누르기라도 하겠는데, 디아즈가라면 그에게 마법 연구비를 대주는 업계의 큰 손이었으니까.

‘하···, 시발.’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 욕이 절로 나왔으나 김주혁은 필사적으로 구겨지려는 표정을 참아내며 말했다.

“그럼 당사자끼리 승부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승부 말인가요?”

“예, 이해솔 생도하고 누가 먼저 마력석을 찾아내나 승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모두 결과에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으나, 김주혁의 의도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알아서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설마 일레인이 마력지배자란 수식어까지 붙은 이해솔하고 내기를 할 리 없었으니까.

아멜리아야, 로마노가의 생도이니 언급하기가 조금 껄끄러웠고. 아무튼 그렇게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좋아요.”

“······예?”

“하겠습니다. 승부.”

“······.”

김주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잘 됐군.’

일레인이 왜 승부를 받아들였는지야, 김주혁이 알 바 아니었다.

이건 이해솔이 이기면 끝나는 문제였으니까.

그도 이해솔이 정말 자력으로 마력석을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일레인 생도의 의견은 저런데 이해솔 생도는 어떻습니까?”

김주혁이 이해솔을 돌아보았다.

***

이건 뭘까.

내가 반칙을 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김주혁에, 뭔가 절박한 듯한 표정의 일레인.

대충 왜 저러는진 알겠다.

‘저주 인형 일레인.’

아멜리아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레인은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생도다.

그것도 상당히 질이 안 좋은 계열로.

생긴 건 키도 작고, 인형처럼 귀엽게 생겼지만 실상 일레인은 저주마법의 대가였으니까.

저기, 일레인이 가슴에 품고 있는 하얀 곰 인형에, 고양이 머리띠, 벙어리 장갑 등등.

저 소지품들부터가 죄다 저주에 관련된 마도구였다.

당장 저 곰인형 하나만 해도 대못 하나 들고 푹푹 찔러대기만 해도 상대의 몸에도 상처가 푹푹 나 버리는 아주 무서운 인형이었던 것이다.

그러려면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 같은 저주 대상의 신체 일부가 필요하긴 했지만.

물론, 그게 없어도 나름 위력 있는 저주를 걸 수 있는 게 바로 일레인이었다.

웬만하면 엮이지 않거나 팀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스토리에 따라서는 주연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조주연.

다만.

‘학점이 아슬아슬했지, 아마?’

일레인은 마력을 다루는 방면으로는 특출났지만 유달리 몸이 병약했다. 그 탓에 몸을 움직여야 하는 모든 과목에서 전부 ‘F’학점을 받아버린 것이다.

특기 수업에서마저 저조한 성적을 보이면 가문 내에서의 입지가 좁아짐은 물론, 학점도 낙제 위기에 놓일 테니, 일레인이 저리 필사적으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터니티에서의 낙제란, 곧 ‘퇴출’을 의미했으니.

그나저나.

“승부를 하라고요?”

“예, 이해솔 생도가 마력석을 먼저 가져오는 것으로 실력을 증명하면······”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뭐하러?

이미 증명 했잖아.

나야 이런 승부를 해봤자 밑져야 본전이었다. 이기면 이긴 거고, 지면 마력석 토해내야 하는.

하물며, 저주인형 일레인하고?

저 필사적인 표정으로 곰인형 쥔 손에 힘 빡 들어가는 거 봐라.

저주를 걸려는 수작질이 빤히 보였다.

‘설마 자리 비웠을 때 내 책상 뒤져서 머리카락이라도 주워 담았나?’

살짝 소름이 돋았으나,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다.

쟤는 남의 체모도 수집하고 다니는 무서운 아이였으니까.

스토킹 당한 의심까지 드는 마당에 저렇게 벼랑까지 몰린 애하고 승부를 하라고?

누구 배때지에 바람 구멍 숭숭 뚫릴 일 있나.

“승부를 할 거면, 저도 얻는 게 있어야죠.”

물론 있어도 안 할 거지만.

“음. 그건 그렇군요.”

그렇게 내 말에 김주혁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내기라, 좋지.”

“······?”

문득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언제 왔는지 니콜라이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얘는 마탐과도 아닌데 저기서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아, 일레인하고 친하지.’

그러고 보니 쟤네 둘 다 같은 러시아 출신이다.

기다려도 마탐과 수업이 안 끝나서 구경이라도 온 모양이다.

근데 왜 당사자도 아닌데 자기가 내기가 좋다는 걸까.

“이기는 사람에게 활력 포션을 쏘지.”

···그쪽이었냐.

본인이 내기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하다 하다 스폰서로까지 전직해버린 니콜라이.

일레인이 낙제할 위기라는 걸 알아서 도움이라도 좀 줘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뭐?

“포션을 쏜다고?”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저게 핵수저인가?

무슨 활력 포션을 길가의 돌멩이 마냥 쏜다는 말에 살짝 어이가 없어졌다.

활력 포션이라면 체력을 증진시켜주는 비약이었으니까. 당연히 그 값이 상당한 물건이었다. 물론 그 상승치가 그다지 높지 않아 눈에 띠는 변화가 없기야 하겠지만 내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저건 이터니티 게임의 비약을 만들기 위한 하위재료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욕심이 나는데 그 다음으로 나온 일레인의 행동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당장 지닌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

품을 뒤지던 일레인이 상의 안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푸른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블랙 마켓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었다. 자그마치, 한화 1000만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마력석 24개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판돈이었지만. 일레인도 그걸 아는지 추가적인 조건을 걸어왔다.

“내가 지면 네가 원하는 걸 언제든 한 가지 들어줄게.”

“그게 판돈이 된다고 생각해?”

“충분히.”

일레인은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즈가는 이터니티에서 저주라면 따라 올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가문이다.

일레인은 장차 그 디아즈가문의 모든 저주 술식을 한 몸에 익히게 되는 인재였고.

확실히 판돈으로는 차고 넘쳤다.

거기다 블랙마켓의 입장권이라면 나도 제법 탐이 났다.

없는 게 없다는, 이터니티의 모든 것들이 모여드는 시장, 블랙마켓. 그 블랙마켓에는 이 끔찍한 몸뚱이를 어느 정도 개선 시킬 방법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돈 준다고 구할 수 있는 입장권도 아니고.’

블랙마켓은 충분한 실적이 쌓인 초인이거나, 이름 있는 가문만이 입장권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일개 아카데미의 생도인 내가 현재 얻을 방도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문제는 내가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느냐인데······

‘그러고 보니 이거, 싸우는 게 아니라 마력석 찾기였지?’

일레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뒤늦게 떠올랐는데,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마력석을 찾는 승부였다. 그렇다면 나도 승산은 충분했다.

이전 시험에서야, 장시간 동안 다량의 마력석을 찾아야 했기에 그람과의 동화를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1대1 승부이니만큼 한정된 구역에서 마력석을 찾게 될 테니까.

어떻게 한정된 구역인지 아냐고?

‘내가 갑인데 규칙은 내가 정해야지.’

싫으면 마는 거고.

아무튼,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람을 보조할 다른 탐지 수단도 마련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일레인인데······’

잠시 상태창을 열어본 내 표정이 애매모호하게 바뀌었다.

<하급 저주 회피>Lv.3

육각사의 정수를 마시며 얻었던 저주 회피가 어느덧 lv.3까지 성장해 있었다.

“······음.”

이거, 이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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