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노아 맥도웰의 제자가 된다는 건 엄청난 혜택이다.
수련을 받아 강해지는 것은 둘째치고, 노아라는 이름값을 등에 업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주변의 이유 없는 호의를 받을 수 있으며, 제자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업적’으로 취급되어 초인협회나 공공기관에서조차 말도 안되는 혜택을 몰아받을 수 있다.
이 혜택이 어느 정도냐면, 초인에 관련된 모든 자격증 시험에서 추가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데다, 은행이나 기타 금융기관에서 아무런 보증이나 담보 없이 돈을 팍팍 끌어다 쓸 수 있다.
심지어 노아의 제자라 그러면 영국에서는 아예 국빈 대접까지 받는 수준이다.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터니티라는 세상이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다.
한반도 윗동네인 북한은 쓸려나가서 마수 천국이 된 지 오래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실시간으로 마수에게 사람들이 뜯겨 나간다는 기사가 월요일 아침 메뉴 읊듯이 흘러나온다.
당장 오늘 나나 노아가 마수에게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이 바로 이터니티인 것이다.
‘죽음’이 이토록 선명한 세상이니만큼 강자가 가지는 입지는 그만큼 절대적이고 부조리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정상급 초인의 제자가 되려고 입에 게거품 물고 달려드는 애들이 한 트럭씩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노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부조리에 탑승해야 나도 잘 먹고 잘살면서 꿀 빠는 게임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말도 안 되는 ‘함정카드’다. 노아라는 인간은 혜택과는 거리가 먼 ‘인자강’의 끝판왕이었으니까.
이 인간은 티끌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비유’에 불과한 속담을 그대로 실천하는 노가다의 장인이었다.
남들이 마도구 얻고 기연 얻어서 꿀 빨 동안 혼자 검 십만 번 휘두르고, 마법 수억 번 써서 경지를 올리는 그런 끔찍한 부류의 인간인 것이다.
노력의 노오력을 넘어서, ‘노동력’을 강조하는 단순, 반복, 막노동계의 네임드. 그게 바로 노아 맥도웰이란 인간의 실체였다.
오죽하면 죽음에서 벗어나 불사지체를 완성했다던 ‘영멸의 밤’이라는 네임드 마인을 ‘죽을 때까지 죽여서’ 죽여버렸다는 이야기는 초인들 사이에서 반세기가 지나서까지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일화였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자기 혼자 개고생하겠다는데, 남이 참견할 일은 전혀 아니긴 하다.
‘문제는 그 막노동을 제자한테도 강제하려 든다는 거지.’
여기서 노아의 수업을 듣는다?
시나리오게임이 단순 반복 막노동 게임으로 장르가 변경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수련만 주구장창 해대다가 어디 마인이 나타났다 하면 출동해서 슥삭 베고 다음 날 다시 수련으로 복귀하는, 그런 끔찍한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소리다.
노아가 아카데미에서 반세기 동안 잠수 탄 것도 다 그 수련이란 이름의 막노동을 하다가 시간 흘러가는 줄 몰라서 그런 거였으니까.
당장 노아의 옆에 서 있는 천우진을 봐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파릇파릇해서 재수가 없기까지 했던 애가 세월을 직격타로 맞았는지 피부가 반쪽이 나버렸다. 누가 보면 어디 병이라도 걸린 줄 알겠네.
저런 폐인 생활을 나더러 하라고?
‘양심이 썩어도 유분수지. 어딜 그런 말도 안 되는 권유를······’
이런 내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노아가 크게 뜬 눈을 끔뻑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 말이 먹혔음에 안도한 나는 잽싸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뜨려 했다.
“천우진 때문이지?”
“예?”
“차석하고 수업을 같이 듣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잖아.”
“아닌데요? 그냥 하기가 싫은 겁니다만.”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실력을 올리겠다는 거구나.”
“예,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제발 가줘.
“일단 알았어.”
“알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중간고사까지 천우진 이놈을 수석으로 만들겠어. 그때 내 제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알아주긴 개뿔.
노아의 이야기를 들은 천우진의 얼굴이 하얗게 떴다.
아니, 쟤도 노가다라면 한 노가다하는 앤데, 쟤가 저렇게 질릴 정도면 뭘 얼마나 굴려댔다는 거야?
‘지금 특기 수업 시작한 지 사일밖에 안 된 거 아니었나?’
혀를 내두른 내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셔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뭐, 생각이야 달라질 수도 있는 거니까. 언제든 찾아오렴.”
노가다의 길은 언제든 열려있다며 아쉬움을 표한 노아가 당장 수련을 시작하려는지 천우진을 끌고 사라진다.
─우진아, 수업하러 가자.
─예? 오늘 수업은 방금 다 끝난 게······
─그런 게 어딨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노을이 져오는 저녁.
도살장의 소처럼 끌려가는 천우진의 모습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힘내라. 천우진.”
내몫까지.
수련은 너같이 시간 널럴하고 재능 넘치는 주인공 패키지잖아. 안 그래?
노가다 열심히 뛰고 팍팍 레벨 업하렴.
시간에 치여 사는 현대인 무능력자 플레이어는 보상이나 빨아먹고 다닐려니까.
***
한편, 일레인은 홀가분한 걸음으로 숲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제, 다 끝이네.”
이터니티에서도, 디아즈에서도.
더 이상, 일레인 디아즈라는 인간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재능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저주받은 것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그녀는 순수한 인간이 아닌, 저주대법을 통해 탄생한 ‘돌연변이’였다.
저주를 탐구하는 디아즈가는 과거, 갓 태어난 아이를 대상으로 ‘저주대법’을 걸어 인체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실험을 비밀리에 진행한 적이 있다.
그 저주대법의 희생양이 된 아이가 바로 일레인이었다.
마도를 추구하는 디아즈가의 욕망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돌연변이.
결과적으로 일레인은 ‘실패작’이었다.
마력에 대한 친화력이 높긴 하나, 대법을 한만큼의 기대치에는 못 미쳤고, 신체적인 결함마저 지니고 태어났다.
디아즈가의 사람들에게 있어 일레인의 존재는 ‘돌연변이’이자 가문의 ‘치부’였다.
암만 마력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곤 하나, 저주대법으로 인해 탄생한 돌연변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이다.
그렇기에 일레인은 아카데미에서 퇴출을 당하더라도 가문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쓸모를 내보이지 못한 ‘돌연변이’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그래도 초인사회에서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은 찾아보면 많을 터였다.
“···후우.”
다 끝났다고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가벼운 걸음으로 숲을 빠져나온 일레인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생도들은 그녀가 빠져나왔음에도 누구 하나 이를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이해솔의 상식을 벗어난 활약에 대한 논쟁으로 불타고 있었다.
하기야, 일레인 또한 이해솔이 어떻게 저주마법을 파훼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
“고생했다.”
니콜라이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카데미를 나오면 협회로 와라. 너라면 아버지가 얼마든지 자리를 마련해 줄 거다.”
“응, 고마워.”
작게 웃어 보인 일레인이 이해솔을 찾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해솔을 발견하곤 다가갔다.
승부에서 졌으니 블랙마켓의 입장권인 블루마블을 건네줘야 했으니까. 그리고 사과 또한 해야 했으므로.
짐짓 의연함을 가장한 일레인이 사과를 하기 위해 다가가다 우뚝 멈춰 섰다.
이해솔은 어딘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마까지 짚고 있는 게, 어지러움을 겪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거 설마······
뒤늦은 깨달음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저주마법에 당하고도 내색하지 않고 움직인 거였다고?’
그게 아니라면 이해솔이 지금 보이는 반응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니콜라이의 활력포션에, 일레인의 블루마블, 거기다 김주혁의 상급 마력석까지.
승리 보상을 거하게 챙긴 이해솔이 기뻐하면 기뻐했지, 어지러워하고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그제야 모든 정황이 이해가 갔다.
그녀가 보았던 대로 이해솔은 저주마법을 막지 않고 모두 받아들였고, 승부가 끝난 지금에서야 고통을 참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이해솔에게 사용한 저주마법은 자그마치 13가지. 그걸 맨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다니······ 일레인이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
······얘는 또 왜 이래?
노아의 문제로 이마를 매만지고 있자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일레인.
의아해서 쳐다보자 일레인이 느닷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의심해서.”
그러더니, 갑자기 고해성사를 시작한다.
“다른 과목들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어. 나한텐 이번 과목이 마지막 희망이었거든. 그런데, 해솔이 너와 아멜리아가 내 예상보다 너무 많은 마력석을 가지고 나와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이전에도 네가 김주혁교수한테 마법시약을 받았던 게 기억이 나서······ 오해하고 충동적으로 실수를 해버렸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김주혁 교수가 나한테만 너무 잘 퍼줘서 의심했다고?”
“응.”
“······.”
또 김주혁이 문제였냐.
하기야, 룬어 하나 맞췄다고 마법시약을 주는 미친 교수를 일레인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았겠지.
거기다 마력석을 찾아오면 그대로 준다하자마자 내가 싹 다 긁어모아 왔으니, 성적으로 마음을 졸이다 충동적으로 나섰단 말이다.
“여기, 블루마블이야.”
일레인이 뭔가 자본주의 게임을 연상케 하는 이름의 푸른 구슬을 내게 건네주었다.
블루마블.
세계 최고의 암시장. 블랙마켓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이었다.
“고맙다.”
“고맙긴, 뭘, 지면 주기로 한 물건인 걸?”
이미 퇴교가 확정되었다 판단했는지 일레인은 모든 것에 달관한 태도였다.
“일레인. 김주혁교수한테 가봐라.”
“김주혁교수님한테? 무슨 일인데?”
“가보면 알 거야.”
깜짝 추가 점수가 기다리고 있거든.
솔직히, 일레인은 여기서 퇴장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캐릭터였다.
‘저주계열특화’가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조주연씩이나 되는 재능러를 내 손으로 퇴교시키는 건 여러모로 심각한 인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하다못해 기회는 줘야지.’
물론, 일개 생도에 불과한 내가 일레인에게 어찌 기회를 주겠냐마는, 김주혁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교수쯤 되는 사람이라면 알게 모르게 생도한테 추가 점수를 줄 방법도 널려있는 데다가, 학교에 탄원서라거나, 추천장이라던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대충 입을 털어봤는데 역시나 김주혁은 떡밥을 바로 물어버렸다.
[퇴교당할 위기의 생도한테 은혜를 입혀두면 얼마나 좋습니까? 심지어 디아즈가의 생도인데요. 나중에 도움받을 수도 있을 걸요?]
[으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이런 식으로.
명문가 출신인데다, 저주마법으로 대성할 기미가 보이는 생도한테 은혜를 입혀둔다? 이건 김주혁도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거든.
나야, 손 안 대고 코 풀기고.
방식이야 어떻게 되든 김주혁의 도움은 받을 수 있을 거다.
요령이라곤 조금도 피울 줄 모르는 일레인은 이런 방식으로 퇴교를 면하리라곤 상상도 못 할 테지만.
아무튼.
“달달하네.”
니콜라이가 주고 간 활력포션에, 블루마블. 거기다 상급 마력석까지.
소세지처럼 줄줄이 딸려오는 보상 목록에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노아의 제자?
그건 그냥 미친 거다.
블루마블을 품에 갈무리하며 나는 이걸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떠올렸다.
‘연금제약주 한세울.’
지금쯤 블랙마켓 구석지에서 물약 장사나 하고 있을 그 미래의 연금제약주를 낚아채 올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