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39화 (40/226)

§ 39화 블랙마켓(1)

블랙마켓(Black Market).

그곳은, 이터니티의 모든 것이 모여드는 장소다.

돈세탁을 위해 암암리에 매매되는 불법적인 물건부터,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마도구.

심지어는 한 번 떴다하면 유혈사태까지 불러일으키는 ‘보구’까지.

블랙마켓에 없다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의 거대한 시장. 그게 바로 블랙마켓이었다.

“하지만, 이 블랙마켓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게 큰 시장인데?”

“응, 오직 마켓에서 인정하는 입장권을 통해서만 ‘워프’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방과 후, 아카데미의 카페.

내 맞은편에 앉은 은가예가 카라멜 마키아또를 쭉 빨아 마시며 말을 이었다.

“나라에서 그걸 가만히 두고?”

“가만히 안 두면 어쩔 거야.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은가예가 고개를 저었다.

“블랙마켓을 찾으려는 시도는 많았는데, 그중 마켓을 찾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나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블랙마켓과 이 세계의 블랙마켓이 온전히 일치하리란 보장이 없기에 확인차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큰 시장을 잘도 숨겼네.”

“추측하기로는 아공간 기프트를 가진 마법사가 만든 이세계라고 하는데, 확실한 거야 아무도 모르지.”

특정 국가나 단체에 속하지 않고, 대놓고 암시장까지 형성되지만 위치를 알 길이 없으니 이를 제재조차 할 수 없는 초법적인 시장이 바로 블랙마켓이었다.

“사실 말만 불법이지, 공무원들도 얼굴 까고 드나드는 시장이야.”

은가예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게임에서의 블랙마켓과 다른 점은 없는 듯했다. 그나저나.

“되게 잘 알고 있네.”

“나야 각성제 사러 가끔 들리니까.”

각성제.

달리 말하면 육체각성 비약.

이 육체각성 비약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면, 운동효과가 말도 못하게 올라간다.

초인버전의 스테로이드같은 건데, 부작용이 없어서 초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만큼 종류도 많고, 효능도 천차만별이라, 진짜 비싼 것은 경매장에서나 볼 수 있단다.

물론, 나야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은 게임에서 존재하던 것들에 비하면 그 효능이란 게 현저히 낮았으니까.

예를 들면, 내가 열화판을 만들려는 붉은 단약의 상승 효과가 ‘+5’인데 반해, 이 세계의 단발성 비약의 상승효과는 끽 해봐야 1 ~ 2가 올라가는 수준이었다.

뭐, 여기도 이터니티 게임에서의 물건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찾아보면 정말 제대로 된 것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주인이 있거나, 굉장히 희귀하고 드물어서 찾기도 어려웠다.

아무튼, 은가예가 나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이유도 다 이 각성제 때문이었다.

경매장에 나오는 각성제를 사고 싶은데, 이번에 열리는 블랙마켓의 경매장 입장 조건이 ‘2인 이상 참가’ ‘룬어 가능’이란다.

참가 조건에 룬어가 포함되는 이유는 주최측이 ‘마법사 협회’라서 그렇다고······

‘마법사 협회’가 주최하는 경매에서는 가끔 이런 어이없는 조건이 걸린다고 한다.

아무튼.

“경매장 룬어가 어느 정도 수준이길래?”

“중급 문장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입장 가능하대.”

저 정도면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제대로 따라갔어야 간신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룬어 울렁증’이 있는 은가예에게는 당연히 무리였고.

입장하는 사람 중 한 사람만 읽을 줄 알면 상관이야 없다곤 하지만······

“집에서 같이 가 줄 사람 없냐?”

“나 경매장 가는 거 알면 아빠한테 맞아 죽어.”

은가예의 아버지라면 은가의 가주다.

친아버지는 따로 있는데, 어릴 적에 가주에게 맡겨졌으니까.

그리고, 은가주는 내츄럴을 지향하는 ‘순수 무인’이었다.

각성제 하나 안 먹는 초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선 확실히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그럼 그냥 다른 데서 사는 게 맞지 않아?”

“안 돼, 저런 데서 한정판이 나온단 말이야. 좀 도와주라.”

“싫어. 귀찮아.”

“각성제 사면 나눠줄게. 응? 마켓 비용도 내가 다 댈게.”

이건 좀 솔깃했다.

블랙마켓 자체가 관광명소라서 입장료부터 시설이용료까지 어딜 가든 전부 돈이었던 것이다. 그걸 대준다면야, 룬어 정도는 읽어 줄 수 있다.

“몇 층에서 하는 건데?”

“4층, 위저드 홀.”

“딱이네.”

“응, 블루마블이면 들어갈 수 있어.”

블랙마켓은 세계인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나름의 규율이 있다.

초인랭킹이나 사회적 지위, 실력 등을 고려해서 1층부터 6층까지 공간을 구분지어 놓은 것이다.

각 명칭은 아래와 같다.

1층 다운

2층 로어

3층 노멀

4층 어퍼

5층 노블레스

6층 바빌론

참고로 내가 지닌 블루마블은 디아즈가의 것이기에 5층까지 입장이 가능했다.

6층은 철저하게 초인랭킹 1000위권 안에 들어야지만 입장이 가능하고.

물론 이 1층부터 6층까지란 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표현일 뿐, 블랙마켓이 건물형식이라는 뜻은 아니다.

각 구역을 워프로 이동하는데, 블랙마켓에서는 이를 편의상 ‘층’이라 불렀다.

블랙마켓은 말이 마켓이지, 단순히 거래만이 전부인 곳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나를 훑어본 은가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웬 저승사자 패션?”

“그럴싸하지?”

“···뭐, 간지나긴 하네.”

은가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오늘의 나는 제법 차려입고 나왔다.

일전에 아멜리아에게 받았던 3억원 어치의 ‘무장’을 입고 나온 것이다.

한세울을 낚으러 가는데 후줄근하게 입고 갈 수야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은가예의 저승사자같다는 평처럼, 올블랙의 코트차림이었다.

4월 초에 이렇게 입으면 안 덥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초인의 ‘무장’이란, 온도조절이 기본이기에 나는 더위를 느끼지 않고 있었다.

“마켓에는 뭐 하려고 가는데?”

“입장권 얻은 김에 구경이나 좀 해보려고.”

“그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1층은 가지 마.”

“왜?”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1층이라면 한세울의 가게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거긴 마켓에서 관리를 안 하거든.”

“마켓에서?”

“응, 마켓 측에서 관리하는 건 2층부터야. 1층은 신경도 안 써.”

“어느 정도길래?”

“으, 말도 마.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서 치안이 완전 개판이야.”

1층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은가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마 2층은 좀 나은데, 1층은 마켓이라고 보기 어려워. 강매하고 사기치는 인간들도 많고. 아무튼 1층은 안 가는 게 나아.”

“······음.”

이건, 좀 처음 듣는 이야기다.

게임에서의 블랙마켓에서는 이런 세부 설정까지는 없었으니까.

하기야, 층을 구분 지어 놓았으니 낮은 층일수록 치안이 안 좋을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나는 치안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딱히 상관이야 없겠지.’

일전의 북한산에서 봐서 알 수 있듯이 이 세계의 초인들은 대부분이 아카데미 생도들보다 약했다.

전 세계의 엘리트를 추리고 추려 모아놓은 곳이 이터니티 아카데미였으니까.

대략 아카데미 생도들의 무력을 층수로 구분 지어 보자면, 3층에서 높게는 4층까지라고 할 수 있었다.

1층이라면 단순히 마물을 사냥하는 일반적인 초인. 그냥 돈을 주고 입장권을 사서 들어오는 이들이었다.

호기심에 들어오는 뉴비들도 많을 테니, 그런 이들을 등쳐먹으려는 자들도 판을 칠 게 뻔했고.

관광명소라는 게 으레 다 그런 법이니까.

은가예도 내가 위험할까 봐서 해주는 충고라기보단, 갔다가 귀찮은 일을 겪을까 봐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강했다.

그때 음료를 다 마신 은가예가 느닷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가서 보자.”

“어, 그래.”

은가예가 자신의 블루마블을 들어 올렸다. 이어서 푸른 빛이 일어나 은가예를 감싸 안았다.

빛이 사라졌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은가예는 사라지고 없었다.

블랙마켓으로 이동한 것이다.

블루마블 자체가 블랙마켓으로 통하는 ‘워프석’이자 입구였으니까.

블루마블만 있다면 전세계 어디서건, 블랙마켓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마력이 없는 나야, 블루마블에 나를 인식시키려면 그람과 동화를 해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었지만.

“가볼까.”

카페의 자리에 앉은 채로 그람과 동화한 나는 블루마블에 마력을 주입하며 말했다.

“4층.”

화아악!

찰나, 블루마블이 푸른 빛을 뿜으며 나를 집어삼켰다.

***

워프 직후 나타난 곳은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는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인종을 불문한 다수의 초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누구도 내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곳이 바로 블랙마켓 4층, 어퍼.

어퍼 타운의 정경은 마치, 유럽의 중세도시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신기하지?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 그래.”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은가예가 말해주었다.

“마켓이라기 보단 도시같네.”

“응, 말이 마켓이지, 여기도 층마다 다 동네거든.”

나는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게임의 화면 너머로 보았던 풍경과 직접적으로 보는 것은 그만큼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워프 한번 했을 뿐인데, 유럽으로 넘어온 기분이다.

“아무튼, 경매장은 7시부터 입장 가능하니까, 그때까지만 저기 위저드 홀로 오면 돼. 모르겠으면 문자 하고.”

“어, 그래. 이따 보자.”

시계탑 옆에 자리한 거대한 건물을 가리킨 은가예는 용무가 있는지 손을 흔들곤 광장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스마트폰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1시. 경매장에 가야 하는 7시까지는 6시간이 남아 있었다.

“널럴하네.”

이윽고 나는 왔을 때처럼 블루마블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1층.”

시야가 파랗게 물들며, 현대풍의 낡은 건물들이 나타났다.

블랙마켓의 1층, 다운타운이었다.

“그럼, 찾아볼까.”

나는 게임에서의 위치를 더듬어 걸음을 옮겼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한세울을 찾아볼 차례였다.

***

블랙마켓 1층 다운타운 북부에 위치한 연금제약, ‘한울’.

“후우, 이번에도 실패군.”

비약을 제조하던 한세울이 비커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커 안에는 젤리 형태로 뭉친 붉은 비약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고체형태의 비약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년간 번번이 실패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현대의 비약술은 액체인 ‘포션’단계에 머물러 있지, 이를 고체화시키는 수준까지는 올라와 있지 못했던 것이다.

비약의 마력은 한데 뭉치면 터지거나 날아가 버리는 성질을 지녔으니까.

이를 감안하자면 비약을 젤리형태까지 만든 한세울의 실력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는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10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약의 고체화는 요원하기만 했으니까.

“어쩌면, 고체화는 불가능한지도 모르겠어.”

고개를 내저은 한세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에서인지 아까부터 카운터가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버자드놈들, 또 왔나.”

한세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블랙마켓 1층을 좀먹으며, 자릿세를 받아먹는 길드, 버자드. 그놈들이 작년부터 그의 공방을 넘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놈들이 행패를 부리러 왔나 싶어 카운터로 나간 한세울은 일단 버자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곤 안심했다. 그리고 내심 혀를 찼다.

‘이상한 놈이 왔군.’

롱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가 카운터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것이다.

4월의 초, 그것도 해가 쨍쨍한 점심 시간대에 롱코트라니?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에 한세울은 조용히 다시 공방으로 들어가 버리려 했다.

저런 놈들 대응하라고 직원을 쓰는 것이니까. 월급 값은 해야지.

하지만 그가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의 얼굴을 확인한 손님이 다가왔다.

“한세울씨, 맞습니까?”

“···예, 제가 한세울입니다만, 무슨 용무이신지요?”

남자가 품에서 투명한 유리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붉은 단약이었다.

“이걸 보여드리러 왔습니다.”

“이게 무엇인지요.”

“비약입니다.”

“손님, 이건 비약이 아닙니다.”

한세울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왜죠?”

“비약은 고체화가 불가능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비약 중에 고체로 된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음, 없네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게 비약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직접 확인 한 번만 해주시겠습니까?”

끈질긴 남자의 요구에 한세울이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그도 그럴게, ‘단약’이라니?

그건 그가 10년을 메달리고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한세울 그도 이미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다. 비약의 고체화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약이란 마시는 ‘포션’이라는 게 이터니티의 상식이었다.

“글쎄, 이건 비약이······!”

하지만 손님이 단약을 담은 투명한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한세울은 그 상식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상자를 열자마자 순식간에 상점 안을 가득 메우며 퍼지는 농밀한 비약의 향.

그건 그가 지금까지 맡아온 그 어떤 비약의 향과 비교해도 견줄 수 없는, 극상의 향기였다.

‘아니, 맡아본 적이 있다.’

과거, 단 한 번 스치듯 맡아본 향을 한세울은 기억해냈다.

그 비약의 향이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것이었다.

그를 연금술이란 세계에 입문시켜준 게 바로 이 향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한세울은 그를 연금술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그 향과 다시 한 번 조우했다.

“······고대 이터니티의 비약.”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단약을 내려다보는 한세울에게, 이를 가져온 남자가 피식 웃으며 제안했다.

“그거, 한 번 만들어보지 않을래요?”

한세울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꿈만 같은 제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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