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40화 (41/226)

§ 40화

고대 이터니티의 비약.

그것이 언제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것은 이 고대의 비약이 현존하는 그 어떤 비약보다 현저히 뛰어난 효과를 지녔다는 것과 제조법의 전승이 끊어졌기에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다는 것.

현재 전 세계에 남은 고대의 비약은 많아도 10개를 넘기지 못 하리라는 것이 한세울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영국의 왕실이나, 미국의 백악관, 초인협회 등 거대단체의 비중심처에 철통같은 보안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때문에 고대의 비약이라며 세간에 종종 나도는 것들은 열이면 열 전부 가짜이며, 그 진위를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물 자체를 구경할 기회가 없는데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한세울은 눈앞의 이 ‘붉은 단약’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이건······ 이건 진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를 연금술에 빠져들 게 만들었던 영국 왕실의 가보 ‘아담의 과실’이 이와 같은 향기를 풍겼으니까.

아담의 과실의 제조법을 복원하기 위해 영국 왕실이 비밀리에 블랙마켓 최고의 연금술사, 흑색의 마녀를 찾았을 때 조모와 함께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한세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한세울은 알고 있었다.

‘고대의 비약은 모두 단약(丹藥)이다.’

그가 본 고대의 비약은 아담의 과실이 전부였기에 이는 추측에 불과했으나, 한세울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비약은 고체로 뭉쳐질수록 그 약효가 상승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결론적으로 남자가 내민 이 붉은 단약은 고대의 비약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한세울은 이를 만들게 해주겠다는 남자의 발언에 잠깐이지만 흔들렸다.

고대의 비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치명적인 유혹적이었으니까.

그러나 한세울은 이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겠습니다.”

“왜죠?”

“제 실력이 이것을 만들만한 수준이 못 되기에 그렇습니다.”

10년을 매달리고도 비약의 고체화에 실패한 한세울이다.

견본을 얻는다고 해서 그것이 달라지지 않으리란 것은 한세울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되려 제조법을 알아보겠다며 견본을 훼손만 시킬 것이 눈에 선했던 것이다.

한세울은 행여나 하는 마음에 조언했다.

“고대의 비약은 현재의 연금 기술로는 복원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다른 곳에서 제조법을 복원시켜주겠다 하면 그건 무조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제조법이라면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 제조법을 말입니까?”

한세울은 농담인가 싶어 눈을 깜빡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전혀 농담을 하는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이런 걸 가지고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결국 한세울은 경악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사실 나는 단약의 제조법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걸 가지고 있었으면 내가 만들지, 뭐하러 남한테 넘기면서까지 만들어달라 하겠는가?

‘뭐, 내가 만들기는 귀찮으니 남한테 시키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제조법은 안 알려줬겠지.

아무튼, 내가 이리 장담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복제술사 한세울과 조우했습니다!]

[복제 창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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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가능 목록

+ 붉은 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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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비용 : 500SP]

[보유 SP가 충분하여 단약의 복제가 가능합니다. 단, 복제된 단약은 기존의 단약보다 약효가 10~20% 낮아집니다.(낮아지는 수치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복제하시겠습니까?]

‘예.’

······한세울 자체가 곧 제조법이었으니까.

이터니티 유일의 복제술사 한세울.

그게 바로 내가 이터니티의 3대 연금술사 중 다른 둘을 제쳐놓고, 구태여 한세울을 찾아온 이유였다.

“일단,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 나눌까요?”

“···예, 예. 그럽시다.”

나는 마치 내 방이라도 되는 것 마냥 앞장서 사무실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기 무섭게 내 손 위로 한 장의 종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종이 위로 떠오른 알림창 문구.

[붉은 단약 제조법]

─한세울에게 인도 시, 붉은 단약의 복제가 진행됩니다.

‘게임에서는 이런 거 없었는데.’

개연성이란 건가? 재미있네.

피식 웃은 나는 제조법을 넘기기에 앞서 계약에 관한 이야기부터 나누기로 했다.

여기가 게임도 아니고, 구두계약만으로 제조를 맡길 수는 없으니까.

당연히 계약에 관한 조건이야 블랙마켓에 오기 전에 미리 작성해왔다.

이런 건 일일이 입으로 말하면서 작성하다 보면 꼭 빼먹는 조항이 생겨버리니.

‘뭐, 작성하지 않아도 상관이야 없어 보이지만.’

나는 제조법의 위에 떠오른 알림사항 문구를 바라보았다.

─본 제조법은 오직 플레이어 이해솔에게 비약을 제조해줄 시에만 유효합니다.

즉, 타인을 위해 제조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500SP씩이나 지불했는데 이게 남한테 가버리는 건 말도 안 되긴 했다.

“조건은 종이에 적힌 대로입니다.”

“예, 확인했습니다.”

내가 형식적인 계약서를 넘기자 한세울은 이를 대충 읽고는 바로 도장을 찍었다.

계약이고 뭐고, 당장에라도 비약을 제조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에 피식 웃은 내가 제조법을 넘겨주었다.

“여기 제조법입니다.”

“예.”

제조법에 적힌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검은 잉크의 나열이었다.

다만, 이를 본 한세울의 반응은 달랐다.

“이, 이게······!”

마치,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종이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떠는 한세울.

그에게는 저 암구호 같지도 않은 잉크 무더기가 비약의 제조법으로 보이는 듯했다.

[붉은 단약의 복제가 시작됩니다.]

[복제 진행율 0.01%]

[예상 소요시간 : 72 : 00]

‘오우, 3일이면 빠르네.’

적어도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른 복제 시간에 만족한 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에 입을 열었다.

“제조법은 일단 거기 적힌 대로입니다만, 단약도 드려야 할까요?”

“아, 아닙니다. 제조법만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제조법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저어보이는 한세울.

‘가성비 좋네.’

만족스레 웃어 보인 나는 번호를 교환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주 일어난 한세울이 앞장섰다.

“1층 메인홀까지 모시겠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근방은 거리가 흉흉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의 문을 열던 한세울의 몸이 굳어졌다.

“왜 그러세요?”

의아해진 나는 문밖을 바라보곤, 뒤늦게 해결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저것들을 잊고 있었네.”

가게의 안, 흉험한 인상의 사내들이 몰려와 있었다. 어깨에 새긴 산양 마크. 다운 타운의 북부를 장악한 바저드 길드였다. 동시에 상태창 알림이 떠올랐다.

[서브 퀘스트 : 연금제약 ‘한울’을 바저드길드의 위협으로부터 구하세요!]

[보상 : 1000SP]

***

한세울은 미래에 이터니티의 3대 연금술사로 발돋움하는 만큼, 현재에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에 반해 한세울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연금술사다.

이유야, 별거 없다.

연구를 핑계로 공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를 않으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한세울이 이상한 건 아니다.

연금술사 10명 중에 8명은 방구석 폐인이라는 게 이터니티의 통계 결과였으니.

심지어 가게에서 파는 비약이라고 해봐야 공산품이 전부였고.

다만, 그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눈치챈 곳은 있었다. 바로 다운 타운 1층 북부를 장악한 바저드 길드.

바저드길드에서는 한세울을 어떻게든 부려먹고자 했고, 한세울은 비약의 연구를 핑계로 이를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이어진 게 바로 지금과 같은 압박이다.

비약을 사다가 이거 잘못됐다고 컴플레인을 걸거나, 자릿세를 받는다든가, 가게 팔라던가······

이런 치사하고 뻔한 방해들.

“해솔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들어가 계시겠습니까? 저를 만나러 온 이들이니, 제가 이야기를 해서 돌려보내겠습니다.”

“아니요, 마침 잘됐네요. 후딱 끝내죠.”

“예?”

나는 의아해하는 한세울을 지나쳐 방을 나왔다.

“크아~ 맛 죽이네. 응? 넌 뭐냐.”

가게에 진열된 포션 하나를 제멋대로 들이킨 남자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놈을 본체만체 지나쳤다.

“야! 새끼야!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을······컥?!”

내 기력이 놈의 턱을 후려쳤다. 고개가 돌아가며 옆으로 쓰러지는 남자.

“···뭐, 뭐야?!”

“이 새끼가!”

놀란 바저드 길드원들이 달려들었다. 앞과 양옆. 총 세 명.

휘이익!

놈들이 채 공격을 하기도 전에, 세 갈래로 나뉜 기력이 채찍처럼 휘둘리는 게 먼저였다.

이내 몸의 일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며 쓰러지는 길드원들.

“이, 이게 뭐가 어떻게 된······”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에 한세울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당황했다.

포션을 마시다 혼자 턱이 돌아가며 쓰러지고, 달려들다 픽픽 쓰러지는 바저드 길드원들. 마치, 유령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세울씨, 얘네 길드 어디 있는지 알죠?”

“예? 예, 알고는 있습니다.”

“그럼 가죠.”

“······예?”

“시작했으면 깔끔하게 끝내야죠.”

어차피, 정리해야 하는 거. 시간 끌 거 없이 빨리 끝내야지.

나는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4시.

경매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1층 길드 하나 박살 내는 데는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

한세울을 따라 간 곳은 다운타운 북부에 위치한 고급주택이었다.

“여기가 바저드 길드의 본거지입니다.”

재벌가같은 3층 고급주택의 위용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돈이 엄청 많나 보네요.”

“예, 1층에서 고혈을 빠는 놈들이니까요.”

이내 건물로 통하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잡담을 나누던 사내 셋이 우리들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너희들은?”

반응들이 가히 좋지가 않았다.

하기야, 4월에 시꺼먼 코트를 차려입은 놈과, 햇빛도 못 본 폐인처럼 생긴 창백한 남성의 등장이었으니 당연한 건가?

퍼억! 퍼억!

골목에 기대있던 사내 둘의 머리를 기력으로 후려쳐 쓰러트리자, 홀로 남은 사내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뭐, 뭐하는 놈···분이십니까?”

“너네 길드장 만나러 왔는데.”

***

블랙마켓 1층의 3할을 장악한 바저드 길드의 본거지, 길드장실.

의자에 기대 사과를 씹어먹던 길드장 하재명은 직원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한세울이 날 보러왔다고?”

“정확히는 한세울이 아니라, 그가 데려온 놈입니다.”

“그게 누군데?”

“···한세울의 공방에 보낸 저희 애들을 박살낸 놈입니다.”

“그래, 들여보내.”

“예?”

“못 알아들었어? 다져서 끌고 오라고. 뭐 하는 놈인지 마켓에 열람도 해보고.”

“예.”

직원이 나가자 하재명이 의자에 누워 혀를 찼다.

“하, 1층 새끼들이 정신머리를 놨나. 날 뭘로 보고.”

하재명, 그는 마켓의 3층까지 출입이 가능한 실적을 쌓은 초인이었다.

한때는 마수사냥에까지 동원되었던 인재였으나, 현재는 블랙마켓의 1층에 눌러앉아 있었다.

고작 1층의 연금술사 나부랭이가 만나자고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물론, 한세울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야 짐작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제법 연금술이 뛰어나 보였기에, 하재명이 그의 공방을 압박했으니까. 궁지에 몰린 쥐가 이빨을 내보인 거란 말이다.

“건방지긴.”

고개를 내저으며, 하재명이 창가를 내다보았다. 골목에는 그를 만나러 왔다는 웬 시꺼먼 놈이 길드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무슨 한 새끼 상대하는데 열댓 명씩이나 나가 있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다져서 끌고 오라는 그의 명령에 길드원들이 ‘마탄’ 서너 발을 놈의 머리 위로 던졌으니까. 마탄은 마력을 뭉쳐놓은 구슬로 제대로 맞으면 골로 간다.

저건 소형이라 죽지야 않겠지만, 사람 하나 다져놓기에는 충분했다.

퍼엉─!

마탄이 터지는 것까지 확인한 하재명은 창가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좀 전에 나갔던 직원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뭐 하는 놈인지 알아봤어?”

그런데, 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하재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직원이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열람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마켓에서 열람이 안된다니?”

“열람 불가등급입니다. 최, 최소 5층인 거 같습니다.”

“······뭐!?”

하재명이 창가로 고개를 홱 돌렸다.

“······!”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탄이 걷힌 자리, 멀쩡한 모습의 놈이 서 있었다.

뒤이어 픽픽 쓰러져나가는 길드원들.

“노······블레스라고?”

하재명의 떨리는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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