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경매가 끝나고 나오는 길. 내 품에는 검은 상자, ‘로드릭의 수수께끼 박스’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은가예가 혀를 찼다.
“그거 아무것도 없다니까 대체 왜 산 거야?”
“그냥. 이런 거 보면 한번 열어보고 싶잖아. 능력을 얻을지도 모르고.”
“에휴, 아무것도 없다니까. 물 떠 놓고 빌어봐라, 뭐가 나오나.”
은가예의 평소보다 꿍한 반응에 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너, 설마 이거 샀었냐?”
“······.”
······얘가 호구였네.
시선을 피하는 은가예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을 떠 놓고 두근거리며 상자를 개봉해보는 은가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 궁금하면 사 볼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에 재차 웃자 은가예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튼, 그거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괜히 기대하지 마라.”
“그러니까 더 기대되네.”
뭐가 나올지 당장이라도 열어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건 방 가서 열어보는 게 국룰이지. 그나저나.
“너 그거 진짜 먹을 거냐?”
나는 은가예의 품에 들린 투명한 통 안의 내용물을 보며 기가 질려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은가예가 ‘각성제’라고 빡빡 우기는 것은 ‘마력석’이었다.
뭐, 마법사협회에서 먹을 수 있게끔 ‘식용’으로 정제했다곤 하는데, 마력석이란 이미지 자체가 원체 식용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돌을 씹어먹는 걸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극소수의 마니아계층만이 사 먹는 각성제가 바로 식용 마력석이었던 것이다.
왜 굳이 마법사 협회 경매장을 고집하나 했더니, 다 이러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식용 마력석은 마법사 협회가 아니면 어디서도 못 구하는 물건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냥은 안 먹지. 갈아서 음식에 뿌려 먹는 거야.”
“···어, 그래.”
솔직히 모르겠다.
저게 무슨 금가루냐. 갈아서 뿌려 먹게.
천우진 먹는 것 가지고 뭐라 하더니, 이쪽도 만만치가 않았다. 마력만 는다 하면 철이라도 씹어먹을 기세다. 내심 고개를 젓자니, 빈속이 꼬르륵 울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근데 여기 한식은 있냐?”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중세유럽의 성 같은 건물에 빼곡히 박힌 정감 가는 한국어 간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안 끼는 대가 없네.’
무슨 유럽 성에다가 한국어 간판이냐. 어이가 없지만, 또 전혀 위화감이 안 드는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은가예가 말했다.
“한우 콜?”
“사주는 거면 가고.”
“그럼 가자, 여기 꽤 잘하는 데 있거든.”
나는 은가예가 이끄는 대로 뒤따랐다.
***
은가예한테 고기를 얻어먹고 기숙사로 돌아오자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서 있었다.
‘통금 아슬아슬했네.’
5분만 늦었어도 밖에서 자고 들어와야 할 뻔했다. 이터니티는 밤 11시 이후로는 문을 잠가버리니까.
“······어우, 죽겠다.”
마켓의 1층에서 한바탕 날뛴데다, 배 터지게 한우를 먹은 탓에 식곤증까지 겹치자 바로 침대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특히, 워프를 한다고 그람을 이용한 후유증이 너무 컸다.
애초에 마력이 없는 나는 워프에 인식이 되지 않는 육체인데, 그걸 그람으로 억지로 인식시켰으니······
체력 ‘4’짜리 이해솔의 몸이 견디기에는 육체에 가해지는 부하가 너무 심했다.
뭐, 한세울이 단약을 열심히 제조 중일 테니,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일단 씻을까.”
시체 같은 걸음으로 샤워실로 직행해서 씻고 나오니, 그나마 졸음이 달아났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어보았다.
그새, 은가예에게서 문자가 3통이나 와있었다. 낮에 씹었던 8통은 덤이고.
어디냐, 빨리 와라, 죽을래 등 협박성 문자를 본체만체 무시하곤 쭉 내렸다.
[오늘 룬어 봐줘서 고마웠다. (토끼가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이모티콘)]
[그리고 빨리 좀 다녀라. 안 오는 줄 알고 하마터면 그냥 갈 뻔했잖아.]
[아 ㅋㅋ 그리고 호구상자 그거 열면 후기 좀 부탁함.]
“어, 좆까.”
탁자 위에 올려놓은 ‘로드릭의 수수께끼 박스’를 봤다.
“좋은 거 나와야 하는데.”
수수께끼 박스는 플레이어 1회 한정 박스다. 한 번 나오면 그걸로 끝이다.
다만, 박스에서 나오는 아이템에 상한이 없기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이 나올 수도 있는 반면, 아예 줘도 안 가질 폐급 능력이 뜰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수수께끼박스는 ‘로또 박스’라고도 불렸다.
다만 좋은 게 나올 확률 또한 ‘로또’였기에 딱히 기대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능력의 등급을 따지자면 D ~ B급의 능력만 나오지, 그 이상의 능력이 나오려면 말 그대로 로또를 맞아야 했다.
참고로, 내가 게임에서 수수께끼 박스를 긁어서 나온 능력은 체력 +2였다.
그때는 이걸 어따 갖다 쓰냐고, 정말 쓰레기가 떴다고 투덜거렸지만······
“제발 체력 2만 떠라.”
그것만 떠줘도 정말 감사하게 받아 쓸 자신이 있었다.
체력+2라면, 무려 내가 보유한 체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무시한 양이었으니까.
이거, 은가예 말대로 물 떠 놓고 빌기라도 해야 되나?
“음.”
쓸데없는 상념을 접은 나는 상자를 곧장 열어젖혔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응?”
마치 동전이 굴러가듯,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코인소리. 수수께끼박스에서 이런 효과음이 났던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나 긴 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도 게임과의 차이점이란 건가?’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던 코인 소리가 끝나고.
[축하합니다! 한정 기프트 【어느 필멸자의 고민】을 획득하셨습니다.]
기프트 : 【어느 필멸자의 고민】
─ 죽음을 피하고 싶었던 어느 필멸자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신수와 하나가 되면 죽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기프트라고? 진짜?”
놀란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 찰나, 온 몸이 불에 타는 듯한 착각이 엄습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타오르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내 몸을 잡아먹으며 타오르는 푸른 불길. 방안이 삽시간에 불길에 휘감겼다.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녹아내릴 것만 같은, 웅장한 불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뜨겁지는 않았다.
불길에 닿은 교복, 탁자, 침대 그 어느 것에도 불길은 번지지 않았다.
─까아악!
순간, 새의 울부짖음이 귓전을 울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내 눈이 커졌다.
“······새?”
타오르는 내 어깨 위.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서서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루비수정같은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떠오르는 알림창.
띠링!
[영멸의 새. 불사조와 조우했습니다.]
[신수, 불사조가 플레이어 이해솔에게 깃듭니다.]
[다만, 불사조는 현재 잠들어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불사조를 깨우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먹이가 필요합니다.]
화륵···.
방 안의 불길이 불사조에게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 뒤이어 불길로 화한 불사조가 내 어깨로 스며들었다. 이윽고 어깨에 새겨지는 푸른 새의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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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트 : 【어느 필멸자의 고민】
▶융합 신수
+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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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언제 그랬냐는 듯, 불길이 사라진 방 안. 침대에 앉은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정말 엄청난 사기 기프트를 얻어버린 것 같아서.
“어느 필멸자의 고민?”
처음 들어보는 기프트였다.
그도 그럴 게 이터니티의 게임에 존재하는 능력의 가짓 수는 ‘무한(∞)’이다.
이미 정해진 것들만이 있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조건에 부합하기만 하면 능력이 복사가 되듯 랜덤하게 작성되기에 그렇다.
특히나, 수수께끼 박스에서 나오는 기프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플레이어가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제공한다는 의미와 부합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어느 필멸자의 고민’ 또한 그와 같은 종류였다. 다만. 내가 기대하던 D ~ B등급의 기프트는 절대 아니었다.
불사조. 그 영멸의 신수는 환수계열의 최상위에 속하는 포식자였으니까.
비록 새끼이기는 하나, 그 불사조가 내 몸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신수가 사람의 몸에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이건 단순히 사람의 몸을 ‘숙주’삼아 기생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융합’을 해버린 경우였으니까.
필멸을 넘어, 불사조의 불멸성을 가져오기 위한 시도였다.
다만, 그 불멸을 향한 시도는 완전한 게 아니었다.
▶융합 신수
+ 불사조
[재생 횟수 : 1/5]
불사조의 포만감 : 0%
*재생의 횟수를 채우기 위해선 불사조가 만족할 만한 양질의 먹이를 먹여야 합니다.
불사조의 포만감이 100%가 될 시, 재생의 횟수가 늘어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재생이란, 말 그대로 신체의 재생을 의미했다. 불사조는 재생을 상징하는 신수였으니까.
“그만큼 포만감 채우기도 엄청 빡세겠지.”
막상 저 불사조가 원한다는 ‘양질의 먹이’가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냥 이것저것 다 먹여 가면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는 답이 없었다. 입맛이 덜 까다롭기를 바랄 수밖에.
그래도 재생 횟수가 1회 채워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기였다. 남들과 달리, 내 목숨은 ‘2개’라는 소리였으니까.
이런 사기적인 기프트가 고작 D ~ B등급일 리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기프트의 +창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떠오르는 등급.
▶ 【어느 필멸자의 고민】 등급 A
“진짜 로또 맞았네······”
등급은 A였으나, 내게 깃든 건 불사조의 새끼였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등급 성장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
내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
······블랙마켓에 다녀온 뒤로 하루가 지난 수요일 오전.
“순식간에 다 먹어버리네.”
붉은 단약을 조합하느라 소모한 1개의 마력석을 제외한 총 23개의 마력석을 나는 단 한 순간 만에 전부 소모해버렸다.
이걸 먹어 치운 건 당연히 ‘불사조.’
[불사조의 포만감 : 0.01%]
“이거 채울 수 있긴 한가?”
쥐꼬리만큼 차오른 수치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교복을 단정하곤, 방을 나섰다.
수업 들으러 갈 시간이다.
***
“야, 열어봤냐?”
“어, 열어봤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치근덕거리는 은가예.
눈을 반짝이는 게 내가 ‘호구 박스’를 열고 잔뜩 실망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아쉽게도 오히려 정반대였지만.
“뭐 나왔는데?”
“불사조.”
“풉! ···뭐? 부, 불사조?”
“어.”
“그래서 그거 어딨는데?”
“내 몸속.”
어깨의 문양에 콕 박혀 들어갔으니 몸속이겠지. 이를 전혀 믿지 못한 은가예야 배를 잡고 웃어 재끼기 바빴지만.
그러다 내 미적지근한 반응에 입을 삐죽이곤 자리로 돌아간다.
뒤이어 바톤을 터치하듯 고개를 불쑥 들이미는 금발머리.
“블랙마켓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아멜리아였다.
“어, 어제.”
“갈 거면 저한테 말하시지 그랬어요? 제가 잘 안내해 드릴 수 있는데.”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아멜리아가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진로상담은 누구한테 받으실지 정했어요?”
“진로상담?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외부에서 초빙강사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생도들의 진로를 상담해준다는 명목이었는데, 이건 그냥 표면적인 이유고, 실상은 ‘스카웃제의’를 하러 오는 거다.
별의 성좌, 여명의 수호자, 초인 협회, 마법사 협회 등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굵직굵직한 곳의 간부들이 와서 생도들을 1:1 상담을 해준다.
아멜리아가 내게 온 이유도 뻔했다.
자기네 길드인 ‘별의 성좌’에서 상담을 받기를 원하는 거겠지.
“응, 어디서 할진 정했어.”
“어딘데요?”
눈을 반짝이며 잔뜩 기대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멜리아.
“여명의 수호자.”
나는 그 기대를 배반했다.
미안하지만, 여명의 수호자 쪽도 신경은 써줘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