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귀신이란, 사념이 마력과 결합해 탄생한 존재다. 그 사념의 ‘근원’을 부정당한 귀신은 발광하게 된다.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탈락!탈락!】
동자귀의 목소리가 고장난 레코더처럼 미친 듯이 울려 퍼진다.
“으아악!”
“크윽!”
그 안에 담긴 지독할 정도의 사념에 생도들이 휘청이며 귀를 막고 주저앉는다.
다만, 그 정신을 뒤흔드는 사념은 내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상급 부동의 각인>Lv.3
저벅저벅.
【죽어어어어어────!】
【놀이】라는 근원을 부정당한 동자귀가 자신을 내던져가면서까지 내게 달려들었다.
동자귀가 내보일 수 있는 최고 최악의 분노의 표출이자 존재에 가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일격.
동자귀의 이러한 행동은 내가 가정한 몇 가지 상황 중에서도 극히 희박한 확률에 불과했다.
존재 자체가 ‘정신체’인 귀신이 스스로를 내던져 ‘정신’에 타격을 가한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위험하고도, 최악이라 할 수 있는 가정이었기에.
그것은, 존재에 가하는 저주나 다름없었다.
설령 아카데미의 교수라도 귀신의 이러한 공격을 아무런 대비 없이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초인 랭킹 최상위, 500위 안에 드는 강자조차 존재의 사멸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일격. 안개처럼 날아드는 동자귀의 분노한 얼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했지만······
‘오히려 좋아.’
이를 받아들이는 내 얼굴에 떠오른 것은, ‘미소’였다.
***
······나를 붙잡고 심상의 바다로 빠져드는 동자귀.
녀석은 나를 심상의 바다에 ‘익사’시키려는 속셈인지, 계속해서 침잠해 들어갔다.
심층의 기저, 표면의식의 너머에 존재하는 내의식(內意識)까지.
다만, 녀석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부동의 각인이 새겨진 내 의식은 고작 이러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동자귀에게 안겨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빠져들길 얼마쯤.
띠링!
[축하합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의식을 유지한 채 내의식에 도달했습니다.]
[칭호시스템이 개방됩니다.]
[칭호, 【영혼의 선각자】가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
칭호 : 【영혼의 선각자】
─ 최초로 내의식을 엿본 자는 제 3의 눈, 영혼의 눈을 각성하게 된다. 영혼의 눈을 지닌 자는 타인의 영혼의 상태를 읽어들일 수 있습니다.
===
······히든피스가 알아서 굴러 들어왔다.
내의식의 세계. 그곳은 규칙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바다였다.
시계, 건물, 계단,구름, 바다, 해, 달, 감정 등, 온갖 것들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사방에 휘날리고 있었다.
“흐음, 이렇게 생겼네.”
【······너, 너, 왜 멀쩡한 거야?!】
경악한 동자귀의 목소리가 울린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녀석의 얼굴은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 마냥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내의식의 바다에 휩쓸려, 자아를 잃고 공간을 유영하는 파편들처럼 깨져나갔어야 할 내가 멀쩡히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녀석에게는 커다란 공포인 듯했다.
“그러게 왜 들어왔어? 차라리 바깥이었으면 도망갈 기회라도 있었을 텐데.”
동자귀는 나를 반드시 죽이기 위해 심상으로 끌고 들어왔겠지만, 이것은 오히려 악수(惡手)였다.
<상급 부동의 각인>Lv.3
심상세계에서의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존재가 흔들리지 않으며, 타격을 받지 않는다.
하물며 이곳은 나의 내의식.
이곳에서의 나는 내의식이라는 무대의 연출가이자, 각본가였으며, 감독이었다.
녀석은, 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사지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동자귀가 사념이 되어 내게 밀려든다.
딱!
내가 손가락을 튕겼다.
다음 순간, 밀려들던 녀석이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듯, 쾅 부딪히고 무너져내렸다.
뒤이어 공간이 나선처럼 뒤틀리며 무너진 녀석을 쥐어짜고 분쇄한다.
그러나 쥐어짜이고 분쇄되었을지언정, 동자귀는 사라지지 않았다. 녀석은 이내 기류가 되어 스르르 빠져나갔다.
나도 딱히 녀석이 이걸로 소멸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녀석을 지우기 위해서는 좀 더 특별한 힘이 필요했으니까.
이를테면 샤먼의 영력이라거나, 검성의 자질, 혹은 신수의 신력같은 것들.
“기가 막히게 잘 도망치네.”
내가 작정하고 일으키는 심상의 붕괴를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는 동자귀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귀신이라는 것은 정말 불합리한 존재였다. 저놈이 영맥의 마력주에 탄생한 돌연변이라 유독 더 까다로운 거긴 했지만.
그때, 어디선가 검은 그물이 내려와 도주하는 동자귀를 옭아맸다.
【아아아아악!】
고통에 발버둥 치는 동자귀.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일레인인가.”
바깥에서 일레인이 속박의 저주를 사용한 것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동자귀를 바라보던 나는 녀석을 없앨 무기를 소환했다.
주인이 공격받는 난리가 났음에도 잘만 곯아떨어져 있는 불사조. 이 녀석이야말로 내가 준비한 동자귀를 없앨 비장의 무기였다.
녀석의 불길은 귀신과 같은 이형의 존재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이었으니까.
레벨이 1밖에 안된다는 문제점이 있긴 했으나, 그 정도야 포만감을 소모하면 일시적인 파워업이 가능했다.
물론 불사조가 자발적으로 포만감을 사용할 리는 없을 테지만······
“죽기 싫으면 써야지, 어쩌겠어.”
나는 곯아떨어져 있는 불사조의 목을 쥐곤 동자귀에게 냅다 집어 던졌다.
[끼, 끼에엑?!]
곤히 자다 날벼락을 맞은 불사조가 궤도를 틀기 위해 필사적으로 파닥거렸지만, 저럴 줄 알고 나도 전력을 다해 던졌다.
[까아아악─!]
동자귀하고 부딪힌 불사조가 기겁을 하곤 죽기 살기로 불길을 뿜어댔다. 포만감이고 뭐고 없었다.
【끄아아아아!】
동자귀가 푸른 불길에 타오른다. 하지만, 동자귀는 쉽게 소멸하지 않았다.
일레인의 저주 속박이 시간이 되어 풀리고, 거대한 장막처럼 늘어난 동자귀가 불사조를 덮쳐갔다. 이윽고, 동자귀라는 장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 불사조. 그러나 그 가려진 시간은 극히 짧았다.
화륵!
장막을 뚫고 푸른 불길이 솟구친다.
【아아악!】
동자귀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진다. 녀석은 최후의 발악을 하려는지, 불사조를 감싸고 옥죄었지만 그건 오히려 수명을 단축시키는 꼴만이 되어버렸다.
화르르르륵!
푸른 불길이 동자귀의 전신에 번진다.
【아파···! 아파···! 아파···! 아···】
“활활 잘 타네.”
이내 순식간에 녹아내린 동자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띠링!
[축하합니다! 이터니티 제1도서관의 귀신 동자귀를 없앴습니다.]
[보상으로 1000SP와 불사조의 포만감 3%가 지급됩니다.]
[상급 부동의 각인]Lv.3의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때였다. 동자귀가 사라진 자리에 투명한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오. 사조야, 너 제법 한다?”
[까악!]
불사조가 턱을 추켜들었다. 그 거만함이 오늘따라 이뻐 보인다.
그도 그럴 게, 저 투명한 구체는 동자귀의 사념이 날아가고 남은 순수한 ‘정신력’ 덩어리였으니까.
만약 불사조가 생각 없이 불을 질렀다면 정신력 덩어리도 함께 불타 사라졌을 터.
설마 저리 깔끔하게 정신력만 남기고 사념만 불태울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기대도 안 했는데,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투명한 정신력 덩어리를 그대로 집어 삼켰다. 물 풀리듯, 스르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덩어리. 그리고.
[동자귀의 정념을 섭취했습니다.]
[정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정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정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정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정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정신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상급 부동의 각인] Lv.3 → [상급 부동의 각인] Lv.4
띠링!
[정신력이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영혼의 선각자】의 공능이 진화합니다.
─【영혼의 선각자】가 영혼의 상태뿐 아니라,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꺼억.”
달달하네.
***
한편, 도서관에서는 몇몇 생도들이 쓰러진 이해솔을 둘러싸고 있었다.
'녀석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했다.'
니콜라이는 놀란 눈으로 이해솔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귀신의 앞으로 걸어갈 줄이야······'
이해솔의 행동은 정말이지 무모했다.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채, 동자귀에게 몸을 내어주었으니까.
정말 바보같은 행동이었으나 이해솔이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니콜라이 그 자신을 비롯해 도서관에 살아있을 생도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해솔도 이를 알았기에 모두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희생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니콜라이 또한 이해솔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니콜라이 그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아니. 동자귀가 공격할 것을 미리 눈치챘더라면, 그 전에 이해솔의 걸음을 제지했더라면······
이해솔이 지금처럼 사경을 헤매는 처지가 되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솔이 걸어 나갈 때 놀란 니콜라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보기 바빴다. 이는 다른 생도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나, 니콜라이는 그런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물론, 이해솔의 행동을 막았다면 그가 이렇게 살아있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는 결과보다는 감정의 문제였다.
“야, 궁상떠는 건 나중에 해.”
그때,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 것은 은가예였다.
“누구는 마음 안 불편한 줄 알아? 얘 아직 안 죽었어.”
은가예가 쓰러져 있는 이해솔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멜리아와 치유술사인 김하윤이 달라붙어 연신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원래는 의무반으로 데려가야 했으나, 정신에 타격을 받은 이해솔의 몸이 흔들리면 그만큼 무리가 간다는 일레인의 말 때문에 의무반 교수를 부르러 생도 한 명이 달려간 차였다.
은가예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쓰러진 이해솔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니콜라이는 조용히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그때, 이해솔에게 마력을 주입하던 아멜리아가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던 그녀가 일레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일레인, 제가 듣기로 의식에 개입할 수 있는 주술이 있다고 들었어요.”
“······예,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제 분야가 아니라 사용하면 위험해요. 차라리 의무반에서 교수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게······”
“그러면 늦어요.”
아멜리아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해솔의 의식에 들어간 건 귀신이에요. 귀신이 들어간 이상 해솔의 정신이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에요.”
”······.“
일레인이 입을 다물었다.
아멜리아의 말은 전혀 틀린 게 하나 없었기에. 귀신이 제 몸을 내던진 이상, 정신의 붕괴는 피할 수 없었다.
이를 막기 위해 그녀가 저주의 속박을 걸어놓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일레인은 이내 결심을 굳히곤 말했다.
”제 전공 분야가 아니라, 함께 의식에 침투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최악의 경우 아예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고요.”
“상관없어요.”
“나도 같이 가.”
은가예가 대답했다. 그러자 니콜라이도 끼어들었다.
“의식 속에서의 싸움이라면 내가 도움이 될 거다. 경험이 있으니.”
타인의 의식에 침투하는 것에는 경험의 유무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다.
니콜라이의 말대로라면 그는 반드시 데려가야 할 인재였다.
“나도 가겠어. 빚을 진 게 있거든.”
굳은 표정으로 이해솔을 내려다보고 있던 한세연마저 동참했다.
일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제 주술로는 3명이 한계에요.”
“그러면 더더욱 가야지.”
“미안하지만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어.”
은가예와 한세연이 차례대로 말하고, 아멜리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렇게 말하고 있을 시간은 없어요. 빨리 정하죠. 일단, 은가예 그쪽은 마법계통은 모르니까 빠지세요.”
“···뭐? 왜?”
“의식에 침투하는 건 마력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게 유리해요.”
그렇게, 누가 이해솔의 의식에 침투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저, 저기···”
이해솔에게 마력을 주입하던 김하윤이 끼어들었다.
“깨어났어.”
“······뭐?”
놀란 생도들이 급히 이해솔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김하윤의 말대로 이해솔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
“야, 괜찮아?!”
“휴우, 다행이다.”
놀라서 소리치는 은가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멜리아. 굳어진 표정을 푸는 한세연까지.
얘네들 왜 이래? 당황스러움에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깨어났군.”
“뭐, 내가 죽기라도 했냐?”
“바보같은 짓을 했지.”
“···바보?”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니콜라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치미 뗄 필요는 없다. 네가 자진해서 동자귀를 목숨을 걸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이미 눈치 챘으니까.”
“······.”
“마음에 안들지만, 목숨을 빚졌군.”
“······어.”
악수를 청하는 니콜라이. 나는 그 손을 어색하게 마주 잡았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니콜라이에게 '희생을 자처한 바보같은 놈'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 생각이야, 들어봐야 알겠지만 크게 다르진 않을듯 했다. 이내 주변을 둘러본 내가 혀를 찼다.
‘많이도 기절했네.’
대부분의 생도가 쓰러져 있었다. 동자귀의 광분에 사념이 무차별적으로 튀면서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곤 전부 기절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좋았다.
‘포션 팔면 달달하겠는데.’
기절한 생도들한테 포션을 돌리면 돈이 꽤 짭짤하게 벌릴 듯했다. 한세울이 파는 포션에는 나도 지분이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나는 눈을 깜빡였다.
기절하기 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있었다.
생도들의 몸 안에 겹쳐있는 투명한 막이.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색이.
제 3의 눈.
영혼의 눈을 각성하며 마주하게 된 세상의 또 다른 일면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또 다른 무기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감정을 읽는다는 것은 상대에 따른 대처가 수월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완벽하게 보이는 건 아닌 듯했지만.
‘좋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능력에 나는 만족스레 웃었다. 그때 도서관의 문이 발칵 열리며 의무반 교수와 의무대원들이 뛰어들어왔다.
“······허!”
“이런!”
“빨리 의무반으로 옮겨!”
쓰러진 생도들을 보며 다급히 움직이는 의무대원들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서관 귀신 소동의 끝이었다.
그렇게 야자에 참여했던 도서관 생도 전원이 기절하는 소동이 지나가고 4일 후.
이터니티의 첫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